창세기

창세기 제37장 강해 - 꿈 꾸는 요셉

chukang 2011. 12. 4. 17:37

창세기 제37장 강해 꿈꾸는 요셉

 

  야곱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로부터 얻은 첫 번째 아들 요셉을 다른 형제들 보다 더욱 사랑했습니다. 라헬이 벧엘로 오는 길목에서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기 때문에 더 사랑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꿈으로 인하여 형제들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결국 요셉은 형들의 미움과 음모로 인하여 애굽까지 팔려가게 되고 맙니다.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지난 장에서 에서의 대략을 통하여 에서가 세일 산을 중심으로 생활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있습니다. 이는 야곱이 가나안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약전은 족보, 계보라는 뜻입니다. 계보를 서술하는 것은 어떤 새로운 일들이 시작될 때에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야곱의 계보를 소개한다는 서언에 이어 곧 요셉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야곱의 계보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인물이 요셉임을 가리키기 위함입니다. 요셉이 17살이 되었고, 형들과 함께 양을 치게 되었는데, 요셉이 함께 한 형들은 야곱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이 형들이 잘못하는 일들이 있을 때에 요셉은 그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치부를 숨김없이 아버지에게 낱낱이 일러바친 것입니다. 이는 잘못을 덮어주지 못하는 요셉의 포용력의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는 성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애굽에 팔려가서 총리가 되어 자신을 판 형들을 만났을 때에는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관용을 보였습니다.

 

3,4: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야곱은 그의 나이 약 91세에 요셉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라헬의 몸에서 낳은 첫 아들이기 때문에 더욱 사랑했을 수도 있습니다. 채색(彩色) 옷은 소매 끝들의 웃옷이라는 뜻으로 손목을 덮고 발목까지 내려올 만큼 긴 겉옷입니다. 이는 주로 고급 아마포로 만들어졌고 귀족들이나 왕의 자녀들에게 입혀졌다고 합니다. 야곱은 요셉을 다른 형제들보다 더 사랑하는 표시로 이 옷을 계속 지어 입혔습니다. 이런 일방적인 편애는 결국 자녀들의 불화 속에 위기를 조장하게 됩니다. 편애로 인하여 형제들 간에는 질투와 반목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셉에게는 언사가 불평하였는데, 그에게 샬롬을 말하지 아니하였다.’는 뜻입니다. 기본적인 인사조차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멀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입니다. 요셉이 꾼 꿈은 하나님께서 그를 높일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며, 그 꿈은 훗날 애굽 총리가 되었을 때에 그 형제들이 엎드려 절함으로써 마침내 성취가 되었습니다.(42:6;43:26;44:14) 특별 계시인 성경이 완성되기 전 특히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환상과 더불어 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꿈을 통해 그를 들어 쓰시며,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이루려고 하시는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직 인격적으로 미성숙하였기 때문에 그 꿈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다만 형들이 절하는 것이 좋았고, 또 그 내용을 발설하여 더 큰 미움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6,7: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시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여기에서 야곱 일행의 생활 방식이 나타납니다. 즉 목축만 한 것이 아니라 정착하여 농업도 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꿈의 내용은 추수하며 단을 묶을 때에, 요셉의 단을 중심으로 형들의 단들이 둘러서서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허리를 굽혀 절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전적인 존경과 복종의 표시입니다. 이 꿈은 요셉의 탁월한 지위와 형제들의 상대적 실추를 계시한 것입니다. 이는 요셉 개인의 위대함을 강조한 것이기보다는 약한 자들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도 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주권과 역사의 전개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8: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형들 입장에서 보면 미운 놈은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미운데 거기에 꿈에서 요셉은 왕이 되고 자신들은 신하가 되는 내용을 와서 말하니 얼마나 밉겠습니까? 그래서 정말로 네가 우리 위에서 다스리겠느냐고 분한 마음과 멸시하는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더라.

  요셉이 두 번째 꾼 꿈에는 해와 달이는 부모를 말하고, 열 한 별은 형제들을 말합니다. 모든 가족이 요셉에게 절을 했다는 것은 인륜적인 측면에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꿈은 장차 요셉이 모든 가족 중에서 가장 탁월한 존재가 될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10: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상식을 벗어난 꿈 이야기를 들은 야곱은 일단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이는 요셉의 경솔함을 꾸짖는 한 편, 형제들의 불화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11: 그 형들은 시기(猜忌)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시기하는 것은 끓어오르는 분한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꿈의 내용에 대하여 확실한 판단은 할 수 없었지만. 보통 꿈이 아닌 것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야곱도 꿈을 통한 미래를 내다 본 경험이 있었습니다(28:12-사닥다리; 31:11-얼룩무늬, , 아롱진 양떼). 그래서 요셉의 꿈을 기억하고 되어져 가는 형편을 살피려 하였습니다. 족장으로서의 야곱은 영적안목이 남달랐을 것입니다.

 

12: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떼를 칠 때에

  세겜은 야곱이 매입하고, 디나 사건으로 정복하여 자기의 소유가 된 땅으로(33:19;34:27), 다시 야곱이 거하던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약 100km나 떨어진 곳입니다. 당시 좋은 목초지가 세겜에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양떼를 몰고 간 것 같습니다.

 

13,14: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

  야곱이 요셉을 형들에게 보내는 이유는, 첫째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의 근황과 목축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서, 둘째 요셉과 다른 자녀들 간에 화해를 위해서 보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먼 거리인데, 요셉은 순종하여 가겠다고 대답합니다. 형들이 미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부친의 말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당시 야곱은 헤브론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15-17: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나의 형들을 찾으오니 청컨대 그들의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목동들은 양떼를 몰고 초장이 좋은 곳을 찾아 사방으로 다녔습니다. 요셉은 그런 형들의 자취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방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들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형들이 간 곳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분명합니다. 그 넓은 들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며, 혹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신이 찾는 형들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할 것이며, 또한 요셉의 차림새로 보아 재물이 있을 것으로 보아 강도로 돌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계획대로 사용하기 위하여 형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세겜보다 더 위에 있는 도단까지 찾아가서 형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보아 요셉은 자신이 미움을 받는 것을 알면서도 형들을 끝까지 찾아간 것으로 보아서 철도 덜 들기는 했지만, 우애의 마음이 훌륭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형들은 야곱의 편애와, 요셉의 꿈으로 인하여 더욱 미워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미움은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죽이려고 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까지 치달았던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미움에서 분노로 바뀌고, 그 분노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게 되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은 미움의 노예가 되어 인간 관계, 가족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단절이 되는 살인죄를 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19,20: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는 것을 공모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을 꿈꾸는 자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허황된 꿈을 꾸며 자아도취 된 자로 보았습니다. 그랬기에 죽일 것을 공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이는 방법으로는 구덩이에 요셉을 넣는 것입니다. 그 구덩이는 양떼를 먹일 물을 모으도록, 입구는 좁지만 그 밑 땅 속은 깊고 넓게 파서 많은 물을 모으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악한 짐승(맹수)에게 잡아먹혔다고 거짓말을 하자고 했습니다. 이처럼 미움의 죄가 살인의 마음을 품게 하고, 살인을 감추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려는 계획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꿈이 허황된 것으로 간주하고 살인으로 그 꿈을 제거하려고 한 것입니다.

 

21,22: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르우벤은 형제들에게 요셉의 생명(영혼)을 죽이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르우벤은 장남입니다. 고대 가부장적 제도 아래서는 아버지의 권한 못지않게, 동생들에 대한 형의 권한이 매우 컸습니다. 르우벤은 장남답게 동생에 대한 책임 의식과 보호 본능을 가지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동생들을 설득하여 요셉을 죽이는 것만은 막는 것입니다. 이 일은 르우벤이 하나님의 구속사에 알지 못하게 일조를 한 것입니다.

 

23,2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형제들이 요셉을 잡아 제일 먼저 한 것은 채색 옷을 벗기는 일이었습니다. 채색 옷은 아버지의 편애의 상징이기 때문에, 채색 옷을 벗김으로 분풀이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구덩이에 던졌는데, 다행히도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형제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후에 음식을 먹는 것을 볼 때에, 자신들이 요셉에게 한 짓에 대하여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요셉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이스마엘 족속 일행이 들어왔습니다. 이들 중에는 무역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많았으며, 주로 집단을 이루어 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대표적인 무역 품목은 향품(몸에 바르는 향기나는 분)과 유향(향기나는 액체로 고가의 화장품인 동시에 치료 약품이기도 함)과 몰약(키스투스(반일화)의 어린잎이나 가지에서 나오는 끈끈한 점액질 분비물로 약용, 향료용으로 많이 사용함)입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많은 상인들이 드나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들을 이용하여 요셉은 애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26,27: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 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유다는 매우 정적이며, 공동의 범죄(세겜학살)에 가담을 꺼리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요셉이 그들의 핏줄이라는 점과, 그들이 범죄 한 후에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죽이지 말고 오히려 파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형제들을 설득하여 생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들도 생각해 보니 요셉을 팔아버리면 더 이상 요셉을 보지 않아도 되고, 요셉의 꿈대로 자신들의 주인 행세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동의를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28: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미디안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후처 그두라 사이에 출생한 미디안의 자손들입니다(25:1,2). 그런데 이들이 이스마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생활양식도 비슷할 것입니다. 이들은 함께 상단을 꾸려 서로 협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은 은 20세겔에 팔았습니다. 당시 성인 노예는 30세겔에 거래되었다고 합니다(21:32; 21:32). 요셉은 아직 17세의 미성년이기 때문에 20세겔에 팔린 것입니다.

 

29,30: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요셉을 대상에 판 일은 맏형 르우벤이 없을 때에 이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장자로 동생에 대한 책임 의식이 남달랐던 르우벤은 동생을 구출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혼자서 구덩이로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좌절감, 슬픔으로 인하여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방법으로 옷을 찢었습니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이는 요셉이 실종된 것을 어떻게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릴까? 하는 말입니다. 동생의 실종에 대한 부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 의식을 져야하는 장남으로서의 깊은 번뇌입니다.

 

31,32: 그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수 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 채색 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

  형들은 모의한 대로 요셉의 죽음을 가장하는 방법으로 수 염소의 피를 채색 옷을 묻혔습니다. 그리고 그 옷은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직접 가져가지 못하고 종들을 시켜서 아버지에게 보내어 확인하도록 하였던 것 같습니다.

 

33: 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야곱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채색 옷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이런 점을 노리고 아비 스스로 상황은 유추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결국 요셉의 형들의 악한 모의와 거짓은 그대로 적중하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맹수에게 잡아먹힌 것으로 판단하고 만 것입니다.

 

34,35: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야곱은 사랑하는 요셉이 맹수에 찢겨 죽은 것으로 판단하여, 굵은 베옷을 입고 애통했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요셉을 광야로 형들에게 보내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시체까지도 찾지 못하게 되었기에 더욱 슬픔의 고통은 컸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떤 말을 해도 위로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속아 요셉이 맹수에 찢겨 죽은 줄 알고 애통하는 야곱의 모습은, 대략 30여 년 전에 야곱에게 속아 장자권을 빼앗기고 대성통곡하던 에서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27:34,38). 결국 야곱은 속고 속이는 파란만장한 험악한 세월을 보낸 고난의 족장이었습니다.

 

36: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

  히브리 원문에 보면 여기의 미디안 사람은 메다님으로 미디안과 형제가 되는 므단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25:2). 이들 형제는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애굽 행 대상에는 이스마엘 사람, 미디안 사람, 므단 사람 등 여러 족속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추측해 볼 때에 이스마엘 족속(25)은 대상의 소유주 또는 대상을 일컫는 전체적인 표현으로 보이고, 미디안 사람과 므단 사람은 그 대상에 동행했던 상인들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단 속에 함께 한 상인 중 므단사람이 요셉을 은 20세겔에 샀고, 보디발에게 요셉을 되 판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디발보디베라’(41:50)의 단축형으로 태양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모든 문명 세계의 패권국이었던 애굽에서도 막강한 실권을 지닌 실력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선민의 보존자와 역사의 주역으로 만드시기 위해 군력의 핵심인 보디발과 그의 군왕 바로를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