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39장 강해 -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

chukang 2011. 12. 16. 19:02

창세기 제39장 강해 - 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죽음의 위기에 처한 요셉은 맏형 르우벤과 유다의 노력으로 죽음을 면한 후에는 이스마엘의 상단에 팔려 애굽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이스마엘 상단은 요셉은 애굽의 시위 대장 보디발에게 팔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랑하셔서 보호하시며 이끌어주심으로써 요셉은 보디발의 집의 가정 총무가 되었지만,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다 감옥에 갇히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되지만, 감옥에서도 그는 인정을 받아 총무의 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 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고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때는 대략 17세가량으로, 보디발은 이스마엘 상단으로부터 요셉을 사서 가정의 사소한 일을 처리하는 종으로 삼았습니다. 시위 대장 정도가 되면 안목이 매우 뛰어나고 지혜와 무예도 출중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의 눈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요셉이 들어온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요셉의 애굽 생활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형통한 자’는 번영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하는 일마다 관계하셔서 매사를 순조롭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형통이 얼마나 눈부신지 주위 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도 이처럼 사랑을 듬뿍 부어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원하시는 모습으로 순종하며 적극적으로 변화될 때에 더 큰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보디발은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살아계시며 무한한 능력을 가진 하나님께서 요셉을 돕고 계심도 깨달은 것입니다. 요셉이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범사에 형통’하게 되었을까요?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그는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행사가 형통하였던 것입니다.

 

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은혜를 입다’는 말은 ‘구부리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로 몸을 구부리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요셉이 그 주인의 특별한 관심과 은총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주인들은 그 종이 충성스럽고 신실하여 마음이 흡족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은혜를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게 됩니다. 주인의 큰 사랑을 받아 이제는 단순한 종으로서가 아닌 보디발의 개인 비서 혹은 가정의 전체를 관리하는 총무로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애굽의 실력자인 보디발의 자기 가정의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위임할 만큼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5: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이 보디발 집의 모든 것을 관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셉이 보디발과 그 가정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대접을 받도록 높이시기 위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인정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인정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같은 종들 사이에 인정을 받았겠지만, 점차 주인에게 알려지게 되고, 주인도 그의 모습을 관찰하며 하는 일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을 것이며,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기에 그를 인정한 것입니다. 물론 요셉의 하는 일이나 그의 생활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모습이었기에,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보디발은 식사 문제만은 요셉의 권한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아마도 당시 애굽의 법에는 외국인의 음식 관리 및 식사 시 합석 등을 금지시켰기 때문으로 보입니다(43:32).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는 말은 ‘그 자태가 보기 아름다웠고 그 외모가 아름다웠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어미는 ‘곱고 아리따운’ 여인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29:17). 어미를 닮은 것으로 보입니다.

 

7: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그 후에’ 이런 단어는 국면이 전환될 때에 사용하는 것이므로, 이제 요셉에게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때는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약 10년 정도 거하였으므로 27세가량으로(41:1, 46) 원숙한 남성미가 흘렀을 것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계속 정염의 눈길을 보내다가 드디어 동침을 요구해 왔습니다. 역사가들은 당시 애굽 여인들은 결혼 유무를 떠나 외간 남성과 자유로운 연애를 할 정도로 매우 개방적이고 음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눈이 타락한 정염으로 가려진 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를 파멸과 허무로 이끈다고 잠언은 교훈하고 있습니다(잠 7:5-27). 보디발의 아내는 그저 한두 번 정도로 동침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요구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요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쉬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8,9: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는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과 같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에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는 사회적인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하고, 둘째는 신앙적 측면에서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것이 옳은가를 살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적 측면에서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며,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나를 비추어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요셉은 그 중에서도 허물과 죄가 발견되지 않는 정말 청결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에는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애굽에 팔려옴으로써 아버지 밑에서 철부지 시절의 모습을 버리게 되었고, 하고 싶은 말도 갈무리 할 줄 알고, 하고 싶은 행동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방에 종으로 팔려 온 종의 신분으로서 요셉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는 생활 전체가 절제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간 것입니다.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 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끈질기게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죄의 유혹을 뿌리치는 방법은, 첫째 죄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 면전에 있는 신앙으로 죄를 대적했습니다. 둘째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모든 원인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요셉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유혹하는 여인과 함께 있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11,12: 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보디발의 아내는 점점 더 요셉과 동침하고 싶은 욕정이 강해지고 도무지 이겨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마침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요셉은 그 때에 일을 보기 위하여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들어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을 본 여인은 지금까지 억누르던 욕정이 분출되어 요셉의 옷을 붙잡고 동침하기를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결코 악에 빠질 수가 없기에 옷을 벗어버리고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현명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와는 뱀이 유혹할 때에 대화를 중단하지 못했기 때문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사적으로 피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악을 끊지 못하여 여운을 남기게 되면 그 죄악에 서서히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인 것입니다.

 

13: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손에 남겨진 요셉의 겉옷을 이용하여 요셉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악한 계책이 떠올랐습니다. 요셉으로서는 그 남겨진 옷이 자신의 순결을 증명하는 것이나, 보디발의 아내는 거짓말의 증거로 악용을 하고 말았습니다.

 

14,15: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보디발은 아내는 거짓 증거로 요셉이 자신을 강간하려고 했다고 옭아매었습니다. ‘히브리 사람’이라는 말은 애굽 사람이 멸시하고 배격하는 용어입니다. 즉 천한 히브리 사람이 자신을 강간하려고 했다는 말에 다른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요셉이 천한 히브리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희롱하게’ 보디발의 아내는 히브리 사람이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를 희롱하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특히 요셉의 출세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부채질하여, 요셉이 잘못한 것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이는 악인의 특징입니다. 간사하고 끈질길 뿐만 아니라, 거짓 증거를 만들고, 주위 사람들을 이용하여 여론을 조성하여 죄인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16-18: 그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내게로 들어왔기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자기의 욕정을 채워주지 않자, 그를 죄인으로 몰고 가기 위하여,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요셉의 겉옷을 거짓 증거물로 제시하기 위하여 그녀 곁에 잘 보관해 두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요셉을 탐하려는 욕망이 강하였던 만큼, 그에 대한 애증이 더욱 커졌던 것입니다. 요셉의 옷은 형들에 의해서는(37:31,32) 죽음의 거짓 증거물로, 지금은 보디발의 아내에 의하여 거짓 증거물로 채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보디발이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자신이 정숙한 여인임을 내세우며, 집안 사람을 속인 것과 같이 남편도 속였습니다.

 

19,20: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아내의 거짓말을 들은 보디발은 심히 노하였습니다. 이는 화가 맹렬하게 치솟아 오른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 종이 주인의 아내를 범하려고 했다면 그 즉시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왜 죽이지 않았을까요? 그야 당연히 하나님께서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보디발이 평소에 알던 요셉은 이런 악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고 옥에 넣은 것은, 요셉이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화를 완전히 다스리지 못한 분풀이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갇힌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로, 신분이 높은 정치법이나 국가적인 중범죄자들을 가두는 특별 감옥으로, 보디발이 요셉을 특별히 취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디발의 이러한 처결은 후일 요셉이 바로 앞에 서는 데 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역사를 일으키시기도 하므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악행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만드셨습니다. 고난의 파도가 높은 요셉이었지만 그와 비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그에게 더욱 넘치게 부은 바 되었습니다.

 

22,23: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겼다는 것은, 옥중의 모든 일을 요셉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처리하도록 허락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요셉이 어떻게 처리하였는지에 대한 사후 감독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그만큼 요셉의 하는 일은 어떤 일이든지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옥이 요셉을 이토록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과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부터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요셉이 잘못한 것이 없음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종으로 팔려오고, 또 더 낮은 감옥까지 들어가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인정을 받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 특별한 쓰임을 받게 되는 성도는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