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41장 강해 – 바로의 꿈
바로는 기이한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해 줄 자가 없어 애를 태우다가, 술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 있을 때에 자신이 꾼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을 생각해 내고는 요셉을 바로에게 소개하여 꿈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그 꿈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하여 일개 종의 신분에서, 또 죄수의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술 맡은 관원장이 석방된 지 2년 후로 요셉은 약 30세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바로’는 애굽 최고 통치자의 호칭입니다. 이때에 바로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은 요셉과 관련한 3번째의 꿈입니다. 요셉은 꿈과 연관이 될 때마다 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들어 쓰시기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고대 애굽에서 암소는 땅과 농업에 깊이 관련된 가축이며 달(月)의 신인 ‘아이시스(Isis)’를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 암소가 하수(나일강)에서 올라온다는 것은 나일 강이 연례적으로 범람하여 강 유역을 기름지게 하는 자연 현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애굽 농사에 풍년이 될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살진 암소가 꿈에 나타난 것입니다. 갈밭에서 뜯어먹는 것은 나일 강변의 종은 목초지에서 꼴을 뜯는다는 것입니다.
3: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흉악하고 파리하다는 말은 ‘외모가 볼꼴사납고 살이라고는 없는 말라빠진’이라는 뜻입니다. 가축으로서는 효용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절대 결핍(대기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흉악하고 파리한 암소는 앞의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와 대조적인 현상이 나타날 것을 상징합니다.
4: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소가 소를 먹을 수가 없는데, 그것도 흉악하고 파리한 암소가 아름다고 살진 암소를 먹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는 좋은 일이 생겼다가 나쁜 일로 인해 망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바로는 같은 밤에 거듭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는 허황된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강한 전달을 하려고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은 보기만 해도 좋은 느낌으로, 풍년과 관련된 꿈인 것은 눈치 챌 수 있습니다.
6: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세약’하다는 것은 살이 전혀 붙어 있지 않은 깡마른 것을 말합니다. ‘동풍’은 일상의 바람이 아니라 특수한 경우에 부는 해로운 바람입니다. 이는 3,4월경에 아라비아 사막 등지에서 고열과 짙은 먼지를 동반하여 불어오는 남동풍으로 추측합니다. 이 바람은 각종 농작물을 단번에 고사시켜 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7: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소의 꿈과 공통된 점은 앞에는 좋은 느낌이지만 뒤에는 나쁜 느낌을 주는 내용의 꿈을 연달아 꾸었는데, 그 꿈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에 바로는 잠을 깬 후에야 비로소 꿈인 줄로 알 정도였습니다. 그 꿈들은 어떤 형태로 실현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필연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8: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엿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 마음이 번민하여’ 이는 ‘그의 혼이 근심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로는 꿈으로 인하여 매우 상심하거나 혼란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술객과 박사들을 불러서 해몽을 하려고 했으나 그 누구도 해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술객은 ‘설명하다, 직시하다’는 의미와 ‘숨기다’는 의미가 결합된 것으로,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어 설명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주로 해몽가, 점성가, 주술가 등 미신 숭배자들로서 미신의 왕국 애굽에서 바로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박사’는 ‘분변하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반인보다 탁월한 학문과 지식(주술 포함)을 소유하여 각종 재판과 교육 및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즉 애굽에 있는 모든 지식인들이 모였으나 바로의 꿈은 도무지 해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나의 허물을 추억하나이다.
‘허물’은 실수의 수준을 넘어 범죄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고백하는 허물이란 요셉과 맺은 약조를 불이행한 것인지, 아니면 지난날 바로 앞에 범한 잘못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혔던 일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바로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어법으로 보입니다.
10-13: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시위 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징조가 있는 꿈이라, 그곳에 시위 대장의 종 된 히브리 소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고하여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하고 매는 매여 달렸나이다.
복권된 술 맡은 관원장은 지난 2년 동안 잊고 있었던 히브리 소년의 탁월한 꿈 해석 능력을 기억해 내었습니다(40:4-22).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의 허물로 치부할 정도로 때가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는 가장 적합한 시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정해진 시간을 인내와 기다림으로 일관해야 하는 당사자에게는 가장 적당한 은혜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14: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하나님께서는 가장 빠르고 완벽한 방법으로 요셉을 애굽의 감옥에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안전이라는 절대적인 필요를 위해 세상 질서와 권력을 친히 운용하기는 것입니다(롬 13:1). 요셉이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 있었다는 것은, 애굽인들은 수염을 깎고 단정히 하였기 때문이며, 바로 앞에서는 지켜야할 예의였습니다. 그 옷도 애굽인들이 입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15,16: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바로는 요셉의 해몽이 인간적인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은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능력이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명예욕’을 단호하게 물리치는 요셉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유익을 위한 답변을 해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해몽의 유일한 열쇠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17-2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하숫가에 서서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하숫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악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그 파리하고 흉악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먹었으나 먹은 듯하지 아니하여 여전히 흉악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그 세약한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술객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보이는 자가 없느니라.
바로는 자신이 꾸었던 꿈을 요셉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라 몰골이 흉악한 암소에 관해 상술하여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애굽 역사가 유래가 없는 끔찍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5: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다.
암소와 이삭으로 나타난 두 꿈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이 신적인 기원을 지닌 특별한 계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꿈을 꾸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꿈의 내용을 주관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 하실 일’이라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26,27: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이라.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애굽 전역에 곧 닥쳐올 일곱 해 풍년과 일곱 해 흉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지체하지 않고 꿈을 해석하고 있는 것은, 그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머리와 입술을 주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8: 내가 바로에게 고하기를 하나님이 그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이신 계시를 알려주는 대언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붙들린바 된 성도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구체적이고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영적 안목과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29-31: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기근으로 멸망되리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비록 처음 일곱 해는 큰 풍년이 있을 것이지만, 그 뒤에 오는 일곱 흉년으로 너무 심하여 일곱 해 풍년 동안 있던 곡식이 모두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멸망되다’는 ‘완전히 소진하다’는 뜻입니다. 자연 재해로 인해 애굽 전 백성의 양식이 핍절되는 등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32,33: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난 일을 확실히 정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민 23:19). 요셉은 바로에게 큰 흉년에 대비할 대책을 세울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일개 종의 신분인 요셉이 이런 권고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요셉의 뒤에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바로와 그 신하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압도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34-36: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
관리는 백성의 생활과 추수한 곡식으 살피는 자라는 뜻으로 일종의 봉사적 기능을 강조한 감독관입니다. 이처럼 나라 안에 살피는 자들이 많을수록 백성은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토지 소산물의 1/5을 징수하는데, 이는 평년보다 약 2배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워낙 토지가 기름졌던 관계로 각 개인에게는 별무리가 없는 양이었다고 합니다. 7년 풍년 기간 동안 백성에게서 거둬들인 양곡을 왕의 권위와 통제 아래 두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조치는 자연의 재난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매우 현명한 방법입니다.
37,38: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바로를 위시한 애굽의 신하들은 요셉이 제시하는 기근에 대한 대처 방법에 대하여 매우 흡족해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는 다신론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바로는 요셉이 지닌 지혜의 출처가 하나님이며,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모든 현명한 방도를 알려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다른 신들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는 다신론적 사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40,41: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이는 애굽 전역의 치리권을 부여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단숨에 일개 종의 신분에서 바로 집안의 집사로 세우는 동시에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이 고난 중에 인내하는 자, 오직 주의 뜻을 좇아 부요나 빈핍에 처할 줄 아는 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딤후 4:7,8; 약 5:7-11).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제2인자로 삼겠다는 놀라운 선언을 했습니다.
42,43: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총리 임명 절차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절차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인장 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이 반지에는 바로의 초상과 그 이름, 칭호 등이 각인되어 있다고 추측합니다. 옷은 세마포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세마포 옷은 희색 계통의 고급 면으로 된 것인데, 애굽의 존귀한 인물들, 사제나 고관들이 착용하는 의복입니다. 요셉이 이 옷을 입은 것은 그의 변화된 신분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사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목걸이가 아닌 바로에게서 부여받은 명예와 지존함을 보이기 위한 사슬입니다. 그 뒤에는 자신이 타난 수레 바로 뒤를 따르는 수레에 요셉을 태움으로써 그를 제2인자로 권위를 세워주었습니다. 왕과 총리의 행차에 앞서 전령들은 ‘엎드리라’고 외침으로 요셉이 애굽의 실권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나는 바로라’ 이는 바로가 변개치 못할 법령이나 전언을 선포할 때 그 권위를 확인시키기 위한 통상적인 말로 자신이 통치자임을 외치는 말입니다. 이제 애굽의 모든 백성들은 요셉에 의하여 통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생사여탈권까지 요셉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총리가 된 것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사브넷바네아’라는 말은 세상의 구원자, 생명의 구명자, 세상 사람들을 위한 방백 등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앞으로 수행할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할 매우 중대한 사명이 있음을 암시하는 이름입니다. ‘온 제사장’에서 ‘온’은 ‘태양’을 뜻하는 지명입니다. 그곳에는 태양 신 ‘라’의 신전이 있으며, 당시 유력한 애굽의 제사장 집단이 거주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보디베라’는 ‘보디발’과 동일한 뜻으로 ‘태양에게 구별된’ ‘태양에게 봉헌된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온 제사장 보디베라’는 태양신의 사제를 뜻하며 애굽 내에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직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 ‘아스낫’의 이름은 애굽여신 ‘나이드의 경배자’라는 뜻입니다. 요셉이 이방 출신의 종이며 죄수의 신분에서 이같이 애굽 국내의 요직에 해당하는 가문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애굽인들 사이에 꿈 해석자가 지니는 권위와, 비천한 인물을 제2인자로 발탁할 수 있었던 당시의 절대 권력의 구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그런 역사적 상황을 적절하게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로 만드시는 섭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바로가 임명한 총리의 직책을 수행하게 될 때에 요셉의 30세였습니다. 17세의 나이로 애굽에 끌려온 후(37:2) 보디발의 집에서 약 10년간의 종살이와 3년간의 투옥 생활을 거친 끝에 30세의 나이로 애굽 총리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뜻을 위해 당신의 백성을 준비시키시되 사용하실 만한 때에 비로소 그를 높이시고 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47-49: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년 곡물을 거두어 각성에 저축하되 각 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선중에 저장하매,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요셉이 해몽한 대로 일곱 해 풍년이 들었습니다. 요셉은 성 주변의 모든 소산물의 1/5를 7년간 거두어 성 안 보관 창고에 저장하였습니다. 이는 단지 애굽 사람만을 위한 대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그 주변 백성들 특히 가나안에 거주하던 야곱 가문을 위한 대책으로 이와 같은 큰 사역을 진행하신 것입니다. 7년 동안 사상 유래가 없는 풍작을 이루어 행정력을 총 동원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곡물을 저장하게 되었습니다.
50-52: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셔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은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7년 간의 대 풍작 기간 중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두 아들을 선물하셨습니다. 장남의 이름은 므낫세로, 요셉은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던 자신이 탁월한 신분이 된 것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서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상의 총 집산이라고 하는 애굽 내에서 그리고 주어진 부귀와 영화 가운데서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신앙을 경주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선물해 주신 현재 누리는 행복이 과거의 고초를 상쇄하기에 충분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53-57: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7년 풍년에 이어 견디기 힘든 7년 대흉년이 찾아 들었습니다. 이 흉년이 애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주변 국가에까지 널리 미쳤습니다. 세계적인 흉년이었습니다. 이 난구에 바로는 요셉에게 모든 재량권을 줌으로써 애굽과 주변 모든 국가의 운명이 요셉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 인류의 생명을 보존하시며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혼자하실 수 있으나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처럼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질 때에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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