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43장 강해 - 요셉과 베냐민의 조우

chukang 2012. 1. 12. 20:22

창세기 제43강 강해 요셉과 베냐민의 조우

 

  흉년으로 인해 애굽에 시므온을 볼모로 잡힌 채로 곡물을 가지고 돌아온 아들들에게 야곱은 역정을 내며 슬퍼했습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만 곡물을 살 수 있고 시므온을 데려올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들을 생명을 걸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겠다는 르우벤의 요청도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사 온 곡물이 다 떨어져 가매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게 되고, 애굽의 총리가 요셉인지도 모르고 그를 위하여 예물까지 준비하여 보냈습니다. 이렇게 하여 친형제인 요셉과 베냐민이 조우를 하게 되지만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 않는 요셉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1,2: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비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라.

  계속 되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곡식을 다시 사러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자식들에게 애굽으로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이 같은 기근을 주시는 이유는, 애굽을 통하여 야곱의 자식들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성장하는 도구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기근으로 인해 야곱은 애굽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자식들을 통하여 다시 식량을 사 오도록 야곱은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

 

3: 유다가 아비에게 말하여 가로되 그 사람이 엄히 우리에게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요셉은 반드시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만 곡식을 살 수 있으며, 또한 시므온도 데리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요셉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애굽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다는 이 문제를 야곱과 상의를 하게 됩니다. 야곱도 당장 자신과 자식들과 식솔들의 생명이 걸려 있는 상황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심중에는 이미 베냐민을 보낼 것을 결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4,5: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않으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4절의 표현으로 보면, 아들들은 야곱을 위하여 곡식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이유는 야곱이 족장이며 가장이기 때문입니다. 식솔들을 먹여 살릴 모든 책임이 야곱에게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곡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6: 이스라엘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오히려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고하여 나를 해롭게 하였느냐

  야곱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들들의 잘못을 추궁하기 위함인 것보다는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보내야만 하는 괴로움을 토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구속사와 관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곡식을 확보하는 것은 야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 가족의 차원도 넘어서, 민족적이고 구속사적으로 발전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7: 그들이 가로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힐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그저 살았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말을 조조(條條)이 그에게 대답한 것이라. 그가 너희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사실은 자신들이 먼저 가족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말은 감추고, 요셉이 가족 관계를 자세히 따져 물었기 때문에 대답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면서, 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할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가야한다는 면책성 발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힐문(詰問)이라는 말은 답변이 사실과 다를 때에는 책임을 따지겠다는 뜻입니다.

 

8: 유다가 아비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것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 하리이다.

  베냐민을 저 아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버지는 같으나 어미는 다르기 때문이며, 또한 유다는 40대에 들어섰지만, 베냐민은 아직 20살을 갓 넘은 청년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요셉의 일로 인하여 그 친동생인 베냐민을 보호해야만 한다는 인식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곡식을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만 모두가 살 방도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9: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유다는 자신이 베냐민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합니다.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이 말은 만일 베냐민이 잘못된다면 자신의 손에 책임을 물으라는 뜻입니다. 이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뜻입니다. 또한 잘못된다면 자신은 영원히 아버지 앞에서 죄인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온 가족을 위하여 곡식을 사려고하는 유다의 각오를 엿볼 수 있습니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 하였더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처음 곡식을 사온 양은 몇 달이나 혹은 일 년치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요셉은 친동생 베냐민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많아야 한 두 달치의 곡식을 팔았을 것이므로, 그 기간은 애굽을 두 번 이상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11: 그들의 아비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을 삼을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榧子)와 파단행(巴旦杏)이니라.

  야곱은 예물을 애굽 총리에게 주어 그 마음을 돌려서 어떻게 해서든지 시므온을 꺼내오고 곡식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물은 요셉의 꿈에서와 같이 부모가 요셉에게 예물을 들리는 즉 절을 하는 것의 성취와 관련이 됩니다. 유향은 올리브 과에 속한 나무 진액에서 추출된 흰색의 고무액을 말려서 만든 향이며, 꿀을 나무의 열매에서 짜낸 즙을 조려 만든 진액이며, 향품은 트래가칸트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향을 말하고, 몰약은 근동 지방에서 서식하는 관목에서 채취한 방향성 약재이며, 비자는 피스타치아(pistacia vera) 나무의 열매로, 이 열매에서 자낸 기름은 식용 또는 가정용품으로 활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파단행은 살구나무의 일종으로 팔레스틴과 시리아 등지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애굽에서는 매우 보기드믄 나무라고 합니다.

 

12: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어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差錯)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첫 번째 식량을 구입할 대에 잘못 계산하고 그로 인하여 빌미가 되어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염려하여 다시 그 돈을 가지고 감과 동시에 이번에 구입할 곡식 값을 함께 가지고 가도록 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마도 애굽의 관리나 아들들 중 어느 한 편의 실수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3,14: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일게 되면 잃으리로다.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 속에서 벗어나 이제 야곱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믿음으로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앙의 사람 야곱의 결단입니다.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베냐민과 시므온과 모든 자식들을 지켜주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15: 그 사람들이 그 예물을 취하고 갑절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의 앞에 서니라.

  요셉의 형제들은 예물과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요셉을 찾아갔습니다. 야곱은 과거 밧단아람에서 돌아올 때에 형 에서의 분노를 그치게 하기 위하여 예물을 준비한 것과 같이, 예물로 애굽총리로부터 은혜를 입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16: 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그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형제들을 맞이한 요셉은 제일 먼저 베냐민이 함께 왔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참으로 2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 만에 만나는 친형제 베냐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하며 회포를 풀고 싶었을 것입니다.

 

17,18: 그 사람이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일 우리 자루에 넣여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는 형제들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자신들을 잡아 노예로 삼고, 가지고 온 나귀를 빼앗길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곡식 값을 되돌려 받은 것이 화근이 될까 염려한 것입니다. 또한 첫 번째 방문 때에는 3일이나 감옥에 갇혔지만 지금은 융숭한 대접을 한다고 하니 오히려 불안감이 커진 것입니다. 그리고 베냐민과 같이 왔기 때문에 지난날 요셉을 노예로 판 죄책감까지 더하여졌을 것입니다.

 

19-22: 그들이 요셉의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주여 우리가 전일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객점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인의 돈이 본수대로 자루 아구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청지기에게 라고 부른 것은 단지 신분상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며, 혹시 첫 번째 곡식 값의 차착으로 인한 것이라면, 오해를 풀기 위하여 먼저 청지기에게 공손한 모습을 보여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함일 것입니다. ‘본수대로이는 본래의 수자대로, 고스란히라는 뜻입니다.

 

23,24: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으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 내고,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무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두려워하는 형제들과는 정반대로 요셉의 청지기는 차분하게 하나님의 성호를 말하며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에 요셉은 가정의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시켰으며, 또한 자신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본받을만한 모습을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지기는 요셉의 지시에 직감적으로 요셉의 형제들을 잘 대접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물을 떠 주고, 나귀에게도 먹이를 준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25,26: 그들이 여기서 먹겠다 함을 들은 고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오정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그 집으로 들어가서 그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니

  형제들은 애굽의 총리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기다렸습니다. 요셉이 오자 예물을 바치고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이로써 요셉의 꿈은 완전히 성취가 된 것입니다. 다만 그 시기와 때는 알지 못하지만 이처럼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인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5:7).

 

27,28: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가로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지금까지 생존하셨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비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요셉은 제일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 주시던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고, 가뭄 속에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을까 심히 염려되었습니다. 요셉의 효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29-31: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가로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냐? 그가 또 가로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이 아우를 인하여 마음이 타는 듯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20년 만에 동생을 만난 요셉은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베냐민임을 확인한 후에 제일 먼저 하는 그를 위하여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 후에 북 바치는 감정으로 인하여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었습니다. 이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천민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당대의 풍습이라고 합니다. 또한 아직까지는 자신의 신분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한편으로는 엄하고 공의로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매우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얼굴을 씻고 나왔다는 것은 요셉이 매우 많이 울었음을 짐작하게 하며, 베냐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하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하고 배식하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하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하인들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배식하는 애굽 사람들의 식탁을 각기 따로 차렸습니다. 그 이유는 애굽의 총리와 외국인이 히브리 사람과는 신분상 한 식탁에서 먹을 수 없기 때문이며, 종교 의식 상 애굽인들은 이방인인 이교도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소를 식용으로 사용하였지만 애굽 사람들은 소를 매우 신성시하여, 소를 천하게 다루는 히브리인들은 매우 부정한 자로 간주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안 식탁을 사용하는 것조차도 부정한 행위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33: 그들이 요셉의 앞에 앉되 그 장유의 차서대로 앉히운 바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히브리인들은 한쪽 파에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식사를 하지만, 애굽인들은 의자없이 낮은 테이블 주변에 앉아서 먹는 것이 일반적 식사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장유의 차서대로 앉히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신분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4: 요셉이 자기 식물로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오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베냐민에게는 오배나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특별한 손님에게 더 많은 음식을 주는 것은 환대의 표시였습니다(삼상 9:23; 13:26). 형제들은 이제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자신들을 노예로 삼을까 염려하였으나, 식사까지 대접하면서 환대를 받고 있으며, 특히 걱정이 되었던 베냐민에게는 특별한 호의로 음식 오배나 주었으며, 시므온은 풀려나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