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45장 강해 - 요셉과 형제들의 화해와 바로의 야곱 초청

chukang 2012. 2. 3. 19:29

창세기 제45장 강해 요셉과 형제들의 화해와 바로의 야곱 초청

 

  요셉은 형제들이 과거의 모습에서 변화를 받아 서로 우애 있게 지내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형제로서의 진정한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 소식은 바로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어 바로는 야곱을 비롯한 모든 식솔들까지 애굽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해석을 할 때에,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의 시작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기근은 5년이나 더 남았기 때문에 야곱은 애굽으로의 이주를 결단하게 되고, 이 기근은 하나님께서 야곱 가문을 애굽에서 번성케 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이제 요셉은 형제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더 이상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베냐민과 함께 종이 되겠다고 나서는 모든 형제들의 모습을 보고 과거의 모든 미움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그 대신에 사랑이라고 하는 풀이 솟아오른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신분을 감추지 않아도 되고, 감출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봇물이 터지듯이 밀려오는 정을 억제할 수 없었던 요셉은 모든 하인들을 모두 밖으로 나가도록 내 보낸 후에 형제들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2: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방성대곡은 큰 소리를 내며 우는 것입니다. 베냐민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아비에 대한 그리움, 먼저 죽은 어미에 대한 그리움을 간신히 참고 있던 것이 자신의 은잔 시험을 이겨내며 형제 우애를 보여준 형들의 모습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폭발하듯이 눈물이 솟구치고 울음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런 요셉의 모습은 더 이상 애굽 총리의 지고한 신분이 아닌, 단지 귀여움을 받던 아비의 한 아들로, 꿈꾼 것을 숨길 줄 모르고 드러내던 철부지의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이 울음은 밖으로 나간 하인들에게도 들렸을 것입니다. 하인들은 영문을 몰랐겠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여 들어보고는 요셉이 곡물을 사러 온 자들의 형제임을 알고 결국에는 바로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입니다.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애굽의 그 무시무시한 권력을 쥔 총리가 갑자기 자신이 요셉이라고 밝히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서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말에도 형들은 대답도 하지 못할 상태가 된 것입니다. 애굽으로 팔려오면서 그동안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이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겠습니까? 형제들을 통하여 아직은 건강하게 계신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 아버지가 애타게 그리운 것입니다.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요셉은 형제들을 가까이 불렀습니다. 이 순간 형제들에게는 요셉과의 사이에 막혀있던 애굽의 총리대신이라고 하는 담장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제 총리대신과 죄인으로 취조를 받던 관계가 아니라, 친형제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애굽으로 팔려 와서 숱한 고난을 겪었으나 인내하며 견디어 내었고, 형들의 악을 선으로 갚는 요셉의 모습은, 아무런 죄도 없이 십자가에 모진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예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과거 자신을 판 범죄 행위(37:18-28)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라고 놀란 형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동시에 안심시켜주고 있습니다. 이런 요셉의 모습에게 그가 이미 하나님의 구속사를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랬기에 더욱 기쁜 마음으로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6,7: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흉년이 제2년째 되는 동안 요셉의 형제들은 두 번째 곡물을 사러 왔습니다. 극심한 흉년으로 도저히 밭을 갈 수도 없고 심을 수도 없기 때문에 수확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의 저장해 놓은 곡물이 아니고서는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확실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극심한 기근을 만드시고, 이 기근에 야곱의 가문을 애굽으로 불러들이시며, 애굽에서 이들을 번성케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런 구속사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친히 실천하시는 것을 요셉은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에는 살아남, 구출, 남은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구원뿐만 이 아니라 구속사적 측면에서 영적 구원의 의미도 포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보내신 것이 야곱 가족들의 생명을 보존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장차 세상을 구원하실 원대한 구속사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표면적으로는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으로 팔았으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형들의 구원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이는 바로의 충실하며 신실한 조언자로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요셉은 바로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의 정책 수립은 요셉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즉 애굽 국가의 모든 중대사가 요셉을 통하여 바로에게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직위는 바로의 밑에 있지만, 바로의 위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성도는 세상 권세자들보다는 낮은 위치에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벧전 2:9), 세상의 모든 자들보다 훨씬 귀한 자인 것입니다.

 

9,10: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 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바로가 요셉을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운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하는 요셉의 신앙의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혹시 아버지 야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혹시 떠나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즉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고센은 나일강 삼각주 동쪽에 펼쳐진 목초지(46:34)로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들이 자리를 잡은 곳입니다. 후일 이곳에 야곱의 후손들이 혹사를 당하며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게 됩니다.

 

11,12: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꿈을 통하여 계시하신 흉년이 7년 동안 계속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흉년은 그 후에도 더 극심하게 계속되었습니다(47:13,18). 그러므로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서는 이곳으로 와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이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을 새삼 확인하는 강조적인 표현으로, 반드시 아버지와 형제들의 미래를 책임질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13-15: 당신들은 나의 애굽에서의 영화와 당신들의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고하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 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

  요셉은 애굽의 총리라고 하는 지위에 알맞은 생활을 하고 있었고, 형제들은 그것을 친히 목격하였으므로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하여 애굽으로 오는 것을 쉽게 결단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는데, 이는 자신이 진실로 베냐민의 형임을 증거하는 것이 되고, 형들과의 입맞춤은 자신이 틀림없는 요셉임을 밝히는 동시에, 비록 요셉이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고 해도 형들 입장에서는 거리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요셉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이로써 형들이 이제 죄책감과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요셉과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 신복이 기뻐하고,

  20년간이나 떨어져 있던 형제들이, 그것도 이국땅에서 극적으로 상봉했다는 소식은 요셉의 하인들을 통하여 바로의 궁에도 전해졌습니다. 바로와 그 신복이 기뻐했다는 것은, 요셉이 애굽에서 그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 인들이 천하게 여기는 히브리인들이지만, 왕과 신복들이 함께 기뻐한 것은 요셉이 얼마나 훌륭하게 총리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게 합니다.

 

17,18: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바로는 요셉에게 아비와 가속을 이끌고 오라는 을 내렸습니다. 이는 반드시 그들에게 애굽에서 살 수 있는 좋은 토지를 줄 것이며 또한 애굽에서 생산되는 각양 좋은 것들로 대접하며 잘살 수 있도록 해 준다는 확언입니다.

 

19,20: 이제 명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오라.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하라.

  수레는 당시 애굽에만 있는 최고의 운반 수단이며 교통수단입니다. 이는 바로가 요셉의 가족을 특별 대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는 말은 가나안에서 사용하던 기구들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과감하게 버리고 오라는 뜻입니다. 애굽에 오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준다는 약속입니다. 즉 애굽에 오는 것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 새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야곱을 또 다시 이스라엘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구속사 차원에서 의미를 가질 때에 사용되므로, 야곱과 전가족의 애굽 이주는 구속사의 커다란 획을 긋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형제들에게 옷을 주는 것은 여행 중 갈아입을 여벌의 옷을 준 듯하며, 특히 베냐민에게는 특별한 애정의 표시로 은 300과 옷을 다섯 벌이나 주었습니다.

 

23,24: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비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비에게 길에서 공궤할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공궤는 음식을 공급하여 드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애굽으로 이주하는 도중 아비 야곱을 위한 식사 수발을 일컫습니다. 요셉의 정성을 다하여 아비 야곱을 섬기려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요셉의 염려는 혹시 전에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과거의 일을 가지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질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똑같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는 나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모든 형들이 하나같이 떳떳하지 못한 입장이었듯이 모든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다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25,26: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

  ‘기색하더니마음이 차가워지다는 뜻입니다. 이는 야곱이 아들들의 보고를 듣고 단순히 이를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짓말을 지어낸 것으로 생각하고 불쾌해 하는 것을 뜻합니다.

 

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그 아비 야곱이 요셉의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하지라.

  말로는 믿을 수 없을 때에도 물적 증거가 있을 때에는 믿게 되는 것처럼, 야곱도 아들들의 말을 믿지 못하다가 요셉이 보낸 수레와 각종 예물을 보여주자 사실인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기색되었던 마음에 원기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28: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소망으로 가득찬 야곱의 즐거운 심정 상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당시 야곱의 나이가 130세이므로, 조상들의 수명을 생각하며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야곱은 애굽에서 요셉과 해후한 뒤 17년 간 요셉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147세에 애굽에서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