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44장 강해 - 요셉의 은잔 시험

chukang 2012. 1. 21. 16:54

창세기 제44장 강해 요셉의 은잔 시험

 

  지난 장에서는 형제들이 막내 동생인 베냐민을 데리고 왔기에,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심히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본 장에서는 그들을 다시 가나안으로 돌려보내면서 양식을 자루에 가득 담아주고, 또 다시 돈도 자루에 넣고, 요셉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몰래 넣었습니다. 형제들은 애굽 총리의 후한 대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양식도 샀고, 모든 형제들이 귀향을 할 수 있게 되어 그 마음이 매우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나 뒤따라온 요셉의 청지기에 의해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이 되어 이들은 큰 절망 속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유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베냐민을 구하고자는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요셉을 감동시키게 되고, 이제 요셉과 형제들은 진정한 재회를 준비하게 됩니다.

 

1: 요셉이 그 청지기에게 명하여 가로되 양식을 각인의 자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인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요셉은 청지기에게 형제들이 가지고 온 자루에 넣을 수 있는 최대한의 양식을 넣게 합니다. 이는 돈의 액수대로 저울에 달아서 양식을 파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는 없었지만 자식 된 도리와 형제 된 도리를 다하고자 함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자신을 노예로 판 자들이었지만, 요셉은 악으로 악을 갚는일을 하지 않고 도리어 악을 선으로 갚는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원수들도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또 내 잔 금 은잔을 그 소년의 자루 아구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표면적으로 볼 때에 이는 베냐민에게 도둑의 누명을 씌우려는 계획입니다. 요셉은 과거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의 현재의 인간성을 시험하기 위해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리고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요셉은 과거의 사악했던 형들이 아님을 파악했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전에 한 번 더 형제들의 우애를 시험해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 시험에 통과할 때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그들과 진정한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은 그들에게 기쁨이며 평안이며 행복의 시작이 될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성도를 들어쓰시기 위하여 수차례의 시험과 연단을 통해 그 사람의 믿음을 확인하신 후에 비로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3-5: 개동시(開東時)에 사람들과 그 나귀를 보내니라. 그들이 성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미칠 때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데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개동시는 동이 틀 무렵을 말합니다. 무더운 중동 지역에서는 장거리 여행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시원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멀리 가기 전에 청지기를 시켜서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고 말하라고 시킵니다. 고대 애굽 인들은 술잔에 물을 넣고 주문을 외운 뒤 물 위에 비치는 햇빛의 모양을 보고 점을 쳤다고 합니다. 따라서 점치는 잔은 매우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또 이를 훔치는 것은 그 집의 수호신을 훔치는 행위였기에 엄하게 다스려졌습니다. 요셉의 신앙으로 볼 때에 점치는 잔이 있을 수가 없지만, 형제들을 시험하는 데에는 절도죄의 올무를 씌우는 것보다 더 적합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6-8: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미쳐 그대로 말하니,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우리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이런 일은 종들이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적질 하리이까?

  청지기는 요셉의 지시대로 했습니다. 형제들은 당연히 극구 부인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지난 번 곡물 값까지도 다시 가져왔는데 어떻게 이번에 그런 도적질을 할 수 있느냐고 항변을 하고 있습니다.

 

9: 종들 중 뉘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우리 주의 종이 되리이다.

  형제들은 도적질한 사실이 발견이 되면 죽음의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맹세까지 합니다. 도적질한 자는 죽을 것이며, 다른 형제들 모두가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맹세가 가능한 것은, 첫째 그들의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믿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우상과 관련된 신물(神物)을 도적질한다는 것은 중죄에 해당하여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형제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결코 남의 것을 탐하거나 훔치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서로 시기와 분쟁을 일삼던 형제들이 어려운 일을 통하여 서로 하나가 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연약의 백성으로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서서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 그가 가로되 그러면 너희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뉘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우리 종이 될 것이요 너희에게는 책망이 없으리라.

  이에 대하여 청지기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걸고 맹세하는 요셉의 형제들에게, 훔친 자만 종이 될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는 그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형들을 시험하는 핵심으로써, 만일 베냐민이 붙들리게 된다면 다른 형들이 함께 와서 공동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1-13: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각기 푸니,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수탐하매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오니라.

  형제들은 아마도 절대로 은잔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루를 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청지기는 자신이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었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르우벤부터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은 감추기 위함입니다. 나이 많은 큰 형부터 한 사람씩 조사를 시작할 때에 다른 형제들은 더욱 긴장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은잔은 막내인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극한 상실감, 허탈감과 슬픔 속에서 옷을 찢고 다시 요셉이 있는 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제들은 베냐민을 책임지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성숙되어진 인격으로 다 같은 마음으로 베냐민과 함께 성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14,15: 유다와 그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오히려 그곳에 있는지라 그 앞 땅에 엎드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 잘 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유다는 자유의 서열상 네 번째 아들이었으나, 형제의 대표로 나타나는 것은, 2차 식량 구입을 떠나기에 앞서 아비 야곱을 설득시켜 베냐민을 데리고 왔기 때문이며, 앞으로 구속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요셉 앞에 엎드릴 때에, 요셉은 짐짓 자신이 점을 잘 치는 사람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점을 잘 치기 때문에 누가 가져갔는지를 모를 줄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자신을 위장하는 말입니다.

 

16: 유다가 가로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유다는 다시 대표적으로 나서서 자신들은 아무런 말을 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 은잔이 발견된 막내 베냐민과 함께 같이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이 말은 과거에 자신들의 요셉을 노예로 판 죄의 대가를 하나님께서 물으신다고 하는 뜻으로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뼈저리게 후회하고 뉘우치고 있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같이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당연한 형벌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베냐민만 노예로 남겨둘 수 없는 형제애가 발휘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요셉이 보고 싶어 하였습니다.

 

17: 요셉이 가로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나의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아마 이 제안은 요셉이 형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절도 혐의를 받고 있는 동생 베냐민과 함께 평생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것인가 아니면 동생만을 남겨두고 자신들을 가나안으로 돌아가 편히 살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종으로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옵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다.

  당시 요셉이 누렸던 권세가 얼마나 막강한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는 애굽의 신과 같은 존재이며, 백성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로의 권한을 위임받아 총리대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요셉 역시 백성들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총리대신 앞에서 외국인들은 바로와 동일한 위엄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19,20: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비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우리가 내 주께 고하되 우리에게 아비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 어미의 끼친 것은 그 뿐이므로 그 아비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당시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기 않기 위해 아버지를 노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야곱은 130세나 되어 노인으로 불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연로한 것도 사실입니다(47:9). ‘소년은 야곱이 100세가 넘어 낳은 막내 아들 베냐민으로 당시 제세 초반의 나이입니다. ‘그 어미의 끼친 것베냐민이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소생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베냐민에 대한 사랑은 일반적인 막내에 대한 사랑 그 이상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없어진 후에 요셉에게 향했던 사랑까지 모두 베냐민에게 향했던 것입니다.

 

21,22: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나로 그를 목도하게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내 주께 말씀하기를 그 아이는 아비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아비가 죽겠나이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베냐민을 직접 볼 수 있도록 데려오라고 명할 때에 유다는 만일 그 아이를 데리고 오면 아비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베냐민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23,24: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말째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고하였나이다.

  그리고 유다는 베냐민을 이곳까지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 대신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베냐민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온다면 그의 아비가 큰 슬픔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을 말하면서, 베냐민의 은잔 절도에 대하여 호의를 베풀어 줄 것을 요청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자신들을 낮추기 위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유다는 아비 야곱을 주의 종즉 요셉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실현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5,26: 그 후에 우리 아비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말째 아우가 함께 하면 내려가려니와 말째 아우가 우리와 함께 함이 아니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양식이 떨어져 갈 때에 야곱은 자식들에게 다시 곡물을 조금즉 일정량을 사오라고 말했지만, 자식들은 베냐민이 함께 가지 않는다면, 총리대신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곡물을 사올 수가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27-29: 주의 종 우리 아비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간 고로 내가 말하기를 정녕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너희가 이도 내게서 취하여 가려한즉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야곱과 라헬 사이의 두 아들 즉 요셉과 베냐민의 출생과, 요셉의 실종 사건을 간략하게 말하고, 만일 말째 아우까지 데려가서 그에게 어떤 해가 미치게 된다면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 노년을 슬픔가운데 지내다가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음을 고하고 있습니다.

 

30: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야곱의 생명과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표현으로, 야곱이 얼마나 베냐민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1,32: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부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유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요셉의 마음을 움직여서 베냐민을 석방시키려고 자신을 낮추어 계속적으로 으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 야곱이 노령인 것과, 베냐민이 없어지면 그 말년의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33: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유다는 자신이 베냐민 대신에 애굽에 남아 종살이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요셉을 팔아먹은 죄책감과 더불어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처럼 유다는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34: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는 만일 베냐민을 데리고 올라가지 않는다면, 아비가 죽을 것이므로 결코 이대로 올라갈 수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또한 아비 야곱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또한 막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유다의 진정한 마음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의 간청을 들어 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