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40장 강해 – 요셉의 해몽
본장에서는 요셉이 감옥에 갇힌 후에 전옥의 신임을 받아, 옥중 제반 업무 일체를 위임 받아 처리하고 있는 중에, 바로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왕에게 범죄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시위대장은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의 시중을 들게 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날 꿈을 꾸었는데, 그 꿈으로 근심할 때에 요셉이 해몽하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술 맡은 자’(drink-giver)는 단순히 술을 따르는 시종이 아닌, 왕의 곁에서 왕의 감정과 대화의 조력자 역할을 담당하는 고급 관료입니다. 느헤미야도 ‘술 관원’으로 파사 왕궁의 중요한 관리였습니다. ‘떡 굽는 자’는 바로의 음식을 준비하는 자로 음식에 바로를 해칠 유해물이 첨가되는 지의 여부도 확인하고 감독하는 음식의 총괄하는 최고의 직분입니다. 이 두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로에게 큰 죄를 지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2,3: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
궁중 내에는 왕을 보필하는 여러 직책 및 관리가 있는데, 이들은 왕과 가까이 지내므로 그 권세가 상당했습니다. ‘노하여’ 이 말은 바로가 두 관원장에게 분노를 터뜨렸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시위 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갇히다’는 말은 꽁꽁 묶는다는 뜻으로 손과 발에 착고가 채워진 상태입니다.
4: 시위 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에게 수종하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수일이라.
시위 대장은 요셉이 그들과 함께 있게 조치했습니다. 요셉으로 하여금 함께 하면서 그들을 시중들도록 한 것입니다. 그들이 시위 대장과 상당한 친분 관계가 있거나, 아니면 어떤 오해로 인하여 감옥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풀려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요셉에게 시중을 들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갇힌 지 수일이 되었다는 말은 상당한 기간이 지났다는 뜻이며, 그들의 존재가 거의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두 관원장은 같은 날 밤, 그것도 내용이 서로 다른 꿈을 꾸었다는 것은, 그 꿈이 갖는 중요성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 꿈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들의 앞날에 대한 중요한 전달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요셉은 그들과 함께 잠을 자면서 수종을 들고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옥중에서의 생활이 상당히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두 관원장은 다른 죄수들과는 분리되어 다른 공간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근심 빛’은 심히 낙담하여 심기가 불편한 모습입니다. 감옥에 있는 상황에서 꿈까지 꾸었는데, 그 꿈의 징조가 자신들의 미래와 직결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무슨 까닭에 당신들의 얼굴빛이 나쁩니까?’하는 질문을 요셉이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상대방의 심경까지도 읽어 낼 수 있는 매우 예리한 감각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당시 애굽에는 많은 점성가와 술사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꿈을 해석하며 예언하는 해몽가들도 있었습니다. 두 관원장이 하는 ‘해석할 자가 없다’는 말은 그런 해몽가를 감옥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요셉은 그 꿈을 제공하신 분이 절대 최고의 신이신 하나님이시며, 그 꿈을 해석하여 풀어주실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두 관원장에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꿈을 경험했기 때문인 동시에,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하는 것을 밝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그 꿈의 내용을 밝히라고 합니다. 이는 요셉 스스로 꿈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9-11: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포도나무에 세 가지는 3일을 상징하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다는 것은 한 순간에 결실의 전 과정이 제시되었으므로, 매우 좋은 징조로 잘 될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를 따서 즙을 짜서 바로에게 드렸다는 것은 잃었던 직위를 회복하여 바로 앞에서 예전처럼 봉사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2,13: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
요셉은 꿈 내용을 들은 즉시 해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지혜의 영인 하나님의 영이 요셉에게 강하게 역사하시는 증거이며,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머리를 들고’ 이는 실추된 명예와 직위를 모두 회복하여 영예롭게 될 것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전직을 회복’ 예전의 직분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말하며, 술 맡은 관원장의 무죄가 밝혀질 것임을 가리킵니다.
14: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득의’ ‘일이 잘 풀리면’이라는 뜻으로 자신이 해몽한대로 석방되어 복권이 되면, 자신이 억울하게 이처럼 감옥에 있는 것을 바로에게 알려서 석방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써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히브리’란 이름은 아브라함 이후로(14:13) 이스라엘 민족에게 사용된 호칭입니다. 자신의 출신과 감옥에 들어오게 된 것은 순전히 타의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죄가 없음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간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16,17: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의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그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떡 굽는 관원장은 동료에게 희망적인 해몽을 해 주는 것을 듣고 용기가 생겨서 요셉에게 자신의 꿈의 내용을 말하고 해몽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세 광주리는 3일을 상징하고, 광주리에 담긴 각종 구운 식물은 떡 굽는 관원장이 현직에 있을 때 바로를 위하여 만들었던 여러 종류의 빵과 과자들입니다. 이것을 새들이 와서 먹는다는 것은, 바로를 위하여 만든 것을 새들이 먹는 것이므로 관원장의 큰 과오가 될 것입니다. 이는 떡 굽는 관원장의 비참한 죽음을 예고하는 불길한 꿈이었습니다.
18,19: 요셉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요셉이 해몽하는 내용은 매우 불길한 것으로 당사자가 듣기에는 분노할 일이었으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조금도 둘러대지 않고 진실 그대로 말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머리를 끊는다는 것은 참수형을 말하고,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참수 당한 그를 장사도 지내지 못하게 하고 나무 기둥에 매달아 맹금(猛禽)들로 하여금 그 시신을 쪼아 먹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죄인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입니다.
20: 제 삼 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요셉의 꿈 해석이 그대로 적중하고 있습니다. 3일이 지난날은 바로의 탄일(誕日)로 국가적인 축일로 전국적으로 각 개인의 생활이 중단되고 백성 전체가 잔치에 동참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죄수들의 특별 사면이 있는 동시에 중죄인의 처형식이 이루어졌습니다.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요셉의 해몽이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가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그의 손에 잔을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전직이 완전히 회복된 것입니다.
22,23: 떡 굽는 관원장은 매어 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을 당한 뒤에 나무에 매어 달렸습니다. 이런 처형 법은 신의 저주를 받은 자의 부정한 피와 몸이 신성한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두 관원 모두 요셉의 해몽대로 되었지만, 전직을 회복한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요셉은 2년 정도를 더 감옥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합니다. 더 연단시키는 목적이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으며, 앞으로 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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