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chukang 2011. 10. 21. 23:35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마태복음 18:1-14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어느 집에 계실 때입니다(17:24-27).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군가?’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의 예를 들어 교훈해 주셨습니다. 16:24-26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자신의 수난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베드로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셔야만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데,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은 아직 그 구원의 비밀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게 되면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닌 목적과 야망이 허사가 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 절대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하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전에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하는 질문에 베드로가 선뜻 나서서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대답하므로 예수님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는 변화산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변화산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사람만이 뽑혀서 올라갔습니다. 변화산에서 내려 온 후에는 성전세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성전세를 징수하는 관원들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조종하여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하여 시도한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실 때에 임금이 누구로부터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라고 물으셨습니다. ‘타인입니다.’ ‘그러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고 대화를 하신 후에, 그렇지만 저희가 오해하지 않도록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잡히는 고기의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그것으로 나와 너의 성전세로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는 12명의 제자 중에서 베드로가 대표격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나라를 세우시게 되면 그 나라에서는 과연 누가 큰 자로 쓰임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심한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즉 제자들 간에 서열을 정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면 곧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게 되실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어떤 자가 큰 자냐?’라고 하는 것을 올바로 가르쳐 주실 때가 되셨다고 판단을 하시고 한 어린아이를 불러서 저희 가운데 세우신 후에 교훈을 하셨습니다.

저마다 높은 관직에 오르기를 바라던 제자들과 관중에게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와 같은 주위의 적절한 환경을 예로 들어 시청각 교육을 하시는 것입니다. 피교육자가 자발적으로 복, 듣고자 하는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시청각 소재를 사용하시는 등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본문은 어린아이 교훈으로 불리는데, 이는 어린아이를 위한 교훈이 아닌 어린아이를 통한 어른들을 위한 특히 제자들을 위한 교훈입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이 말은 어린아이들처럼 변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심령을 가진 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제자들은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왕국에 들어가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궁극적인 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나라보다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인 관중들과 또 성경을 읽는 모든 자녀들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린아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순결하다거나 이상형이라거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어린아이처럼 연약한 자가 혼자 힘으로 살 수가 없고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해야만 하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복하며 그 분만을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과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과, 가르침에 대해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단순성의 이상형을 말하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아이와 천국이라는 것을 연결시키고,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공적을 내세움으로써 천국에서의 서열을 주장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척도로 우선순위를 정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다투는 것은 예수님보다는 자기의 부귀영화만을 바라는 것이므로, 그렇게 다투게 되면 결국 자기 목숨까지도 잃어버리는 멸망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인간의 능력과 처세술을 필요로 하지만, 천국에서는 오직 겸손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철저히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자가 들어갈 수 있고 또한 큰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14:1;2:3-8; 벧전 5:6)

5,6: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잠깐 다른 의미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왜 높은 자와 낮은 자에 대하여 말씀하시다가 어린아이의 영접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또 이런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는 제자들의 다툼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하면서, 서로 다투는 것을 본 사람이 실족하게 되는 일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는데, 제자들은 서로 잘난체하며, 서로 큰 자라고 다툼을 한다면,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는 그 말씀은 모든 허사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즉 제자들의 다툼은 천국 문을 막는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끼리의 다툼은 다른 성도를 실족하게 만들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실족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실족케 하는 자들에게 있지만, 그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실족케 하는 일들이 세상에 참 많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나는 누구 때문에 실족했다. 나는 누구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고 해도 그 실족과 시험에 대한 결과는 당사자인 본인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족케 하는 경우와 원인들이 참 많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 원인 중에는 제자들과 같이 서로 다투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것도 포함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기에서 범죄케라고 하는 말은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영생에 들어가기 위하여 범죄 하게 만드는 손과 발이나 눈까지도 제거하는 것이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스스로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요소들을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원죄로부터 시작된 뿌리가 깊은 죄악들이 있습니다. 이 죄악들은 손발을 자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즉 악한 생각과 죄의 유혹이 자리 잡고 있는 부패한 마음의 상태를 척결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들의 다툼은 결국 돈과 권세와 명예의 유혹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탐심은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여 주님을 멀리하게 합니다. 탐심은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군가 하는 논쟁에 비추어 볼 때에, 소자는 큰 자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소자에는 어린아이가 포함될 수 있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고, 더 나아가서 항상 겸손하고 영적으로 순수한 심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치 바보처럼 제 몫을 빼앗기기도 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하는 사람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세상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이들을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들을 파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적 세계의 일면을 소개하셨는데, 이 수호천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개인(12:15)과 교회(1:20), 국가(10:13; 12:1)를 위한 수호천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소자를 특별히 보호하는 수호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이는 소자 하나하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배려가 얼마나 지극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두 가지의 관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제자들 사이에서도 세상적인 면에서 높은 자가 있고, 낮은 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또 둘째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교훈을 받고 훈련을 받는 제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에 대하여 낮은 자로 취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 사이에서도, 또 제자들이 무리들을 향하여 교만하게 대하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여기에서부터 14절까지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핵심 내용입니다. 양 백 마리 중에서 단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양이 99마리나 있는데, 그까짓 한 마리 없었진 걸 가지고 뭘 그러냐면서 그냥 우리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찾을까요? 예수님께서 계실 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다 같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즉 한 마리를 찾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그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서 남은 99마리는 어떻게 됩니까? 그대로 기다려야 합니다. 성도가 100명이 있는데, 99명은 잘 따라왔는데, 단 한 명만이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누가 잘못했습니까? 길 잃은 단 한명이 잘못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한 명을 찾기 위해서 남은 사람들은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게 합니다. 다른 곳으로, 혹은 우리로 이동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그들이 움직이다가 또 다른 실족 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족한 한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와 합류하기까지 나머지 99명도 그 시간동안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실족한 한 마리의 양, 한 명의 성도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산 넘고 물 건너 찾으러 다니십니다. 만일 그 양이 벼랑에 떨어져서 오도가도 못 할 지경에 처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위험을 무릎 쓰고라도 벼랑으로 내려가서 그 양을 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94년의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라이언이라고 하는 가정에 아들이 네 명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사자 통보 업무를 하는 사람은 네 명의 라이언 형제 중 세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막내는 전서에 투입되었으며 아직 생존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사자 통보 업무관은 그 충격적인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미 행정부에서는 라이언 가()의 어머니를 고려하여 네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임스 라이언을 어머니의 옆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군 사령부를 통하여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작전 명령이 하달이 되었습니다.

그 책임자는 존 밀러 대위입니다. 밀러는 6명의 대원과 통역 병 한 명으로 팀을 꾸려 작전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대원들은 미군에 의해 접수된 마을을 지나던 중 라이언 일병에 대한 소식을 쉽게 듣게 되었으나, 이름만 같은 다른 병사인 것을 알게 됩니다. 다음 날 밀러 일행은 한 부상병을 통하여 라이언 일병이 소속된 부대가 라멜 지역의 다리를 사수하기 위하여 투입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현재는 독일 군 사이에 고립이 되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 한 명의 일등병을 구하기 위하여 여덟 명이나 되는 대원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대원들은 갈등을 겪게 되지만, 밀러 대위는 이들을 설득시키면서 라이언 일병이 있는 곳으로 다가갑니다. 간혹 독일 군과의 간헐적인 전투도 치르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라멜 외곽 지역에서 라이언 일병을 찾아내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기는 하지만, 단 한명의 자국 군인을 살려내기 위하여 지난 1018일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과 무려 10271로 포로 맞교환을 성사시켰습니다. 팔레스타인이 붙잡혔다가 살아 돌아온 병사는 26년 만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 병사의 이름은 갈라드 샬리트(25)’입니다. 샬리트는 20066월 가자지구 접경지역에서 경계 근무를 서다 하마스에 납치를 당했습니다. ‘하마스용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 저항단체인 동시에 정당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으로 널려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구출 작전이 실패하자 샬리트의 아버지는 아들의 귀환을 위해 이스라엘 정부청사 앞에 텐트를 치고 시위를 했습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재소자와 교환을 요구했으나 결렬되었고, 일 년 뒤까지도 샬리트는 포로로 살아 있다는 것을 육성 테이프를 통하여 공개했습니다. 20086월에는 살리트 친필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2008618일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협상을 시작했지만, 그래 12월에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봉쇄하는 정책과 하마스에 대한 기습 공격으로 22일간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하마스는 여전히 샬리트를 죽이지 않았고, 생존 증명 비디오테이프를 준다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여성재소자 20명을 석방시켰습니다. 그리고 20111011일에 살리트와 팔레스타인 재소자 1027명을 교환하기로 합의를 한 것입니다. 샬리트는 중재국 이집트를 거쳐 이스라엘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이는 13절 말씀과 같이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14절에는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명의 성도가 혹 실족하였다면 99명의 성도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도 반드시 찾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천한 소자라 할지라도 실족케 하여 신앙의 길을 떠나게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한 명의 소자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려고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법은 교만한 자가 아닌 겸손한 자를, 강한 자가 아니라 연약하여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를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시며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만이 살아남는 것이며, 자신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며, 자신만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에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단 한 명의 군사를 위하여 적군 1027명을 풀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시위를 했기 때문일까요? 참고는 되었겠지만, 이는 국가가 국민을 위하여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냐?’고 질문하시는 말씀이 주는 교훈에는 첫째는 겸손한 자가 되라는 것이며, 둘째 시험에 들게 할 만한 모든 요소는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시험을 받은 자는 그 자신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으며, 넷째 시험을 들게 한 자도 역시 그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려고 하는 다툼은 소자 즉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수 있으니, 손발을 자르고 한 쪽 눈을 뽑아야 하는 결단력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위로를 주시는 말씀은 단 한 마리의 양이 길을 잃었을지라도, 나머지 99마리의 양을 산에 그대로 둔 채로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항상 이 길 잃은 한 마리의 양과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이 계시고,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꼭 잡고 반드시 옳은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느 성도든지 항상 99마리 가운데 속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에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항상 우리의 허리를 동여매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다고 느껴질 때, 외롭다고 느껴질 때, 홀로 쓸쓸하다고 느껴질 때에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심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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