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현대 신앙의 문제점

chukang 2011. 10. 8. 23:49

 

 

현대 신앙의 문제점  누가복음 14:33-35

 

   세상은 늘 변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 속에는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따라가는 소위 ‘얼리 어답터(early adaptor)’라고 하는 무리가 있고, 추세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고 있는 관망파가 있고,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이 변화의 흐름의 중심에는 과학이 있습니다.

  수많은 과학 기술 중에도 그 중심에 있는 분야는 ‘나노기술’입니다. 나노기술은 원자나 분자 하나를 분석, 이해하고 이들을 조작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1나노미터(nm)는 통상 10억분의 1m를 가리키는 데 1nm는 대략 원자 서너 개 크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 나노 기술을 이용하여 모 전자업체에서 만든 TV는 47인치 두께가 8.8mm이 밖에는 되지 않고 55인치도 9.5mm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나노기술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나노 기술을 이용하게 되면 극초소형 로봇을 만들어 인체에 투입을 시켜 온갖 질병을 치료할 수가 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기술입니다.

  또한 이탈리아의 국립연구소 그랑사소에서는 730km 거리 측정실험을 통해 빛보다 60나노초가 빠른 중성미자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60나노초는 18.2m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놀라운 과학기술이론은 ‘암흑 에너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에너지를 이용하게 되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암흑 에어지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에너지인데, 물질과 물질이 서로 밀어내는 힘이라고 합니다. 미국 베일러대 제럴드 클리버 교수 연구진은 영화 스타트렉에서 나오는 우주 여행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과학이론에 의하면 시간 여행까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는 현재에서 과거로의 여행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재미있게 본 영화 중에는 ‘슈퍼맨’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슈퍼맨은 초능력자입니다. 얼마나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공중을 날아다니며, 심지어는 우주공간으로 날아가서 지구가 자전하는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면서 지구의 자전을 반대로 회전시켜 시간을 되돌려 놓는 일까지도 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슈퍼맨은 과학이 지구보다 월등하게 발달한 우주의 한 행성에서 쫓겨나 지구에 온 우주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한 사이비 종교단체는 우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외계에서 온 우주인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과학능력으로 사람을 다시 살리기도 하고 병을 고치기도 한다는 것이며,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곧 그 우주인이 살고 있는 행성을 말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집단은 우주선이 와서 자신들을 태워 우주 행성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슈퍼맨이라고 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주인으로 만들어 버린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는 자인 것입니다.

 

 

1. 과학, 의학 만능주의

  성경과 과학의 충돌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인류는 작은 아메바와 같은 생물이 진화하여 결국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로 진화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유인원인 침팬지와 같은 종류의 짐승이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다고 설명을 합니다.

  (1)오스트랄로피테쿠스(猿人:원인) 약 200만년 전 아프리카 남부의 지층에서 발견된 원숭이에 가까운 가장 오래된 인류 (2)호모에렉투스(原人:원인) 약 50만년 전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의 자바 원인(직립 원인)과 베이징 원인 (3)호모사피엔스(舊人:구인) 약20만년 전 독일의 네안데르탈 원인 (4)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新人:신인) 약5만 -3만 년전 현재 인류의 두뇌의 크기와 키가 거의 같으며, 남프랑스의 크로마뇽이 대표적이다. 이런 인간의 탄생의 근거는 화석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러한 인종들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또 다른 인종이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인 새로운 종의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돌연변이에 의한 것인데, 가장 우월한 돌연변이가 현재의 인간으로 진화가 되었다고 하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다윈이 설명하고 있으며, 식물의 교배와 돌연변이의 등장을 통하여 나타난 결과에서는 돌연변이는 단 한해만 살고 도태 즉 죽어서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다윈 스스로도 말년에 진화론은 가설에 근거한 것이라고 고백을 하면서 자신이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심히 후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진화론을 믿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믿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종의 기원을 읽어 보았느냐고 물어보면 그들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종의 기원이라고 하는 제목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화론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하면 지구의 역사가 무려 45억년이나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도 이 지구상에는 진화의 중간 단계의 반수반인의 형태가 발견이 되어야 하지만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주의 탄생은 150억년 전이라고 합니다. 어떤 한 물체가 있었는데 이 물질이 대폭발을 일으켜 우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빅뱅이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최초의 물질은 무엇입니까? 이 물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따지고 들면 이 최초의 물질 그 자체가 우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내용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부인하고, 창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과학에는 증명이 된 것과 이론에 불과한 것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나노 기술과 같은 첨단 과학 기술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며,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나 암흑 에너지와 같은 것들은 아직 증명할 수 없는 것이거나 증명이 되었다고 하는 실험 방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론으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가설’을 기초로 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불신자들 혹은 일부 성도들은 ‘만일 무엇이 무엇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가설이론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증명할 수 있는 과학이나 증명되지 않은 과학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공통점은 바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과학 기술이 사람의 필요에 따라 발명이 되고 개선이 되어 점점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의학 기술의 경우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바라지 않게 한다는 것 즉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거나 무시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학의 기술로 만들어지는 약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 틀림이 없고, 성도라고 하여도 약을 먹어서는 안 되다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에 병원에 가는 것은 불신자나 성도나 동일합니다. 성도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문제는 과연 그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가? 오직 자연적인 원인이나 스스로의 부주의에 의한 것으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알지 못하고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들을 내리시고 비웃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모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초적인 해충도 없애지 못하는 것이 의학이요 과학입니다.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들이 과학의 기술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류를 위하여 매우 유익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나 일반 대중이나 그런 과학 기술을 진보할 수 있게 되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고 있거나 무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까지도 자신이 어떤 일을 잘 처리하거나 어떤 물건을 잘 만들게 되면 그것이 자신의 지식과 지혜와 힘과 능력이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런 모습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능력을 부인하는 교만입니다.

  처음으로 각종 기계를 만든 두발가인은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7대손입니다.(창 4:22) 가인은 살인죄를 저지른 뒤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성을 쌓고 살았습니다. 이들의 후손은 성을 쌓은 가인을 본받아 바벨이라고 하는 거대한 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간섭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지식과 지혜와 능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 것은 교만입니다.

 

2. 미신과 주술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사람들은 과학과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미신이나 점이나 자연신론에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 샤머니즘 [shamanism]은 원시적 종교의 한 형태입니다. 주술사인 샤먼이 신의 세계나 악령 또는 조상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적인 교류를 하며, 그에 의하여 점복(占卜), 예언, 병 치료 따위를 하는 종교적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며 병이 낫기를 기원하고, 나쁜 일을 물리쳐달라고 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유교와 불교도 일종의 샤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후 세계는 귀신이나 다른 영적인 면이 있어서 현세에 사는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 토테미즘은 (totemism) 토템을 숭배하는 사회 체제 및 종교 형태. 심리적으로는 특정한 토템과 각 집단이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의례적으로는 토템에 대한 외경이나 금기로 표현됩니다. 단군신화는 곰이라고 하는 짐승이 토템이 된 집단을 말합니다. 오늘날 각종 경기 단체들이 상징으로 내세우는 동물들의 이름은 토테미즘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 애니미즘[animism]은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영적·생명적인 것이 있으며, 자연계의 여러 현상도 영적·생명적인 것의 작용으로 보는 세계관 또는 원시 신앙입니다. 산, 바다, 강물, 바위 등에게 소원을 비는 것입니다. 외국의 점성술이나 별자리와 같은 것들도 애니미즘에 속합니다.

  이러한 원시적인 종교가 어떻게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인간의 영혼이 갈급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만족을 얻게 되면 이러한 샤머니즘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만족은 오직 말씀으로만 해결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서운 점은 이런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울 왕은 블레셋이 침범하자 두려움에 떨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하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요구합니다. 죽은 사무엘을 통하여 응답을 받고자 한 것입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삼상 28:6,7)

많은 성도들이 좋지 않은 일들이나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사울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 신비주의자들 성령 운동한다고 하는 자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또 운명, 사주팔자, 전생과 같은 말들을 스스럼없이 내밷는 것은 성도로서 바른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미래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내 미래가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어찌 자식이라고 하는 성도의 앞날을 나쁘게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앞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히 11:8)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 11:6).

 

3. 여자 목사와 장로(세태와 물질주의)

  현대 교회의 문제점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이 여자 목사와 장로의 문제입니다. 여목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여목을 찬성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여목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이 없습니다. 여자가 남자의 머리가 되는 것이 성경이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실 당시부터 여자는 남자의 돕는 자로 창조하셨습니다.(“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결정적인 것은 선악과 사건으로 인하여 여자는 남편에게 다스림을 받게 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창 3:16).

  여목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미리암은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다 문둥병에 걸렸고, 모세의 기도로 나음을 입었으며, 여사사 드보라의 경우에는 군사권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락을 통하여 군사를 움직이도록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삿 4:6). 다만 행정권으로서 재판장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는 드보라가 사사이기는 하지만 나라 전체의 대표자로서의 머리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요엘의 예언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욜 2:29)은 말 그대로 ‘남자 종’과 ‘여자 종’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종으로의 개념이 아닌 말 그대로 ‘노예’와 같은 자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지는 것인데, 이 말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성령의 역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부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해석은 바로 사도행전 성령의 강림 역사를 통하여 확실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행 2:17,18) 이는 그 어떤 누구라도 성령을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외에도 사도 바울도 역시 여자들에게 교회의 머리로서의 사역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고전 14:34,35) 디모데전서 2:11-12“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등은 여성 안수를 금하는 가장 핵심 되는 성구들입니다. 이 말씀은 여자는 ① 전적으로 순종하라 ② 조용히 하라 ③ 배우라 ④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⑤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여자 목사가 되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현대의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가 ‘여성우월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여자 위주로 진행이 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여자 목사의 출현은 당연한 것이지만 성경적은 결코 아님이 분명합니다. 다만 여자가 남자보다 못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사상이 교회에 들어 온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신분상 남자와 여자는 동질성을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동질성이 동등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성경을 가르쳐주고 있으므로 여자 목사는 시대적 흐름이 편승한 것에 불과합니다.

 

  장로의 경우에는 명예의 욕망과 권세의 욕망과 물질만능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장로는 성경에 나오는 장로와 동일한 직분이 아닙니다. 당시의 장로는 오히려 목사나 감독과 같은 위치입니다. 구약 시대의 장로는 백성의 유사로서 족장 혹은 지도자를 겸하고 있습니다.

  장로가 노회장이나 총회장이 되는 것은 역시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물질주의에 편승한 잘못된 제도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장로는 교회의 구성원인 교인의 대표로서 목사를 도와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교회의 전체 대표입니다. 교회의 대표도 될 수 없는 장로가 노회의 대표나 총회의 대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노회는 한 지역의 교회들을 다스리는 상위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는 이 노회에서 목사의 안수를 받습니다. 그러나 장로는 노회의 허락을 받아 한 교회의 목사로부터 안수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행정적으로도 목사로부터 안수를 받는 장로가 목사를 관장하는 노회장이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목사는 교회 일만 전적으로 담당하는 전문직입니다. 그러나 장로나 집사는 전담이 아니라 세상일이 주요, 교회 일을 할 때에는 목사를 돕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가 교회 일을 책임지고 해야 합니까? 아니면 장로가 책임지고 해야 합니까?

  장로는 평신도입니다. 다만 평신도의 대표이기 때문에 목사와 상의하여 교회를 이끌 수 있는 직분입니다. 그러나 목사나 장로가 함께 의논한 일이라도 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때 교회라고 함은 전교인이 모여서(공동 의회) 승인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목사는 교회의 모든 일들을 책임지는 대표자이며, 장로는 대표자를 보조하는 직분입니다. 장로가 목사보다 훌륭할 수 있지만, 맡은 직분은 엄연히 구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직분은 교인들의 영적인 부분을 전담하는 것입니다. 즉 장로의 영적인 부분을 바로 인도하는 직분이 바로 목사의 직분입니다. 물론 영적인 부분이라고 할 때에 평신도에게도 전혀 없지는 않지만 목사와 같이 전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장로 포함)는 목사와 그 가족이 생활을 물질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물질도 꼭 필요합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대 사회의 물질만능주의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목사나 성도(장로)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물질을 가지고 있는 장로가 물질의 힘을 빌어 목사나 교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장로가 노회장이나 총회장이 되는 것은 결국 목사가 장로를 바로 인도하지 못함으로 일어나는 폐단이라고 할 수 있고, 목사가 장로의 치리를 받는 것은 그 잘못에 대한 징계가 같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의 일을 장로가 전담하려고 하거나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으며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자 목사 제도, 장로가 노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는 제도는 사단이 예수님께 시험한 명예의 시험이요, 권세의 시험인 동시에 이생의 자랑에 빠져 들어가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여기에서 ‘선’이라고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구원’의 일을 말합니다. 이 구원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을 바로 계도해야 할 사명 즉 소금과 빛의 사명이 교회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교회의 직분자들부터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직분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부터 깨달아야만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고 봉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지면 과학이나 세상적인 방식이 성경보다 더 옳은 것 같고 합리적인 것 같이 느껴집니다.  또한  세상적으로 힘들다고 말씀의 교훈을 떠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부분이 충족되지 않으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밀려들어와 사울 왕과 같은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같은 은사주의자들에게 속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을 무기로 삼아 교회에서 권세를 잡으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만 '내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힘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 나에게 맡긴 사명 잘 감당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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