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22장 강해 -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chukang 2011. 7. 15. 20:17

 

창세기 제22장 강해 -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에 대한 시험(test)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에 통과하여 미리 예비해 두신 수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그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명명하였습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일’이란 ‘그 말들’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으로 오기까지의 모든 여정과 가나안과 애굽과 그랄에서의 모든 일들 또한 이삭에 대한 약속 등입니다. 이제 이전의 모든 일들을 일단락 짓고 이제 새로운 사건을 전개하는 전환점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이유는 시험(test)하기 위함입니다. 마귀의 시험은 Test가 아닌 Temptation(유혹)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성도를 정금과 같이 연단하시기 위함이며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관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벧전 1:7).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깨어있는 영혼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부르심은 그를 통하여 일을 성취하시고자 함입니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면서도 그 앞에 ‘네 사랑하는 독자’라는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이라는 세월과 하갈과 사라의 갈등을 통하여 100세에 낳은 아이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시험의 강도를 더욱 높이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사를 주신다는 언약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아이를 모리아 땅에 있는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 명령은 이삭을 실제로 짐승과 같이 제물로 잡아서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 명령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의 심정은 아픈 정도가 아니라 정말 찢겨나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추측컨대 아브라함은 긴 밤을 고통과 번민 속에서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명령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 때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요, 그 말씀을 순종할 때에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여행 준비를 하고 번제에 사용할 땔감까지도 준비하였습니다.

 

4: 제 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이 거하고 있는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당시에 3일 길(약 70km)이었습니다. 막상 이삭을 번제로 드릴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지만 3일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을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학자 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날부터 모리아 산까지 오는 기간이 4일 간이 걸렸다는 것을 해석할 때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기 전 미리 4일 전부터 다른 양들과 구별하여 놓고 혹시 흠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따라서 이삭이 번제물로 드려지게 되는 것은 유월절 희생양이 4일 동안 정결 상태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습니다(출 12:1-6).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은 동행한 두 사환에게 말하기를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에 가서 하나님께 경배한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면서 남아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는 뜻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에 가서 제사를 드린 후에 함께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으로는 사리에 맞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으므로, 돌아오는 것은 아브라함 혼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17-19에서는 아브라함의 행위에 대하여 ‘믿음’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은 알지 못하지만 이삭을 번제로 드릴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다시 함께 돌아오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은 3일 동안 걸어서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 왔습니다. 이는 이삭이 3일 동안 걸어도 괜찮고, 번제 나무를 지고 산에 오를 수 있는 건장한 모습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행하는 모습은, 아버지는 마음에 큰 고통을 안고 침묵으로 걸어가고, 이런 모습을 본 이삭도 역시 궁금하지만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산에 오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내 아버지여, 내 아들아’ 부자지간의 정다운 대화의 모습입니다. 이삭은 번제할 어린 양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이삭이 번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는 이미 하나님께 경배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경배에 따른 번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외형적 경배와 함께 번제 즉 온전한 믿음의 자세가 갖추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번제에 대한 질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는 제물이 될 이삭 대신에 다른 제물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이삭이 궁금해 하는 제물에 대한 준비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행해질 것이라는 뜻이라고 보아야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맡기는 자세입니다.

 

9,10: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하나님께서는 지시하신 곳은 모리아 산의 어느 한 지점으로 후일 그곳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곳입니다. 일단 단을 쌓았습니다. 단은 주위에 흩어져 있는 돌을 모아서 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무를 벌여 놓았습니다. 제물이 완전히 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내밀어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할 때에도 반항을 하지 않았으며, 칼로 잡으려고 할 때에도 울부짖음이 없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100이 되어 낳은 자식을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물로 잡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모습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십자가까지도 질 수 있는 주님의 모습에 대한 예표로 온전한 순종의 자세입니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여기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으려고 하는 것을 확인한 즉시 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지체하게 되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정말로 짐을 잡듯이 잡을 것이며, 이삭의 죽음은 곧 여호와의 언약의 파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급하게 서두르시도록 할 수 있는 믿음이, 가장 원하시는 믿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잡으려고 하는 아브라함의 헌신을 참으로 기쁘시게 받으셨을 것입니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 말씀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으로 인정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에 통과했다는 선언이라고 하겠습니다.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사자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자신 즉 예수님께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경외’는 하나님을 무섭고 두려운 공포의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과 존귀와 위엄 속에 택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까지 포함한 두려움의 존재로 인식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에 제물로 들릴 다른 대속물을 찾았습니다. 뒤에 수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잡아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 대속물은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이레(יהוה יראה)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제물뿐만 아니라 후일에 이곳에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 모형이 여기에서 준비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백성들로부터 경배를 받을 것이며, 성전 가운데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15,16: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아브라함을 부른 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에 대한 보답의 차원입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는 천지만물 중에 가장 높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맹세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맹세는 결코 변함이 없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아브라함이 순종으로 바치려고 한 이삭을 통하여 주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또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이루 헤아릴 수 없게 번성케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문은 성읍을 드나드는 출입구이므로, 문을 얻는 것은 원수의 성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는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실 것이라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네 씨’는 이삭이나 그의 후손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것도 포함하여,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임을 뜻합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나의 말을 준행’ 즉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이삭을 데리고 산에 오를 때에 사환에게 말한 대로 아브라함은 이삭과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가 살고 있던 브엘세바로 다시 돌아가서 계속 거주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0: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이삭의 번제 사건 이후에 어떤 사람, 아마도 아브라함의 고향 사람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여행 중에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아내 밀가가 자녀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 일 후에’라는 말이 내용을 전환하는 말이므로, 번제 사건은 일단락 짓고 이삭과 관련된 다른 일이 전개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1-24: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무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나홀의 첩 르움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나홀과 밀가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의 명단입니다. 이 중에 ‘브두엘’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그 뜻은 ‘하나님게 속한 자’입니다. 매우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브두엘의 딸이 ‘리브가’로 이삭의 아내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