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20장 강해 -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chukang 2011. 7. 2. 14:56

 

창세기 제20장 강해 -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본 장에서는 아브라함의 두 번째 실수와 그 실수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기사의 내용입니다. 애굽에서의 첫 번째 실수가 있은 뒤 24년이 지난 후에도 동일한 실수를 했다는 것은, 아브라함 당시 영적 상태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라고 하는 부족하고 연약하여 늘 잘못을 저지를지라도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돌보시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의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아브라함은 롯과 이별한 뒤에 거의 20년 동안 머물던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수풀을 떠나 가사 남방 약 16km 지점인 그랄(26:1)로 이주를 하였습니다. 남방은 ‘네게브’ 지역으로 사해와 지중해 사이의 땅입니다. 어떤 연유에서 이주를 하게 되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유목민들은 좋은 목초지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새롭고 좋은 목초지를 찾기 위해 이주하였거나, 아니면 ‘마므레’와의 알지 못하는 관계가 있어서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여전히 이방인으로서 나그네로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20년 전 아브라함이 애굽의 바로 왕을 속인 것과 동일하게 그랄 왕을 속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잘못을 할 때에 책망을 받았으며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통해 은혜를 체험하기도 했습니다(15:6;17:16). 그러나 아브라함은 또 다시 동일한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롯과의 작별이후 별다른 큰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안일한 가운데 그의 신앙이 연약해졌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인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동일한 잘못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사라의 나이는 이미 90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아직 이삭이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89세입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사라의 어디가 아비멜렉의 마음을 사로잡아 후처로 삼으려고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부족과 부족이나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세력끼리는 혼인관계를 맺어 상호 우호와 견제를 하였으므로 그들도 정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가끔 제한적이고 부분적으로 이방인들에게도 꿈으로 계시를 하셨습니다.(41:1;단 4:5)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에게 죽을 것인데, 그 이유는 남의 아내를 취하였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후손을 통한 선민을 이루려고 하신 하나님께서 사라의 순결을 보호하시기 위한 경고입니다.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아비멜렉은 일단 사라를 자기의 처소로 데려오기는 하였지만 아직 동침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의롭다고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통하여 인근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는 않았으나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비멜렉 자신도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사라의 이복 오라비였습니다(12절; 20:12). 그러나 이런 사실도 속임수의 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는 저촉되는 것입니다. 이미 부부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은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한 것은 사라가 남편이 없었기 때문이며, 강제적이거나 다른 술수에 의한 것이 아닌 아브라함과의 정상적인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이 왜 사라를 취하였는지를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아비멜렉이 잘못이 없기 때문에 꿈으로 계시하셔서 사라와 동침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여인을 취하면 당일 밤에 동침을 하게 되지만, 아비멜렉의 경우에는 혼자 잠이 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어떤 조치 즉 몸이 아프게 만드셨든지 하는 조치를 취하셔서 사라와 동침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아비멜렉이 사라와 동침하게 되면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기 때문에 사라를 돌려보낼 것을 명하셨습니다. 만일 돌려보내지 않으면 아비멜렉과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모든 백성이 다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선지자이므로 너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과 백성의 사이를 연결하는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 기도하므로 아비멜렉은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8: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일찍 일어나서 모든 신복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다 말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비록 모르고 사라를 취하기는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알려주심으로 그 일이 죄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밝히는 것입니다. 이에서 아비멜렉의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겸허한 모습은 하나님의 징계를 거두게 하였을 것입니다. 신복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미 그들도 하나님께서 어떤 존재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9,10: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으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처럼 믿는 자가 잘못을 하게 되면 불신자들로부터 책망을 받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죄입니다. 아브라함의 잘못으로 아비멜렉의 온 나라와 백성들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일을 하였느냐?’고 책망을 했습니다.

 

 

11,12: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동생이라고 말하여 아비멜렉이 그녀를 취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두 가지의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자신을 죽일까 두려웠다는 것이며, 둘째는 실제로 사라가 자신의 이복누이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지 않을까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복누이라도 이미 자신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누이라고 할지라도 아비멜렉에게 내어주어서는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연약하여 지게 되면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여 사람의 방편대로 행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떠난 심령은 세상적인 모든 악한 것들과 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비멜렉의 세력이 두렵지 않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거짓말을 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결코 바람직한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거짓말보다 더 큰 잘못은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고 할 때에라도 사라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밝혀야 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사라를 아비멜렉에게 주어도 자신은 살아야 하겠다는 생명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못한 행위였습니다.

 

 

13: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아비멜렉에게 말한 근거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로 약속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라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약속이야말로 이기주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15: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하고

  아비멜렉이 우연히 아브라함의 거짓말을 알게 되었다면 아마도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셔서 그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두려운 마음으로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풀어 양과 소와 노비와 함께 사라를 돌려보내게 된 것입니다. 또한 자기 땅에서 어디든지 골라서 살라고 허락을 하였습니다.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으니라.

  아비멜렉은 하나님과 사라에게 사죄의 의미와 또 아브라함에게 화해의 표시로 은 천개를 주었습니다. 은 천개는 1,000세겔로 약 11.4kg이나 되는 정말로 많은 양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다시 자존심을 회복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며, 사람들 앞에서 사라가 더럽힘을 당하지 않았다는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17,18: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사람의 방편과 수단으로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자 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아내에게 수치를 주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여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향한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해 주셔서 다시 생산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로 볼 때에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고도 동침할 수 없었던 것은 생식기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몸에서 난 자로 아브라함의 대를 잇게 하며, 구속사를 이끌어 갈 선민으로 삼으시려고 하는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호하시며,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는 그들의 위기를 통하여 오히려 더 좋은 계기로 변환시켜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