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24장 강해 - 이삭의 결혼

chukang 2011. 7. 30. 18:15

 

 

창세기 제24장 강해 - 이삭의 결혼

 

  사라가 죽고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늙은 가운데 이삭의 결혼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배필을 자신의 친족 가운데서 찾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22장 말미에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과 그의 자손들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23장에서는 사라의 죽음을 기록하여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삭이 열 것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는 이삭의 결혼을 위하여 엘리에셀을 맹세, 10-60절은 혼인 사절인 엘리에셀과 리브가의 상봉 내용, 61-67절은 이삭의 리브가의 결혼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9:18-27에 구속사가 셈 족의 혈통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는 구속사적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이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대략 140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연로와 이삭의 결혼은 구속사의 첫 주역이었던 아브라함이 퇴진하고 다음 세대로 바뀌어 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히 부르신 이래로(12:1-4) 그의 생이 다하는 순간가지(25:7) 그가 만났던 어떤 사람, 그가 거주한 어떤 처소, 그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 등을 불문하고 ‘범사’에 형통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범사에 복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항상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며, 아브라함이 항상 말씀을 좇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12:4; 22:3).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 뼈 밑에 넣으라.

  늙은 종에서 늙은(자켄:ןקז)은 장로를 가리키는 말로도 번역이 되는데(50:7) 집안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직책을 가진 자에 대한 존칭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50여 년 전 한 때 아브라함이 상속자로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입니다. ‘환도 뼈 밑에 넣으라.’ 환도 뼈는 엉덩이를 이루고 있는 골반 뼈를 말합니다. 즉 생식기를 가리키는 완곡(婉曲:은근하게 돌린다는 뜻)한 표현으로, 그 밑에 손을 넣는다는 것은 충성과 헌신을 맹세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또한 할례를 명하신 하나님의 신실함과 언약의 징표를 기억함으로 엄숙하게 서약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권위의 상징인 환도 뼈에 손을 얹는 것은 주권에 대해 철저히 복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4: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이 고향의 친족 가운데서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고 하는 이유는 종족의 순수성을 보존하며 신앙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심판의 대상인 가나안과 가나안에 거하는 타락한 가나안 족속들의 여자는 당연히 배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늘의~ 땅의~ 여호와’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전 우주의 절대 통치자이심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운명, 즉 독자 이삭의 혼사마저도 친히 주장하실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삭의 혼사는 한 인간의 결혼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미래와 연관된 극히 중요한 문제라는 차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거룩한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언급하는 내 고향, 내 족속은 원래 고향인 갈대아 우르가 아닌 하란이며 하란에 아버지와 그 형제들이 함께 이주하여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역시 우상숭배자들이기는 하지만 가나안 족속보다는 아직 덜 타락했고,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알며 두려워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이삭의 아내를 그 속에서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5: 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엘리에셀은 비록 아브라함의 친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부 감이 생면부지의 사람과의 혼인을 위하여 일가친척을 버리고 머나먼 길을 따라오리라고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이삭을 데리고 하란으로 가야 하느냐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6,7: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고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삼가’ 이 말은 ‘네 자신이 주의하여’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당부한 대로 주의하여 맡은 바 사명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결코 이삭을 데리고 하란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그 후손 포함)으로 하여금 본토와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나게 하셨으며(12:1-3), 둘째 가나안을 아브라함의 후사에게 주기로 하셨기 때문이며, 셋째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종 앞에 보내 반드시 이삭의 아내 될 여자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8: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만일 아브라함이 지시한 대로 하란에서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아 데려올 신부 감이 없을 경우에는,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며, 그래도 결코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혼사를 책임지실 줄로 믿었습니다.

 

9: 종이 이에 주인 아브라함의 환도 뼈 아래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이삭의 아내를 구하지 못할지라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엘리에셀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10: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엘리에셀은 신부에게 선사할 예물을 싣기 위해 그리고 신부 일행을 데려오기 위해서, 또한 주인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약대 10필과 아브라함 소유의 좋은 예물을 가지고 하란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 사이의 고원’이라는 뜻입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한 고원 지대입니다. ‘나홀의 성’은 하란을 말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이 거주한 데서 유래하는 명칭인데, 나홀은 아브라함과 부친 데라와 더불어 이곳으로 이주하였거나 아니면 아브라함과 데라의 뒤를 따라 나중에 이곳으로 이주하였을 것입니다.

 

11: 그 약대를 성 밖 우물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이었더라.

  중동 지역에는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져서 비가 내리는데, 건기 때에는 특히 물이 부족하였습니다. 따라서 마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마르지 않는 우물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이 우물은 주로 마을 밖, 입구 쯤에 마련이 되는데,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큰 길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 우물을 팠다고 합니다. 물을 긷는 것은 여인들의 몫이었는데, 무더위를 피해 아침, 저녁으로 물을 길러 나왔으며, 오늘날에도 유목민들에게도 관습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장막에서 대화를 나누듯이 여자들은 물 긷는 시간을 이용하여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12: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하란에 도착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제일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집에서 신앙과 경건의 훈련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적히’라는 말은 ‘그 일이 일어나다’는 뜻입니다. 이삭의 신부 감을 구하러 온 목적 그대로 일어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라는 말은 나의 주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엘리에셀은 자신의 입장에서 기도하지 않고 주인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기도한 것은 주인에 대한 그의 충성심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3,14: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물을 마시게 해 달라는 사람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여행객이므로 사람뿐만 아니라 함께 한 짐승들까지도 목이 마를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자신은 힘이 들지만 짐승들에게까지 물을 줄 수 있는 여자라고 하면 매우 현명할 뿐만 아니라 근면하고 성실할 것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여자가 이삭의 신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기도하는 엘리에셀 역시 매우 지혜로운 종일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15: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가 나타났습니다. 엘리에셀과 같이 응답을 받은 사람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리브가’는 ‘고리’라는 뜻으로, 그녀는 언약 혈통을 잇는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한 여인으로 지혜롭고 현숙하며 아름다웠습니다. 브두엘의 딸이요, 라반의 여동생으로서 5촌 아저씨인 이삭과 결혼을 하여 야곱과 에서를 낳게 됩니다.

 

16: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족장들의 아내들은 대부분 매우 아리따웠습니다. 이 아름다움은 내적으로 성숙한 신앙이 반영된 외적인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이 아름다움은 순결과 아울러 훌륭한 신부가 갖추어야 될 외적 조건입니다. 이런 점에서 리브가는 일단 엘리에셀이 정한 기준에 부합이 되었습니다.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 이는 성 윤리 상 순결한 자였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성적 순결은 결혼 상대자에 대한 필수적인 구비조건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육체적 순결은 영적 순결과 절대 관련이 됩니다.

 

17-20: 종이 마주 달려가서 가로되 청컨대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낯선 나그네를 대접하는 리브가의 착한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런 리브가의 태도는 엘리에셀이 기도한 내용과 그대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사실 소녀가 물을 긷는 것이 매우 힘든 일입니다. 약대는 오랜 시간을 물을 마시지 않고 견딜 수 있지만, 일단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 매우 많은 양을 마신다고 합니다. 당시의 우물은 지표면 보다 낮은 곳이어서 물을 긷기 위해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약대에게 물을 주기 위해서는 몇 번씩이나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매우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리브가는 기꺼이 그 일을 자처하였습니다. 이는 가식이 없는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21: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엘리에셀은 자신의 약대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분주하게 오가는 소녀를 보면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모습은 분명히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한 그대로였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혈통인 것만 확인하게 되면 정말로 순적히 이삭의 신부 감을 만나게 되는 응답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22: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중(重) 금 고리 한 개와 열 세겔 중 금 손목 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엘리에셀이 소녀에게 준 것은 그녀의 정성과 친절한 봉사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당시 근동 인들은 특히 베드윈 족은 몸의 치장을 위해 왼쪽 콧등을 뚫어 코 고리를 하거나 팔뚝이나 손목에 고리를 차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엘리에셀이 리브가에게 반 세겔 무개의 금 고리 즉 코 고리나 팔찌를 선물한 것은 당시의 관습상 지극히 당연한 사례였다고 하겠습니다.

 

23-25: 가로되 네가 뉘 딸이냐 청컨대 내게 고하라 네 부친의 집에 우리 유숙할 곳이 있느냐?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또 가로되 우리에게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당시에는 일부다처 사회였기 때문에 자신을 소개할 때에는 어머니의 이름을 먼저 말한 뒤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일반적 관례였다고 합니다. 이로써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후손임이 밝혀졌습니다. 리브가는 엘리에셀 일행을 의심과 두려움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고 기꺼이 손님으로 받아들이고자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엘리에셀과 리브가 모두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26,27: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 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나홀의 성에 도착하자마다 리브가를 만나게 된 엘리에셀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하며 여호와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감사하는 엘리에셀의 모습은 진정으로 본받을만한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인자’는 값없이 주시는 무한한 은혜이며, ‘성실’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지켜 주시는 사랑으로 여행길에서와 리브가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는 찬양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28-30: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미 집에 고하였더니, 리브가에게 오라비가 있어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니, 그가 그 누이의 고리와 그 손의 손목 고리를 보고 또 그 누이 리브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더라 함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나아감이라.

  ‘어미 집’은 남자들이 거하는 장막과는 분리된 어머니가 기거하는 장막입니다. 리브가는 먼저 어머니에게 모든 자초지종을 고하였습니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혼사와 관련이 있을 것을 짐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리브가의 어머니는 이 모든 내용을 들은 후에 모든 식구들에게 말했을 것이며, 오빠인 라반은 리브가가 받은 선물을 보고 물욕이 동했습니다. 또한 엘리에셀이 말한 내용 즉 리브가의 혈통과 유숙에 관한 것을 듣고는, 이들을 유숙시키면 더 많은 귀금속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여 엘리에셀에게로 직접 나갔습니다.

 

31,32: 라반이 가로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섰나이까 내가 방과 약대의 처소를 예비하였나이다. 그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약대의 짐을 부리고 짚과 보리를 약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 종자의 발 씻을 물을 주고

  라반은 우상숭배자였지만(31:30) 엘리에셀에게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밝히는 것이 아니며 리브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려진 나그네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에게 발 씻을 물을 제공하는 것과 그들의 가축이 편히 쉬며 여물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당시 유목민들의 일상적인 손님 접대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모두 남자들이 주관하였습니다.

 

33: 그 앞에 식물을 베푸니 그 사람이 가로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 하겠나이다. 라반이 가로되 말하소서.

  손님은 주인이 제공한 식사를 마친 후에 방문 목적을 밝히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여행에 지친 엘리에셀이 방문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가 어느 한 순간도 자신의 직무를 망각하지 않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34-36: 그가 가로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엘리에셀은 우선 자신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여행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 집안의 전반적인 경제력과 이삭의 위치, 즉 리브가와 결혼하게 될 이삭이 아브라함의 독자이며 언약의 후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 집안의 개괄적인 내력을 밝히면서 이 일은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때문이라고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가정으로 시집가는 것은 큰 복이라고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37-41: 나의 주인이 나로 맹세하게 하여 가로되 너는 내 아들을 위하여 나 사는 땅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아비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시기로 내가 내 주인에게 말씀하되 혹 여자가 나를 좇지 아니하면 어찌 하리이까 한 즉,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비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내가 내 족속에게 이를 때에는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설혹 그들이 네게 주지 아니할지라도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하시기로

  주인의 아들인 이삭의 신부 감을 구하기 위하여 하란까지 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습니다. 이는 혈족과의 결혼을 통해 종족의 순수성을 보존하며 또 신앙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바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섬기는 여호와’(40) ‘내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행동하는 바로 그 여호와’라는 뜻으로,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여 그분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42-47: 내가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씀하기를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뇨 한즉 가로되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고리를 그 코에 꿰고 손목 고리를 그 손이 끼우고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 즉 12-22절의 내용을 라반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일이 하나님 여호와의 뜻과 인도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는 가운데, 리브가가 반드시 이삭과 혼인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48,49: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이제 당신들이 인자와 진실로 나의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고하시고 그렇지 않을지라도 내게 고하여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

  자신의 기도에 곧바로 응답하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송을 하였다는 간증은 라반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브라함과 나홀의 관계를 언급하여 혈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 라반으로 하여금 리브가를 주어 이삭과 혼인하도록 하는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거절한다면 자신은 다른 집안에서 신부를 찾겠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0,51: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가정의 대소사는 가장이 단독으로 결정할 때도 있지만 집안의 남자들이 모여 의논을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경건함은 있었기 때문에, 엘리에셀의 충성과 사명감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하여 공감을 하여, 리브가의 혼인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고백을 하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왈가왈부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겠으니 데리고 가서 이삭의 아내가 되게 하라고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52,53: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엘리에셀은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완수하자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예를 표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정말로 엘리에셀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위를 체험한 자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결혼 예물을 신부와 그 가족에게 건네주었습니다.

 

54: 이에 그들 곧 종과 종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가로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다음 날 곧바로 귀향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삭의 신부 감을 구했다는 기쁜 소식을 속히 주인에게 전하고 또 그렇게 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고 하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55: 리브가의 오라비와 그 어미가 가로되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라반과 리브가의 어머니는 일정 기간을 지낸 후에 보내려고 합니다. 그 기간에는 혼사를 위하여 준비할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머나먼 타향으로 시집을 보내는 섭섭한 마음을 서로 풀기 위한 기간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지금 아브라함에게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는 은혜를 입은 자로서 마땅히 그 은혜에 합당한 신속하고도 온전한 충성을 하겠다는 신앙적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체험한 자는 그 은혜의 감격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은혜에 합당한 헌신과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자의 도리입니다.

 

57,58: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리브가에게 지금 엘리에셀과 갈 것인가 아니면 좀 더 머물다가 갈 것인가를 물은즉 리브가는 지금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리브가로서는 사실 가족과 떠나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인데, 이렇게 선뜻 결단을 내리는 것을 보면,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이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9,60: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종자들을 보내며,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 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리브가의 유모는 ‘드보라’입니다. 당시에는 신부의 유모를 신부와 함께 시댁으로 보내어 신부를 보살피게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라바는 리브가에게 두 가지의 축복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자손의 번성에 대한 축복으로, 천만 인의 어미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수많은 후손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승리하는 삶에 대한 것입니다. 라반은 일반적으로 하는 축복으로서 리브가에게 한 것이지만, 이 축복 속에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리브가를 통하여 계속될 것이라는 예언적 성격이 들어 있습니다.

 

61: 리브가가 일어나 비자와 함께 약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리브가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은혜를 입고 엘리에셀을 따라 나섰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가 취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62: 때에 이삭이 브엘 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남방에 거하였었음이라.

  아브라함과 이삭은 사라의 죽음 이후 헤브론에서(23:2) 남방으로 이주하여 살았던 것 같습니다. 브엘 라해로이는 하갈의 샘이 있는 곳입니다(16:7-14).

 

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묵상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 슬픔에 젖어 있는 것, 기도하는 것 등의 복합적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삭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만, 아마도 그 중에서 자신의 혼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문득 눈을 들어 북쪽 즉 하란 방향을 바라보다가 약대가 오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가로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당시에는 길 가던 여인이 도중에 남자를 만나게 되면 내려서 예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에셀에게 오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어 봅니다. 엘리에셀은 이삭을 자신의 주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얼굴을 가렸는데, 그것은 결혼 전 신부는 신랑 앞에서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당시의 예의였는데, 신랑에 대한 복종과 아울러 순결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66,67: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고하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이삭은 엘리에셀로부터 여정의 모든 일들을 들은 후에, 리브가를 모친의 장막으로 들였습니다. 이는 정식으로 혼인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리브가는 여주인이 된 것입니다. 이삭은 당시 일부다처제의 풍습에서도 리브가 한 여인만을 아내로 맞아 사랑하였습니다. 이삭은 37세에 모친을 여의고(23:1), 40세에 결혼하였습니다(25:20). 따라서 그는 사라의 죽음 이후에 3년 간 애도의 기간을 지낸 것입니다. 이 구절로 보아 들에서 묵상할 때에 아마도 어머니인 사라의 사랑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