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23장 강해 사라의 죽음
65세의 나이로 아브라함을 따라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온 지 62년이 되었습니다. 이삭을 낳은 후 37년 만에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보다 먼저 1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아브라함의 동반자며 반려자로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다 마침내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처로 들어간 것입니다.
1: 사라가 일백 이십 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享年)이라
여자의 나이로서 성경에 기록된 유일한 경우가 바로 사라입니다. 사라의 나이가 기록된 것은 그녀가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자로서, 모든 믿는 자들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사 51:2;벧전 3:6) 이때 이삭의 나이는 37세입니다.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헤브론 땅은 가나안에 있습니다. 이는 사라가 약속의 땅에 묻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터전으로 삼아 살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슬퍼하는 것은 가슴을 치면서 애곡하는 행위(왕상 14:13)이며, 애통하는 것은 슬픔을 가누면서 조용히 눈물만 흘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행위는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적 장례에서 나타나는 장면인데, 특히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런 애도의 표시는 오랜 세월 동안 타향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며 함께 동고동락한 아내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브라함은 애곡하는 기간 동안 내내 아내 사라의 시신 곁에 앉았다가 그 기간이 차자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의 장례를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헷 족속은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근동 지역과 지중해 연안 지역까지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힛타이트족입니다. 이들은 함의 손자며 가나안의 아들인 헷의 후예들로(10:15) 가나안의 중요 족속 중 하나였습니다(삿 3:5; 왕상 11:1).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로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나그네는 자기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사람이며, 우거한 자는 생소하고 의지할 데 없는 낯선 땅에서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곳이지만, 아직은 성취되지 못한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지상의 가나안보다 하늘 가나안을 바라보며 살았음을 단적으로 증거한다고 하겠습니다(히 11:13). 이렇게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 된 자로 자처한 아브라함의 신앙은 이 땅의 물질에 연연하여 하늘의 상급을 놓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5,6: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하는 모습이 매우 공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주여’ 이는 상대방에 대한 극존칭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존대하며 사라의 장지 선정 문제에 최대한의 협조를 아끼지 않는 것은 첫째 죽은 자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 동양인들의 일반적인 관례이기 때문이며, 둘째 하나님의 방백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상당한 신분의 사람으로 알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백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왕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방 족속들이 아브라함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를 사람들은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북방 4개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결코 잊혀 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헷 족속의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장지를 제공하는 것에 반대함이 없는 것으로도 보아 아브라함의 명성과 지위는 헷 족속의 지도자 한 두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헷 족속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은 불신자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7-9: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아브라함이 일어나서 절을 하는 것은 묘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중개 역할을 하겠다는 헷 족속의 친절에 대한 감사 표현입니다. 당시 동양에서는 모든 상거래, 심지어 결혼조차도 중개인이나 중매인을 통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8: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당신들의 뜻일진대’ 이 말은 당신들의 영혼과 일치한다면 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의 의사를 매우 존중하여 그대로 따르겠다는 겸양의 표현입니다. ‘소할의 아들 에브론’은 아마 헷 족속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듯합니다. 그것은 그가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9절과 또 지도자임을 암시하는 완곡한 표현인 ‘무리들 가운데 앉았더니’(10)라는 말에서 나타납니다.
9: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準價)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그 밭머리에 있다는 말은 그 영역(지역)의 끝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에브론이 넓은 지역을 소유하고 있는 유력한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막벨라 굴은 두 개로 된 굴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아마 굴 안에 또 하나의 굴이 있는 이중 굴이거나, 입구가 둘로 갈라져 있거나, 그렇지 않은 두 사람을 매장하는 굴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준가’는 충분히 많은 은이라는 뜻입니다.
10: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 구절에서 에브론이 헷 족속의 유력한 지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성문 앞 광장은 거래, 재판, 모임을 위한 공공 집회 장소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는 것은 재판관 내지는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서’ 이 말을 통해서도 그가 유력한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당시 계약 시에는 증인 중의 대표자 격이 되는 사람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쌍방 간의 계약 조건을 구두로 말하거나 아니면 아주 초보적인 매매 계약서를 작성함으로써 거래가 성사 되었습니다.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여기에서는 에브론의 우호적인 태도가 나타납니다. 에브론은 굴 뿐만 아니라 밭까지도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제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밭의 수익에서 나오는 세금이 군주에게 돌려졌던 당시의 관례를 볼 때 어쩌면 에브론은 이 부분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동족 앞에서 당신게 드리오니’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밭과 굴을 제공한 사실에 대해 모든 헷 족속이 증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12,13: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몸을 굽히는 것은 에브론의 제의에 대한 아브라함의 감사의 표시입니다. 아내 사라의 장지를 구입하는 데 있어 시종 겸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밭과 굴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에브론의 의사 표시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대가를 지불하고 그 밭과 굴을 확실한 자신의 소유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후에 야기될지도 모르는 밭과 굴의 소유권 문제에 대해 아브라함이 확실하게 매듭지으려 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4,15: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較計)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에브론은 밭의 값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밭의 면적은 알 수 없지만 은 사백 세겔(1세겔은 약 11.5g)은 당시로서는 매우 비싼 대가였습니다(20:16; 37:28). 이 제안에서 지금껏 정중한 모습으로 자신의 욕심에 찬 속마음을 숨겨왔던 에브론의 저의가 밝혀진 것입니다. ‘교계’ 상당한 신분자들이 일개 밭 때문에 서로의 실력과 재력을 비교하고 계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끝까지 자신의 이기적인 속마음을 숨기고 실리를 얻고자 하는 에브론의 모습입니다.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고(商賈: 장사하는 상인)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라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상고는 주로 원거리를 다니면서 물품을 거래하던 상인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은 사백 세겔을 준 것은 중량과 같은 것에서 속임이 없이 하며 거래를 안전하게 성사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17,18: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밭과 그에 속한 굴, 수목 등 매매 계약에 필요한 세부 사항들이 언급되었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토지 매매 시에는 그 토지와 관련된 울타리, 나무, 우물 등 세세한 부분들이 매매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증인들 앞에서 정식으로 밭의 소유권이 아브라함에게로 넘어왔습니다.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사라의 매장지였던 막벨라 굴은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 리브가, 야곱, 레아 등 구약 3대 족장 부부의 장지가 되었습니다(25:9; 49:30,31). 마므레는 헤브론 지역 내에 있는 작은 지명으로 보여 집니다.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막벨라의 밭과 굴이 아브라함의 소유임을 최종적으로 다시 한 번 더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저자가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 구입 과정을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길고 세세하게 밝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이 하나님의 언약대로 그들의 조상들이 살고, 죽고, 매장 된 약속의 땅임을 분명히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 받았던 아브라함이었지만, 그가 실제로 살아 생전에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미미한 분량인 묘지와 주변 땅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이 단순한 이 땅의 가나안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영원한 하늘 가나안까지도 포함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시사하고 있습니다.(히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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