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하나님의 무상급식

chukang 2011. 7. 9. 23:09

 

하나님의 무상급식 신명기 14:22-29

 

 

  Economic Animal이라는 용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용어는 일본인들이 경제부흥을 이룬 후에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돈이 많다고 자랑을 하듯이 함부로 사용할 때에 붙인 좋지 않은 용어입니다. 아직 후진국을 면하지 못했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인들이 돈만 많았지, 많은 돈에 걸맞은 인격을 갖추지 못했으며, 품위 있는 사용을 하지 못했다고 비난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서방 선진국들도 역시 이런 일본인들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악어 그래프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수입의 증가는 점점 줄어들고 지출은 증가는 점점 많아져서 마치 악어가 그 크고 긴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아래턱은 수입의 증가를 나타내고 위턱은 지출의 증가를 나타내는 모양으로 나타났다고 하는 데서 생긴 용어입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경제 부흥을 이룬 후에 가장 정점을 이룬 시기를 1973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 세금으로 걷힌 돈이 복지 정책으로 나가는 돈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이 걷히고 나라 재정의 규모도 커졌지만, 오히려 들어오는 세금보다는 나가는 돈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에 현재는 빚더미에 앉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돈이 많아졌을까요? 우리나라가 가난을 벗어나고자 경제개발을 시도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입니다. 정부는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하는 경제개발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다른 나라에서 빌려 오기로 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 단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인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3개년 계획은 수립했고, 장면 정부에서는 5개년 계획(62-66년)을 수립하였는데, 실천에 옮기는 것은 5.16 군사정변 이후의 일입니다. 1962년부터 1991년까지 6차에 걸친 경제 개발 계획이 추진이 되었는데, 제5차 이후는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제7차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추진된 신경제계획이 겹쳐서 96년에 5개년 계획은 사실상 종료가 되었습니다.

  제1차 경제개발 계획(1962-1966)은 전력, 석탄 등 에너지원과 기간산업을 확충하여 사회 간접 자본을 충실하게 하여 경제 개발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농업 생산력을 확대하여 소득을 증대시키고, 수출을 증대하여 국제 수지를 균형화하고 기술을 진흥하는 일 등이었습니다. 이때에 우리나라 1인당 GNP은 83달러에서 125달러로 증가되었습니다.

  제2차 경제개발 계획은 1967-1971년인데, 식량 자급화, 산림녹화, 화학, 철장, 기계공업의 건설에 의한 산업의 고도화 정책입니다. 이때 개발을 위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였는데, 이 자금은 한일국교정상화 합의에 따라 일본에서 배상금조로 6억 달러를 지급하였는데, 그것이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시 베트남은 남과 북이 전쟁 중이었는데, 미국의 도움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도 파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1966년부터 1973년까지 8년 동안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자금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돈을 바탕으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시작했습니다. 무려 경제성장률이 9.6%에 달하였습니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6)의 목표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여 안정적 균형을 이룩하는 데 두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착수 직전인 1971년 8월의 '닉슨 쇼크'에 의한 국제경제 질서의 혼란, 1973년 10월의 석유파동 등으로 어려운 고비에 처하게 되었으나, 외자도입의 급증, 수출 드라이브 정책, 중동 건설경기 등으로 난국을 극복하여 연평균 9.7%의 성장률을 유지하였습니다.

  제4차 경재개발 5개년계획(1977∼1981) 때에 수출 100억 달러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때도 우리나라가 큰 덕을 보게 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이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건설을 하던 시기였는데, 우리나라 건설사들과 인력이 투입이 되어 국가발전의 큰 바탕이 되는 시기였습니다.

  제5차(1982-1986)부터는 성장 위조의 정책에서 안정, 능률, 균형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또 우리나라가 발전과 안정을 이루게 되는 원인이 있었는데, 그것은 “3저”라고 하는 저환율, 저금리, 저유가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경제 발전에 한계가 오려고 할 때마다 이런 좋은 일들이 생겨나게 되어 발전과 안정을 동시에 갖출 수 있었습니다.

  제6차 (1987-1991) 시기에는 88올림픽이 개최가 되어 다시 한 번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여행자유화가 허락된 때가 바로 1988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도 동남아를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일본인들과 같은 추태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높은 교육열에 의한 저렴하고도 양질인 노동력이 풍부했다는 점, 둘째 외자도입이 순조로웠다는 점, 셋째 기업의욕이 왕성하였다는 점, 넷째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베트남 특수, 중동 건설 진출에 의한 수요증대 및 저임금 노동력과 정부 지원에 의한 수출증대, 다섯째 88 올림픽 등 유리한 국제 경제 환경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다 같이 못사는 국민들이 이제는 잘사는 사람과 중산층과 못사는 사람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계층 간의 갈등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 갈등은 전 세계가 불황으로 접어들면서 더 심화가 되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사람들의 탐욕이 너무나 커진 것입니다. 경제 발전 과정 가운데 강남의 땅부자들이 탄생을 했고, 관료들은 부정부패에 물들었고, 기업들은 수입은 최대로 끌어 올리면서도 근로자들에게는 저임금 정책을 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서 한탕주의, 배금주의 사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따라서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은 피하고, 쉽고 편하게 돈을 벌려고 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에 맞추어 김대중 정권 때에는 서비스 산업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더욱 제조업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주5일제가 도입이 되어 돈을 벌기 위해서 정당한 근로를 하기보다는, 사치와 향락 속에 빠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심지어는 교회들도 전원교회를 만들어서 주말이면 놀러가는 교인들을 유인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을 이루기는 했지만, 급속한 IT 산업의 발전과 공장자동화로 인하여 오히려 일자리가 부족하게 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경제 발전과 더불어서 민주화도 많이 진척이 되었습니다. 민주화를 타고 지방자치제, 교육자치제가 시행이 되어, 진보성향이라고 하는 사회주의자들이 교육감에 당선이 되어 ‘무상급식’을 결정하게 되면서 사회적인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이러한 무상급식이 성경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무상급식은 옳은 것인가? 무상급식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나타난 무상급식에 대하여 바로 알고 난 후에 우리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 전면 무상급식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종교적 의무 중에서 ‘십일조’를 규정해 주셨습니다. 십일조는 모든 소득의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백성들이 바치는 십일조가 유일한 소득입니다.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에게 각 지파의 백성들이 십일조를 내고, 또 레위인들은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또 다시 제사장에게 내고(민 18:26), 제사장은 또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도록 하는 것이 성경에서 규정하는 십일조입니다. 바로 이 십일조를 오늘날에도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상급식하고 십일조가 어떤 상관관계에 있기에 십일조를 언급하는 것일까요? 성도들 입장에서는 매우 듣기에 거북한 말일수도 있지만, 성경에 있는 대로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100만원의 수입이 있을 때에 십일조는 얼마가 됩니까? 10만원이 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어서 수확한 곡식이나 과일과 채소를 팔아서 100만원의 소득을 올렸습니다. 이 농부에게는 얼마가 십일조가 됩니까? 10만원입니다. 농부가 십일조를 10만원을 드리는 것은 총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린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일한 노동력에 대한 대가, 일할 때에 사용된 옷이나 신발, 농사지을 때 필요한 도구나 농약 값은 포함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사나 자영업을 하는 성도가 십일조를 드릴 때에도 총수입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지, 집세 빼고 세금 빼고, 교통비 빼고, 생활비 빼고 십일조를 계산해서 드리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십일조를 조금 드릴 때에는 그냥 감수하겠는데, 총수입이 늘어날수록 십일조도 늘어나니까 믿음이 약해지게 되면 십일조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뺄 수 있는 것은 다 빼고 십일조를 계산하게 됩니다.

  사람이 머리가 좋지만, 그 좋은 머리를 우둔하게 만드는 것은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100만원 중에 10만원을 십일조로 드리고 나면 내게 남는 것은 90만원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90만원이 남았다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10만원을 드렸다는 것이 더욱 생각나게 됩니다. 10만원을 드렸을 때에 큰 액수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면, 500만원의 수입이 되면 50만원을 드려야 하는데, 그 50만원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1000만원 수입이 되면 100만원을 드려야 하는데, 이 100만원이 너무나 크게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요? 500만원의 수입에서 십일조를 제하면 450만원이 남습니다. 1000만원에서 100만원을 제하면 900만원이 남습니다. 그러면 성도는 어떤 것을 생각해야 옳은 자세입니까? 십일조를 내고 남은 450만원, 900만원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셔서 이렇게 십일조를 내고도 많은 돈이 남았다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업에 복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농사에 복을 주셔서 십일조를 내고도 이렇게 많은 돈이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것이 옳은 성도의 모습이 아닐까요? 십일조 만원에 총수입은 10만원, 십일조 10만원에 총수입은 100만원, 십일조 100만원에 총수입은 천만 원으로 10배씩 수입이 올라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십일조 내는 것만 아까워하는 것이 바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달에 십일조를 100만원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만일 아까워서 50만원을 드렸다면 총수입은 500만원으로 줄어들게 되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천만원에서 십일조 드리고 나면 900만원인데, 50만원으로 줄이면 수입은 450만 원으로 절반으로 줄어든데, 그 줄어드는 수입이 아까워서라도 정확한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의 경우에는 수입이 130만원, 140만원이면 150만원으로 계산해서 15만원을 드렸고, 170만원, 180만원, 190만원을 벌면 20만원을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십일조에 맞는 수입을 허락해 주시는 체험을 했습니다. 할렐루야!

 

 

  22절을 보면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이 말씀이 일반적인 십일조의 개념입니다. 그리고 23절을 보면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십일조의 개념은 그 뒤에 나오는 대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입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이 바로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수입을 허락하셨다는 것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십일조가 아까운 것입니다.

  이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십일조나 감사 헌금이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는 성도라면 까무러칠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교회에 그만 다니겠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지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22절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레위인에게 내는 십일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레위인에게 주는 그것으로 이미 끝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는 것은 레위인에게 주는 십일조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내고 나머지 중에서 또 다시 십일조를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제2십일조라고 말합니다.

  100만원 수입에 10만원 십일조를 드립니다. 나머지 90만원에서 또 다시 십일조를 떼면 9만원입니다. 바로 이때의 9만원이 바로 22절의 십일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십일조는 먹고 즐거워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라서 일명 ‘축제 십일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일부 성도는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십일조만 내고 먹고 마시고 즐길 때에 사용하는 십일조는 내지 않고 참석도 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성경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제2의 십일조를 내어 하나님 전에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7-11)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즐겨내는 성도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는 성도들에게 모든 것이 넉넉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더욱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성도가 즐겨낸 것을 나누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 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하시는 동시에 의의 열매까지도 더하여 주십니다. 이런 성도는 모든 일에 부요하게 되어 더욱 너그럽게 연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즐겨내지 않는 자는 반대가 될 것입니다. 억지로 내게 되면 억지로 내는 양 밖에는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낼 때에 모든 일에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할 때에 영적인 의의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2십일조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제2십일조를 내어 수입이 없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동시에 함께 즐기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2십일조를 특별히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28절을 보면,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라고 하셨습니다. 매 삼년 끝은 안식년 다음부터 3년을 말합니다. 3년에 한 번씩은 제2십일조를 저축하라고 하셨습니다.

  29절을 보면 저축하는 목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입니다.

  제2십일조는 오늘날 넓은 의미로 해석하게 되면 일종의 세금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렇게 거둔 제2십일조는 오직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들에게만 사용을 하였던 것입니다.

 

  다 같이 신명기 26:12-15을 함께 봉독합니다. “제 삼 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고하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 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이 말씀을 보면 백성들이 어떤 자세로 제2십일조를 준비했는지가 나와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절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 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애곡하는 날이라는 말은 ‘초상 기간’을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개 장례를 위해서 7일 정도를 소용하였습니다. 이 기간에는 죽은 자의 시신을 만짐으로서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되는데(레 21:1-03), 그러므로 부정한 몸으로 성물을 먹는 경우에 그는 죽게 됩니다(레 7:20). 또 이런 기간 중에 ‘이를 떼어 두지 아니하였고’ 즉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을 따로 떼어 구별해 둘 때 부정한 몸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부정한 몸으로 성물을 만지는 자는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레 22:3).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7일간의 초상 기간 동아 조문객을 위해 많은 음식이 소요되는데, 그 음식을 성물 중에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엄격한 관습 때문에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해도 반드시 장례 의식은 치러야 하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떼어 놓은 십일조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즉 제2십일조는 성물이기 때문에 결코 부정한 몸으로 떼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았으며, 다른 용도로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용도로 사용하였습니까? 아무리 급박하고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할지라도 가난한 자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십일조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오직 명령하신대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이스라엘에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은 우리 성도들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부자도 무조건 공짜로 먹여야 되는 것이 전면무상급식입니다. 결코 성경적 개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자들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전면무상급식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며, ‘포퓰리즘’이 분명합니다.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것은 대중영합주의, 대중인기주의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국민의 그렇게 무식한가요? 그렇게 해서라도 인기를 얻고, 선거에서 표를 얻어 당선이 되고자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포퓰리즘은 결국 나라를 망치는 것입니다. 결국 전면무상급식은 가난한 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오히려 부자를 먹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가난한 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이들을 또 다시 국가가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복지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국가의 세입은 한정이 있는데, 복지 자금은 물붓들이 부어야 한다면, 결국 국가에서는 채권을 발행하게 되는데, 이것은 곧 국가의 부채가 되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도 전면급식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맹주인 구 소련이 망한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중국도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한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그런데 이 전면무상급식은 바로 공산주의 이론이요, 사회주의 이론에서 나온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바로 기독교의 대적이며, 하나님의 반대 세력인 원수 마귀에서 나온 것입니다. 결국 이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파괴하려고 하는 마귀의 세력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뜻 듣기에는 모든 학생들이 무상으로 식사를 하게 되면, 부모 입장에서는 편하고 돈도 들지 않으니 좋은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이렇게 무서운 음모가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일부 교육감이나 교사들은 학력평가를 거부합니다. 학생들의 권리가 그토록 중요한 일입니까? 일부 학생들의 자유, 학생들의 선택, 학생들의 추구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할까요? 종교적 신념으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과 같은 것들, 학생에게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논리, 학생들 제멋대로 하게 만드는 학칙 개정과 같은 이 논리들은, 배려해야 할 사항이기는 하지만 전체 학생과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회 질서의 파괴를 가져오게 되고, 학생들의 학력저하는 국가 경쟁력 저하가 되고, 이는 국가의 쇠락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속담에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달콤함 뒤에는 변비와 같은 고생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대중 영합주의, 대중 인기주의라는 포퓰리즘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앞에서 보면 그럴 듯 해 보입니다. 국민을 위하고 학생을 위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죽이는 음모라는 사실을 성도는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 사항입니다.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 된 이웃을 돕기 위하여 앞장을 서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빈부 격차는 결코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가 최대의 노력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은 이 땅에서나 사람에게서나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으며, 준행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인 동시에, 약속하신 복들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받지 못하는 그 보상은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서 반드시 보상을 받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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