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15장 강해 - 횃불 언약
횃불언약은 이전의 여자의 후손의 언약(창 3:15)에서 이후 다윗 언약(삼하 7:5-16),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은 새 언약(마 26:26-29)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인간의 구원을 위한 언약이 각종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인간을 위한 구속 사업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을 알게 합니다. 모세가 이 글을 쓸 당시는 출애굽 이후 가나안 정복을 위한 광야의 여정 중이었습니다. 횃불언약은 바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역사적이며 신적인 소유권의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침략자인 메소보다미아 4개 연합군을 물리치고 롯을 비롯한 사해 연안 국가들의 포로를 구출한 후에 여호와께서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람에게 언약(12:1-3;13:14-18)을 재확인시켜 주심으로써 용기와 확신을 주기 위함입니다. 일반적으로 꿈이나 황홀한 상태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를 가리켜 이상(민 12:6; 삼상 3:1)이라고 합니다. 인류 초기에서부터 족장시대에까지는 일반적으로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꿈이나 비정상적인 상태에서가 아닌, 깨어있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아브람은 전쟁 후에 영적, 육적으로 매우 피곤한 상태에 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안전을 보장하셨습니다. 아직 전쟁으로 인한 위험이나 두려움이 남아 있는 상태요, 가나안을 확실하게 점령하지 못한 나그네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안심시키고 계십니다. 특히 상을 베푸실 뿐만 아니라 상급 그 자체가 되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상급이 된다는 말씀에 과연 어떤 방식으로 상급이 주어질 것인지에 대하여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상급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후사에 대하여 질문을 한 것입니다. ‘주 여호와’(아도나이 여호와:אדני יהוהד)는 언약의 성취와 관련할 때 사용되는 명칭입니다(삼하 7:28).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상급은 곧 언약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다멕섹 출신의 종으로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실한 청지기입니다(24:2-10). 고대 사회에서는 후사가 없을 때에는 충실한 종을 양자로 삼고 재산을 양도해 주는 대신 노후의 삶을 의탁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길리운 자는 집에서 태어난 자로 종의 자식입니다. 아브람은 아직 자신의 혈육으로 후사가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한 집안이라고 하는 울타리에서 후사를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는 것입니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13:16에서 이미 약속하신 바 있는 아브람의 몸에서 난 아브람의 씨로 후사를 주신다고 다시 한 번 말씀을 하십니다.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의 후사에 대한 약속을 반복하시면서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많은 별들을 보여주신 이유는 실제적인 육신의 후손이 별들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번성할 것임을 확신시켜 주시는 것이며, 또한 이들 후손은 캄캄한 가운데 별처럼 빛나는 삶과 존귀함을 입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6: 아브람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서 아브람에게 후사에 대한 약속을 주시자 아브람은 그것을 ‘믿으니’(아만:אמן) 즉 어떤 대상에게 자신을 맡기고 끝까지 의지하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의’(체다카:צדקה)는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상태로서, 타락 이전의 인간 상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에게서는 완전한 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롬 3:10). 다만 하나님의 ‘칭의(稱義)’로만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롬 3:23)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신 것입니다.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업을 삼게 하려고’는 기업을 상속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으로 하여금 가나안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 타락한 이방 땅에서 그를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입니다. 즉 무조건적 은혜입니다(엡 2:8). 이 은혜가 오늘날 내가 죄인이지만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얻게 된 근본적 이유입니다.
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언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확실한 징표를 요구하는 이와 유사한 표현들은 기드온(삿 6:17)이나 마리아(눅 1:34,35)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요청을 받아들여 언약을 확증할 표적을 삼기 위해 제물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 제물들로 드려지는 제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와 신약의 모든 예배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높이기 위해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희생 제물을 반으로 쪼개어 마주 보게 놓고 계약자 쌍방이 그 가운데로 함께 지나가는 것은 계약을 반드시 지킬 것에 대한 약속인 동시에 계약 위반자는 쪼개진 제물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렘 34:18-21). 새는 두 마리를 준비하여 쪼개지 않고 각각 한 마리씩 마주 보게 놓았습니다. 새는 반으로 자를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훗날 모세 율법에서도 희생 제물로 드려진 새를 쪼개지 않게 했습니다(레위 1:17). 이 쪼개진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합니다.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솔개가 제물을 채가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장차 애굽에서 겪게 될 고난의 예표라고 주장합니다. 시편 105:42(이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에서는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낸 것은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적, 신앙적 관계가 그의 후손 전체를 사망의 엄습에서 구원, 보존하는 하나님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아브람이 해질 때에 깊은 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의 언약 체결을 위한 제물을 드릴 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상’ 가운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이상’ 중에 있던 시간은 만 하루 동안 계속 되었을 것이며, 이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이 잠은 초자연적인 수면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잠 속에서 아브람은 공포를 느낄 정도로 너무나 캄캄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자연 상태에서의 어두움이 아니라 초자연적 수면상태에서의 어두움입니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지금부터 이르실 말씀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할 것입니다. 12절에서 아브람에 임하여 너무나 캄캄하여 두려움을 느낀 것이 종살이에 대한 암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懲治)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징치라는 말은 징계하여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이는 정당한 절차에 의해 사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 내리 10가지 재앙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 행위입니다.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비록 이스라엘이 400년간의 노예 생활로 애굽의 채찍 아래 머물며 고통을 당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비극의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마치 전쟁에서의 승리자처럼 많은 전리품을 얻어 당당하게 나올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아브람은 장수한 후에 앞서 간 경건한 신앙의 조상들이 있는 영원한 세상으로 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종말의 복은 인생의 역경을 믿음으로 승리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꼭 같이 주어질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하나님과 영원히 더불어 생존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기쁘고 복된 과정인 것입니다.
16: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4대라고 하는 말씀은 당시 인간의 수명을 100년으로 잡을 때에 4대로 400년을 가리킵니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에서 제일 막강한 대표적 족속입니다. 이 족속의 이름은 모든 가나안 족속을 통칭하는 호칭으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48:22).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관영하다는 말은 충분한, 가득 찬,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즉 아모리 족속의 죄가 아직 심판을 방을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는 400년 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아모리 족속을 철저히 진멸하도록 명령하신 이유를 밝혀주는 좋은 근거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십니다. 그러나 끝내 회개를 거절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지만 진노의 날에는 철저하게 진멸하시는 엄위하신 분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벧후 3:9,10).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2절의 상황 ‘해질 때에’에서 좀 더 진행이 되어 밤이 매우 깊어진 시점입니다. 상징적으로는 지금 제시되고 있는 예언에서 보이듯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역이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이 짙은 어둠은 머지않아 찬연한 새벽이 곧 다가올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연기 나는 풀무’ 여기에서 ‘풀무(탄누르:תנור)’는 불을 담기 위한 둥근 형태의 항아리로 화로를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장차 당할 고난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이 풀무에서 연기가 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고초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구원의 시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곤혹스런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타는 횃불’ 이는 연기 나는 풀무에서 솟아 났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불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보호와 인도하심을, 그리고 원수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합니다(슥 12:6). 따라서 이 불이 연기 나는 풀무에서 솟아올랐다면 하나님께서 선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실 것, 곧 이스라엘 압제하는 애굽을 철저히 징치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불꽃으로 홀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이는 아브람과의 계약이 쌍무계약이 아닌 편무계약(片務契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신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당신이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이 행동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소망에 대하여 기도하며 기대를 할 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아브람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 같이 번성하게 만드시며, 그들에게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강에 이르기까지 넓은 땅을 취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부패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의 당사자로 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바로 그런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 준수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지금까지 반복된 아브람의 분깃에 대해 처음으로 자세한 범위가 언급이 되었습니다. 아브람과 그 후손의 영역은 애굽 강에서 유브라데에 이르는 연토라는 것입니다. ‘애굽 강’은 애굽의 나일강을 말하지 않고 바란 광야에서 지중해 쪽으로 흐르는 ‘애굽 시내’를 가리킵니다(민 34:5; 수 15:4). 이는 이스라엘 영토의 남단 경계를 말할 때 자주 사용이 됩니다(왕상 8:65; 대하 7:8). 이런 하나님의 언약은 출애굽 직후 가나안 정복 전쟁에 나섰던 여호수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쟁취하지 못하였다가(민 34:2,3), 다윗과 솔로몬 치세 하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왕상 4:21; 대하 9:26). ‘네 자손에게 주노니’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신 이상 이는 이미 그 계약이 성취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계약의 성립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한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아직 천국에서의 온전한 영생을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땅에서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의 기쁨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19-21: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장차 아브람의 후손들이 거주할 가나안에 거하는 10족속의 명단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가나안 족속들이 대개 7족속(신 7:1)으로 언급되지만, 여기에서 10족속이 언급되는 이유는 아브람의 후손들이 완전하게 철저하게 이들의 땅들을 차지할 것일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겐 족속’은 가나안 남부에 거주한 산악 족속(삼상 15:6)으로 모세의 장인 호밥이 대표적 인물입니다(삿 1:16). 이들 중 일부는 통일 왕국 시대에도 여전히 가나안 남부 지역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삼상 15:6). ‘그니스 족속’은 겐 족속과 같은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족속들은 모세 시대 이전에 사라진 것 같습니다. ‘갓몬 족속’은 가나안 동쪽, 아마 유브라데 근방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헷 족속’은 메소보다미아와 가나안, 애굽 북부, 지중해 연안 등 소아시아와 근동 지역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강력한 족속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리스 족속’은 성읍 밖의 평야 지대에 촌락을 형성하고 산 것으로 추측합니다. ‘아모리 족속’은 아브람 당시 요단과 사해 서쪽 연안에 거주한 가나안인의 대표적 족속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솔로몬 시대까지 잔존하였습니다(삿 1:35; 왕상 9:20, 21). ‘가나안 족속’은 개별적 특성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대개는 가나안에 거주하는 모든 족속의 총칭으로 사용됩니다(12:6). ‘기르가스 족속’은 여리고와 요단 서안을 거점으로 산 족속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수 24:11). ‘여부스 족속’은 가나안 산지에 거한 족속이지만 여호수아 이후로 왕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였습니다(수 15:36; 삼하 5: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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