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13장 강해 - 아브람과 롯의 분리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을 세우시기 위하여 첫 번째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과 그 가족을 구별하여 내였고, 이제는 아브람과 조카를 구별하시는 작업을 하셔서 순수한 아브람의 혈통을 분리하셨습니다. 것을 성경적인 용어로 ‘성별(聖別)’이라고 합니다. 즉 성별이라는 말은 구분하다, 혹은 분리하다는 뜻입니다. 성스럽게 사는 것은 악한 것과 분리하여 구분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5)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은 애굽에서 가정적인 위기와 온갖 수치를 겪은 뒤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신앙인에게 있어 인생의 역경은 신앙의 정도를 걷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환란이 주어질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오히려 감사하며 그 뜻에 복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람 일행이 애굽을 향할 때는 롯의 동행 여부가 언급되지 않았으나 여기에서는 언급된 이유는 이후의 사건들이 롯이나 그 후손들이 세운 새로운 부족의 출현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또한 이 족속들은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와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방으로 올라가니’ 이는 다시 가나안으로는 복귀라는 현장적인 측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라는 측면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성도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입니다.
2: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아브람은 하란에서 모은 재물(12:5)과 애굽에서 바로에게 선물로 받은 재물(12:16)로 인해 많은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의 백성이 풍성한 물질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 복이라고 하겠습니다. 물질 그 자체가 죄악시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물질로 인해 빠지기 쉬운 죄의 유혹(딤전 6:10)은 철저히 배격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물질을 맡은 우리 성도의 바람직한 물질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온 뒤 가나안 남부 광야 지역에서 잠시 여정을 풀었다가 다시 이동을 시작하여 벧엘과 아이 사이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가나안에 엄습했던 기근이 많이 호전되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단번에 이동을 할 수 없는 특성으로 인하여 쉬어가면서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기서 처음이라는 말은 ‘리숀(ראשׁן)’으로 ‘과거에, 이전에’라는 뜻입니다. 첫 번째는 아브람이 처음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입니다(12:8). 즉 이번은 두 번째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서 두 번째를 처음이라고 번역한 것은 아마도 애굽에서 상실하였던 신앙을 회복하며 과거의 신실한 믿음을 되찾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온 아브람에게 있어서 이 제단은 첫 제단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5,6: 아브람의 일행 롯도 약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장막은 유목민들의 이동식 거주 처로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의 거처로도 사용이 된다고 합니다. 롯도 많은 가축을 소유했고 또 아브람에게서 독립된 여러 식속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수용할 장막을 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가나안 땅 자체가 너무 협소하여 이들을 함께 수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시 가나안은 가나안 족속들이 있었고, 아브람과 롯이 머문 곳 자체가 좁기 때문입니다. 좁다는 뜻은 생활 터전이 좁다는 뜻이며, 가축들을 먹일 수 있는 목초지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장소의 협소함으로 인하여 좋은 목초지가 물이 부족하여 목자의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아브람과 롯이 분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다툼은 물질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재산으로 부유한 삶을 영위할 시점에서 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더 부유해지려는 욕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며, 하나님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까지 함께 거하였기 때문에 목초지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골육이라는 말은 ‘형제 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람과 롯은 3촌간입니다. 그러나 일찍 부친을 여윈 조카 롯을 데리고 머나먼 객지에서 동고동락한 아브람에게 있어서 롯은 할 골육이며 형제간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들 사이의 분쟁은 이방 족속에게는 수치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이방인들로부터 당하게 될지 모를 부끄러움과 조롱을 방지하기 위하여서도 서로 다툼을 멈추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 일행이 지금 거주하고 있는 벧엘은 주변보다 조금 높은 고원 지대입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제시한 땅은 팔레스틴의 모든 방향의 장소를 가리킬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나안으로 왔기 때문에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롯에게 먼저 거처를 결정지을 수 있도록 양보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의 발로입니다. 화평을 위해 기득권을 양보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내세에까지도 영원한 상급으로 채워주셨습니다(17:1-7).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 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이 세상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탐심의 눈으로 모든 형편들을 조목조목 살펴보았습니다. 롯이 바라본 요단 평지는 요단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고 있었으므로 목초지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목축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마친 에덴동산과 같다고 표현하므로 얼마나 좋은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애굽 땅과 같다는 말도 역시 요단 들이 매우 비옥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은 숙부요 보호자인 아브람의 거처 우선 결정권 양보에 대한 한 마디의 감사의 인사도 없이 요단 들을 택하여 떠났습니다. 이는 육신의 소욕에 빠져 최소한의 인간적 신의마저도 저버린 롯의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목초지의 부족이지만 순수 신앙의 혈통을 분리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인 것입니다.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아브람은 여전히 가나안 땅에 거하였지만 일정한 장소에 머무른 것은 아닐 것이며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을 것입니다. 반면에 롯은 요단들에서 계속 좋은 장소로 옮겨가며 목축을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점점 죄악의 도시 소돔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힘들고 어렵지만 약속의 땅을 벗어나지 않는 인내의 모습을 보이지만, 가나안의 약속과 관계없는 롯은 평안과 부와 향락을 좇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이지만 당시 소돔 사람들의 죄는 특별히 사악하였습니다. 아마 물질의 부요함이 이들로 하여금 더욱 타락하고 사악하도록 재촉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의 부요함은 난폭한 자의 손에 있는 흉기와 같은 것입니다.
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람은 롯을 떠난 보낸 후에 매우 쓸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방랑 생활에 매우 힘이 들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을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가 바라보는 모든 곳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일순간 점령하는 것이 아닌 영원히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가나안을 택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차지하게 될 땅과 함께 영원한 주의 나라를 상속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아직 자식이 없는 아브람에게 자손을 땅의 티끌 같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는 터무니없는 말씀으로 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100살이 되었을 때에 아들 이삭을 낳았고, 그로 인하여 후손이 번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개함이 없으시며, 못 이루실 것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되고야 만다는 사실입니다.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일어나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는 말씀은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의 후손이 얻게 될 약속의 땅의 범위를 타나내는 표현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람을 통해 그의 육체적인 후손에게 주어졌습니다. 또한 이것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하는 믿음의 후손들에게 하늘에 있는 영원한 가나안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계시가 있는 직후에 헤브론으로 장막을 옮겼습니다. 이는 매우 오래된 성읍으로, 예루살렘 남쪽 약 30km 지점입니다. ‘마므레 상수리 수풀’ 마므레는 상수리 수풀이 있는 지역을 가리키나 때로는 아모리 족속 중의 한 사람(14:13, 24)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지명은 인명에서 유래된 듯합니다. 마므레는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3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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