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어버이날 설교 - 효도와 자식 교육 잠언 4:1-9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이런 질문은 ‘우문(愚問)’ 어리석은 질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어렵다.’라고 말할 때에 부잣집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고 또 유산을 많이 물려받아 돈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 말이 귀에 들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공부 잘 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사람도 있겠지요. 반대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운동을 잘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는 전국적으로 주산대회와 타자대회가 있었습니다. 한 대학교에서 같은 상과소속이라서 한쪽에서는 주산연습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타자연습을 합니다. 준비, 시작하는 신호에 맞춰서 주산선수들이 억 단위 문제집을 가지고 암산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합니다. 고개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슬쩍 내리면 벌써 답이 나옵니다. 제한 시간이라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누가 가장 빠르게, 그리고 정답을 썼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눈길을 한 번 주었을 뿐인데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옆에서 구경하던 타자 선수들이 감탄을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계산을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타자 선수들이 연습을 합니다. 제한 시간 5분 혹은 10분을 주고 준비 시작에 맞춰서 타자를 시작합니다. 원고지를 보면서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서 타자를 하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주산 선수들이 감탄을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타자선수들은 거의 1초에 10번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주산선수들도 눈으로 계산하고 손으로 주판알을 튕기면서 계산하지만 타자선수들과는 또 다른 동작입니다. 이렇게 같은 상과 소속이지만 주산과 타자는 공통점과 상이점이 있어서 같은 선수이면서도 서로에게 감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제각기 다른 성격과 재능을 가지고 있고, 또 각기 자라온 환경에 따라 직업을 가지기 때문에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잘하면 감탄을 하게 됩니다. 자신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어려운 일들을 어쩌면 그렇게 잘하는지 감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일을 잘합니까? 또 어떤 일이 어렵습니까? 어떤 사람이 하고 있는 그 일에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남이 모르는 수많은 연습과 고통이 따랐을 것입니다. 남들은 지금 잘하는 그 모습만 보고 있지만, 당사자는 수많은 시간들을 연습하면서 자세를 교정하고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겠습니까?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습니다. 미술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습니다. 노력도 없이 잘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개념에서 나에게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효도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것이나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나 모범 답안은 없습니다. 이 또한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환경과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쉽다면 가장 쉬운 것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어른들은 자식교육과 효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 동의를 할 것입니다.
“어느 때에 불효한 것 같은가?”라는 항목으로 한 조사기관에서 대학생들에게 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등록금 고지서를 부모님께 보여드릴 때”라고 합니다. 400만원이나 되는 등록금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학비를 줄이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대답은 “취직을 못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대학교 졸업식에 취직을 못하고 참석을 하기가 부끄럽다고 합니다. 취직을 하지 못한 학생들 중에는 졸업식에 참석을 하지 못하고 나중에 졸업장을 찾으러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처럼 효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마음을 쓰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은 것입니다. 자식 교육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쉬운 것 같지만 잘 안 되는 것이 자식 키우는 것입니다. 특히 경제 사정이 어려운 현 시대에 누구나 다 공통적으로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 경험자들이 어떻게 하면 효도를 잘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교육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을 내 놓지만 그것은 사람마다 공통적으로 적용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꼭 맞춘 정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자식에 대한 훈계의 내용이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왕자로 태어나서 지혜의 왕으로 불리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한 나라를 만든 훌륭한 왕입니다. 그가 말년에 깨달음을 얻어서 지혜의 책인 잠언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솔로몬이었지만, 자신에 대하여 ‘유약한 아들’이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 왕이 아들인 솔로몬에게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비록 지혜의 왕인 솔로몬이었지만, 이제 인생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말년이 되니까 어릴 때에 아버지의 교훈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청개구리’의 모습은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의 어릴 적 행동을 후회하면서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첫 마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명철이라는 말은 참과 거짓, 선과 악을 분별하고,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주는 능력입니다. 이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했는데, ‘주의’는 ‘귀를 곤두세우다, 주목하다’는 뜻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명철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디 그렇습니까? 어릴 때에는 아무리 부모가 옳은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이 제일 옳은 것 같습니다. 자기가 제일 똑똑한 것 같고, 자기가 가장 합리적인 것 같이 생각이 됩니다. 어떤 때에는 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그것이 다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어릴 적 경험과 노년에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이렇게 자녀들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을까요? 2절을 보면 “선한 도리”를 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선한 도리는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전해진 선한 도리’로서, 그의 아버지 다윗을 비롯한 조상들에 의해 축적되고 전수되어 온 것입니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3절) 단지 부친과의 혈연적 관계에서 ‘아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큰 총애를 받았으며 또한 그의 교훈을 받을 아들들을 매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아들이었으며’라는 말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유약한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말 그대로 어머니 앞에서 한없이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들들에게 선한 도리를 전하고 있지만, 어릴 때에는 자신도 역시 무력한 존재로 어머니의 친절한 보호와 사랑 가운데 훈계와 교훈으로 양육이 되었음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아들들을 가르치면서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전수받은 교훈들은 바로 “생명의 법”입니다. 생명의 법은 말 그대로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생명의 법은 바로 “지혜와 명철”입니다. 이것을 얻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기에 솔로몬은 자꾸만 얻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감히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입니다. 사람은 지혜를 얻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고서라도 얻어야 할 것이 바로 지혜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치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지혜는 사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인 지혜를 받기 위해서는 그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의 강한 의지와 심혈을 기울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8절) 품는다는 말은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대해 가지는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태도를 묘사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지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귀히 여기게 되면 그 지혜로 인해 영화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혜는 또 “아름다운 관”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관은 영화로운 면류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한 성도가 약속된 하늘나라에서 받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상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지혜를 얻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존귀하고도 영광스러운 상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요? 지혜가 없이는 분별을 할 수가 없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혜를 얻을 때에 눈앞에 내가 가야할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악인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 악인의 길을 솔로몬은 14절에서 “사특한 자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악의 유혹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거부하라는 것입니다.
악에 한 번 빠지게 되면 그 악을 행하지 못하게 되면 잠도 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하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는데, 악인을 악한 일을 하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도둑질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자꾸만 도둑질을 하고 싶어 견디지 못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사이코 패스와 같은 사람들은 살인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면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나쁜 짓을 해야 쾌감을 얻는 것보다 더 악한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릴 때부터 착하게 바르게 살도록 부모는 자식을 교훈하지만, 세상은 자녀들을 악한 길로 가도록 온갖 유혹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악한 길에 빠져 들어가면서도 자신은 바른 길을 가고, 바른 선택을 하였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영혼이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병은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싫어지면 이미 그 영혼은 병이 든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기 싫어지면 이미 영혼은 병이 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과 악이라고 하는 선악과가 더 달콤하게 보여 먹고 싶다면 그 영혼은 이미 병이 든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가 유혹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을 멀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유혹을 받고 그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을 깨우쳐야만 합니다. 즉 어떤 사람이 잘못을 하는 것은 그 누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자신의 자의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악한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오직 지혜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먼저 내 마음을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으로 부요해진 우리의 마음을 정리하고 말씀을 통해 교훈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바로 찾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솔로몬은 자녀들에게 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분명하고 단호하게 가르쳐주고 지키라고 합니다.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거에 네 귀를 기울이라.”(20) 이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솔로몬 자신의 말 자체가 지혜요 진리가 아니라, 그 아버지 다윗, 그리고 그 조상들로부터 물려오는 교훈입니다. 그 물려오는 교훈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자녀들에게 지혜를 추구하고 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쳐주었습니다.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21)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을 채우지 않게 되면 내 마음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지키는 것은 악한 걸을 피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악한 것과 담대히 싸워 이기라는 뜻입니다. 마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22) 궤휼과 사곡한 입술을 버려야 합니다. 교묘하고 간사스럽게 남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 자들이 습관적으로 행하는 죄악입니다(신 32:5; 렘 9:6).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25) 거짓되고 망령된 술수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결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판단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생활에 있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노력하고 조심할 것입니다. ‘바로 보며, 곧게 살펴’ 모두 무익하고 가증한 행동을 멀리하여 의와 공평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가져야 할 신중한 생활태도를 말합니다.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26) 첩경과 길은 모두 일상생활에서의 사람의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평탄케 하다’는 말은 행동을 신중하게 판단하여 하는 것이며, 든든히 하라는 말은 생활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행동입니다. 심사숙고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지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매순간 진지한 삶의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27) 사람의 발걸음이 좌우편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다는 것은 곧 죄의 유혹에 빠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발걸음이 좌우편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선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만이 우리를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지켜 줄 수 있습니다. 지혜만이 우리를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강한 힘을 줄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며 인도할 것입니다. 공부 잘 하는 것도 효도요, 건강한 것도 효도요, 돈 잘 버는 것도 효도가 되지만, 진정한 효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하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힘으로는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되어 그의 인도하심에 모든 것을 맡길 때에 죄악이 나를 찾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린 후에 그의 말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죄악이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녀들만은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악을 멀리하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며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그 어디에도 없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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