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과 술
민수기 6:3을 보면 나실인에게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포도주의 초와 독주의 초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포도즙도 마시지 말고, 생포도와 건포도까지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술은 물론이요, 포도와 관계되는 모든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먼저 술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분해호흡’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산소가 없이 하는 호흡입니다. 효소(누룩)에 의해 당이 발효되면서 술이 되는 것입니다. { C6H12O6 + 효소 = 2CH3CH2OH + 2CO2 } 이러한 발효 과정을 거쳐서 신선한 포도즙이 붉은 색의 포도주가 됩니다. 이 때에 신선한 포도즙을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포도즙이 발효되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로 인하여 가죽 부대가 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마 9:17)
술이 된 포도주을 큰 통에 담아 공기 중에 놔두면 이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기는데 이 막에는 포도주를 식초로 바꿔주는 초산박테리아(ACETOBACTER) 같은 많은 미생물들이 있어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게 되어 신포도주나 포도식초가 만들어집니다. {2CH3CH2OH+2O2 → 2CH3COOH+2H2O}
이렇게 신선한 포도즙이 발효가 되면 포도주가 되고, 이 포도주가 공기 중에 방치되면 다시 식초가 됩니다. 고대에는 악한 자를 식초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포도주가 발효되어 식초로 변화한 것처럼 선했던 사람이 악한 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1. 술의 금지 이유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수확 후 즙 틀에 넣어 짜내 포도즙을 음료로 사용했고, 병을 치료하는 데는 포도주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디모데전서 5:23). 그러나 독주나 포도주는 뇌에 영향을 비쳐 구토를 일으키고, 비틀거리며, 도덕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사 19:14; 28:7), 잘못된 행위를 하게 하고(창 9:24), 음란한 생각과 망령된 행위를 하게 하여(잠 23:33), 경건한 삶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실인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고, 더욱 발효된 상태인 초도 마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 신약 시대에서의 술과 성도
누가복음 1:15절에 ‘세례 요한’은 소주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2:1-11에 나오는 대로 예수님께서 정말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포도즙과 포도주는 모두 히브리어로 “야인”(여기에서 와인이라는 단어가 나옴)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세례 요한이 마시지 않은 것을 예수님께서 만들어서 마시고 사람들에게 마시도록 하였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물론 나실인까지도 술을 금지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예표가 마시지 않은 것을 실체가 마신다는 것을 있을 수가 없으며, 자기의 백성에게 술을 마시도록 만들어 준다는 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야인’이라는 말은 ‘포도즙’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kai mh mequskesqe oinw, en w estin aswtia, alla plhrousqe en pneumati,”“”“ )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도 해석을 잘못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절대로 술 가까이도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밑 줄 친 ‘메’라는 단어는 “강한 부정”의 의미입니다. 절대로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 성경의 잘못된 해석 때문에 성도들은 “술은 마셔도 되는데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라고 해석을 하며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게 된 것입니다.
3. 오늘날 성도는 술을 마셔도 되는가?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이나 나실인에게 술을 금지했고, 신약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 일반 성도는 술을 마셔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일부 교단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그러면 ‘성도’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거룩한 신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입니다. 성도는 택한 족속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입니다. 그것도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거룩한 나라입니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성도는 모두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라도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4. 결 론
마귀의 최고의 역작은 “술”이라고 이스라엘 속담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마귀가 인류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폭력’을 주었더니,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전쟁을 하면서 서로 멸망을 하는 것을 보면 흐뭇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싸움과 전쟁이 그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의 머리로 생각해 보니 이렇게 싸우다가는 서로 멸망하고 말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나서 화해를 하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고심 끝에 술을 만들어서 주었더니, 처음에는 기분 좋게 한 잔 하더니,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면서 술이 취하고 나니 마치 “개”와 같은 행동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서 가족을 못 살게 하고 때리는가 하면, 심지어는 부모까지 그렇게 하여 가정을 파괴시키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술이라는 것은 인류 최대의 적이요 사기꾼인 마귀의 작품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22을 보면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해악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그것을 하면 안 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절대 금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술을 마시더라도 평상시에는 어느 정도 절제가 되어서 조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수는 그야말로 ‘패가망신’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마신 한 잔의 술로 인하여 교통사고가 난다면 그 자신은 물론이요,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고가 나지 않을 보장도 없지 않을까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단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다니고 안 다니고의 차이일까요? “거룩함”의 차이입니다. 성도가 불신자와 동일한 모든 행동을 하면서 교회에 다닌다(믿는다)고 하면, 불신자의 입장에서는 겉으로는 환영을 하지만, 속으로는 “너나 나나 무엇이 다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술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켜도 될까요?
한 두 잔으로 기분이 좋은 상태로 지내면 되지 않을까요? 이것은 세상적인 관점입니다. 성도의 기쁨은 '오직 예수'입니다. 말씀으로 인한 기쁨, 은혜로 인한 기쁨, 봉사로 인한 기쁨, 즉 성령께서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주시는 것이야 말로 성도가 바라며 느껴야할 기쁨인 것이죠.
P.S.: 술과 담배를 한다고 해서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도로서의 신앙의 성숙을 가져와야 합니다(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함) 술과 담배를 끊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서 끊으려고 하는 마음이 강해지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지금 당장 끊을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한 노력을 먼저 하신다면 술과 담배는 반드시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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