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나는 자유인인가?

chukang 2009. 8. 1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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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인인가? 요한복음 8:31-41

 

먼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유인입니까? 아닙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쉽게 대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에 자유인이 틀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자유를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해 볼 수가 있지만, 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생각의 자유요 또 하나는 행동의 자유입니다. 누구든지 생각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을 한다면 많은 부작용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행동의 자유에는 동작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도 포함이 됩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말로써, 혹은 글로써 표현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행동에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행동의 자유에는 ‘제약’이 따른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질서와 안녕을 위하여 제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제약을 받습니다. 학교에서도 제약이 있습니다. 가족 간에도 제약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의하여 스스로 제약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모두 자유인이면서도 제약을 받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올해로 광복 64주년이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우리나라는 자유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 기간이 36년입니다. 이 기간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된 때부터 해방되는 해까지의 햇수입니다. 을사늑약은 전에는 ‘을사보호조약’이라고 불렸습니다. 일제의 잔재적 호칭입니다. 이 늑약의 주요 내용은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등입니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명목상 일본의 보호국이나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고종은 을사늑약 체결을 하지 않았고, 을사오적 (乙巳五敵) 이라고 불리워지는 의정대신 이완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이렇게 친일파 다섯 명이 조약을 승인해서 통과시켰습니다. 즉 나라의 공식적, 합법적 왕인 고종이 체결을 하지 않았으므로 불법성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전 세계 역사에도 왕을 무시하고 신하들끼리 조인한 조약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정부의 실권은 친일파에게 넘어가 있었고, 일본의 압박으로 불법적 조약이라도 식민지화 되어가고 있던 조선으로서는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억울함을 세계만방에 알리려고, 고종은 이준, 이위종, 이상설을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했으나, 네덜란드 주재 일본 공사의 방해 작전에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을사조약(乙巳條約) 을 일본이 강제로 체결 했다 해서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 부르게 되었고, 결국 해방 이후, 이 조약이 무효임을 1965년 한 일 기본조약에서 한 일 양국이 정식으로 확인했습니다.

요즘 들어서 일본이 계속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독도 문제가 바로 이때에 발생했습니다. 일본이 러-일 전쟁 후 독도를 무단 점거하고 일본 시네마현으로 편입시켰을 때, 당시 외교권까지 빼앗긴 일본 식민지로 있었던 우리나라는 무단 점거를 당했어도 항의 한번 못해보고 독도를 뺏겼었는데, 1945년 해방 이후 일제의 식민지권이 없어지면서 독도는 다시 우리나라 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러면 일본이 강제로 대한제국을 합병하였을 때에 제일 먼저 무엇이 박탈을 당합니까? ‘자유’입니다. 외교의 자유, 국방의 자유, 치리의 자유 즉 ‘주권’이 박탈을 당하는 것입니다.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행동의 자유가 완전히 박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자유가 박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왜 나라를 빼앗겼습니까? 힘이 없어서 빼앗긴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것은 억울한 것이 아니라 비참 그 자체입니다.

국가의 3대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나라를 빼앗겼다함은 영토를 우리나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간도협약도 일본이 자기들 마음대로 중국과 한 것입니다. 농지개혁도 자기들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국민들도 그들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고, 위안부도 징발되어 전쟁터에 배속이 되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대한제국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지금의 우리나라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을까요? 외견상으로 볼 때에는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상 속에는 일본인들이 심어 놓은 잘못된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이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의존을 하고 있고, 기술적인 측면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히 말합니다. 한국은 절대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 우리나라를 지배했었기 때문에... 아닙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그들은 우리를 항상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교만함의 극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하여 화를 내어야 하고, 화를 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참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서 일본이 그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 해방이요,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자유에 대하여 또 다른 개념으로 접근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적 자유와 영적 예속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자유롭다면 반대로 영적으로 예속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자유와 예속은 신앙적인 측면에서의 분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을 가리켜 ‘크리스천’ 혹은 ‘성도’ ‘기독교인’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켜 ‘불신자’ 혹은 ‘이방인’ 혹은 ‘세상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우리가 성도이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우리는 어떠한 상태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는 자유자입니까? 아니면 예속자입니까? 성도라는 말에는 두 가지의 뜻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자유는 ‘죄와 허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마귀’로부터의 자유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예속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볼 때에 세상 사람들은 자유자입니까? 예속당해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 혹은 기독교로부터의 자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귀에게 예속을 당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마귀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 해방은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지옥의 형벌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며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답을 하셨습니까?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부터 죄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은 궁극적인 자유를 의미합니다. 현재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는 여전히 죄가 있지만 죄가 없는 것으로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는 앞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성도가 되었지만, 말 그대로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까? 여전히 죄악 된 생각과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만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비록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죄에 대하여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은 죄를 짓고 있지만 앞으로는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이라는 선으로의 발전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불신자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죄에 대하여 인식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죄를 고칠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잘못을 알아야 고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이지만 항상 우리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말씀만이 우리를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밖에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위협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내에서는 ‘거짓 그리스도’의 세력이 우리를 좀 먹고 있습니다. 성도는 항상 안팎으로 협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경우에는 말 그래도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공격을 하고 성도를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적인지 아군인지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고 이에 대하여 방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정말로 교만한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교만하게 행동하였습니다. 이 교만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마로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마귀는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다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쫓겨난 마귀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하와를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였고, 하와를 통하여 아담까지 넘어뜨린 선악과의 사건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이보다 더 교만하고 악한 말은 없습니다.

불과 36년을 일제에 강점당하였으면서도 아직도 대한민국에 그 잔재가 남아있는데, 하물며 에덴동산에서부터 내려온 마귀의 그 악한 교만과 생각들이 어찌 쉽게 사라질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까지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된 후에도 여전히 그 죄의 경향성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바로 이 점을 아직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몰라서 선악과를 먹었습니까? 마귀에게 미혹을 당했기 때문에 먹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마귀로부터 미혹을 당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의 주요 목적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미혹을 당하게 되면 먼저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게 됩니다. 사리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여 어떤 것이 신앙적인지 불신앙적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로 주님께서 지금 현재 그들 앞에서 말씀하고 계신데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거처럼,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마귀에게 미혹당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 그리스도에게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 배경은 바로 은사입니다. 배고프고 가난하고 병들어 있을 때에 은사집회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너도나도 예수님을 믿겠노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고픈 배가 채워지고, 아픈 곳이 나음을 입으면서 점점 기적은 뇌리에서 사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우리의 심령 속 깊은 곳에 자라잡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왜 ‘진리’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까? 유대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그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해 주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통하여 저들이 스스로 처한 자신들의 상태를 깨닫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님 자신을 믿고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민이요 혈통적으로 이미 구원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말씀 그 자체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돌로 치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48, 52-29) 그들은 일순간 예수님께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착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영적인 측면에서 항상 경계심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내에서 가장 불쌍한 자는 “예수님을 믿다가 지옥에 가는 자”입니다. 정말 열심히 믿는다고 믿었는데, 가짜 예수님을 만나서 죽도록 충성했더니 정말 영이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바보라서 가짜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그들이 학식이 부족해서 거짓 그리스도를 믿었을까요? 마귀는 지금도 우리들의 마음을 미혹하는데 매우 열심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미혹되면 성경이 가르쳐주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른 길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곁길이 눈에 들어오고, 그 길이 진리의 길처럼 생각이 되어 진다는 말입니다. 궁극적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것이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데, 그것보다 부수적인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분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바로 고린도 교인들이 미혹된 그런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마귀에게 미혹 당한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불어 넣어주는 것입니다. 이 욕심은 탐하는 것입니다. 탐심입니다. 사욕입니다. 마귀는 자기 자신처럼 인간들에게도 아주 더러운 욕망과 욕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 마음을 사리사욕과 욕정으로 가득 차게 해서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더러운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거룩한 마음과 거룩한 영이 없으면 결코 우리는 성도가 아니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마귀에게 미혹 당한 자의 두 번째 특징은 거짓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즉 마귀는 진리를 세우거나 진리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거짓 증언과 기만적 행위로 사람을 현혹시켜서 죄악의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에 바로 설 수가 없고 도리어 대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비 꼬이고 비틀어지게 하여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진리를 대적하고 대항하게 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 특징은 불화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마귀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이간질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하게 하여 서로의 잘못이라고 핑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핑계는 불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모든 죄의 근원은 마귀로부터 임하는 것이요, 그 죄를 짓는 주체자는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마귀는 다만 미혹할 뿐입니다. 죄를 짓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이 미혹 당했기 때문에 스스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바로 내 잘못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누가,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게 되었고 죄를 지었다고. 이것은 바로 마귀의 마음입니다. 마귀의 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마귀에게 미혹당하지 않도록 방비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방비를 할 수 있을까요? 빌립보서 4:6-9 말씀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첫째 염려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고, 둘째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구하는 것이며, 셋째 구할 때에는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이 하나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에게 임해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마귀로부터 지켜지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요?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만하며,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은 바로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입니다. 즉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은혜를 의미합니다. 은혜 중에 바른 신앙 속에서 우리는 참 자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자칫 마귀에게 속아서 이런 마귀의 자녀의 성품을 따라 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 에 잇는 온갖 더러운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의 유혹에 속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의 개념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비록 육신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더라도 죄를 범하는 자라면 그는 곧 죄의 종인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죄의 지속성, 현재성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예외가 될 수 없는 죄의 보편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과 미혹에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지 않고 말씀 위에 바로 서서 삶을 산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해방이요 참자유자로서의 성도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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