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따라왔을까 룻기 1:15-22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흉년이 든 지역은 베들레헴 지경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의 가정은 흉년을 피하여 모압 땅으로 이주를 하였습니다. 흉년이 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부터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복을 내리시지만, 불순종하면 온갖 재앙과 기근이 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레 26:3-13; 신 28:1-14). 따라서 당시의 흉년은 틈만 있으면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던 백성들에게 내리신 징계이자 경고라고 하겠습니다.
모압지방은 요단 동편의 기름진 땅으로 그 옛날 아브라함과 룻이 서로 갈라설 때에 택한 곳으로 마치 에덴동산과 같이 여겨질 정도로 아주 좋은 곳입니다. 또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르우벤과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이곳을 기업으로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목축하기에 좋은 초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강물이 흘러 농사짓기에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은 베들레헴 지역의 흉년을 피하여 모압 지역으로 이주를 하였습니다. 이 이주는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범죄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에서 지파별로 나누어 주신 땅은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평생토록 그리고 후손에게까지 영원히 이어져야 할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버리고 이주하는 것은 불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엘리멜렉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왕으로 받들어 잘 섬기라고 이처럼 깊은 신앙적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신앙이 매우 좋은 사람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자신의 기업을 버리고 모압으로 간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를 보고 사람들이 떠들었다고 19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베들레헴 사람들은 나오미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1:21을 보면 “풍족하게 나갔더니”라는 것을 보면 상당한 재물을 가지고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은 베들레헴에서는 상당히 잘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엘리멜렉이 당시에 상당히 유력한 집안 즉 베들레헴의 유지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나오미가 엘리멜렉과 모압으로 왔을 때에는 잠시 흉년만 피하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이 죽은 후에는 여전히 모압에 남아 있었습니다. 즉 임시로 피하여 지내는 것이 아니라 영주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나오미에게 있어서는 큰 잘못이었습니다.
모압 땅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살기로 마음을 굳히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병약한, 쇠약한)을 모압 여자들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모압 땅에서 생계를 꾸려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두 아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젊은 나이에 왜 죽었을까요?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이 원인을 성경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들 이름의 뜻과 같이 병약하여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적으로 볼 때에는 하나님의 징계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즉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이방여인을 아내로 취하지 말라는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7:3을 보면 이방인들의 우상과 관련해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모압과 암몬의 우상은 다른 어떤 우상보다 가증한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왕상 11:7). 또한 신명기 23:3을 보면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모압 여인과의 결혼은 당연히 율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나오미는 모압으로 이주한 지 10년 안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또 21절을 보면 재산까지 모두 탕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나오미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죽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불어 놓고 이제 아들들도 다 죽었으니 너희들은 다시 본가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두 며느리는 어머니 나오미를 따라나섰습니다. 배웅을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려고 낯선 땅 베들레헴으로 같이 가려고 동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이렇게 귀환하는 도중에도 두 며느리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두 며느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것 보다는 본가로 돌아가면 그래도 살 방편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살기가 어려웠을까요? 모든 재산을 다 잃었는데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 이것입니다. 나오미는 남편도 아들도 다 잃었습니다. 두 며느리는 남편이 죽고 자식도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시어머니는 이런 형편 속에서 며느리를 걱정하며 돌아가라고 합니다. 두 며느리도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니까 얼마나 처량합니까? 그런데 시어머니는 자꾸 돌아가라고 합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에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을 해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징계를 내리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신앙적인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은, 만일 너희들이 나와 함께 가려고 한다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르바는 마음을 돌이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시어머니가 어떻게 설득을 해도 함께 했지만 여호와께 대한 신앙 문제가 대두되자 집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오르바가 나오미를 떠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우상에게로 돌아간 것입니다(15절). 룻에게도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효성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인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어쨌든 이들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고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마침 그 때에 베들레헴에는 풍년이 들었고, 추수할 때였습니다. 룻은 자신이 밭에 가서 이삭을 주어오겠다고 허락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풍속은 추수할 때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떨어진 이삭은 줍지 않았고, 일부러 곡식 단을 남겨두기도 했고, 밭의 끝부분은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가난한 자와 과부들의 배려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집사나 일꾼들이 싫어하게 되면 이삭도 줍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잘 알지 못하는 룻이었겠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낯선 땅입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합니다. 잘못되면 험한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었습니다. 이곳까지 따라올 때에는 시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있지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큰 몫을 차지했고, 그 신앙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과 시어머니를 먹여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나게 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은 자신이 이삭을 주어서 먹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도 있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왔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앞으로 죽어도 이 땅에서 죽고, 죽는다면 시어머니의 무덤에까지 함께 묻히기를 원한 룻의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룻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룻과 같은 처지였더라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불경기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3D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3D는 더럽고(Dirty, 작업 환경이 좋지 못하고), 어렵고(Difficult, 고도의 지적 능력과 전문성이 필요해서), 위험(Dangerous, 자칫 실수하면 위험하며,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을 얻기 쉬워서)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거기에 D 하나가 더 추가돼서 4D가 되었습니다. 드림리스, 즉 꿈이 없어진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너도나도 일만 있으면 달려드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덜 다급한지 3D 직종은 아직도 외면하고, 편한 서비스 업종만 찾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을 나가서도 그저 건성으로 시간을 보내고 돈만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능금 꽃 향기로운 고향에서’라는 글에는 ‘두 손 없는 천사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1972년 12월 24일 오전 9시 40분. 1959년생인 강경환이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맞은 6학년, 나이는 13세였습니다. 서산 벌말에 살던 강경환은 해변에서 ‘안티푸라민’ 통을 닮은 깡통을 발견했습니다. 나비처럼 생긴 철사가 있어서 그걸 떼어내 가지고 놀겠다는 생각에 돌로 깡통을 두드려댔다. 순간 앞이 번쩍하더니 참혹한 현실이 펼쳐지고 말았습니다. 안티푸라민이 아니라 전쟁 때 묻어놓은 대인지뢰, 속칭 발목지뢰였던 것입니다. 돌려 두드리는 순간 이 지뢰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폭발음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달려와 쓰러져 있는 강경환을 업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이 소년이 깨어나는데는 사흘이나 걸렸습니다. 피를 너무 흘려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소년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나 깨어나 보니 손목 아래 두 손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노래를 잘해서 가수가 꿈이었던 소년의 인생이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남 보기 부끄러워서” 중학교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그 뒤로 3년 동안 경환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어머니가 밥 먹여주고, 소변 뉘어주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소년은 고등학교 갈 나이가 되도록 그리 살았답니다. 인생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친정에 가셨는데, 오시질 않았습니다. 내가 너무 고파서 참다 참다 결국 스스로 수저질을 해서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려 3년만이었다. 그리고 석 달 동안 숟가락질 연습해서 그 뒤로 스스로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밥을 먹고 스스로 혁대를 차게 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나 봅니다. 모든 게 귀찮아서 농약 먹고 죽으려고 했으니까요. 열일곱 살 때부터 아침 10시에 술집에 나가서 술만 먹다가 밤 12시에 돌아오는 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날 유인물이 하나 왔는데 무심코 버렸다가 다음날 아침에 유인물을 보니까 정근자씨라고, 팔 둘이랑 다리 하나가 없는 사람이 교회에서 강의를 한다는 내용이 있어서 가서 들었다고 합니다. 야, 저런 사람도 사는데, 나는 그 반도 아닌데, 이 사람같이 못 살라는 법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강경환은 편지를 썼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잘 살 수 있나.” 답장이 왔습니다. 너도 나처럼 잘 살 수 있다고...
지금 강경환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손이 있었다면 그 손으로 나쁜 짓을 하고 살았을 거 같다. 손이 없는 대신에 사랑을 알게 되고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되고, 새롭게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강경환은 훌륭하게 그 방법을 찾아내었습니다. 술을 끊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삽질을 익히고, 오른쪽 손목에 낫을 테이프로 감고서 낫질을 하며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그렇지만 지독한 가난한 집이었기 때문에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1994년, 아버지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 염전 할 수 있겠냐?" 그는 이미 1987년 교회에서 사랑을 만나 결혼한 가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되어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피눈물 나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농사짓는 삽보다 훨씬 무겁고 큰 삽을 ‘손 몽둥이’로 놀리는 방법을 익히면서 해야만 했습니다. 정상인만큼 일하기 위해 밤 9시까지 염전에 물을 대고, 새벽까지 소금을 펐습니다. 하루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지만 보람으로 일을 했습니다.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했겠습니까? 그 노력도 노력이지만, 인내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염전 일을 시작한지 불과 2년 후인 1996년 그 와중에 그의 머리 속에 남을 돕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으니, 손을 잃은 대신에 얻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소금 한 포대가 1만 원가량 하는데, 여기에서 1000원을 떼서 모았습니다. 그걸 모아서 소금 값을 쳐서 저 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주는 겁입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올해까지 14년째라고 합니다. 한 달 월급 받고선 고된 일 마다하고 도망가 버리는 직원들 대신에 부부가 직접 염전을 지으며 실천하고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아산의 한 복지단체를 통해 소록도에 김장용 소금을 30포대씩 보내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강경환의 ‘부성염전’은 1만2000평. 한해 소출이 6000만원 정도입니다. 이거저거 비용을 빼면 순수입은 한해에 180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뭐, 1800만원? 거기에서 10%인 200만원은 꼬박꼬박 남을 위해 쓰고 있으니 이게 어디 이 사람에게 쉬운 일인가요? 작년에는 400만원 정도 되더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조금만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겁디다. 소금 한 포대 팔아서 1000원 떼면, 5000포대면 500만원이잖아요. 하나를 주면 그게 두 개가 돼서 돌아오고, 그 두 개를 나누면 그게 네 개가 되어서 또 나눠져요. 연결에 연결, 그게 사는 원리지요.”
그 나눔과 연결의 원리에 충실한 결과, 2001년 그는 기초생활수급자 꼬리표를 뗐다고 합니다. 작지만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시청으로 가서 자발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을 포기했습니다. 수급자 수당 30만원이 날아갔습니다. 장애인 수당도 포기했습니다. 6만원이 또 날아갔습니다. “나는 살 수 있는 길이 어느 정도 닦아졌으니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염전도 남의 염전을 소작하고 있고, 여고생인 둘째딸 학비도 버겁습니다.
손을 내밀라고,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을 내밀라고. 작년에는 ‘밀알’이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혼자서 하기에는 버거운 일. 그래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불우한 사람들을 더 도우려구요~ “한 30억원 정도 모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마음놓고 남 도울 수 있잖아요. 지금은 형편이 이래서 돕고 싶어도 어렵고...”
오늘도 부부가 소금밭에 나가서 소금을 거두는데, 손 없는 남편이 능숙하고 진지한 몸짓으로 소금을 모으면 아내는 얌전하게 삽으로 밀대에 소금을 담고, 남편이 그 밀대를 ‘손몽둥이’로 밀어 소금창고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 모습을 장엄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에게서 너무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인생이 열심히 사는 것인가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할까? 이런 생각은 나를 해치는 생각입니다. 나를 망가뜨려서 인생을 망치게 하는 생각입니다. 만일 룻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면 그 생각이 그녀를 지배하여 슬픔과 고통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시어머니를 봉양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힘든 것도, 어려움도 다 물리치고 밭에 나가서 이삭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와서 시어머니를 먹여 살렸습니다. 살아보자 하는 그 생각이 그녀까지 살리는 생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손을 잃고 없는 장경환씨도 ‘그래 한 번 살아보자’ ‘나도 한 번 살아보자’ ‘나도 할 수 있다’ 이런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이며 소망적인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날 수가 있었고, 남도 도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룻과 장경환씨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올바른 생각을 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환경에 비관만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환경이, 내 처지가 이렇지만 않았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탓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이 신앙 속에 바로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옳은 생각은 바른 신앙에서 나오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말씀과 기도로 충실해지고 굳건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에 이러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내 하기에 따라 그 환경은 180도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남이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것입니다. 환경을 탓하고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을 탓하고, 내 자신을 개선하고 바로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을 도우시려고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실망하고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룻에게 보아스를 보내어 위로하시듯이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도 사랑을 보여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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