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다니엘 10:7-14
세 이레 기도 즉 3 주간 동안의 금식 기도를 말합니다.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3주 간을 슬퍼하며 울면서 금식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간절히 기도하였을까요? 다니엘이 기도한 때는 1차 포로 귀환 후입니다.
즉 B.C.586 년에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게 패망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가 없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은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포로 귀환 칙령의 선포를 내렸고, 유대인들은 B.C.539년에 1차 귀환을 시작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유대인들은 이 포로 귀환에 대하여 대단히 기뻐하며 대부분이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불과 5만 여명만이(스 2:64-67) 동참하였고,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다져 놓았던 생활 기반을 버리지 못해 바벨론 땅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고국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이 신정 국가 재건을 위하여 1차적으로 성전 재건 공사를 시도하였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그것마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다니엘은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으며, 좋은 음식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모든 것들을 멀리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왜 1차 포로 귀환에 동참하지 않았을까요? 그도 역시 생활 기반이 뿌리를 내려서 돌아가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선지자를 선택하여 귀환을 주도하게 하고 예루살렘을 재건축하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다니엘에게는 바벨론 제국에서 할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바벨론에서 수석 총리라는 높은 지위를 얻은 다니엘을 바벨론 제국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남겨 두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이 목숨을 걸고 금식 기도를 마치는 날 한 사람이 다니엘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때에 여러 사람이 함께 있었으나, 오직 다니엘만이 이 사람을 보았습니다. 나타난 한 사람의 모습은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우비스 정금 띠를 띠었고,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를 무리의 소리와 같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당장은 알지 못하였지만, 다니엘은 그만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같이 있던 사람들은
누구인지 보지도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을 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신체적으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자 그 거룩함과 권능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영광은 거룩하고 위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에 따라 그 영광을 체험하도록 허락되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에는 어떠했습니까? 온 천지가 떨리지 않았습니까? 그 때에 모세만이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의 한 끝 부분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산 밑에서 두려워서 떨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 오직 한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이 있을까 하여,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만일 올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출 19:10-25). 하나님의 영광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도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되자 그는 깊이 잠들고 말았습니다. 즉 혼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은 너무나도 장엄하고 두려운 것이어서 그 이상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모든 힘을 쇠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경건치 못한 사람들은 이상을 보지도 못하고 두려워서 도망하였으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상을 보는 동안은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니엘도 근본적으로는 죄성을 가진 나약한 인간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 앞에서는 온전히 버틸 수가 없었으며 결국은 쇠진한 나머지 혼절하고 만 것입니다.
다니엘이 혼절하자 그 때에 한 천사가 내려왔습니다. 그 천사의 이름은 "가브리엘"입니다. 이 가브리엘은 천사들 중에서 마치 "문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천사장인데, 그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가브리엘은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실 것에 대하여, 사가랴 제사장에게 나타났으며,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요한을 잉태한지 6개월 째에 나타난 것이 누가복음 1:19,26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혼절한 다니엘에게 가브리엘이 내려와서 그를 무릎과 손이 땅에 닿은 자세로 일으켰습니다. 큰 영광의 위엄을 가지신 그리스도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깨어나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힘이 완전히 빠지고 다시 깨어나게 되면 처음부터 팔 다리에 힘이 강하게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차차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준비 단계로서 손과 무릎이 땅에 닿은 자세가 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를 불렀는데,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라고 불렀습니다. 다니엘이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천사장 가브리엘이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을 깨어나게 한 가브리엘은 하나님께서 네가 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백하며 예루살렘의 회복을 간구하던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그가 기도를 막 시작할 즈음에 이미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전하러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날아 왔었습니다(단 9:23). 이번에는 다니엘이 3 주간이나 목숨을 내 놓고 울며 금식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들어 주시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도를 시작하는 즉시 들어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하는 기도에 대해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다를 때에, 정욕으로 쓰려고 구할 때
등은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한 첫날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세 이레, 곧 이십 일
일이라는 기간이 지나서야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당도하였습니다. 즉 바사국 군이 가브리엘을 막은 것입니다. 바사국 군(君) 즉 바사국의 왕이 막았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바사국 왕은, 바사를 배후에서 지배하는 악한 영을 지칭하는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사단의 이름은 루시퍼입니다. 천사장들 중에서 으뜸가는 천사장이었으나, 그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하다가 타락하여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권세는 너무나 막강하다고 하겠습니다. 가브리엘과 같은 천사장도 그로 인하여 다니엘에게 오지 못하고 무려 21일이나 지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하나님께서는 천사장 중에 하나인 '미가엘'을 보내어 돕게 하여 다니엘에게 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많은 천군 천사를 지휘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천사장 즉 무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미가엘로 하여금 가브리엘을 돕게 하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가서 이상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천사들도 하나님의 계획이 차질 없이 성취되도록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을 깨우고 자신이 온 것에 대하여 설명하였지만, 여전히 다니엘은 힘이 없이 엎드린 자
세처럼 있을 때에, 다니엘의 입술을 만지는 한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 손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할렐루야! 다니엘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사랑을 받았는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강림하셔서 그의 입술을 만지며 그에게 힘을 주고 함께 대화를 하고 계실까요? 우리 모두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성도가 다니엘과 같이 이상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사람은 자신의 앞일을 알지 못하여 두려워합니다. 만일 다 알 수만 있다면 결코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고 행복하고 성공된 삶을 잘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은 자신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존재는 사람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참으로 가치 있고 성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엘서 2:28을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장래 일을 말하고 이상을 볼 수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주셨습니까? "성령"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말씀을 깨달을 수 있고, 이상을 볼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이상을 보여 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자에게만 이상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이상을 볼 수 있는 참으로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는 어떤 성도일까요?
1. 말씀을 사모하는 자입니다.
대학 입시 때가 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점치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들은 승진이나 사업이나, 또는 결혼이나 시험 등과 같이 큰 일이 닥치게 되면 점쟁이에게 가서 앞일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옛 성현의 말이나 철학자들의 가르침 속에서 삶의 방향을 발견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든 헛된 지식과 우상은 결코 아무런 진리를 가르쳐 주지 못하며(합 2:18), 귀신들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인간의 일을 결코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리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자신의 앞일조차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이므로 타인의 길을 보여 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참된 인간의 삶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속에는 인간 존재의 근원과 구원의 방법과 말세와 심판에 관한 모든 진리가 담겨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생의 등불(시 119:105)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다니엘에게 이상을 보여 주셨을까요? 그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즉 캄캄한 곳에 한 줄기 빛을 비추어 바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곳에서 인생의 등불을 찾고 있습니까? 혹시 세상의 지식이나 헛된 우상에게서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곳에는 거짓과 허망함만이 있는 줄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상과 뜻을 발견하기를 원하신다면 말씀을 읽고 그 안에서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만 우리 인생의 길과 진리의 등불을 발견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기도하는 자입니다.
삼상 3:1-14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이스라엘에게 되어 질 일들을 그들의 지도자였던 엘리 제사장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그의 시중을 들던 어린 사무엘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엘리 대제사장은 늙어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을 귀찮아했지만, 어린 사무엘은 날마다 성전에서 수종들면서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기도할 때에(창 33:22-30) 천사의 축복을 받았고,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기도하던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상을 보게 됨으로써 앞으로 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성공된 삶을 살고 복을 받은 모든 믿음의 선지들은 한결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사람, 목숨을 내 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뜻을 알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그 육신적인 한계로 인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항상 교제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도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뜻대로 가기 위하여 힘과 용기를 얻는 것도 기도입니다. 우리의 진실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일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여도 그의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이상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불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혹시 자신의 육체적인 유익만을 구하고 불의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보여 주지 않으신다고 원망을 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혹시 바르고 정직한 마음으로 살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결코 하나님의 이상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맑을 때에 하나님의 이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
를 받을 줄로 믿습니다. 바르고 맑은 눈으로 보아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고민하며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 모든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그 뜻을 보여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 속에서 기도하고, 기도를 통하여 맑고 깨끗한 영혼이 되어서 바른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이상을 볼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이상을 발견하고, 기도를 통하여 큰 힘과 능력을 받아서,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가진 심령이 되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바른 삶, 복 받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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