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이사야 45:1-7
고레스는 페르시아 동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안산의 왕 캄비세스1세와 메대의 왕 아스티아게스의 딸인 만다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B.C. 559년 부친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페르시아 민족을 통일하였고 약 9년 후에는 그의 외조부 아스티아게스가 통치하던 매대를 아스티아게스의 수하 장수이던 하르파구스의 도움으로 합병까지 하였습니다. 다니엘서 5:28에 보면 ‘메대와 바사 사람’이라는 표현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얼마 후에 고레스는 서쪽으로 리디아를, 동쪽으로는 파르티아를 합병하였고, B.C.539년에는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제국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꾸어 놓기에 이릅니다. 즉 바벨론을 정벌한 고레스는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조서를 내리게 되었습니다(스 1:1-4). 이때가 B.C 537년으로 스룹바벨의 영도 하에 백성들이 귀환하여 이스라엘을 재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믿음이 좋고 덕망이 있는 지도자를 택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방 나라의 왕인 고레스를 지명하여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보다 100여 년 전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어떻게 하여 이사야서에 기록이 되어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부르셨을까요?
이사야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배신한 자신의 나라와 민족에 대하여 깊은 슬픔과 고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신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을 반드시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과 백성들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속히 회개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회복하도록 외쳤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북쪽에는 ‘앗수르’라는 큰 나라가 있었고, 남쪽으로는 너무나 잘 아는 ‘애굽’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이렇게 큰 나라 사이에 끼어서 그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이도 북쪽에 있는 앗수르는 내분으로 인하여 팔레스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고, 애굽에서도 왕조가 바뀌면서 나라를 다스리기에 급급한 실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는 극도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항상 이스라엘 위하여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B.C.745년 디글랏벨레셋 3세(B.C.745-727)가 앗수르의 왕이 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복 전쟁을 시작하였고, 팔레스틴도 영향을 받게 되고, 그들의 침공을 두려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동맹을 맺어서 앗수르의 침입에 대비하였고, 남유다도 이에 동참하도록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오히려 앗수르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였습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를 침공하였고, 남유다의 아하스 왕은 앗수르에 구원을 요청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왕하 16:5-9). 이 때에 아람은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했습니다.(B.C. 732) 그리고 북이스라엘도 역시 앗수르의 집요한 공격에 의해 10년 뒤인 B.C. 722년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어느 한 나라만이 강대국으로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그 옆에 바벨론이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국제 정세가 이렇게 흘러가자 팔레스틴 지역의 나라들은 애굽을 중심으로 반 앗수를 동맹을 맺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 때 유다의 왕이 히스기야로 역시 애굽과 동맹을 맺었습니다.그러자 앗수르의 장구 산헤립(B.C.705-681)이 대군을 이끌고 반앗수를 동맹 국가들을 응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에 장사로 유명한 베니게(페니키아), 블레셋 등이 망하고, 예루살렘도 B.C.701년에 두차례 침공을 당하여 큰 위기와 혼란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던 이사야는 이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라를 구해야만 하였습니다.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신앙의 회복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유다를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침공하여 깨달음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B.C.586년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남유다 왕국마저도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택하신 민족 이스라엘은 그 나라마저 잃고, 모든 백성들이 포로가 되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무려 100년도 더 지나서 이루어질 ‘고레스왕의 귀환명령’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지명하여 불렀나니”라고 특별한 택함을 받았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고레스 왕을 부르셨을까요? 누구를 위하여 부르신 것일까요? 바로 이스라엘을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범죄하여 멸망당한 이스라엘이지만 다시 세우시려고 메대-바사 제국의 통치자 고레스 왕을 도구로 부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왜 멸망을 당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항상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는 이유를 ‘우상숭배’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스라엘을 어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정말 오래 시간을 기다리시면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라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끝내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고, 유다까지도 2차례에 걸쳐 침공하여 쇠약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도 멸망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려 당시 중동지역의 최고 강한 나라로 200여 년 동안이나 군림한 앗수르가 어떻게 멸망을 당할 수 있었을까요? 이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에 우리의 신앙은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를 무엇으로 사용했다고 하였습니까?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도구로 사용하셨습니까? 북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끝내 돌이키지 않은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도 멸망을 시키셨을까요? 그 이유는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가 스스로의 힘으로 강성해지고 중동지역의 강자로 군림했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앗수르가 강대하여진 것은 그들을 사용하셔서 범죄한 북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앗수르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괴롭히는 것에만 열중하였던 것입니다.(10:6,7) 이처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멸망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천지의 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한낱 우상과 동등하게 취급하며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많은 강대국 우상을 파괴하였으니 그들보다 더 약한 남유다 왕국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도 물리칠 수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10:8-11).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일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때로는 택함을 받은 성도들에게서도 이같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만홀히 여김을 당하시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갈 6:7).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무시한다면 앗수르에 임하였던 그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뒤덮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입니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본질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여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성공적인 삶을 위한 초석을 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알려고 하는 노력이 육신적인 부분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모습,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고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역사, 곧 우주가 창조된 때부터 예수님의 재림으로 종말이 오기까지의 시간 동안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아무런 계획과 목적도 없이 무작정, 우연히 진행되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그것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혼자서도 능히 다 이루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선택하셔서 도구로 삼으시고 그 놀라운 경륜이 참여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라는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신분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자기 스스로 서려하고 급기야 하나님을 대적하려고까지 한다면 얼마나 교만한 자이겠습니까?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10:15)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하나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 거하고 있습니다. 앗수르에게 행하신 모든 일들은 교만한 사람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여전히 성도들과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홀로 선 삶을 살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인간이 가장 영광된 신분을 버리는 가장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배신하였지만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그대로 버려둘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제 또 다른 한 도구를 사용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에 사용한 도구인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한 도구로 고레스 왕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향하여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라고 하셨습니다. 이방 나라의 왕인 고레스가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전례 없는 특이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기름을 부음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례를 깨고 고레스를 기름 받은 자로 명명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킬 자요, 앞으로 오셔서 인류를 죄와 사망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고레스는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고 금은 패물들도 주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수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나라는 존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이것부터 깨달아 알 때에 우리의 삶의 질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이기에 고레스라고 하는 큰 나라의 왕을 도구로 사용까지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곧 이스라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인 우리들을 위하여 저 큰 왕 고레스를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바로 우리가, 바로 내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 이렇게 보잘 것이 없는 나를 이토록 귀하고 귀한 존재로 부르시고 세워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 아름다운 구원의 역사를 증거하게 하시 위함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불신자도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는 했지만, 그분을 유일한 신으로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많은 신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레스를 가리켜 “나의 기름 받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고레스가 하나님의 종으로 특별히 구별된 것입니다. 또한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느부갓네살 왕도 “나의 종”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렘 25:9).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비록 당신을 섬기지 않는 불신자라도 때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최종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둘째, 불신자를 높이시는 이유는 성도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강하게 하여 열방으로 하여금 그 앞에 부복하게 하며 보화와 재물을 주어 부귀케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강하고 번성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스라엘을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유익하게 하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앗수르와 같이 침공하게 하여 이스라엘이 돌이키도록 하는 것이 하나요, 고레스를 통하여 해방을 주시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오는 것도 유익입니다. 또한 압제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도 역시 우리에게 유익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만이 이것을 결정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세상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생사화복을 뜻대로 섭리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이방인인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귀환시키신 것을 볼 때에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어떤 물질은 물론이요, 동물들도, 왕도, 대통령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렇게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를 높이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자신을 쳐서 늘 복종시키며 하나님 섬기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를 낮추어 겸손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는 강하고 담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뒤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보살피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붙들고 계시며, 내 발걸음은 인도하고 계십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나에게 임하고 있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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