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남은 자

chukang 2009. 7. 2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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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 미가 2:12,13

 

현대 사회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수많은 우상 종교들과 물질 만능주의, 성적인 타락 등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물결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을 좇아 살아가고자 하는 결심을 흔들리게 하고 심지어 믿음을 포기하게도 만듭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은 더욱 더 굳센 믿음으로 말씀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끝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때에 믿음을 지키지 못한 자에게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하시며,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은 자(사 11:11)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마지막 세대에 더욱 굳건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하나님 편에 남는 자가 되어 구원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남은 자는 어떠한 자일까요?

 

1. 우상에 무릎 꿇지 않은 자입니다.

유다 왕 아합의 시대에 악한 왕후 이세벨의 영향으로 온 나라에 우상이 세워지고 많은 백성들이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왕상 18). 심지어는 제사장과 선지자들도 아합 왕과 이세벨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바알과 아세라 앞에 무릎 꿇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이 역대 이스라엘 왕과 같이 우상숭배하므로 엘리야를 통하여 경고하였습니다. 앞으로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말로 이스라엘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 초목이 말라가고 곡식조차 제대로 수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짐승들도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 짐승들이 다 죽기 전에 살리기 위하여 시내를 찾아 헤매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 왕과 이세벨은 완전히 우상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더욱 바알 신상과 아세라 목상을 이스라엘의 곳곳에 세우고 백성들까지 숭배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백성들이 어떤 핍박을 받을지는 너무나 명백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심한 핍박과 환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비롯해 칠천 명의 사람들은 우상에 무릎 꿇지 않고(왕상 19:18)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결국 우상에 무릎을 꿇은 자들은 아합 왕과 이세벨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하였지만 우상에 무릎 꿇지 않은 엘리야와 칠천 인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핍박과 환난이 와도 우상에 무릎 꿇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이야 말로 ‘남은 자’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하나님과 멀어질 세상적인 복을 얻기 위해 세상의 헛되 우상 앞에 무릎 꿇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름 아닌 현대 사회의 돈이라는 우상 앞에, 권세라는 우상 앞에 또는 지식이라는 우상 앞에, 또 쾌락이라는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 앞에서 복을 간구하며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이제는 돌이켜 오직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2. 불의에 무릎 꿇지 않은 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으로 부강하였고 종교적으로도 각종 절기를 지키고 제사와 헌금, 찬양을 드리는 일에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저지르는 불의한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는’ 등(미 2:2) 운갖 불의한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들이 아무리 좋은 재물을 드리고 아름다운 노래로 찬양을 해도 받지 않겠다고 하시며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암 5: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십일조와 감사헌금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좋지 않은 지역에 있었습니다. 서울 청량리 옆 근처에 있서 사창가와 술집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물론 그곳에는 가난한 노숙자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그 교회에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이 도리어 줄어야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불의로 번 돈을 바치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직업을 가진 자들을 전도하면, 그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종사하고 있는 불의한 직업으로부터도 떠나고 건전하고 건설적인 직업으로 전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교회 헌금은 줄어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그 불의한 직업에서 떠나려고는 하지 않고 계속하면서 오히려 수입이 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헌금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겉으로 종교적인 의무만 다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삶이 불의를 떠나고 항상 옳은 길로 행하는 자입니다. 바로 그런 자가 마지막 때에 구원을 얻을 남은 자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의 유익을 위해 더 이상 불의에 무릎 꿇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자가 되십시오.(롬 6:13).

 

3. 세상 풍습에 무릎 꿇지 않는 자입니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육체적인 쾌락과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시대로 급속히 변해갑니다(딤후 3:1-5).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회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며, 교회 일보다는 개인적인 취미를 즐기는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성적인 가치관이 놀랍도록 개방적이 되고 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하여져서 교회 공동체에 덕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가 세상의 풍습에 동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들이 세상의 풍습을 따라 개인주의로 가득차고 귀고리와 패물로 외면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허탄한 풍습을 좇는 자가 아니라 오직 마음을 다하여 경건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딤전 4:7). 하나님의 길을 좇는 자는 세상의 풍습을 좇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세상과 벗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엡 5:8). 지금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세상의 풍습에 무릎을 꿇고 있지 않습니까? 돌이켜 하나님의 풍습에 무릎 꿇으시기 바랍니다.

 

미국 남부의 어느 작은 마을이 심각한 자금 사정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곧 마을의 대표자들과 여러 외부 인산들이 모여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을 때입니다. 어떤 허름한 옷차림을 남자가 들어오더니 회의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가 얼마 정도의 재산이 있으며 이 마을의 재정난을 어느 정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뒤 여러 가지 사업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허름한 옷차림을 대충 훑어 본 마을의 대표들은 누구 한 사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그를 향하여 회의에 방해가 되니 있으려거든 조용히 입이나 다물고 있으라며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입을 다물고 잠시 회를 지켜보다가 조용히 회의실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나간 뒤 짐시 후에 한 청년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더니 물었습니다. ‘방금 나간 그 사람이 우리 마을을 도와주겠다고 했습니까?’ ‘그가 누구길래 우리 마을을 도와준다는 말이오?’

그러자 그 청년은 놀랍다는 듯이 대답하였습니다. ‘아니 그럼 그 사람이 백만장자 록펠러였다는 것을 몰랐단 말입니까?’ 마을의 대표들은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였고, 어디선가 비탄에 잠긴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가 록렐러의 도움을 거절했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그런데 바로 우리들은 세상 풍습이라고 하는 것에 물들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여, 참 진리의 목소리를 거절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도와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세상에 푹 빠져 있다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또한 물질의 노예가 된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어느 누구도 승리와 복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지만 망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흥망성쇠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물과 복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제 그들은 결코 망하거나 쇠할 일이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복을 약속받은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복만 받고 행복하게 살게 될 줄로 알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이렇게 교회를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 잘 될 줄로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와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우리나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을까요?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들으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이로 볼 때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호세아 4:6에서 보다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복을 많이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생길의 참된 빛이며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시 119:105).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만 바른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떠난 삶을 살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음으로 인하여 죄악된 생활을 하게 되고 아울러 하나님의 복스러운 영광이 떠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냈으나 백성들은 깨우치지 못하였고, 끝내 하나님의 복된 영광에서 떠나 망국의 슬픔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배워서 그 말씀을 바로 깨달아 복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떠난 삶에는 당연히 죄와 허물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심판의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번영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여기고 재물과 권세들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함으로 계속해서 죄를 더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복을 거두시고 욕이 되게 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호 4:7).

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게 함으로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 절망과 죽음을 가져옵니다. 노아 시대의 세상은 죄 때문에 홍수로 심판 받았고, 소돔과 고모라도 죄 때문에 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이나 A. D. 70 년에 망하여 유랑민으로 전 세계에 방랑하게 된 것도 역시 죄 때문입니다. 죄악은 억만의 적군보다 더 무섭고 우리의 삶을 멸망케 하는 최대의 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죄를 경계하며 미워하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에서 떠난 사람은 또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썩어질 세상의 것을 따라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 새긴 우상을 파쇄하고 그 음행의 값을 불사르며 그 목상을 다 훼파하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또 우리들에게 많은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나 우리나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킬 세상 것만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삶은 썩어지는 세상 것들과 함께 황폐화 되었고 멸망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헛된 것들을 따르는 자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들이 많이 소유하면 그것들로 인해 항상 만족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좇지 않는 탐욕자들이 쌓아놓은 모든 재산을 소멸시키시거나(렘 17:11), 최소한 그들에게 자기 소유로 인한 아무런 만족을 갖지 못하게 하십니다(전 4:8). 또한 하나님 외에 섬기고 따르는 헛된 것들을 훼파하시고 그 거짓됨과 허망함을 드러내십니다.

여러 사람 가운데 소수의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남은 자가 되려는 노력 때문에 여러 가지 손해를 보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환난과 핍박을 받는다면 그것은 더욱 어렵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는 일이며, 신앙의 진리를 지키는 일이라면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끝까지 인내하며 견뎌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남은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우상에 무릎을 꿇으면 안 됩니다.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불의와 세상 풍습 앞에 무릎 꿇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고, 믿음 안에 남은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인정하시고 심판의 때에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참된 만족과 영원한 복을 베푸시는 하나님만을 따르며 살아감으로써 영과 육이 함께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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