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나의 질문은?

chukang 2009. 8. 23.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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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질문은? 에베소서 1:15-19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 부모는 매우 바빠집니다. 이 아기가 질문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엄마 이건 뭐야? 또 이건 뭐야? 보는 것마다 질문을 합니다. 모든 보이는 사물을 통하여 자신의 지식 세계를 넓혀가는 학습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질문을 하는 학생이 있고, 하지 않는 학생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상황이 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아는 학생이 질문을 합니다. 모르는 학생은 질문을 할 것이 없습니다. 혹 너무 잘 알아서 질문할 필요가 없는 학생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창피해서 질문을 못할 때도 있습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요즘은 컴퓨터를 많이들 배우고 있습니다. 그까짓 것 다 늙어서 무엇을 하려고 배우나?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하는 분도 있고, 손주하고 대화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배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하루가 다르게 첨단 제품들이 등장을 합니다. 젊은 사람도 배우지 않고는 안 되는 세상입니다. 잘 배우고 바로 배우기 위해서는 질문이 없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질문을 합니다. 어느 세미나에서나 공통적인 특징은 반드시 질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질문을 한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미나 내용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한다고 핀잔을 하는 사람은,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부르셨을까? 하나님께서 진정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정말로 내게도 복을 주실 것인가? 주신다면 어떤 복을 주실 것인가? 복을 안 주신다면 왜 안 주시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이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을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보면서 그리스도와 이웃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사랑의 실천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감사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합니다. 그 내용은 첫째,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둘째,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성도들에게 주어진 약속된 복에 관하여 성도 각자가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즉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비밀을 온전히 아는 지식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통해서 얻은 통찰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며, 성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됨으로 주님의 영광스런 통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7절을 보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라고 하였습니다. 정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뉴마’인데 이것은 ‘바람이 불다, 숨을 쉬다’는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성령’ ‘영’ ‘바람’의 뜻입니다. 따라서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너희에게 주사”라는 뜻이 됩니다.

지혜와 계시는 성령 역사의 특별한 방법으로,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이해력을 나타내는 것이고, 계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나타내 보이신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즉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모든 구속의 비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속의 비밀은 천사들에게까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천사들을 알기를 원하던 것이었습니다.(벧전 1:12) 천사들은 신령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신령한 하나님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비밀을 천사들에게는 비밀로 하셨으나 우리들에게는 알려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녀로 삼으셨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2:6-9절을 보면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나옵니다. 이것을 알았다면 당시 관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는 방법이 있습니다. 고전 2:12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고” “성령이 없는 사람은 미련하게 보이고 깨닫지도 못하지만, 영적인 사람은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들은 얼마나 크고 오묘한지 모릅니다. 반면에 인간의 지혜와 세상적인 지식은 지극히 유한하고 어리석은 것들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바로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분별하게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알려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힘입어 영적인 눈이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그 영으로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것부터 깨달아야 할까요?

 

첫째, 신령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혹은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여기고 성경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지극히 유한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지혜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일도 보고, 듣고, 대화하는 가운데에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혼자서 상대방에 대하여 생각하면 잘못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잘못된 판단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의 일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일들이 기록된 말씀을 어찌 성령을 통하여 도움을 받지도 않고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좁은 인간의 머리로 광대하고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완전한 지혜의 영이신 성령의 가르치심을 구하고 의지하여 그 신령한 말씀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바로 이해할 때에 비로소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적 깨달음의 만족 속에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시 19:10)라고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신령한 섭리를 아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께서는 홀로 온 우주 만물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창세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를 이끌어왔으며, 또한 이후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하고도 광대한 것인데, 그러면서도 또한 너무도 세심하셔서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까지도, 또 지극히 작은 미물에 이르기까지도 친히 섭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저절로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마 10:29)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구원하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느끼고 있습니까? 육신의 눈이나 세속적인 눈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섭리 또한 깊은 영적인 경륜과 활동이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난은 ‘변장 된 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실 때에는 복을 받을 자세를 갖추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불신앙적인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자세는 고난과 연단의 기간이 길어질 뿐입니다. 고난에 대한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과 은혜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며 또한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모하는 복과 은혜는 순간적인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복은 실로 참된 기쁨과 만족을 줄 뿐만 아니라 영원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중한 것들을 많은 성도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행입니다. 육에 속해 육적인 복만 바라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와 복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소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내 자신에게 넘치도록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자주 망각하고 살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임어 모든 삶의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성령을 통한 신령한 진리들과 복과 은혜를 깨닫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성도들 간의 아름다운 교제와 화목을 도모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며, 앞으로도 서로 화합을 잘 유지하고 더욱 깊이가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얻도록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미천한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자녀로 삼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택하시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까? 이것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들 받들어 섬기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엡4:1에서도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름을 받은 우리는 우리를 이 악한 세상에서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에 부끄럽지 않은 정결한 양심과 순결한 믿음의 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시고자 우리를 부르시고 영화롭게 하시고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삶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얼마만큼의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이러한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그 베푸신 능력이 너무나 큰 것을 알기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지혜는 거저 오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낮아질 때에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낮아지고 겸손해지기 위해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늘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마귀가 우리의 마음은 흔들어 놓고 의심하게 하고 낙망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하물며 말씀도 보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그 크신 뜻을 알 것이며,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혀져야 하겠습니다. 죄악과 허물에 어두워진 우리의 눈, 잘못된 영적 안목이 바로 잡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신령한 일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영의 일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빛이 비취도록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야 하겠습니다.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 질 때에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를 부르신 뜻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구원의 그 크신 능력을 깨닫고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 가운데 “그 기업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업은 천국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되고 풍성한 천국의 기업을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기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풍부하고 부족함이 없는 것 같으나 실상은 완전하지 못하고 영원함이 없는 가난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세의 것을 추구하고 그것에 쾌락과 만족을 느끼기 보다는, 장래 우리에게 안겨질 신령한 은혜들을 생각하고 신앙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기업 외에 이 땅에서의 기업은 성도들에게 주지 않으셨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대에까지 복을 베푸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복은 신령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필요한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부어주시기 위하여 이미 준비해 놓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받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복들을 받기 위하여 그릇을 얼마만큼이나 준비하여 깨끗하게 닦아 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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