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8장 강해 - 홍수의 그침과 회복

chukang 2011. 4. 9. 12:02

창세기 제8장 강해 - 홍수의 그침과 회복

  대홍수 심판의 종결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홍수는 40일간의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고 땅이 마르게 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종결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관점입니다. 노아 홍수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왜곡된 관계를 자연 현상을 통해 정리하신 구속사적, 영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1년 10일에 걸쳐 전 지구상에 있었던 우주적 대홍수 사건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성경은 매우 간략합니다. 오히려 일엽편주와 같은 방주에 초점이 맞춰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인간의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권념하사’(자카르:ןכר)는 ‘표시하다, 새기다, 기억하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늘 기억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게 하여 물을 감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바람(루아흐:רוח)는 단순한 바람입니다. 홍해를 바람을 가르신 것과 같은 바람입니다. ‘루아흐’는 인간에게 적용이 될 때는 호흡(사 30:28), 마음(잠 11:13), 정신(왕상 10:5), 생명(민 16:22), 영혼(사 26:9)으로 해석이 되며, 하나님께 적용이 될 때는 ‘신(창 1:2)’으로 번역이 됩니다. ‘루아흐’는 형체가 없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나, 중요한 점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자연적 바람으로 사용된 경우가 87회이며 그 가운데 37회가 강한 위력을 지닌 바람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능력에 의해 움직이는 큰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홍수 대 심판은 뭍을 중심으로 그 위와 주위와 밑에 있던 물 샘과 물 창을 일시에 터뜨리고 열어서(7:11)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제 40주야가 지나고 하나님의 심판 목적이 다 이루어지므로 하나님께서는 홍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셨습니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 일 후에 감하고

  마치 썰물 현상처럼 물이 점차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바다로 되돌아가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홍수는 40일간 계속되었다가, 그 영향으로 110일 동안은 물이 계속 불어났고, 홍수 150일 째 되는 날 물의 수위는 최고에 이르렀습니다(7:24). 150일 이후부터는 하나님께서 일으킨 바람으로 인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4: 칠월 곧 그달 십 칠 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노아 방주가 홍수에 떠다니다가 아라랏 산 정상에 걸려서 멈춘 것을 말합니다.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여 홍수 시작(2월 17)으로부터 정확히 5개월째 되는 날입니다. 노아 방주는 물이 급격히 감하기 시작한 직후 곧 아라랏 정상에 닿은 셈이 됩니다. 이 지역은 오늘날의 ‘아르메니아 지역’입니다.

 

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노아가 600세 되던 해 10월 1일은 홍수의 물이 줄어들기 시작한 지(7월 17) 73일째 되는 날로, 이 날에 노아는 방주의 창을 통해 비로소 주위 높은 산들의 봉우리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6-7: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노아는 방주 바깥의 상황 즉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또 땅의 상태는 어떠한지를 알기 위하여 창을 열고 까마귀를 바깥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이때는 이미 봉우리가 드러난 상태이기 때문에 까마귀는 방주로 되돌아오지 않고 땅이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까마귀는 이미 드러난 산지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고 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8-9: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러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이번에는 까마귀 대신 비둘기를 방주 바깥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비둘기는 귀소(歸巢)성이 강하므로 이 새가 바깥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떤 증거를 갖고 오기를 바란 것 같습니다. 비둘기는 주로 평지나 골자기를 즐겨 찾는데, 마르고 깨끗한 장소에만 앉는 습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비둘기가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되돌아왔다는 것은 비록 물이 빠지기는 했지만 땅은 아직 덜 마른 상태이며 여전히 진흙이나 젖은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에 까마귀는 교회(방주)를 떠나 세상과 벗 삼으며 거기서 썩은 고기를 먹는 타락한 영혼의 상징이며, 비둘기는 부패하고 더럽혀진 세상에서 평안은 찾지 못하고 교회(방주)로 나아와 그곳에서 참된 휴식과 평안을 누리는 경건한 영혼의 상징입니다.

 

10-12: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 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입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처음 까마귀를 방주 바깥으로 날려 보낸 노아는 이후 7일 간격으로 세 번(8,10,12절)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내어보냈습니다. 이런 사실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노아는 방주 속에서도 날짜를 계산했고 또 안식일을 준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방주 속에서 노아는 한 주간을 의미 없이 보낸 것이 아니라 새롭게 펼쳐질 구속 역사에 대한 간절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내어보낸 비둘기는 홍수 후에 새로 난 감람 잎을 물고 왔습니다. 감람나무는 주로 저지대의 수표면 위에서 자란다고 하므로, 비둘기 잎에 감람 새 잎사귀가 물려있다는 것은 땅 위에서 물이 거의 빠졌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 심판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평화의 메시지로, 곧 새 생명과 새 시대의 도래와 땅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13: 육백일 년 정월 곧 그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노아의 나이가 601세 되던 해의 첫 날입니다. 홍수는 노아 나이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시작되었으므로 물이 땅에 차기 시작하여 물이 지면에서 다 걷힌 기간은 도합 10개월 13일입니다. 물이 걷혔다는 것은 홍수로 인해 피해가 사라져가고 땅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비둘기를 통해 땅의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였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뚜껑을 열었을 것입니다.

 

14: 이월 이십칠일에 땅이 말랐더라.

  홍수가 시작된 때로부터 만 1년 10일 째 되는 낭리며,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문 지 7개월 10일 되던 때입니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지면의 물이 걷힌 상태를 확인한 지 57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제 고지대부터 저지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땅이 말랐음을 뜻합니다.

 

15-16: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노아는 하나님의 명을 좇아 방주 속으로 들어갔고, 하나님의 명을 좇아 방주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결코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에 근거한 노아의 이런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그 결과 노아는 온 세상이 홍수 심판을 받는 중에도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갖는 비결입니다.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 방주에서 보존 된 생명체들은 물로 정화 된 새 땅에서 다시 태초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의 씨는 멸하시지만 거룩한 씨는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원하십니다. 1년 넘어 방주 생활을 했던 모든 생명체들을 모두 이끌어 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모든 생명체를 안전하게 또 온전하게 보전해 주셨다가 다시 땅으로 보내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18-19: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만 1년 10일 동안의 방주 생활을 청산하고 노아의 일가족과 모든 동물들이 다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생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단(미즈베하흐:מזבח)’이란 말은 ‘짐승을 잡아 죽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로 볼 때 짐승을 죽여 그 피와 고기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리는 방식은 고대부터 이미 일반화된 제사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에 드린 제사는 ‘번제’로 희생 제물 전체를 불살라 그 연기를 하늘에 올리는 화제(火祭)를 가리킵니다. 헌제자의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상징하며(롬 12:1,2),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을 예표합니다. 이렇게 번제를 드린 것으로 볼 때에 방주에 들어간 정결한 짐승의 수는 7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암수 한 쌍만 들어갔다면 번제로 드린 짐승은 멸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향긋한 냄새가 사람의 후각을 만족시키듯이 번제로 드려진 노아의 희생제물이 하나님께 열납이 되었습니다. 즉 노아의 믿음과 순종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이 없는 모든 제사는 하나님 앞에 고약한 냄새만 풍기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이르시되’ 스스로 굳은 결심을 할 때나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인간이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말은 곧 원죄 사상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관영한 부패 때문에 홍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이 악한 인간의 본성은 또 다시 나타나게 되어 부패할 것이며,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 또 다시 대 심판을 하신다면 이 땅 위에는 대대적인 심판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람과 자연계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는 최후 심판 때까지 인내와 긍휼로 인간 세상을 다스릴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 세상 끝 날까지 주야 및 계절의 순화이 정상적으로 운행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다시는 홍수와 같은 대재앙으로 자연계의 순환 고리가 파괴되지 않을 것이므로 안심하고 생활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은 지금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땅이 있을 동안에는’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세상 끝 날에는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게 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가 될 것입니다(벧후 3: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