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7장 강해 - 시작된 대 홍수 심판

chukang 2011. 4. 1. 15:05

 

창세기 제7장 - 시작된 대 홍수 심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택한 노아의 가족과 모든 동물들을 방주로 들어가게 하여 이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는 내용입니다.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마침내 심판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 기간은 방주의 건조를 명령하신 때로부터 무려 1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었습니다. 노아 나이 600세 때로 홍수가 시작되기 7일 전입니다. 하나님께서 당 시대에 오직 말씀을 좇아 의로움으로 지내는 택한 노아와 그 가족과 각종 동물들을 홍수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방주로 들이셨습니다. 방주의 기능은 항해가 아닌 구원에 있습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를 예표합니다.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 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정결한 짐승은 7쌍, 부정한 짐승은 2쌍이라고 하였으므로, 6:19,20과 차이가 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씀하신 내용은 일반적으로 짐승을 보존하실 때에 주신 말씀이라면, 뒤에 숫자는 구체적인 지시입니다.

 

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땅 위의 짐승만이 아니라 공주의 새에게도 7쌍씩 보존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시는 자연계에 대한 창조의 영광과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각종 동물들을 보존하게 하시는 이유는 결국 홍수 이후 인간 생활의 편의를 배려하신 것입니다.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홍수 심판을 예고하시는 최후통첩이 내려졌습니다. 최초의 심판 선언으로부터 120년이 흘러가고 마지막 한 주간을 남긴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비록 120년 동안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주간 남은 시간에 단 한 명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킬 자를 기다리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노아도 이 7일 이라는 기간 동안 열심히 회개하고 돌이켜 방주에 올라 생명을 보존하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비는 40주야(晝夜)를 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다 실행하였습니다. 방주를 짓는 일, 모든 짐승을 방주로 태우는 일을 믿음으로 행하여 히브리서 11:7에서는 “믿음의 후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성경에서는 어떤 분기점, 즉 역사에 흐름이 바뀔 때에 종종 당시 주역들의 나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12:4), 모세와 아론의 출애굽(출 7:7) 당시 그들의 나이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7: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방주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8명입니다(벧전 3:20; 벧후 2:5). 노아를 비롯하여 그의 세 아들과 며느리들입니다. 이로 볼 때에 노아와 그 가족은 1부1처제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결혼의 원리를 지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 전체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의 가정까지도 구원하신다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8-9: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노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방주로 나아온 모든 동물들의 숫자를 확인하였을 것입니다. 모든 동물들이 방주로 나온 것은 재난에 대한 본능적 예감이 절대로 아닙니다. 본능대로 행하였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던지 아니면 굴속으로 숨던지 해야 하지만, 방주로 나아왔다는 것은 택한 짐승들만 하나님께서 방주로 나아가도록 역사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 예고(6:7) 후 120년을 기다리셨고(6:3), 모든 심판의 준비가 완료 된 후에도 7일을 더 기다리셨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의 긍휼과 인내의 시간은 모두 문을 굳게 닫았고, 끝내 무서운 홍수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최후의 불 심판이 예고되어 있습니다(벧후 3:7).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때까지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은혜의 시간입니다(고후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문이 닫히기 전 오직 믿음으로 속히 구원의 방주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또한 주의 사람들에게도 함께 들어갈 것을 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11-12: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 월 곧 그 달 십칠 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홍수가 시작 된 날이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오늘날의 10-11월)입니다. 이 날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노아 전까지의 인물들의 나이를 기준으로 계산하여 보면 창조로부터 1,656년이 되는 해로 대략 B. C. 2,350년임을 산출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택기록’을 하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아닙니다. 성경은 구속사의 흐름에 따라 메시아 혈통을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에 주요 인물들만 선택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홍수는 위로부터는 비가 쏟아지고 땅 속에서는 샘이 솟구쳐 올라와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땅은 본래 지구를 뒤덮고 있던 물속에서부터 구별된 것이기 때문에 물 가운데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과 뭍의 분리와 한계를 정해 놓으셨지만(욥 26:10; 시 104:9), 홍수 심판 때에는 이러한 경계를 허물어 버리셨고, 바닷물과 땅 속의 물이 일 시에 해일과 범람과 분출 현상으로 땅을 뒤 덮었을 것입니다. ‘터지며’(닙케우:נבקעו)라는 말은 바다 내부와 지각의 급격한 변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무서운 파괴 현상은 범죄 한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의 표출이며, 범죄 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의지의 표출입니다. ‘하늘의 창’(아루바:ארבה)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하늘 위에 비, 눈, 우박, 번개 등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고, 그 창고의 문을 열며 그 안에 저장 된 것들이 지상에 내려온다고 생각했습니다(욥 38:22,23).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 땅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물은 무려 40주야를 계속했습니다. 이 비는 세차게 쏟아지는 폭우입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종종 시련과 고난의 숫자로 사용이 됩니다. 가나안 정탐꾼의 40일 정탐(민 13:25), 모세의 시내 산 상 40일 체류(출 24:18), 엘리야의 브엘세바 광야 40 주야 체류(왕상 19:8), 니느웨 성읍에 주어진 40일 내의회개 기간(욘 3:4), 공생애 전 그리스도의 40일 광야 금식(마 4:2) 등이 있습니다.

 

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子婦)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들어갔고’ 이 말은 이미 들어가 있었다는 과거완료입니다. 노아와 모든 짐승들은 비가 오기 시작하던 날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미 방주 속에 들어가기를 마친 후 7일 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14-15: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氣息)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짐승, 육축, 기는 것과 새는 지상과 공중의 모든 동물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여기에서도 방주로 들어간 동물의 숫자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정결한 짐승은 7쌍, 부정한 짐승은 1쌍이 방주로 들어간 것이며, ‘둘씩’이라는 표현은 둘씩 짝을 지어 질서 있게 방주로 들어간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노아의 가족과 모든 짐승이 방주에 승선하자 여호와께서는 재빨리 뒤에서 문을 닫으셨습니다. 이 사실은 3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 노아 방주의 선상이 여호와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세찬 물과 무리들의 소란으로부터 방주 속의 생명들을 여호와께서 안전하게 보호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셋째, 이제 은혜의 문은 닫히고, 방주 바깥에 있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17-19: 홍수가 땅에 사십 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홍수가 40일 동안 일어나는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 떠오르고, 그 다음에는 물이 더 많아져서 방주가 떠다니고, 더욱 많아져서 천하의 모든 산이 다 덮였습니다. ‘창일하매’(가바르:גבר)는 강하다는 뜻입니다. 홍수의 물은 평상시의 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심판의 물이기 때문에 강하고 세차게 불어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물이 모든 산봉우리들을 삼키고 모든 기식 있는 존재는 다 죽고 말았습니다.

 

20: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여기서 15규빗(약 7m)은 지구의 가장 높은 산을 기준으로 계산 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구 상의 모든 인류와 짐승은 멸절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1-22: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홍수 심판의 결과 하나님의 뜻대로(6:7,17), 사람으로부터 모든 육축과 기는 것과 공주의 새까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모두 멸절되었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방주 속에 있는 생명체 외에는 모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죽은 것입니다.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궁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비록 방주 바깥에는 무서운 심판의 물만이 흉용하게 뛰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 물 속에서 모든 지면의 생물이 다 죽어가고 있다 할지라도 방주 속에 있는 노아의 일가족과 모든 짐승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편히 쉬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물이지만, 의인에게는 구원의 물, 악인에게는 심판의 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후일 베드로는 노아 홍수의 물을 구원의 표, 곧 ‘세례’에 비유하였습니다(벧전 3:20,21).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엄밀하게 심판하신다는 사실이며, 그 심판의 목적은 의인을 악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님의 궁국적인 관심은 택한 백성에게만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4: 물이 일백 오십 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물이 땅에 창일한(제일 높은 산의 꼭대기로부터 15규빗의 높이로 넘실되던 기간) 150일은 비가 내리는 40일을 포함한 날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