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힘이 없으므로 시 24:1-10
지난 해 부터 올해는 전 세계적인 격동의 시기라고 말 할 정도로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과 시위대의 충돌과 더불어 지진과 화산 폭발, 폭설, 폭우 등 자연 재해의 좋지 않은 소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고 있습니다. 사고가 나서 몇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만 들어도 마음이 아프고 남의 일 같지 않게 생각이 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을 넘어서 수만 명이 한꺼번에 죽어가는 재해를 자주 접하다 보니 소수가 사고를 당한 소식은 ‘뉴스’ 같지도 않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사고나 재해가 점점 대형화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리비아는 정부군과 시위대가 서로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시위대의 편을 든 세계 열강들은 전투기를 동원하여 리비아 정부군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리비아로, 이제는 예멘과 요르단과 시리아까지 왕정 퇴진 요구를 비롯한 민주화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리비아와 같은 폭발력을 가진 화약고는 바레인입니다.
바레인의 수니파 정권이 시아파가 주축이 된 반(反) 정부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병력을 끌어들이면서 시위대는 물론 인근 시아파 국가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재와 민주의 대결 구도 속에 수니파와 시아파간 종파 갈등까지 겹치면서 고차 방정식이 된 바레인 사태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군 병력 1,000명, 아랍에미리트로부터 경찰 500명의 지원을 받은 바레인 정부는 15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16일 한 달 넘게 마나마의 진주광장에서 점거 농성을 벌여 온 시아파 시위대를 강제 해산했습니다.
바레인은 전체 인구의 70%가 시아파인데도 수니파인 알 칼리파 가문이 200년 가까이 권력을 독점, 시아파의 내재된 불만이 높았습니다. 진주광장에서의 강제해산 과정에서 유혈충돌이 발생, 5명이 숨지자 바레인 사태는 본격적으로 종파 간 갈등으로 비화하게 되었습니다. 내각 중 시아파 장관이 사퇴하는가 하면, 시위대에 동조하면서도 생업에만 몰두하던 대다수 시민이 동참하게 된 것은 이 때부터입니다.
인근 시아파 국가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은 외무부 성명을 통해 바레인 왕정을 공개 비난한 뒤 항의의 뜻으로 바레인 주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고 합니다. 후세인 축출 뒤 시아파가 정권을 잡은 이라크에서도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처럼 리비아 공격에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과 일부 중동 국가가 참여하고 있고, 바레인 사태에는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라크 이란 등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회교 무장 단체인 알카에다는 리비아 사태를 틈타서 리비아 군대 무기고에서 무기들을 탈취하여 사하라 사막에 은닉하였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구한말에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군대가 주둔하여 우리 군사 대신 나라의 치안을 담당하며, 서로 힘겨루기를 하였던 그 때를 생각나게 만듭니다. 결국 일본이 승리하여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하였고 그 뒤에 우리나라는 얼마나 심한 고통을 당하였습니까? 육적인 고통은 물론이요 심적으로도 애끊는 고통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나라의 문제를 다른 나라의 힘을 빌어 해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당장에는 해결이 되는 것 같으나 곧 이어 힘을 빌려 준 나라들의 요구사항을 거절할 수 없고, 결국 그 나라의 주권까지 행사하지 못하는 일까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본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 파괴는 방사선 누출이라는 재앙을 가져오고 원전 25km 안에 있는 주민들에게는 피난을 명하였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가장 가까운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재앙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연예인, 체육인을 시작으로 온 국민이 성금 모으기를 하고 있고, 식료품을 제공하고, 현대에서는 이동 발전소까지 지원하는 열과 성을 보이고 있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일본 문부성에서는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기록하는 치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가수 김장훈씨는 일본을 돕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지진은 지진이고 독도는 독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일본은 이런 중에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잘못된 근성은 역시 고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24일에 미얀마에서도 6.8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고, 이 지진은 중국 원남 성까지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 지진은 태국의 접경 근처에서 일어났는데, 우리 노회 선교지인 치앙마이와 치앙라이까지 건물이 흔들렸지만 피해는 없다고 합니다.
3월 둘째 주에는 “끝은 아직 아니니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이제 정말로 세계 곳곳에 전쟁과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말세가 정말로 가까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또 한 번 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끝은 아직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무서운 일을 겪어야 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한 편으로는 중동의 사태는 민주화를 앞당기게 될 것이고 복음전파가 용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게 됩니다. 즉 말세의 징조 중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임할 것이며, 또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시간이 자꾸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지 않습니까? 이러한 시기에는 사람들마다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주신 이 시편 24편 말씀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 시는 크게 3가지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다.
시인은 땅과 세계와 그리고 거기에 충만한 것과 그 중에 거하는 천지만물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임을 노래하였습니다. 소유권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그 소유에 대한 모든 권한 일체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세계 열강들이 왜 리비아 내전에 간섭을 하고 전쟁을 돕고 있을까요? 미국은 토마호크라는 순항미사일을 첫날 공습에서 124발이나 발사했습니다. 이 미사일 한 대 가격이 최저 100만 달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12억이나 되는 엄청난 가격인데, 첫날만 2,000억 이상이나 되는 돈을 리비아에 뿌린 것이 됩니다. 그 이유는 ‘자원’ 때문입니다. 중동은 누구나 다 알듯이 석유의 주 생산지입니다. 중동의 어디를 파도 석유가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부군과 시위대도 서로 정유시설이 있는 도시를 점거하려고 하는 것도 자원 때문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전쟁에 참가하여 까다로운 카다피 보다 다른 지도자를 선택하여 자기 나라에 경제적 유익을 가져오기 쉽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리비아의 입장에서는 국내 사정을 이처럼 유엔, 나토가 앞장서는 것을 볼 때에 얼마나 괴롭겠으며, 또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한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에게 무력을 행사해도 괜찮지만,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눈빛만 변해도 화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힘의 논리’입니다.
그리스의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가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제가 가끔 이야기합니다. 힘센 자, 많이 가진 자가 하는 것은 합법화, 합리화를 시키기가 쉬우나, 연약하고 없는 사람은 작은 잘못만 해도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인간들 마음대로, 그것도 힘센 자들이 마음대로 소유하고 사용하고자 하는 그 욕심으로 인하여 전쟁이 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청지기”가 되라고 하십니다(눅 12:42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우리가 사는 이 땅, 바다, 강, 땅 속의 자원 모두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잘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잠깐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언제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사는 날 동안 모든 자원을 소중하게 가꾸며 아끼면서 사용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2. 전쟁은 하나님께 달렸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불신자의 좁은 시각으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시고, 당신의 마음에 드는 나라가 승리하게 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공의”에서 조금도 벗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시고 상과 벌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거쳐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는 전쟁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죄악이 관영한 가나안 족속을 공의로 몰아내시는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창 15:1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족속입니다. 즉 아직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지 않으신 것은, 가나안 족속들의 아직은 죄악이 관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심판하실 때에도 죄악이 관영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이는 제발 죄악이 관영해서 벌을 줄 수 있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변화가 되기를 원하시는 마음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의 입장에서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즉 하나님의 공의에 더 많이 합한 자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전체가 하나님의 공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 큰 증거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들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택한 백성들이 죄악으로 인하여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혀가지만, 영원히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기에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0,11)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시키시는 것은 재앙을 주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안과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베전 4:12)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나그네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짧은 나그네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가 느끼는 것은 수많은 고통과 괴롬과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이라는 종착 역에 도착하게 되면 그곳은 강한 자로부터 오는 압제와 고통도 없고, 연약하여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일도 없으며 오직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을 즐기되 영원토록 즐기는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 세상은 마귀의 세상이요, 마귀의 세상은 힘센 자가 연약한 자를 억압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살려고 하면 반드시 힘이 필요합니다. 개인 대 개인, 국가 대 국가 모두 힘의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게 됩니다. 이런 마귀의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힘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내 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내가 또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수 24:12-14).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이스라엘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진 무기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하면 승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왕벌을 미리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는 가나안 족속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 차게 만드는 것입니다. 게다가 천둥 번개가 칩니다. 폭우가 쏟아져 병거가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 ‘왕벌’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는 것이 힘입니다. 그 힘은 어떤 전쟁이라도 승리할 수 있게 만듭니다. 우리 성도가 하는 전쟁은 영적인 전쟁이 제일 우선입니다. 이 영적인 전쟁에서 진 결과는 우상숭배로 이어지게 되고,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주변 국가들을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징치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에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징벌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 자격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손이 깨끗한 것은 힘이 없는 깨끗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욥 17:9). 마음은 사람을 내면적인 자세로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내면적으로도 사악한 생각을 품지 않고 은밀하게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허탄한 것은 인간들이 영원토록 누릴 것이 못되는 이 세상의 것들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헛되고도 어리석은 욕심입니다. 거짓 맹세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는 불성실한 태도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성도는 그 행위나 마음 자세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맞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마 5:8).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가 있는 더러움을 싫어하십니다. 아담의 에덴 추방, 노아시대의 심판,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청결하지 못한 자는 진노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 행실이 선하고 깨끗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좇는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로서 거룩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힘입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또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에 따라 자신의 죄성과 악한 행실을 쳐서 복종시키고 죄의 유혹들을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물리침으로써 끝가지 청결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문으로 들어가 영원토록 함께 사는 은총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세상의 허탄한 것에 뜻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 헛된 것을 좇다가 함께 허탄하게 멸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전 2:12). 거짓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그 마음은 여전히 불신앙과 불의로 가득 차 있고 자신의 뜻대로만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되고 가증한 자입니다(딛 1:16). 또한 사람들 앞에서 경건하고 의로운 체 가장하나 사실은 그 안에 온갖 악독과 악행이 가득한 자 또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의 썩어질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는 첩경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가 힘을 자랑하겠습니까? 어느 누가 자신의 지혜로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역사상 가장 강하다고 자랑하던 애굽도, 바벨론도, 로마도 다 멸망했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강자로, 영원한 힘을 가진 사람도 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은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 힘이 되십니다. 주님의 그 크신 능력의 손으로 나를 이끌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여 우상으로 흘러가는 이 나라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이끌림에 순종하여 강한 영적인 힘을 가진 나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성도에게 있습니다. 연약한 것 같으나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는 힘이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대신 해 주십니다. 내 힘으로 하지 않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나라는 작고 보잘 것 없고 자원도 없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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