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고도 끈질긴 작업 사도행전 13:4-12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는 말은 처음 세운 뜻이 끝까지 그대로 관철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참 좋은 말이 틀림없습니다. 누구든지 한 번 뜻을 세우면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끝까지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성공이라는 고지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다가 어려운 일도 많이 있고, 가다보면 가파른 언덕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과거시험’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벼슬길에 오르기 위하여 일 년 내내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얼마나 힘이 들고 몸이 쇠약해지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한 길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 공부를 해 왔는데, 아무리 멀고 먼 한양 땅이라도 가야만 합니다. 가다보니 얼마나 험한 길이 많겠습니까? 산도 넘어야 하고, 강도 건너야 합니다. 가다가 도둑이나 강도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피곤하여 주막에 잠시 들러 목을 축이려고 하다가 술 한 잔을 마시고 나니 그 유혹에 빠져서 취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수많은 일들이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어떤 일을 당하든지 반드시 한양에 가서 과거를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일이 생겼기 때문에 가지 못하게 되었든지, 아니면 늦게 도착을 했다든지 하면 1년 공부가 허사가 되고 말겠죠.
그렇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 보니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게 되고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일을 당하게 되면 좌절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가 됩니다. 이런 일 때문에 실패하건, 다른 일 때문에 실패하건 실패는 실패입니다. 그만큼 했으면 비록 실패했지만 성공이나 마찬가지라고 위로의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실패지 성공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즉 나는 무엇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결국 ‘핑계’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도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어릴 적에 교회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나오지 않게 된 고 박정희 대통령이나, 스스로 우상을 섬긴 자들이나 결론은 동일하게 지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공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대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 동일한 핑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목표를 정하였으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초지일관’입니다.
그런데 이 초지일관이 옳지 않은 일이나 나쁜 일에는 어쩌면 그렇게 잘 적용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잘못 된 길을 들어서게 되면 그 길을 벗어나기는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자신이 가고 있는 길, 자신이 행하고 있는 현재의 일들에 대하여 스스로 잘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도 참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잘못된 일에 대하여 알지라도 그것을 그만두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잘못된 길을 벗어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자존심이 얼마나 강하지 모릅니다. 어떤 사기꾼 혹은 모사꾼이 나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했는데, 그 정보는 거짓 정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정보를 들은 나는 그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서 어떤 결정을 했습니다. 그 결정에 따라서 일을 해 나가다보니 오류가 발생을 합니다.
문제는 이런 일을 당했을 때에 현명한 사람이라면 재빨리 깨닫고 하던 일을 중지해야 하지만, 그 자존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못된 정보를 듣고 판단을 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대인관계에 있어서 나와 너 사이에 다른 사람이 이간질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떤 물질적인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간질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왕따를 시키고 서로 미워하도록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나에게 살짝 다가와서 나에게 좋은 일이 있도록, 유익이 있도록 하려고 하는 것처럼 속삭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는 나를 비방하는 것입니다. 간교한 자의 행위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런 이간질하는 자들은 버릇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간교함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초지일관 앞에서는 달콤한 말로 속삭이지만 뒤로 돌아서서 다른 사람에게는 험담하고 비방하고 싸움을 붙이는 일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이 매우 지혜로운 사람인 줄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잘못된 일들에 대하여 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 5:19-21)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해도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런 일들에 대하여 내가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할 때가 있고, 모르고 계속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그런 것은 옳지 않으니 하지 말라고 교훈하지만 말을 안 듣습니다. 어리기 때문에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 아직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머리가 자라면 자존심도 같이 자라기 때문에 듣기 싫어합니다. 그리고 교만도 함께 자라나서 자존심과 교만이 합해지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공부 좀 했다고 하는 사람, 내가 돈이 좀 있다고 하는 사람은 더 그렇습니다. 도무지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이런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세 종류의 인물이 등장을 합니다. 첫째 인물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인물은 마술사 ‘바예수’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인물은 ‘서기오 바울’이라는 구브로의 총독입니다.
바울은 구브로(Cyprus-Kypros)로 전도를 하러가게 되었습니다. 구브로는 농업과 목축이 발달하였으며 천연자원이 매우 풍부하다고 합니다. ‘구브로’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구리라는 뜻일 만큼 구리(copper)가 유명합니다. 이 구브로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B. C. 320년경부터 유대인이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대 교회가 세워진 후에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해 성도들이 구브로에 와서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여러 곳이 있었기 때문에 회당을 중심으로 먼저 복음을 전하고, 차츰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살라미’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구브로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 가장 큰 도시이며 통치의 중심지입니다. 이곳에 유대인들이 특히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미 구약 성경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용이하였습니다. 이때에 바울과 함께 간 동역자는 ‘요한’인데, 그는 바나바의 생질인(골 4:10) 마가 요한입니다. 바울 일행은 살라미에서 180km 떨어진 ‘바보’라는 곳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흔히 비너스 신 숭배로 유명했던 인근의 ‘구 바보(Old Paphos)'와 구별하기 위해서 ’신 바보(New Paphos)'라고 불렸습니다. 이곳에는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었으며, 아프로디테(Aphrodite) 즉 비너스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박수(마술사) 바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예수’는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정통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거짓 선지자이자 ‘박수(마고스:μάγος)’ 즉 마술사였습니다. 율법에는 박수는 반드시 죽여 공동체 가운데서 제하라고 하였습니다(레위 20:27; 신 18:11). 그러나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은 저를 용납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미 바예수(Bar-Jesus)에게 미혹 당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이 구브로에 왔다는 소식은 곧바로 총독인 ‘서기오 바울’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에게 대한 칭찬이 단 한 단어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정말 훌륭한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사도 바울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호기심일 수가 있습니다.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도 예수님께서 잡혀 오시자 호기심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에 총독 벨리스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두려움과 또한 돈을 받을까 하여 사도 바울을 자주 불러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행 24:26).
그러나 구브로 총독과 사도 바울이 만나는 것을 방해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바예수’라는 박수입니다. 바예수는 총독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방해하였습니다. 그는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되면 자신의 직책이 위태롭게 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예수는 바로 마귀의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단순한 이간질에서 훨씬 더 넘어선 악행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오늘날에도 가증하고 허황된 술책과 속임수로 우리들을 혼란시키는 사단의 세력들이 얼마나 뛰놀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으로 불신자와의 갈등을 조장하는 마귀의 세력은 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박수 바예수는 총독에게 바울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비방과 거짓말을 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박수 바예수에게 대하여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궤계’는 물고기의 미끼, 어떤 속임, 속이려는 욕망이나 의향‘입니다. ’악행‘은 악을 행함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이 자행하는 것입니다. 바예수가 얼마나 타락하고 패역한 사람인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마귀의 자식, 모든 의의 원수‘라고 저주를 하였습니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신 저주와 유사한 것으로(요 8:44) ’중상모략자‘와 같은 뜻입니다. ’모든 의에 대한 원수‘라는 말은 나쁜 짓만 골라가면서 하는 악당이라는 뜻으로 이 역시 바예수가 모든 면에서 완전히 부패했음을 나타내 줍니다. 이처럼 바예수와 같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공공연하게 대적하고 방해하는 악한 세력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력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바른 길을 굽게’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길이 어떤 길입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바예수가 이것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은 곧 그가 복음 전파 사역을 훼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예수는 초지일관 바울과 총독 사이를 이간질하는 악한 자입니다. 한 번 두 번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서 바울은 ‘그치지 아니하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에게 붙들린 자는 결코 그 악행을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착한 일을 하기는 어려워도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선한 존재가 되기는 힘들지만 악한 존재로는 빨리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영향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지만 그 악한 것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악한 것들을 성령으로 억누르는 것이 바로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순간이라도 마음을 해이하게 만들거나, 잠시라도 주님을 잊게 되면 바로 악한 영이 내 마음을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악한 영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으면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악에게 계속 끌려가게 됩니다. 아~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또 끌려가는 것입니다. 악에 발을 한 번 들어 놓기는 쉽지만 빼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내 마음을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직 성령의 거울에 비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내 마음은 어떤 형편이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박수 바예수는 “네가 소경이 될 것이다.”라는 바울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바울의 이 말이 끝나자 곧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었습니다. 한 순간 그는 볼 수 없는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사랑이신지라 바예수가 영원한 소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동안’ 즉 일시적인 소경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예수가 이 같은 형벌을 통하여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도록 만들기 위한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빛으로 인하여 잠심 눈이 먼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같은 모든 일들을 지켜보던 한 사람 총독 서기오 바울은 놀라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기이히 여기니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인 놀람이 아닙니다. 마술사 바예수가 소경이 되는 그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의 한 마디의 말에 소경이 되는, 바로 말씀의 능력에 더욱 놀랐던 것입니다. 총독은 사도 바울로부터 진리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천국에 관한 내용은 기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마술사 바예수가 소경이 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체험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술사의 말, 즉 무당, 거짓 선지자, 신접하여 스스로 신통하다고 자랑하는 자들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거짓되고 허무한 것인가를 체험하였습니다. 자신이 세상의 헛된 우상 숭배의 올무에 빠져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고 또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임할 때에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아멘 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만이 더럽고 추하며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것은 내 자신과 가족과 교회와 또 우리 대한민국이지만, 거기에 또 하나 일본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들은 악령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입니다. 일본제국 스스로 독도가 조선의 것이라고 인정한 지도와 문헌이 공개되어도 스스로 부인하면서 독도를 계속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지일관 악한 생각을 품고 실행에 옮기는 자들입니다.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거짓된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에는 우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제가 일본보다 약하고 군대의 힘도 약합니다. 만일 한일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3일 만에 우리가 패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독도는 언제든지 침탈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중국과 일본이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첨단 무기를 앞세운 일본에 중국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전략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 힘은 단순한 물리적인 힘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바로 힘이요, 우리가 믿음 위에 바로 서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 위에 굳게 설 때에, 하나님께서는 거짓된 말과 헛된 행동과 악한 것을 멈추지 않는 일본을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그 어느 누가 우리를 훼방하고 이간질하고 악한 행동을 할지라도 강하고 담대하게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를 살린다고 하는 그 진리를 힘 있게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 안에 마술사 바예수와 같은 악한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속히 버리고 돌이키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구브로 총독과 같이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고 확신을 가지고 또한 체험까지 있게 된다면 우리는 그 어떤 환난이나 역경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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