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이 사람들도 유다서 1:5-16
본 서의 저자인 ‘유다’는 예수님의 막내 동생입니다. 저자는 자신을 “야고보의 동생”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야고보서의 저자이며, 예수님의 동생으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행 15:13; 갈 2:9). 유다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별로 없지만 그는 예수님의 막내 동생(마 13:55)으로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는 그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지 않았지만(요 7:3-8) 부활 후에 믿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설립된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행 1:14; 고전 9:5).
유다가 이 글을 누구에게 썼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용을 보면 ‘영지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뻗어가는 상황에서 그리스 즉 헬라 문화와 충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헬라의 철학자들은 기독교를 자신들의 철학의 테두리 안에서 해석을 하고 정립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때에 만들어진 교리가 바로 ‘영지주의’라는 이단 학설입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며, 보이는 이 세상 만물과 육체는 모두 악한 것이라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합니다. 따라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을 하여 육체의 타락과 죄악을 정당시하는 도덕 폐기론자들, 곧 쾌락주의자들입니다. 이러한 이단들은 자기의 신분을 속이고 교회에 몰래 들어와 성도들에게 잘못된 사상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당을 짓는 분파 행위와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방탕한 생활을 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성도들 중 일부가 미혹되었거나 미혹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있음으로 해서 많은 문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런 이단의 부패한 모습을 경고하고, 이들은 심판 날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운명임을 성도들에게 알려주어 미혹당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믿음을 지키도록 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쓴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자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가장 첫 번째는 불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불의 심판을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한 번 벌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고통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불의를 행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마귀와 마귀의 추종자들인 타락한 천사들도 포함이 됩니다.
심판을 받을 첫 번째 대상으로 언급된 것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애굽에서 나온 200만 명 이상이 되는 이스라엘은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고, 광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불신앙으로 일관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반역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민 14:11; 신 1:32). 이는 불신앙에 대한 심판입니다.
두 번째 대상으로는 타락한 천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되는 형벌을 받았습니까? 이 천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권능을 받아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에 거하던 자들이었지만, 본래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반역하였기 때문에 장차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때까지 영원한 결박에 묶여 지옥에 갇혔습니다. 이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 교만에 대한 심판입니다.
세 번째 대상으로는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이웃 도시들입니다. 창세기 19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는 극심한 악한 쾌락의 성적 타락에 빠진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순리에 따르지 않고 동성애와 같은 추악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온 도시 전체가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불과 유황불로 멸하신 것은 한 번 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그치지 않고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이러한 악행으로 오염이 되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육체를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산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꿈꾸는 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왜 이들을 꿈꾸는 자라고 했을까요? 이들은 입술로는 은혜의 간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즉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환상을 보며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이단 사상으로 가득차서 마치 꿈을 꾸듯 허망한 것을 진정한 계시인 것처럼 선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위에서 말한 3부류와 동일한 자들입니다. 이들도 육체를 더럽히는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며 업신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한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인 타락한 천사들과 같은 죄를 지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유다는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의 다툼을 예로 들어 꿈꾸는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경(구약 정경 39권에 들지 못한 책) ‘모세의 승천기’라는 책을 보면 모세가 죽자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치우려 할 때에 마귀가 나타나 시체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하면서 미가엘과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천사장 미가엘은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므로, 자신의 일을 훼방하는 마귀를 물리치고 심판할 능력이 있었지만, 심판 및 보응을 일절 자신이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만 논하면서 자신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에 전적으로 의뢰하는 천사장 미가엘의 겸손을 보여줍니다. 천사장인 미가엘조차도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감히 거스르지 못하는데 인생들보다 월등히 뛰어나고 능력이 있는 천사에 비해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거스르는 교만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녹 1서라는 위경을 보면 일곱 천사장이 있는데 “미가엘, 우리엘, 라파엘, 라구엘, 사리엘, 가브리엘, 레미엘”이라고 하며(에녹 1서 20:2-8), 계시록 8:2에 나타나는 일곱 천사가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꿈꾸는 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훼방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뭘 좀 알고 반대를 하던지 훼방을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면서 훼방을 하니 더욱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들에게 있는 것은 오직 ‘짐승의 본능’이었습니다. 경건하지 않는 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지 조차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성령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속하지 않는 자들은 영의 일을 전혀 모릅니다. 따라서 그들이 무엇을 아는 체 하였다면 그들이 아는 지식으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온갖 육체적인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멸시하며 거룩한 이들을 훼방하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켜 “이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꿈꾸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영원한 심판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오직 죄 짓는 것밖에 모르는 거짓 교사들은 그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하나님의 의를 분간하지 못할뿐더러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양심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판단력이 없는 짐승과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영적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롬 1:24,25). 영의 세계에 있어서 영적으로 무지한 자는 짐승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에 관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거룩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 영광과 거룩을 소유한 자들을 어처구니없이 훼방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신의 근본 원인은 영적인 문제에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1:13을 보면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영적인 일을 알지 못하고 율법에 매어있었기 때문에 성도들을 핍박하는 괴수로서 일을 했던 것입니다. 본능을 따라 행하는 것은 곧 영적인 무지, 곧 진리에 대한 무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와 사랑과 영광에 대한 그 아무 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적하고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유다는 이들에게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라고 말합니다. 화를 받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3가지의 길을 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첫째 가인의 길, 둘째 바람의 길, 셋째 고라의 길입니다. 가인은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마침내 그를 살해한 자로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인간을 파멸시키는 사악한 자입니다. 이런 점은 이단들이 성도들에게 영적인, 혹은 정신적인 죽음을 가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발람은 세상적인 이득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죄악의 길로 이끈 탐욕적인 종교지도자들의 전형입니다. 어그러진 길은 의와 진리에서 벗어나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사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철저히 자신을 내던집니다. 고라는 광야에서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함께 당을 짓고 이스라엘 회중 250명을 선동하여 모세와 아론의 지도권에 대해 반역하였다가 멸망당한 인물로(민 16:1-35) 하나님의 법령을 거역하면서까지 자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자의 전형입니다. 이단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고락의 패역을 좇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라의 무리들과 같이 반드시 멸망을 받을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심판의 운명이 이미 결정이 되었습니다.
이들 꿈꾸는 자들은 ‘기탄없이’ 뻔뻔하게, 두려움도 없이 경건과 사랑으로 가득 찬 애찬(성만찬)에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은 마치 물속의 암초가 선박을 파손시키고 침몰시키듯이,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을 손상시킵니다. 이는 교회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는 말은 목자의 사명이 양들을 먹이고 보호하는 데 있음에도 거짓 선생들은 양떼들에 대하여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거짓 사역자라는 뜻입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에 비유하였습니다. 농사철에 비를 간절히 기다리는 농부들에게 구름은 너무나 반가운 손님과 같습니다. 그러나 구름이 왔으나 정작 기다리는 비는 내려주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면 농부들의 실망은 여간 크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 선생들도 물 없는 구름 같아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것처럼 기대를 부풀게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므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공급하지 못하여 실망시킬 뿐입니다. 이들은 진리 가운데 거하지 못하여 마치 바람에 불려가는 불안정한 자들입니다. 따라서 유다 선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저들의 정체는 스스로 부동(浮動:둥실둥실 떠서 움직이는)하는 존재이며 남을 속이는 존재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이 비유를 통하여 거짓 선생들이 영적으로 완전히 죽었을 뿐 아니라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열매를 맺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 자체를 갖지 못한 자들입니다.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온갖 오물들을 거품과 함께 물결에 담아 해변으로 쏟아내듯이 이단들은 말과 행동으로 성도들을 유혹하지만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오직 죄악뿐이라는 것입니다.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은 고대인들이 유성, 별똥, 혹성, 혜성 등을 가리킬 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별들은 궤도를 이탈하여 떠도는 별들로서 잠깐 빛을 발하지만, 곧 그 빛을 잃을 것이며 영원한 흑암에 묻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이단들, 거짓 선생들은 지금은 빛을 발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들은 이미 진리의 궤도에서 떠난 자들이기 때문에 곧 빛을 잃고 그들을 위해 예비 된 영원한 흑암과 사망의 길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利)를 위하여 아첨(阿諂)하느니라.’ 심판을 받을 자들, 이단, 거짓 선생들은 원망과 불만으로 가득 찬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 대하여 원망한 것을 비유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강하게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모자람을 드러내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단자의 특징은 정욕대로 행한다는 점입니다. 정욕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욕에 이끌려 살게 되면, 정욕이라는 특징이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만족할 수 없고 오히려 더 많은 욕구가 생겨난다는 것이기 때문에, 만족이라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단들은 사람을 외모로 취합니다. 이들은 자기보다 낮아 보이는 자 앞에서는 높은 듯이 교만하게 행하고, 부자와 권세자들 앞에서는 겸손한 듯이 아첨하는 것입니다.
2.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도는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자신의 신앙성숙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사단은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해 우는 사자와 같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벧전 5:8). 이런 때에 성도가 자신의 신앙 성숙을 위하여 힘쓰지 않게 되면 사단의 미혹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경고하였습니다. 신앙의 자기만족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성숙’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유다는 성도들이 이단의 미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것, 둘째 성령에 의지하여 기도하는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할 것, 셋째 항상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진리 가운데서 행하기를 힘쓸 것, 넷째 세상 끝날, 곧 그리스도께서 긍휼을 베푸사 영생을 주시는 날을 바라보며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3. 미혹 된 자들에 대하여
성도들은 이단들에 의하여 미혹된 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미혹 된 자들의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미혹되기는 했으나 그 정도가 덜 심각한 자들로 진리를 의심하며 믿음이 흔들리는 자들이지만, 사랑으로 권면하여 돌아보면 쉽게 돌이킬 수 있는 자들입니다. 둘째 멸망의 불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단 사설에 깊숙이 빠진 자들로 그대로 놔두면 이단자들과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자들을 황급히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셋째 완전히 더럽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단 사설에 완전히 빠져서 영육간에 심히 부패 된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이들에 대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혐오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의 죄는 미워하며 혐오하되 그들의 영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는 것 같습니다. 온갖 이단이 발흥하고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그들이 진짜 선지자요 참 목자인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확고한 뿌리가 박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바로 알면 어떤 거짓 선지자나 이단이 거짓 선생이 와서 감언이설을 쏟아내도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누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겸손”이라는 이 단어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겸손만이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보게 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또한 내 스스로를 악한 정욕과 더러운 모든 것들에서 지켜낼 수 있도록 쳐서 복종시키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 외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줄을 꼭 붙드는, 매어있는 방법은 오직 말씀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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