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chukang 2011. 2. 12. 23:11

 

첨부파일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누가복음 19.hwp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누가복음 19:11-27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열 므나의 비유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직전이며, 당시 역사적으로는 헤롯 대왕(Herod, B. C. 37-4)이 유대 왕국을 세 아들인 안디바(Antipas)와 빌립(Philip)과 아켈라오(Archelaus)에게 분할하여 넘겨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아켈라오는 헤롯 대왕의 왕위를 계승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로마 황제의 인준을 얻기 위하여 로마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켈라오가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따로 50명의 사절단을 구성하여 로마로 파송하였습니다. 결국 로마 황제는 아켈라오에게 왕의 권한까지는 주지 않았지만 유대와 사마리아를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해 주어 유대인들의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모함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함으로써 구속 사역에 실패를 가져오게 하려고 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완악함을 묘사하신 것입니다.

 

  이 므나의 비유를 보게 되면 마태복음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가 연상이 될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주인은 종들의 재능을 고려하여 그 분량을 달리해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능을 잘 발휘해서 각 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는 칭찬이 주어졌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5:21)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땅에 묻어두고 한 달란트를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준 종은 그 가진 달란트를 열 달란트 가진 종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무서운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반면에 므나의 비유에서는 종들의 달란트와는 무관하게 똑 같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에 따라서 다르게 보상을 하였습니다.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이익을 남기지 못한 한 므나를 가진 종은 그 가진 것을 열 므나를 가진 종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단순히 얼마 동안 떠나는 짧은 여행이었으나, 므나 비유에서는 귀인이 왕위를 얻기 위해 떠났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두 비유는 같은 비유가 아니고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 비유라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달란트 비유는 충성된 생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씀이지만, 므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릇된 오해를 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권면입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12) 이 말씀에서 보면 ‘귀인’은 누구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간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다 받으신 후에 부활,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셔서 하나님의 왕권을 가지고 이 우주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즉 당시 로마 제국 하에서 왕족으로 태어난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자기가 살던 곳에서 로마로 갔던 ‘아켈라오’를 빗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13) 주인이 종들에게 열 므나를 나누어 주며 자기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한 말 속에는 주인이 왕위를 받아오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므나’는 당시 유대인들이 통용하던 화폐로 한 므나의 가치는 일반 노동자들의 3개월 정도의 품삯으로, 이는 로마 화폐로 약 100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귀인(주인)이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할 때에, 주인에게 므나를 받은 종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여기에서 제자는 그 시대 속에서 예수님을 좇았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들에게 주어진 므나는 단순히 개인의 재능을 나타내기 보다는 그들 모두에게 맡겨진 사명, 즉 그리스도의 일꾼에게 맡겨진 복음 전파의 사명과 소금과 빛으로의 사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14) 당시 헤롯의 아들이었던 아켈라오가 헤롯이 죽자 그의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로마로 갔을 때, 유대인들이 모의하여 50인의 대표를 로마로 보내어 아켈라오의 포악성을 이유로 그의 왕위 계승을 반대한 역사적 사실에 그 바탕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왕위를 받지 못하고 단지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의 분봉왕(일국의 왕제 혹은 제왕이 자국 내의 영토를 나누어 각 지역마다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를 영주라고 하며 성경에서는 분봉왕으로 번영이 되어 있습니다.)이 되어 이스라엘로 돌아 온 아켈라오는 그 보복 조치로 모의에 가담했던 유대인 8천명을 잔인하게 학살하였다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행적을 비난하고 예수님을 모함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하기 위하여 온갖 술수를 꾸며냈던 유대인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의 행동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왕권을 잡으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높은 지위와 특권을 빼앗길 것을 염려하여 백성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소리치게 만들었습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15) 아켈라오는 왕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왕위를 받아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진짜로 왕위에 오르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만왕의 왕이 되셔서 재림하실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영광의 재림을 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돌아온 주인은 종들을 불러 그들에게 준 므나를 회계하였습니다. 즉 종들에게 맡겨진 사명에 대한 확인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 재림하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일꾼들에게 맡기신 사명, 즉 복음 전파와 아울러 그에 따라 맡겨진 봉사와 섬김의 직무를 어떻게 감당했는지에 대해 반드시 회계하실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회계는 가깝게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16) 종은 주인이 준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겼다고 말합니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주인이 준 돈으로 장사를 한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큰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이익을 남겼더라도 주인이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종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종은 종의 자세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주인에게 모든 공로를 돌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성도들은 많은 점을 배우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종을 본 주인은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칭찬의 말씀으로 끝나지 않고 그가 노력한 것에 합당한 보상으로 열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까지 상급으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도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를 볼 때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반드시 우리의 행위대로 계산을 하실 것이며, 충성한 정도에 따라서 그 상급이 달라질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 주인은 열 므나를 남기지 못했다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남긴 이익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칭찬과 상급이 주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맡겨진 사명을 어떻게 열심히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칭찬과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과는 달리 주인이 자기에게 맡긴 사명을 감당치 않았던 이 종은 매우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말재주를 동원하여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 것을 덮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수건으로 므나를 싸두었던 가장 큰 원인을 주인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종은 주인을 마치 악덕 상인, 고리사채업자 쯤으로 폄하하여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한 므나를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 줄 수 있는 것을 자신의 게으름을 포장하여 “잘 보관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종의 말 속에는 주인이 떠날 때 므나를 맡기면서 장사하라고 명한 사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주인이 떠난 뒤에 종들에게는 여러 가지의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유가 많더라도 종으로서 주인이 맡긴 사명을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주인에게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종은 자신이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면 주인이 그 이익을 가로 챌 것이며, 만일 장사하다 손해가 나면 그 손해를 배상시킬 것이 걱정되어 자기로서는 맡겨진 므나를 갖고 있는 것이 최상책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종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앞에 열 므나를 남긴 종이나,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 주인은 그 이익을 빼앗았어야 하지만 오히려 칭찬을 하고 그 남긴 이익에 대하여 충분한 보상을 해 주었기 때문에, 셋째 종의 말은 결국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숨기기 위해 꾸며낸 말이며, 거기에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주인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종은 주인으로부터 더욱 큰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종은 결국 받았던 한 므나마저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라는 구절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주인이 어떤 말을 하는지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주의 깊게 주인의 말에 경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 므나를 남긴 종이나 다섯 므나를 남긴 종이나 한 므나를 수건에 싸 두었던 종이나, 동일하게 일평생 사는 과정 속에, 주인이 떠나고 장사하라고 한 것은 아주 작은 기간에 불과합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두 종은 주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시키는 대로 행했습니다. 아마 다른 일을 시켰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시킨 일을 완수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종만은 그 짧은 기간의 일이라고 소홀히 하였고, 주인은 돌아왔고, 회계를 할 때에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오히려 모든 책임을 주인에게 돌리는 자신의 잘못 위에 또 다른 잘못을 얹어 놓는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첫 번째 종과 두 번째의 종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결국 세 번째 종과 같이 책망과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순종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유치원 어린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한 그룹을 6명으로 하고 방 안의 탁자 위에 ‘마시멜로우’를 두고 선생님이 다시 와서 나누어 줄 때까지 먹지 않으면 두 개를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몰래 카메라를 통하여 관찰을 했더니, 그 중에 네 명이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혀로 입술을 핥는 어린이, 손가락을 빠는 모습을 보이는 어린이,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무려 100그룹을 실험을 하여 통계를 내었더니, 대부분의 그룹에서 4명은 먹고 나머지 2명은 먹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먹지 않는 두 명의 모습을 잘 살펴보았더니, 공통점은 그 마시멜로우를 쳐다보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쳐다보면 먹고 싶으니까 뒤를 돌아앉는 아이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먹지 않으면 두 개를 준다는 말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은 어린이들은 당연히 선생님이 나가자 얼마 못가서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입맛을 다시면서 자신들이 마시멜로우를 먹은 것에 대하여 매우 흡족해 하고, 먹지 못한 아이들을 불쌍하다는 것이 조롱하듯이 쳐다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돌아와서 확인을 한 후에, 먹지 않은 아이들에게 두 개의 마시멜로우를 줄 때에, 먼저 먹은 아이들과 먹지 않은 아이들의 표정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계속해서 관찰을 했는데, 먹지 않은 두 명의 아이들에 속한 그룹은 공부도 탁월하게 잘 하더라는 결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므나를 가졌던 종은 마음이 강퍅한 사람입니다. 사명을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순종하지 않은 대가로 그에게 약속되었던 복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어른의 말씀, 직장 상사나 사장의 말을 소홀하게 여기는 사람의 결국은 셋째 종과 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한 말씀 한 말씀을 소홀히 듣지 말고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는 어떤 일을 해도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어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판단이 더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교만한 자는 미워하시고 물리치신다고 하였습니다.(잠 16:5),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습니다(잠 16:18).

  그러나 겸손한 자는 복을 받습니다. 인정을 받습니다. 사랑을 받습니다. 장래가 보장이 될 것입니다.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작은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작은 일을 시킬 때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는 칭찬과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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