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는 연고니라 마태복음 17:14-20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3제자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 산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고 다만 ‘그 산’이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산을 나사렛 동쪽 약 9km에 위치한 ‘다볼’ 산일 것이라고 추측을 했는데, 근래에 와서는 레바논 산맥에 위치한 해발 약 2,800m의 헤르몬 산일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다볼 산 정상에는 성읍이나 요새가 있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비공개로 변화산 사건을 경험하기에 불가능한 장소라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헤르몬 산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시기에 적합하다는 점입니다. 산이 어떤 곳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그 산에서 예수님께서 변화가 되셨기 때문에 ‘변화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주님의 얼굴은 해와 같이 밝게 빛이 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마가는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모세도 시내 산에서 하나님 앞에서 40일 동안 있다가 내려올 때에 그 얼굴에서 빛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받은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모세의 경우에는 수건으로 가리면 그 빛을 차단할 수 있는 정도였고, 예수님의 경우는 그 빛이 얼마나 강한지 입고 계신 옷까지도 투과하여 그 옷까지 눈부실 정도였습니다. 주님께서 변화되신 후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모세는 율법, 엘리야는 성령을 상징하는 선지자입니다. 하늘에서는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면 소리가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산 위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을 때에 산 밑에서는 나머지 제자들이 곤경에 처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라들이 귀신들려 간질로 고생하는 아이를 데려와서 고쳐달라고 하였지만, 고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이 내려가자 한 사람이 꿇어 엎드려서 주님께 자신의 아들을 고쳐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고쳐주지 못하였으니 주님께서 직접 고쳐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어떤 해결책을 내 놓으셨으며,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환자의 상태
환자의 아버지는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라고 아들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벙어리 귀신이 들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9:17). ‘간질(셀레니아제타이:σεληνιάζεται)’로 당시에는 주로 달의 주기와 관련되어 있는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어상의 의미에서도 ‘셀레네’는 ‘침범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간질을 달의 주기가 변할 때마다 발작하는 ‘미친 병’ 또는 ‘넘어지는 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뇌의 이상에서 비롯되는 병으로 확정을 하고 약물로서 치료를 하면 낫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약을 먹일 경우에 사람의 정신과 기력을 낮추는 신경안정제 종류를 사용하기 때문에 무기력한 상태에서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야 하고, 정신이 몽롱하여 아무런 힘도 쓸 수 없게 만들어 버릴 뿐 결코 나을 수는 없습니다. 간질은 한 번에 보통 5-10분 정도 발작 증세를 일으키는데, 이때 환자는 입에 거품을 물로 경련을 일으키며,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몸을 자해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고도 합니다.
간질은 분명히 귀신들린 증상입니다. 18절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오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간질에 걸린 사람의 뇌를 촬영하면 특정부위에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뇌질환이라고 하지만, 그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귀신은 때로는 배나 가슴과 기다 다른 곳에도 증상을 나타내지만 간질의 경우에는 귀신이 뇌에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나타나는 뇌의 증상만 보기 때문에 뇌질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증언에 의하며 불이나 물에 넘어진다고 하였으므로, 환자의 상태는 매우 심각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은 자기 스스로도 창피한 것을 알기 때문에 숨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발각이 되면 그 때부터는 시시때때로 정체를 드러내는데, 그 증상이 바로 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귀신들림으로 일어나는 간질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귀신이 찾아올 때에만 발작을 하는 경우가 있고, 완전히 귀신이 들려서 상주하여 시시때때로 발작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통점은 당연히 귀신의 역사로 간질의 발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질 환자는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 질병과 다르기 때문에 남이 보지 못하는 집안에서만 생활을 하게 되고, 따라서 체력적으로도 저하가 되어 나중에는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는 상황에 있다가 죽고 마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이 아이의 경우에는 귀신이 상주하여 있는 상황입니다. 그 부모가 집에 가두어 놓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귀신은 불에 있으면 발작을 일으켜 불 속에 넘어지게 만들고, 물이 있으면 물에 빠지도록 만들어 버리는 상당히 힘이 센 귀신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의 꾸짖음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산에 함께 올라가지 못하고 밑에 남아있던 9명의 제자는 매우 난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리 중에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제자들이 간질병 환자를 고치지 못하자 비난을 서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회만 있으면 예수님을 비판하고 해하려고 하는 무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것은 제자들이 결코 아닙니다. 물론 제자들도 책망을 받아야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꾸짖지 않으시고 무리들을 향하여 꾸짖으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기에 이렇게까지 책망을 하셨을까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라는 말은 헬라어에서는 믿음이 적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믿음이 전혀 없는(아피스토스:ἄπιστο) 것을 뜻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곧 불신앙입니다. 즉 예수님의 꾸짖음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스스로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자처했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간질병으로 고생한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이와 그 가족의 아픔에 대한 위로와 격려나 물질적인 도움보다는 오히려 ‘정결법’에 의한 엄한 규칙으로 많은 제약을 가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 사이는 서로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여 주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선생 혹은 메시아로 부각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방하고 몰아낼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귀신들린 간질병 환자를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자 이에 비방을 쏟아내었습니다. 환자와 그 가족의 아픔에 대한 연민이나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이런 상황에 예수님과 제자들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패역한 마음에 통분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럴 수가 있습니다. 남이 아프거나 잘못된 경우를 보게 되면, 먼저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가 쉽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이런 한 마디는 상대방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진정한 성도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이 말씀도 역시 제자들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인 무리 중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있었고, 이들은 계속하여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주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기적과 이사들과 병을 고쳐주시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영육간에 참 의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고 하는 말씀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예수님의 치료하심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이 말씀 속에는 두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즉 영의 세계(靈界)의 지배자가 바로 주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귀신이 꼼짝 못하고 명령에 쫓겨났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아이는 그때부터 나았습니다. 이 낫는 것은 물질계의 현상입니다. 주님은 영계와 물질계의 주인이십니다. 천지만물과 영적인 존재인 천사들과 귀신들도 모두 주님의 손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주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귀신들린 자들 치료하시고 모든 각색 병든 자를 고치시는 것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의 연약함 믿음을 이끄시면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을 통하여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죄를 대적하며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고, 또한 의심이 많기 때문에 병든 자를 고치시는 일과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하면서 믿음을 일으켜 세우시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만들어 주시며, 참 제자가 되어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따라오도록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4. 제자들의 깨우침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제자들은 아마 매우 답답하지 않았을까요? 한편으로는 주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제자들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이런 권세를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그리고 그 권세를 행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 제자들은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의문을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귀신은 더럽고 추하고 악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로 하여금 간질을 일으키게 하여 불과 물에 넘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악한 귀신은 주님의 권세에 복종하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인 12사도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에게도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귀신의 유혹이 넘어가지 말아야 하고, 귀신의 잘못된 속삭임이나 영향으로 인하여 성도로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귀신은 결코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명령을 내리면 반드시 복종하고 쫓겨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믿음이 적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실 때에 사용하셨습니다. 비록 이들은 적은 믿음으로 인하여 책망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믿음이 없는” 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먼저 적은 믿음을 책망하신 후에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을 겨자씨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겨자는 매우 작은 것이지만, 일단 심겨져 자라게 되면 공중의 새가 날아와 그 가지에 집을 지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겨자씨만큼의 믿음’이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을 가지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산’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커다란 문제, 또는 어려움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라도 생명령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겨자씨와 같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해결할 수가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가는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원인을 묻자 예수님께서는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으니라.”(막 9:29)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은 어쩌면 교만에 빠져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권세를 받아 이미 능력을 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충분하게 쫓아낼 수 있을 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능력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은 결과로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혜나 경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함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믿음이 부족하게 되면 아주 작은 일에도 주저하게 됩니다. 믿음이 약하면 권세 앞에서 주님을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믿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기도 하지만, 믿음을 가꾸고 유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지 않게 되면 우리의 영혼이 병이 들게 됩니다. 영혼이 병이 들게 되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되고, 믿음으로 행하기보다는 세상적인 것을 좇아가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생활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악한 원수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인 귀신이 매우 좋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병든 자도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믿음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겨자씨가 커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조금씩조금씩 자라나는 믿음이 언젠가 큰 나무와 같이 될 때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한다(약 5:15)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을 받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기 쉬운 성경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0) | 2011.02.12 |
---|---|
생명과 성령의 법 (0) | 2011.02.05 |
인생의 유라굴로 (0) | 2011.01.22 |
쟁기를 잡고 (0) | 2011.01.16 |
두 아들의 비유 (0) | 2010.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