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송구영신 예배 - 하나님만 바람이여 시편 62편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으로 기억이 되는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의 소유자였고, 때때로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그 때마다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았으며, 또한 당시대의 백성들이나 후대 사람들도 다윗을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토록 유명한 왕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표면적인 모습만을 볼 때에 매우 행복하고 평안하고 즐겁고 기쁘게만 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그토록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르기 전 10년간은 사울 왕으로부터, 또한 등극한 후에는 정적들로부터 심지어는 아들에게까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면 왜 다윗 왕은 그렇게 정적이 많았을까요? 처세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요? 정치를 잘 못한 것은 아닐까요? 그도 인간이기에 실수도 하고 잘못한 일도 있고 하나님께 범죄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범한 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이 고통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의 사람이었다는 것에 있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신본주의적인 그에게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인본주의자들로 인한 도전과 끝없는 핍박과 위협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우리는 먼저 염두에 두고 시편 62편 말씀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그 어떤 악한 상황이라도 이겨내며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의 삶의 근거요, 참된 소망의 대상으로 믿고 고백하며 의지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토록 파란만장한 격랑의 세월을 살았지만 여호와를 향한 절대적인 신앙으로 그 험한 세파를 뛰어넘고 극복하여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침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나침반은 두 뾰족한 끝이 한 쪽은 북쪽으로 또 다른 한쪽은 남쪽을 향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네비게인션’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차 안에도 설치하고, 자전거에도 매달고, 등산갈 때에도 사용하고, 휴대 전화기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찾아가고자 하는 곳을 정확하게 위성을 통하여 가르쳐주기 때문에 매우 유용한 기계입니다.
나침반은 배를 타는 사람들이나, 산에 오르는 사람이나, 전쟁할 때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위치를 알 수 없을 때에 이 나침반을 보고 위치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망망대해에 별도 없는 밤이라면 그 누구도 위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에 나침반을 보면 찾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할지 몰라서 방황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나를 인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릴 때에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인도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장성한 후에는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요? 주위 사람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다 스스로 자신의 갈 길을 잘 찾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나만 갈 길을 몰라 헤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에는 친구도 만나기가 꺼려질 수가 있습니다. 도무지 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가 바로 우리 인생에도 나침반과 같은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는 시기일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방향을 잘 잡고 달려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면 방향을 잘 잡고 내가 잘 살아 온 것 같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지난 해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갈 방향을 잘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방향을 설정하였다면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갈 길을 정했으면 그 길을 가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생들은 머리가 너무 좋기 때문에, 혹시나 잘못 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잘 못 정한 것은 아닐까? 다른 방향이 더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내가 바로 생각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의심하게 되고 방향을 수정하여 오히려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럴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생활의 나침반, 인생의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다윗 왕은 그 나침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정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에라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새해에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나침반으로 삼아 믿고 따르는 가운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믿음의 길을 걸어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크신 은총을 듬뿍 받는 한 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영혼이라 함은 내 모든 것을 말합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영혼’입니다. 즉 나의 전인격을 모두 총동원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의 뜻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겠다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세상적인 그 어떤 편법이나 불신자들의 행위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내 전인격을 하나님께 의뢰하겠다는 뜻입니다.
내 뜻이 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내 의지가 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세상적인 것에서도 유익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뜻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내가 앞서 나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여 나중에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결코 변개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우리의 평생을 책임을 지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변개하심이 있을 있겠습니까? 어찌 식언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반석이 되시며, 산성이 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적자들은 어떤 행동을 합니까?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4)고 하였습니다. 원수 마귀는 다윗을 왕의 자리에서 떨어뜨리려고 항상 획책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성도라는 자리에서 떨어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못하도록 타락을 항상 유도합니다. 원수 마귀의 입술은 우리의 귀에는 달콤하게 들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속마음은 항상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원수 마귀의 궤계입니다. 원수는 양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나오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마 7:15). 종말이 가까워올수록 이런 악한 자들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성도들은 더욱 영적으로 경성하여 저들에게 미혹당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항상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서기 위해서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보호하시며(시 17:8), 지키시기에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시 121:4).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와 사랑하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즐겨하고, 내 마음을 하나님께 토로해야 합니다.(8)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한다는 말은 물을 쏟아 깨끗하게 비워 버리듯이 마음 속에 감추인 모든 것들, 좋은 것, 선한 것은 물론이요, 악한 것들,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들도, 부끄러운 것들도 모두 내어 놓는 것입니다. 즉 내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신뢰하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전의지적 결단으로 새해에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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