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설교

2011년 삼일절 설교

chukang 2011. 2. 26. 20:39

 

압제에서 벗어나는 길 (2011년 3.1절) 사사기 6:1-10

 

 

  아프리카 튀니지에서는 경제 사정 악화로 한 대졸 노점상 청년의 분신함으로 촉발되어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23년 동안의 독재 정치를 무너뜨렸으며, 이 영향을 받은 중동의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30년 동안 독재 정치를 한 무라바트 정권을 붕괴시켰고, 리비아는 카다피가 42년 째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의 영향을 받은 반정부 세력들과 정부 세력이 충돌하여 내전상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사우디 왕국에서는 젊은이들을 회유하는 정책을 내놓고 공무원은 15% 임금 인상을 하는 등 민주화 바람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공식일정을 모두 취소하였으며, 휴대 전화를 차단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도 비록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한 국가의 통치자가 독재를 하게 되면 언젠가는 이렇게 국민들이 봉기하여 민주화를 요구하게 되고, 단 한 번에 민주화가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점차 민주화의 길을 가게 되거나, 또 다른 독재자가 출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재와 군부 정치의 탄압에 대한 시위는 민주화로 갈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의 독재 정치에 대한 저항도 이렇게 대단합니다. 하물며 외세의 침입에 대한 그 저항은 어떻겠습니까? 먼저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침입과 압제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때에 어떻게 하였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미디안 침입의 원인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라고 그 원인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또”라는 단어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또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에게 절하는 악을 행하였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돌보심에 의한 태평시대는 끝나고 징계의 시대, 징벌의 시대, 흑암의 시대가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에게 ‘미디안’이라는 나라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고통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처 그두라 사이에서 태어난 미디안의 후손들입니다(창 25:1-4).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했을 때에 이들 종족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그 징계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악’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악은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은 주기적이라고 할 만큼 하나님을 배신하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일을 거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이 배신하는 것을 그대로 두실 수 없었습니다. 이들을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구원’과 직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하는 이유는 영적인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육신의 질병도 매우 힘든 것이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인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육신이 아프게 되면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 것인지, 어떻게 처방을 하면 고칠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있지만, 영혼의 병이 들게 되면 그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적인 병은 당연히 악한 영,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성도에게 접근할 때에 두렵거나 무서운 모습으로 혹은 갑작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부드럽게, 은밀하게, 바른 길로 인도하며 도움을 주는 존재로 속삭이며 광명의 천사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좀이 먹듯이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영혼을 갉아 먹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 암이라고 하는 무서운 질병이 걸렸을 때에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서 알게 되면 그 때는 온 몸 구석구석에 전이가 되어 수술조차 할 수가 없게 되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암의 원인은 너무나 많이 있지만, 주요한 원인은 불과 몇 가지가 되지 않습니다. 공해 물질에 장시간 노출이 될 때에, 좋지 않은 음식을 장기간 복용할 때가 가장 많이 있습니다. 공해 물질이나 나쁜 음식물과 처음 접촉하고 먹을 때에는 결코 나쁜 증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축적이 되어 몸에 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우상과 접촉을 하였고 마침내 우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 주변에는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나쁜 요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영혼에 침입하여 우리들을 사단의 졸개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은 단 한 번의 실수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백 년 이백 년 부패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침입의 결과

  미디안이 침입하여 점령하고 압제하기 시작하자, 그 당하는 고통은 말할 수 없는 너무나 힘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산으로 도망하였습니다. 토굴을 파고 생활을 하는가 하면, 미디안이 식량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굶주린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산지는 석회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천연 동굴이 많이 있었으며, 급류로 인한 구멍도 많이 있었고, 굴을 파기에 용이했기 때문에 산으로 도망하게 된 것입니다. 산에서 구멍과 산성을 만들었다는 것은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피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식량을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하겠습니다.

  4절을 보면 “토지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침입의 목적이 농산물 탈취와 땅의 폐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로 쳐들어오는 때는 3절에 보면 “파종할 때”라고 하였습니다. 즉 계절적인 침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굴에 파종할 씨와 먹을 식량을 숨겨 두었던 것입니다. 미디안과 그 동맹국들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가사에 이르기까지 즉 팔레스타인의 동북쪽에서부터 기습하여 들어와서 남서부 해안 평야에 이르는 전지역에 걸쳐서 약탈을 자행하였던 것입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한 것은 운요호 사건 때입니다. 조선이 문호개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일본은 열강 세력에 앞서 조선 진출을 시도하는 계획이 늦어짐에 따라 그 타개책으로 무력시위로써 조선당국을 굴복시키고자 군함 5척을 조선 연해에 파견하기로 결정한 뒤 운요호를 파견하였습니다. 자신들이 개항을 강요당했던 그 수법을 자신들이 조선에 써먹고자 한 것입니다.

  1875년(고종 12년) 일본 정부는 군함 운요호와 다른 한 척을 부산항에 정박시켜 함포 시위를 하고, 운요호는 다시 영흥만에까지 북항하여 해로의 측량과 시위를 겸하고 돌아갔습니다.

  음력 8월 21일(양력 9월 20일)에 일본군은 강화도 동남쪽 난지도(蘭芝島) 부근에 정박하고 담수(淡水)를 구한다는 구실로 보트에 군인을 분승시켜 연안을 정탐하면서 강화도의 초지진(草芝鎭) 포대까지 접근하였습니다. 이 때에 앞선 무기를 앞세은 일본과의 싸움에서 조선군은 전사자 35명, 포로 16명을 내고, 대포 35문, 화승총 130여 정과 무수한 군기 등을 약탈당하였으며, 일본군은 단지 2명의 경상자만 냈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포격전의 책임을 조선에 돌렸으며, 아울러 무력을 배경으로 개항을 강요하였습니다.

  1876년(고종 13년) 일본은 전권대사를 조선에 파견하여 운요호 포격에 대한 힐문(詰問)과 개항 요구를 강요했습니다. 그해 2월에 일본 사신 일행이 군함 5척으로 강화도에 이르러 조선 정부에 담판을 요구하여 왔습니다. 조선 정부에서는 중신회담을 거듭한 끝에, 국제 관계의 대세에 따라 수호조약 체결 교섭에 응하기로 하고, 전권대신을 강화도에 파견하여, 조선·일본 양국 사이에 1876년 음력 2월 3일 강화도 조약의 조인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약의 내용을 보면, 조선의 3개 항구를 개항함. (부산, 인천, 원산항구), 일본 상인의 상업권을 인정함. 일본인은 조선의 연안을 마음대로 측량할 수 있음. 일본인의 범죄는 일본 영사가 재판하는 것 등입니다. 이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첫 번째 근대적 조약인 동시에, 무력적 강요로 맺은 불평등 조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후 조선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어 개화 정책이 활발해지기는 했지만, 조선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침략이 용이하게 되었으며, 조선의 생활은 급속도로 악화가 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도 역시 조선의 무지와 부패로 인한 국력의 약화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조선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을 통하여 실질적인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조약이 이루어지던 날은 특히 날씨가 매우 음침하여, 그 후론 좋지 않은 날씨가 되면 ‘을씨년스럽다.’는 말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을사보호조약’을 하던 해가 ‘을사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한 제국 융희 4년(1910)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강압으로 전문 팔 조(八條)로 대한 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넘겨주고 합병을 수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후로 우리나라의 자원은 모두 일본과 세계 열강에 빼앗기고 특히 쌀은 일본으로 반출이 되어 먹을 것이 없게 되고, 전쟁 물자 충당하기 위하여 집에 있는 놋그릇까지도 다 빼앗기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징용되어 전쟁터에 나가서 죽고, 어린 소녀와 부녀자까지 잡아가서 ‘정신대’가 되어 그들의 영혼과 육체가 죽거나 파멸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도 정신대 강제 징집을 부인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3. 이스라엘의 회개

  이스라엘은 7년간 계속된 미디안의 약탈과 황폐화 전략으로 극심한 경제적 궁핍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부르짖음은 간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배부르고 따뜻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제멋대로 살며 우상숭배를 하더니, 이제 힘드니까 견디다 못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이, 다른 나라가 하나님을 떠날 때는 언제고, 다시 살려달라고 애원하느냐고 비웃으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주저할 수도 있고 자존심이 상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것 필요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는 것, 그것이 바로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요, 나의 옥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가 정말 좋은 것이죠.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을 했어도, 무슨 잘못이 있어도 다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내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회개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회개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 회개하도록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1910년 한일병탄조약이 성립되고 국권을 잃은 우리 민족의 모든 종교가 대한독립을 열망하였지만, 그 중에서 앞장 선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일본은 우리의 민족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기독교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을 말살시키려고 했습니다. 예배당에 성도를 가두고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지른 것을 보아도 얼마나 기독교를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잡신을 섬기는 일본이지만 하나님이라고 하는 유일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떨고 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주교는 탈 정치를 내세워 전혀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귀신을 섬기는 유교는 대부분이 일제에 매수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조선왕조의 회복을 원했지 근대국가를 세우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아무도 독립선언문을 만드는 것에나 만세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시작되는 독립선언문을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낭독하며 독립을 선포하였습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한 업적 중에 가장 큰 것 3가지를 짚어보면, 첫째 교육기관 설립, 둘째 미신타파, 셋째 축첩 폐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학교를 세워 그리스도 안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주며, 자유로운 세계를 소망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앞장서서 연락망을 구축하고, 숨어서 태극기를 그렸던 것입니다.

  “삼일 만세운동은 한 번으로 끝나는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날을 시작으로 전국각지로 확산되었고, 해외의 동포들도 참여했습니다. 삼일운동에 참여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총칼 앞에 쓰러지며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운동은 1919년 3월1일부터 1920년까지도 계속 되었고 우리나라 외에도 미국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기간에 총 피해 집계는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체포 46948명 불에 타버린 교회가 47동 민가가 715동 소학교 2동 등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제일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교회와 목회자와 교인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집회를 교회와 교역자들이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손병희 열사는 33인중 15명의 천도교인중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재판정에서 삼일운동 참여의 동기를 묻는 판사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우리는 남의 자유를 존중하라는 하늘의 뜻을 따를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천도교에서 주장하는 대로 천도교의 교리는 기독교, 유교, 불교 등에서 좋은 점만 발췌하여 교리를 만들었다고 하므로, 손병희 열사가 '하나님'을 거론한 것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33인 중 기독교인은 16명이며, 불교에서는 2명만이 참여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또 다시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TV에서 앞장서서 미신, 무당을 내세우고, 무당들이 주장하는 죽은 귀신과 산 사람의 영혼이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 ‘빙의’라는 자막을 수시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대한민국을 또 다시 멸망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 한 사람만의 구원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 함께 구원을 받기를 원하는 종교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B. C. 586년 아빕월 9일을 국치일로 삼아 예레미야 애가를 낭독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악한 영이 나를 조종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비도덕적이거나 비정상적인 행위나 생각을 할 때에 그 때는 영적인 병에 걸려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영적인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도 회개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영이 마귀에게 눌려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악한 영을 대적하고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앞선 세대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하고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후대에게 믿음의 조국을 남겨 줄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존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회개만이 살길입니다. 우리를 침범하는 물질의 압박, 영적인 압박, 교만의 압박, 그리고 세계 강국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기도하며 물리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를 영적으로 강한 군사로 만들고, 내 가족과 내 나라와 내 민족이 하나님 안에 강건하게 바로 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