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제31장 강해 - 후계자 여호수아
제31-34장까지는 모세의 죽음과 새 지도자 여호수아의 등장으로 출애굽 시대가 막을 내리고 가나안 정복 시대가 개막되기까지의 역사의 전환기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입성을 두 달 열흘 정도 앞두고 모압 평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1-8절은 하나님의 가나안 정복 명령을 각성시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으로 가나안 정복에 성공할 것이라는 격려를 하고 있습니다. 9-13절은 모세가 가나안 입성 이후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定期) 면제년인 초막절에 율법을 낭송하고, 또 그 후손들로 하여금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도록 만들라는 지시를 남기고 있습니다. 14-29절은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한 책을 언약궤 옆에 보전하도록 시켰으며, 여호와께서 임종이 가까운 모세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다음 장에 기록된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한 사실이 기록되었습니다.
1: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베푸니라.
‘가서’는 단지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리 마음에 계획하고 있던 것을 행동에 옮기기 위해 결단성 있게 일어서는 것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이제 지금까지의 모든 설교를 종결함과 동시에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작정한 말씀들을 백성들에게 유언으로 남기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남은 백성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백성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으로 백성들 앞에 나선 것입니다.
2: 곧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일백 이십 세라 내가 더는 출입하기 능치 못하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 위하여 바로 앞에 섰을 때가 80세이며, 그 후로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살아온 파란만장한 그의 삶은 참으로 수고와 슬픔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건해야 80인 인생을 지나 40여년을 기력도 쇠함이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가 모든 사역을 마무리하고 후계자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해야 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자신의 나이를 언급한 것은 지난 과거 살아온 생애에 대한 감회와 여호와의 은혜를 인해 만족함을 표하기 위함입니다.
모세가 비록 다른 사람에 비해 죽을 때까지 건강하였다고 하지만, 그의 나이는 속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끝나고 이제 후계자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지도자는 자신이 일할 때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어야 할 때를 바로 깨닫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가 너를 거느리고 건널 것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네 앞서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너로 그 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모세는 자신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인도할 지도자 여호수아를 언급하면서 반드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로 더불어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실 것이라는 약속(3:28;9:3)을 회상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모세가 지도자 자리에서 떠날 경우 지도자의 부재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장래를 염려하는 백성들에게 안도와 위로를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밝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인도자는 모세도 아니고 여호수아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4: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가나안 진군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였지만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가장 분명하게 거부한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멸한 사건을 회상할 때,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까지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붙이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붙이다’ 는 ‘주다, 허락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멸하시도록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약속의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정복의 과정이 필요한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의 멸망을 수행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으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진두지휘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6: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원문에는 ‘마음’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고 단지 ‘강하라, 담대하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하다’는 말은 ‘꽉 잡다, 달라붙다’는 뜻으로 손에 힘이 있어서 무엇을 잡고 놓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심리적인 의미도 강하게 들어 있습니다. ‘담대하다’는 말은 무릎이나 허리에 힘이 있는 상태로 이것은 육체적으로 힘을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분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정탐꾼들의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의 장대함을 보고 원망하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옛일을 생각하고 그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너로 실패하도록 방심하거나 방치해 버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자상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했던 당부의 말을 또 한 번 여호수아에게 개인적으로 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 회중 앞에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는 차기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부각시킴으로써 백성들이 그를 순순히 따르도록 하고, 또 여호수아에게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일깨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의 위임식은 이후에 거행이 되었습니다.
8: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여기에서 ‘두려워하다’는 말은 상대방의 위세와 권위에 눌려 경외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놀라다’는 ‘넓어지다’는 뜻으로 파괴나 패망 따위를 미리 생각하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의 군사력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패배할 것이라고 근심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9: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모세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필요한 종교법(제사법, 의식법), 도덕법, 사회법 등의 율법을 적어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두 지도자 계급에게 주었습니다. 제사장은 이 율법을 언약궤 옆에 보관하며 모든 백성들이 이 율법대로 행하는지 감독하는 역할을 맡고, 장로들은 이 율법들을 주고 시행하는 책임을 맡습니다. 이런 조치는 이스라엘의 삶의 기준인 율법의 말씀을 가르치며 그것을 지키도록 하는 권위와 의무가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10: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초막절은 면제년, 곧 안식년의 7월 15일부터 7일간 지키는 절기로 안식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레위 25:9). 이 때에는 출애굽의 해방과 광야에서의 장막 생활을 기념하고 땅의 소출에 대한 수확을 감사하게 됩니다(16:13-15). 이러한 초막절에 율법을 공개적으로 낭송하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지식으로 습득하게 하고, 감사의 절기에 맞추어 더욱 여호와를 경외하고 율법을 지켜 행하도록 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율법 낭송은 법궤가 놓여 있는 중앙 성소에서 온 회중을 모이게 한 뒤에 시행케 했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정기적으로 언약의 율법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언약서에 규정된 복을 온전히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새롭게 헌신하는 삶이 필요함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12: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 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속한 자는 어린이나 객을 무론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율법을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율법이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하나님 앞에서 ‘회중으로서의 모임(교회)’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공동체 전체의 성숙을 위해서는 이렇게 함께 모여 말씀을 듣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말세의 성도들에게는 함께 모여서 말씀을 나누는 기회를 더욱 자주 가져야 할 것입니다.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소유하며 살아갈 것임을 분명하게 확신하는 말입니다. 그 땅에서의 삶을 위해서 반드시 율법이 필요한 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와 후손에게까지 여호와의 말씀이 삶의 목표이자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들은 출애굽의 경험과 율법의 말씀을 잘 모르는 자녀들에게 힘써 가르쳐야 했습니다(신 6:4-9).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순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회막’은 ‘만남의 장막’(the tent of meeting)입니다. 이 명칭은 이스라엘이 주로 장막 혹은 성막 앞에 모여 중요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출 33:7;39:32). 이외에도 증거막, 법박, 여호와의 전, 성막 등으로도 불립니다. ‘명을 내리리라’는 ‘짐을 맡기다, 지명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어떤 사람에게 정식으로 직분을 주어 책임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정식으로 위임식을 거행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그 권한을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1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문 위에 머물렀더라.
여호와께서는 종종 그름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는데(출 33:7-11; 40:34-38; 레 16:2; 민 12:5), 이 때에 구름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를 상징하고(왕상 8:10; 대하 5:13,14), 하나님의 현현과 계시의 진리가 어느 정도 신비 가운데 가리워져 있음을 뜻합니다.(마 17:5) 그러나 하나님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
이는 후대 이스라엘의 왕이 죽었을 때에도 종종 언급된 표현으로(왕상 22:50; 왕하 20:21) 여호와께서 주신 사명을 훌륭히 마치고 죽었을 때 사용되었습니다(창 25:8; 49:29,33). 따라서 ‘열조와 함께 잔다’는 것은 열조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부활 때에 함께 일어날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열조와 함께 잠들 모세와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우상을 섬기며 언약을 파기할 것이 예언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언약의 율법을 성취할 수 없음을 미리 공시한 것으로 장차 율법을 성취하실 그리스도의 도래(마 5:17)를 예표합니다.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유혹에 빠져서 서서히 끌려갈 것입니다.
17,18: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 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얼굴’은 종종 그 사람의 인격적인 면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에게로 얼굴을 향하여 든다고 할 때 그것은 깊은 애정과 관심, 혹은 보호, 관찰 등을 의미합니다(민 6:25; 대상 16:11; 대하 7:14; 시 4:6; 13:1). 얼굴을 숨기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돌보시지도, 관심도 기울이시지도 않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관심을 끊으시는 이유는 구원의 손이 짧거나 듣는 귀가 둔하여서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관영한 죄악 때문입니다. ‘삼키다’는 말은 흔적도 없이 송두리째 잡아 삼키는 것으로 완전하고 두려운 파멸을 암시합니다.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지금 모세와 여호수아는 함께 여호와 앞에 서서 이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는 32장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배반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노래를 가리킵니다. 아마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은 모세일 것이고 여호수아는 그것을 받아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언약을 파기한 책임이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깨닫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후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저주의 재앙을 받게 될 때에, 그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힐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증거로 하여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원망할 수 없으며 오직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의 자비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20: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맹세하신바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결과 이스라엘은 복을 받고 번영 속에 살게 되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이방신을 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배교행위는 단지 그들이 풍성함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결과이며, 그들의 풍성과 번영이 눈에 보이는 이방신들을 섬김으로써 나타난 결과인 줄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입성 후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풍요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가나안 족속의 신에 미혹되어 자기들의 번영을 그 신들에게 구하고, 또한 풍요해진 자들까지도 그 복이 이방신들에게서 왔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든지 자기를 위해서든지 아무 형상이나 주상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며, 그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고 그들이 섬기는 신의 단을 헐지 아니하며, 오히려 이방의 신들을 섬기고 그곳에서 자기를 위한 신상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죄악들입니다.
21: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여호와 앞에서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불행을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 탓으로 돌릴 만한 변명거리를 조금만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완고하고 패역한 그들이 여호와 앞에 결코 자복하고 회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르게 될 노래를 증인으로 세워 그들이 배역하지 않도록 하고 또한 회개하고 돌아오는데 필요한 자극제로 사용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그들이 꾸미고 있는 계획을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깊은 곳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에(잠 20:27),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기도 전에 생각하고 소망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호 5:3).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성실하게 섬길 것을 생각하기보다 지긋지긋한 광야생활 대신 편하고 배부르게 살 것을 더 많이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22: 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
모세가 이렇게 신속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한 것은 이 증거의 노래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사실과 그의 순종이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 증거의 노래는 신명기의 부록으로 첨가되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언약 생신 의식으로 사용하도록 이스라엘에게 가르쳐야 했던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최초입니다. 여호수아는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지도자권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위임 받은 것입니다.
24-26: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모세는 즉시 율법을 썼고, 레위인을 시켜 언약궤 옆에 두게 하였습니다. 언약궤를 메는 레위인은 일반 레위인이 아니라 레위 제사 장입니다(수 3:14; 6:6). 광야 생활 중에는 고핫 자손이 메고 다녔지만 만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메는 의식은 레위 제사장들에 의해 준비되었고 또 모든 의식을 행할 때에도 그들이 언약을 메었기 때문에 언약궤에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은 레위 제사장들이었습니다.(수 3:3; 4:9, 10: 왕상 8:3)
27: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을 거스려 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집과 완악함을 지적하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습성을 말씀하신 것에 대해(20, 21) 모세가 전적으로 동감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생전에도 강퍅했던 이스라엘이 모세 사후에는 더욱 그럴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에 이 율법책으로 증거를 삼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유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리고 그들에게 천지로 증거를 삼으리라.
장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각 성읍에서 재판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21:2). 그리고 유사는 서기관 업무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실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로서 재판관의 보조 역할도 합니다(16:18; 20:5). 모세가 이들을 모이게 한 것은 율법의 말씀을 생활 전반에 엄격히 적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떠한 범죄도 결코 용납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 위함입니다. 모세가 ‘천지를 증거’로 삼는 것은 그만큼 절대성과 확실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너희가 스스로 부패케 하고 또 부패케 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성을 보여주며 죄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음을 보여줍니다.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 율법을 거스리는 모든 악한 행위로서 특히 우상 숭배와 이방의 풍습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말세는 직역하면 ‘ 그 날들의 말미에’라는 뜻입니다. 4:30에서 ‘끝날에’, 민 24:14에서는 ‘후일에’로 번역되고 있는데, 세상의 종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단지 불특정한 미래 시점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정된 생활을 하는 중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악에 침잠해 있는 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빠져 멸망하는 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마음껏 범죄한 이후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30: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게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잃어 들리니라.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총회’는 국가적인 거사를 시행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모이는 모임(23:1; 민 16:2)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대표인 장로들과 유사들의 모임을 칭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 대표들 앞에서 직접 노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그들의 책임을 더욱 강하게 느끼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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