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신명기 제33장 강해 - 모세의 축복

chukang 2011. 1. 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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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제33장 강해 모세의 축복

 

 

  임종을 앞둔 모세가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복자로서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 축복은 이스라엘을 향한 모세의 간절한 소망을 피력한 기도인 동시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보여주는 예언입니다. 1-4절은 서론으로 선포하는 축복의 내용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5-25절은 12지파에게 구체적인 축복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들 각 지파에게 주어진 축복의 내용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각 지파마다 다르기도 합니다. 즉 이들 12지파가 함께 단합해야만 온전한 나라를 이를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교회도 한 사람 한 사람 지체가 되고 이 지체들이 하나로 뭉칠 때 온전한 교회를 형성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칭한 것은 모세5경에서는 여기뿐입니다(수 14:6; 시 90:1).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는 선지자들과 왕 등 하나님의 특별한 종들에게 붙여졌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칭호가 주어졌습니다(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고대 근동 지역에서 임종 시의 유언은 결코 변개시킬 수 없는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친은 자기 아들들에게 모든 축복의 유언을 남기곤 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축복의 유언을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의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2: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같은 율법이 있도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의 역사를 축약하여 시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시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곳이며, 율법을 주시기 위해 영광 중에 현현하신 ‘시내 산’(출 19:180입니다.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은 시내 산의 동편 에돔 인의 산지를 가리킵니다. 세일 산 쪽 즉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서서히 빛을 발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바란 산은 그 위치를 정확히 모르지만, 가데스 바네아의 남쪽 바란 광야의 고지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곳에서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빛으로 빛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여호와의 영광과 위엄의 빛이 광야의 동쪽과 북쪽 끝까지 이스라엘 위에 장엄하게 나타났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은혜와 임재의 영광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이는 ‘거룩한 자 일만으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거룩한 자는 천사로 해석하고 있습니다(칼빈, 케일, 알렉산더). 그리고 일만이라는 숫자는 정확한 일만 명이 아니라, 수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수많은 천군천사 가운데서 강림하셨다는 표현입니다. ‘불 같은 율법’ 은 ‘율법의 불’이라는 것으로, ‘탈굼역’(Targum of onkelos)에서는 ‘그가 불가운데서 쓴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도다.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히 구별되어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속하여 그를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오래 참는 사랑과, 이스라엘의 온전한 섬김이 대단히 이상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저희 각자가 그 말씀을 듣고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주의 거룩한 백성들이 겸손히 주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말씀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하여 시내 산으로 영광스럽게 임재하셨는데,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명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입장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도 율법을 받아야 하는 회중에 속하였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그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야곱의 총회의 기업’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기업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모든 복이 율법을 순종할 때에 주어지는 것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5: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

  ‘여수룬’은 ‘의롭다, 정직하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의인, 정직한 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종종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하신 백성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별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33:5, 26; 사 44:2) 왕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율법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양자간에 언약적 관계가 성립이 되었으며 여호와는 이제 신정 국가의 왕으로 옹립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의 것이고 나라는 여호와의 것입니다.

 

 

6: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

  르우벤 종족의 보존을 위한 축복은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고 한 야곱의 축복과 연관되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비의 침상을 더럽힌 죄로 결코 탁월치 못한다는(창 49:4) 저주를 받기는 했지만 르우벤 지파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기력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 종족은 반드시 보존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7: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유다 지파의 탁월함과 중요성 때문에 레위 지파보다 먼저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에게는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달라는 것이며, 나아가 유다 지파의 지도력 혹은 이스라엘의 왕적 지위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라고 축복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전쟁에서도 유다 지파가 선두에 서서 진행하고(민 2:9), 지도력을 발휘하며(삿 1:3),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의 왕족 지파가 됨으로써(삼하 5:1,2)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유다지파의 태생이라는 사실에서 유다 지파를 위한 축복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관련이 됩니다.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둠밈은 ‘온전함’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하고, 우림은 ‘빛의 비췸’ 즉 조명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속성 또는 하나님의 사역의 특성을 나타냅니다. 우림과 둠밈은 대제사장이 여호와 앞에서 어떤 재판을 행하거나 뜻을 물을 때에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제비(lot)와 같이 판결을 내릴 때 사용했습니다(출 28:30). 즉 레위 지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공의로운 속성이 드러나야 했음을 의미합니다. ‘주의 경건한 자’는 좁게는 대제사장, 넓게는 레위 지파 전체를 가리킵니다. 대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뜻하고 이는 대제사장의 권위의 근원이 됩니다. 맛사와 므리바는 백성들이 물이 없어 원망한 곳입니다. 차이점은 맛사에서는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 순종하였으나, 므리바에서는 그의 혈기로 반석을 두 번 쳐서 여호와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점입니다(민 20:1-13). ‘그를 시험하시고’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직접적으로 모세를 가리키고, 간접적으로는 아론을 포함한 레위 지파를 의미합니다.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맛사와 므리바 사건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모세와 아론, 곧 레위 지파에게 시험을 주는 것이었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시려 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9: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온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숭배하였을 때 레위 지파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그 형제들을 용납하지 않고 살육한 일을 암시합니다(출 32:25-29). 이 때에 레위 지파는 의로운 헌신으로 말미암아 과거 그들의 조상 레위가 행한 범죄(창 34:25-29)에 대한 저주(창 49:5-7)를 복을 받꿀 수 있었습니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

  레위 지파의 2 가지 직분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가르치며, 가르침이 실생활에서 시행되고 있는 지를 살피는 교육의 직무입니다. 둘째는 여호와 앞에 희생 제사를 드리는 예배 인도의 직무입니다(레위 10:11).

 

 

11: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레위 지파는 기업을 분배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재산이라고는 고작해야 자기 가옥이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소규모의 재산(18:8; 레위 25:32,33) 등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은 백성들의 십일조로 생계를 이어나갈 뿐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재산이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저들에게 풍족한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이 성전 봉사를 기쁘게 받으실 것이기도하며, 또한 과거 고라 자손들이 모세를 시기하여 당을 짓고 대적한 일을 염두에 두어 그들의 지위를 확고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12: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맞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로 베냐민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모세도 이런 베냐민 지파를 여호와의 사랑을 입도록 축복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은 지존자 하나님의 곁을 피난처로 삼아 안전하게 된다는 축복입니다.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로다.’ 어깨 사이는 등 위에, 혹은 목 위에라는 해석이 될 수 있는데, 아버지가 아기를 목마 태운 모양, 혹은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등에 태운 것과 같은 자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지파를 항상 곁에 두시고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13: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요셉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가나안 땅 분배시 가장 기름진 땅들을 분배 받았습니다(수 16:1-17; 18).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 되어진 것인데(28:11,12), 땅의 소산물이 기름지고 풍성한 열매가 맺도록 이슬과 비를 때에 따라 적당하게 내려주시고 물을 풍족하게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14: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

  이는 식물의 결실이 태양과 달에 의해 크게 좌우됨을 표현한 것으로 하나님의 조화로운 창조와 섭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태양과 달이 식물의 성장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알려진 것입니다.  땅의 힘만으로는 식물이 자라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몇 천년 전부터 이처럼 과학적인 모든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성경의 정확성과 하나님의 능력의 무한한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5: 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

  ‘옛‘과 ’영원한‘은 산의 변함없는 특징을 표현한 것으로, 요셉 지파가 거주할 땅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산의 보물‘은 요셉 지파가 거주하면서 경작하는 산의 특산물이나 곡식, 또는 그 산을 덮고 있는 수풀입니다. 높은 산에서는 주로 포도나무나 감람나무 등의 유실수가 잘 되고 구릉지에서는 목초나 밀 재배 등의 수확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6: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 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모세는 호렙 산 기슭 가시떨기 나무에 타는 불로 현현하신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출 3:2-4).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공표하시고 모세로 하여금 출애굽의 역사를 시작하게 하셨으며, 또한 무엇보다 모세가 선 땅을 거룩히 구별하셨던 하나님이 땅의 보물과 거기에 충만한 것을 주신 분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 지파에게 내려지는 땅의 복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형제 중 구별한 자’ 이는 특별히 야곱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애굽 땅에 총리로 미리 예비해 놓으셨던 요셉을 연상한 표현입니다(창 45:5). 그리고 그 후에도 요셉 지파는 물질적인 면에서 군사적인 면에서 막강하여 다른 지파들보다 뛰어나게 구별되었습니다.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이는 축복할 때에 아버지가 아들의 정수리에 손을 얹는 모습에서 연상한 표현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축복한 그대로 복이 임하라는 뜻입니다.

 

 

17: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 끝가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

  ‘첫 수송아지’ 요셉이 르우벤으로부터 장자권을 양도 받았음(대상 5:1,2)을 암시합니다. ‘황소의 위엄’은 ‘제왕의 위엄’을 비유하는 것으로(민 23:22) 요셉 지파가 이스라엘을 영도할 것임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에브라임은 다른 아들들 가운데 가장 강성하였습니다(민 23:22,23). 에브라임 지파에서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이 배출되었으며, 드보라, 기드온, 입다, 야일 등의 사사가 므낫세 지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들소는 힘과 용맹을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결코 굴하지 않는 고집도 있습니다(욥 39:9; 시 22:12). 그리고 들소의 뿔은 바로 요셉 지파의 힘과 용맹과 저돌적인 고집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보다 차자인 에브라임의 힘이 더 승할 것이라는 것은 야곱이 그들에게 축복한 내용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창 48:20).

 

 

18: 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야곱이 레아에게서 얻은 스블론과 잇사갈에 대한 축복이 한데 묶여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둘이 가장 가까운 형제이며, 가나안 땅 분배 시에도 서로 인접해 있습니다(수 19:10-23). ‘나감’은 전쟁터에 나가거나(사 5:18), 상업적인 목적으로 바다로 나가는 것이며, 장막에 있는 것은 내륙지에서 목축과 농사 일에 전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예언은 실제로 스블론이 해변의 항구 도시로 번성하여 무역을 통해 많은 수익을 거두게 되고, 잇사갈은 내륙지에서 목축업에 성공함으로써 성취 되었습니다(사 23:18).

 

 

19: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들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스불론이 외국과의 교역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산’은 여호와의 성소가 있는 ‘시온 산’을 상징하여,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는 것을 암시합니다(사 2:2). 스블론과 잇사갈은 많은 이방인들의 왕래로 혼혈 백성이라는 멸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방 지역에 복음의 빛을 비취게 하는 통로가 되어(사 9:1,2; 마 14,15) 신약 시대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한 복음 전파에도 큰 역할을 당당했습니다. ‘의로운 제사’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제사(시 4:5)를 가리킵니다. 모든 족속들이 그리스도 안에 경배하리라는 메시아적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시 22:27-31). ‘모래에 감추인 보배’ 이는 바다에서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산물, 즉 각종 물고기나 조개 등을 가리키며, 해상 무역을 통한 막대한 수입도 암시합니다.

 

 

20: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갓에 대한 모세의 축복은 용맹성과 호전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갓 지파에게서 용사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대상 12:8).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 갓은 전쟁으로 광활한 영토를 획득하였습니다.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와 더불어 요단 동편의 기름진 광활한 땅을 소유했습니다. 갓은 그들의 호전성과 용맹으로 인하여 영토를 얻었으나 이삭은 그 반대로 온유함으로 인해 넓은 땅을 얻었습니다.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고, 정수리는 지혜 또는 지도권을 상징합니다. 갓 지파는 그 용맹스러움과 전술에 필요한 모략을 겸비하여 대적들을 약탈하고 멸망시킬 것입니다.

 

 

21: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

  갓 지파가 다른 두 지파(르우벤과 므낫세 반지파)와 더불어 가나안 동편 땅을 기업으로 요구하여 그곳에 먼저 거주한 사실을 가리킵니다(3:12-17; 민 32:2-5).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 된 것이로다.’ 그들이 먼저 기업을 택하는 조건으로 가나안 정복 시 선봉에 나서겠다고 모세와 약속했는데(민 32:16-27), 그 약속을 이행할 때에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법 세운 자’는 어떤 법을 결정하고 명령하는 군대의 지휘관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모세가 아니라 갓 지파를 뜻합니다. 갓 지파가 이처럼 지도자로 언급된 것은 그들의 용감한 활약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먼저 기업을 택한 조건, 곧 가나안 정복의 선봉에 서겠다는 약속을 실행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선다는 뜻입니다(3:18). 이것은 갓 지파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의 순종 행위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22: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야곱은 단을 뱀에 비유하였으나(창 49:17) 모세는 사자의 새끼에 비유하여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두 예언의 문맥을 통해서 보면, 사자 새끼와 뱀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데, 뱀이 기습적으로 말의 다리를 물어 말탄 자를 넘어뜨리는 민첩성과, 바산의 사자 새끼가 양들을 기습하여 낚아채는 것이 동일하게 강조된 것입니다. 이런 단 지파의 민첩성은 삽손이 블레셋을 기습하여 압도시킨 일(삿 16:30)이나, 평안히 거하는 라이스 백성을 기습 공격하여 그 땅을 차지한 일(삿 18:27-30) 등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23: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밥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

  야곱은 납달리를 가리켜 ‘놓인 암사슴’(창 49:21)이라 표현했습니다. 풍요로운 풀밭에서 마음껏 풀을 뜯으며 즐기는 암사슴을 연상한 것으로서 역시 모세의 예언과 상통합니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 베냐민이 안전함과 보호의 은혜를 받았다면, 납달리도 여호와의 사랑을 입어 물질적인 풍족함을 얻게 됩니다. 이 예언은 납달리 지파가 가나안 땅의 젖줄인 갈릴리 호수 일대의 비옥한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수 19:32-39). 서방과 남방을 얻는다는 것은 바다와 남방이라는 뜻입니다.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말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이는 아셀 지파가 자손을 많이 둔다는 뜻이 아니라, 많은 아들들 중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형제들이 아셀을 좋아하게 되며 도와주게 된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봉사 때문입니다.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아셀이란 이름은 기쁨이라는 뜻인데, 레아가 아셀은 낳은 후 큰 기쁨을 얻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창 30:13). 그리고 야곱도 아셀에게 ‘왕의 진수를 공궤하는’(창 49:20) 복을 받으라고 했는데, 이는 아셀이 음식을 봉사하는 일에 전념함으로써 형제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야곱은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고(창 49:20) 예언했습니다. 이는 아셀 지파가 기름진 옥토를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가나안 분배시 북서쪽 납달리 지파와 접해 있는 기름진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25: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이는 아셀이 거하는 곳은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외적의 침입에도 안전할 것임을 뜻합니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네가 사는 날까지’ 강한 힘이 있어서 안식과 평안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에도 그 눈이 흐리거나 기력이 쇠하지 않은 것처럼, 노년에도 젊은 날과 같이 힘이 넘쳐 결코 지침이 없으리라는 말입니다.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여수룬의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는 뜻입니다. 즉 이렇게 모든 지파에게 축복하는 것은 모세 자신이 결코 아니라 오직 여호와이심을 밝히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돕기 위함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어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며 때를 따라 비를 내리셔서 그 백성의 만물이 살찌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위엄이 만방에 나타날 것입니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시며 산성이 되십니다. 대적들로부터 그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우시리라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이는 결코 그 힘이 쇠하지 않는 팔로 이스라엘을 감싸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대장이 되셔서 대적을 쫓으시며 적들을 멸하라고 명령하시고 지휘하시는 모습을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야곱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가리켜 ‘야곱의 샘’이라고 칭한 이유는 샘에서 물리 흘러나오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야곱의 배에서 나온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달리 ‘이스라엘의 근원’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시 68:26).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완성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홀로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그의 하늘이라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주관하시는 하늘, 곧 그의 보좌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은혜가 함께 하는 곳에서 이스라엘이 행복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스라엘이여 복이 네게 있도다.’는 뜻입니다. 이는 물질적인 복이라기보다는 ‘행복’, 혹은 복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너는 행복자로다’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여호와께서 대적을 그 발 아래 꿇게 하셔서 이스라엘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하신다는 뜻으로, ‘야곱의 영화’로 표현한 것도 많습니다(시 47:4; 겔 24:21; 암 6:8).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대적을 멸하고 그 땅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곳을 다스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축복한 그 내용들은 곧 우리 성도들에게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