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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19편 강해 -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chukang 2010. 11. 2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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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19편 강해 -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본 시에서는 자연 만물이 일반 은총 혹은 일반 계시(General revelation)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위엄을 선포하여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필연성을 가르쳐주고 있으며, 특별 은총 혹은 특별 계시(Special revelation)의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주신 율법의 완전성을 선언함으로써 도한 이러한 여호와를 향한 신앙으로 순종하며 복종할 때 완전한 복을 받을 것을 선언함으로써 여호와 신앙의 절대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늘과 궁창이라는 두 단어는 ‘동의대구법’의 기법입니다. 같은 의미인 하늘과 궁창, 하나님과 영광과 그 손으로 하신일, 선포하다와 나타내다가 각각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늘과 궁창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주만물을 총칭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로 만들어진 우주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주만물의 웅대함과 장엄함 또 섬세한 아름다움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의해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로 하여금 이런 우주만물을 통해 분명히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베풀어 놓으신 것입니다.(롬 1:20). 그럼에도 인간들이 자연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타락한 본성 때문입니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이는 낮과 밤이 끊임없이 교차되며 이루고 있는 조화로움과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갖는 그 아름다움과 그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말하고’ 이는 마치 창수가 밀어 닥치듯이 또는 샘이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물을 뿜어내듯이 말한다는 뜻입니다. 또 지식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만한 것(롬 1:17,20)을 제시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한 시적인 표현이기에 앞서 만물을 주관하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시인의 신앙고백입니다.

 

3: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자연만물은 말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서 아주 선명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을 자연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4: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그 소리’와 ‘그 말씀’은 같은 의미로서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가리킵니다. 온 우주 전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자연이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곳에서 선포함을 증거하기 위하여 시인은 어디에나 빛을 비추는 ‘해’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해를 위해 장막을 베푸셨도다.’는 말은 해를 의인화시킨 표현으로서 우주의 천체들 가운데 면류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해를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 국가들 중에는 해를 숭배하는 나라가 많았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해에 관해서 노래한 것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노래한 것이므로, 이방인과는 전혀 다른 창조 신앙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연 계시의 편재성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당위성을 경고하였습니다(롬 1:18-20).

 

5: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해가 신랑 같다는 말은 아침마다 어둠을 헤치고 나오는 해의 신선하고 웅장함을 신부와 밤을 보내고 아침에 신방을 나오는 신랑의 활기찬 모습에 비유하여 나타낸 의인법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돋는 해의 힘찬 모습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모습을 장사가 힘차게 달리는 모습에 비유하였습니다. 이런 표현은 고대 근동지방의 문학 작품에서 태양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방인들이 숭배하는 태양이 실상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라는 것을 밝히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인해 모든 생물들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이러한 태양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태양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보지 않는 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받지 않는 자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본 절부터는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초자연적 계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계시는 그 내용과 목적에 있어서 특별한 것이므로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율법’은 제한된 의미의 모세 율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모든 말씀을 가리킵니다. 8,9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증거, 교훈, 계명, 도, 규례 등은 다 같은 의미로서 바로 하나님 말씀의 특징의 각기 다른 측면을 묘사한 말입니다. ’완전하여‘라는 말은 흠이 전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이 세상의 어떠한 법이나 교훈과는 다른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을 나타냅니다. ’영혼을 소성케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함을 뜻합니다. 비록 자연 계시가 하나님을 증거하나 그것은 죄로 인해 영안이 어두워진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에는 절대 불완전한 것이며,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증거는 여호와의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화실하다는 것은 견고하다, 충실하다, 의심할 바 없다는 뜻으로 그 내용에 있어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믿을 만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라서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확실한 말씀이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견고하게 이끄시며 그 나아갈 바를 깨닫고 행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정직하다’는 ‘바르다, 곧다’는 뜨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교훈이 세상의 거짓된 교훈과 달리 인생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임을 뜻합니다. ‘마음을 기쁘게 하고’는 그러한 여호와의 교훈이 진정 인생들의 마음에 참 만족을 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다는 말은 그 말씀에 전혀 거짓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말씀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인간의 눈을 밝게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 말씀에 근거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선악 간에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정확 무오한 유일한 시금석입니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정결하다는 말은 전혀 불순한 것이 섞이지 않은 100% 순수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거짓된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즉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이 삶의 규범으로 삼는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오류나 거짓된 것이 없으니 영원토록 존속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현존하는 이 세상은 장차 폐하여 없어지고 말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니 그 분의 말씀 또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벧전 1:24,25).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완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 의롭다는 말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그릇된 것이 전혀 없고 그 말씀이 인간에게 주어진 목적에 있어서도 의롭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영혼을 소성케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목적의 측면에서, 그리고 구원으ㅜ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과정과 그 구원 방법의 측면에서 절대 의로운 것입니다.

 

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금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비유되는데, 그 중에서도 정금은 전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금으로 아주 귀중한 것을 의미합니다. ‘송이 꿀’은 벌집에서 흘러넘치는 꿀 덩어리로, 꿀의 달콤함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최고의 즐거움을 상징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처럼 인간 세상에서 가장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인 정금과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송이 꿀이 비유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귀하며 또한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과 유익을 준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교훈적 기능을 증거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즉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교훈 받게 되며 이로써 그릇된 행동을 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이 말은 인간이 선한 행실을 힘써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성경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순복하며 그 분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데 따른 분명한 상급을 약속하고 있습니다(고전 3:10-15). 이것은 구원에 덧붙여 하나님이 덤으로 더 주시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인간이 스스로는 자기 허물을 깨달아 회개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면서 말씀을 통해 영안을 밝게 하여 자신의 숨은 허물을 깨달아 회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숨은 허물은 12절의 고범죄와 달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은 죄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시인의 진실한 고백입니다.

 

13: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고범죄(故犯罪)는 고의적으로 짓는 죄, 즉 그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짓는 죄입니다. 고범죄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고 계시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기에 모든 죄보다 더 심각한 것이며 성경은 이를 ‘성령 훼방죄’와 동일하게 사함을 받지 못할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마 12:31) ‘주장하다’는 말은 ‘관장하다, 다스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고의로 죄를 범하는 자는 계속 그 죄가 올가미가 되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게 마련인데 이 같은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이같은 죄의 무서운 속성을 충분히 인식할 때 시인의 이 같은 기도가 또한 우리 자신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시 119:43). ‘큰 죄과’ 죄과는 거역한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본래는 반역죄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적으로 거스르며 순복하지 않는 고범죄를 가리킵니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인이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근거는 ‘반석, 구속자’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반석은 힘과 피난처입니다. 구속   자는 어떤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구원해 주는 보수자, 기업무를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석처럼 힘과 피난처가 되시며 또 자신의 죄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 곧 대속자 또는 용서하실 자가 되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열납된다는 말은 희생 제사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을 뜻합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은 기도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마음 속에 생각한 바를 곧 말로 표현해 아뢰는 것입니다. ‘말’은 단순히 언어 행위 뿐만 아니라 외적인 행위까지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말‘과 ’마음‘은 내면적, 외면적 모든 생활을 의미하므로 본 절을 확대해서 해석하면 시인이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삶이어야 하고 산 제물로 드려지는 영적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