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하는 여호와 출애굽기 15:22-27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 하에 노예생활을 하던 고센 땅을 떠난 지 얼마가지 못해서 곧바로 홍해 바닷가 앞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내 보낸 것을 후회하던 바로는 정탐꾼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홍해 바다 앞에 진을 친 것을 보고 받은 바로는 그들이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고센 땅을 떠나기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하고 당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에 바로는 즉시 군대를 동원하여 추격에 나섰습니다. 애굽의 모든 백성들은 물론 군대도 역시 사기가 충천하여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잡아오게 되면 그들이 다시 편하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 때문에 이스라엘을 내어보낼 수밖에 없었던 알량한 자존심까지 회복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병거까지 동원하여 추격에 나섰습니다. 당시의 병거는 두 개의 바퀴가 달려있고 두 마리의 말이 끌었으며 2인1조로 탑승하여 전투를 벌이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기병대도 동원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최고의 정예부대를 총동원한 것입니다. 애굽이 가지고 있던 병거 가운데 가장 좋은 것, 가장 싸움을 잘하는 무사를 태운 600승이나 되는 병거를 동원했고 기병대가 출동했으니 이스라엘을 내 보낸 것을 얼마나 후회하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애굽 군대가 쫓아오는 것을 알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들은 노동만 하던 사람들입니다. 군사적인 훈련을 받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무기도 없습니다. 애굽 군대 앞에 그야말로 벌레와 같이 보잘 것이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즉시 모세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애굽에 무덤 쓸 곳이 없어서 광야로 끌어내어 죽게 하느냐는 원망을 쏟아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죽는 것보다는 애굽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더 좋다고 출애굽을 후회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라고 하면 전쟁의 공포에 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등한 전쟁이라고 해도 두렵기 마음이 들 것인데, 하물며 한쪽은 당시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애굽이요, 이스라엘은 무기는 전혀 없으며 군사 훈련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우리가 볼 때에는 지난 한 역사로 결국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그 결과까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없음을 지적할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가 그런 상황이라면 이스라엘과 같이동일한 행동을 하지 않을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난폭한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히면서 믿음 생활을 방해할 때에 강하고 담대하게 그런 사람들을 대적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믿음이 있을지라도 막상 눈앞에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그들에게 굴복하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까? 빵이나 과자 하나, 음식의 유혹 때문에 주일을 어기고 있는 오늘날 우리 성도라고 하는 존재의 모습입니다. 하물며 강도가 우리를 협박한다면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다는 여호수아의 믿음,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4번씩이나 맞으며 죽음의 위협 앞에 선 바울과 베드로 같은 믿음,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3번씩 기도하는 다니엘의 모습과 그리고 그 세친구들의 풀무불에 던져지면서도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너무나 고귀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았으며, 잡히시던 밤에 11제자는 모두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것만 보아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지킨다는 것이 정말 너무나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한 믿음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용서하심과 인도하심이 바로 우리의 상처 받은 믿음을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가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됩니다. 그래서 나도 남을 용서해야 하고, 남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것도 성령님의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내 스스로 먼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면 감사할 줄 알고, 믿음을 지키기에 노력해야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연약하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고 믿음을 저버립니다. 이런 내 연약한 신앙도 내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하는 것으로 상처로 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상처를 싸매시고 고쳐주시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꺼이 치료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센 땅을 출발하자마자 첫 번째 고비가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험이면서도 상처 받은 영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이스라엘이 앞으로 어떻게 그 숱한 역경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치료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야만 가나안으로의 소망을 가지고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치료를 시작하시면서 믿음이 자라도록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 놀라운 기적의 손길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어떤 상처를 가지게 되고 믿음을 저버리며 하나님을 원망할까요? 그리고 또 그 뒤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보듬어 주셨을까요? 오늘 두 가지의 치료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의 성장을 위한 치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렇게 외쳤습니다(출 14:13,14). 그리고 모세는 홍해 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밀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밤새도록 큰 동풍을 불게 하시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갈라진 바닷물 사이로 만들어진 큰 길을 따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건넌 인구가 최소로 잡을 때에 200만 명이었으니, 이들이 밤새도록 건너가려고 하면 무려 폭이 1.6km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요? 1882년 알렉산더 툴루흐는 수에즈만의 멘잘레(Mensaleh) 호수가 강한 동풍에 의해 1.6km 이상이나 뒤로 물러가는 것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또한 기손 강의 한 여울로 서풍이 불면 물이 밀려가 사람이 건널 수 있지만 바람이 반대로 불면 물이 다시 차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기손 강은 엘리야가 우상숭배자들과 850대 1의 싸움을 벌인 갈멜 산 북쪽 평야를 흐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홍해가 갈라진 것도 자연적인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말씀이 홍해가 갈라지면서 바닥이 마른 당이 되었다고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강한 동풍이 불어오고 홍해가 갈라지고 바닥이 단단하게 굳어져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고 편하게 건널 수 있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로 걸어가는 것을 본 애굽 군대도 역시 홍해를 쫓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 달리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애굽 군사들은 전에 없는 이러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자 생각하여 외치기를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14:25)라고 하였습니다. 애굽 군사들조차도 이러한 홍해의 역사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것이라고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다 건넌 것을 확인하신 후에 바다를 다시 합하였습니다. 벽과 같이 되었던 물이 하나로 합해지면서 바다로 회복이 되고 애굽 군대는 한 명도 남김이 없이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15:1-18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출발할 때에는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난 듯하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바로의 압제의 칼날 아래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쫓아오는 것을 알자 출애굽을 후회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시는 10가지의 재앙을 보기는 하였지만 아직까지는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홍해의 갈라짐과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홍해를 건너고, 애굽 군사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볼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한 첫 번째 찬양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그 놀라운 경륜과 섭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애굽 군사들이 쫓아올 때에 후회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보이는 사람과 환경에 지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불신과 불만의 바다에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의 역사를 보여주시면서 그들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인도해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은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알고 있던 가장 무서운 존재인 애굽 군대가 한꺼번에 몰살된 것을 보고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강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영적인 치료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 주님 앞에서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애굽에 눌려 있던 이스라엘의 상처받는 영혼, 마귀에게 미혹당하여 상처받고 있던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치료를 받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문제 해결을 위한 치료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술(Shur)' 혹은 ’에담‘ 광야를 사흘 동안 방황한 후에 ’마라‘라고 하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홍해로부터 마라까지는 불과 53km 밖에 되지 않는 거리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무려 사흘씩이나 걸렸습니다. 사흘 길 동안 이스라엘은 물이 없어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사막을 걸어가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노인도 있습니다. 아녀자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도 있습니다. 거칠고 무더운 광야를 여행하는 것은 순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생 끝에 ‘마라’라고 하는 곳에 도착을 하여보니 호수가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모두들 달려가서 마시느라고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반가움도 잠깐, 마시던 동작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호수의 물은 맛이 너무나 써서 식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당연히 모세를 원망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밤 내내 울분을 참지 못하는 심정으로 모세를 향해 불만의 소리를 수군거렸습니다. 불과 며칠 전 출애굽과 홍해 도하의 기적과 같은 승리를 체험하였으면서도, 단지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이 불평한 것입니다.
홍해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생존의 갈림길의 문제였습니다. 마라에서의 원망은 생활에 대한 원망입니다. 원망의 공통점은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너무나 환경 앞에서 유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어렵거나 손해가 나면 반드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안 그렇습니까? 자신의 부족한 믿음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목회자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호수 옆에 있는 한 나무 가지를 잘라서 호수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실 것 즉 음식에 대한 고통으로 상처를 받은 마음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할렐루야! 생활의 모든 문제는 마라의 쓴 물이 단 물이 되는 것처럼 치료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해결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치료하시지만, 치료 전에 반드시 해야 할 것 두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기 위해서는 모세가 지팡이를 홍해를 향하여 들고 기도를 해야만 했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에 백성들의 모습은 성경에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함께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모세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목숨이 달려있는 기도였습니다. 백성들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 모세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마라의 쓴 물 앞에서 백성들의 원망을 들을 때에도 모세는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고 믿음으로 한 나뭇가지를 취하여 호수에 던졌을 때에 쓴 물이 변하여 단 물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잃어난 것입니다. 백성들 또한 모세의 기도에 동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었기 때문에 물을 마셨습니다. 이번에 마신 물은 쓴 물이 아니라 단 물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우리의 병든 영혼을 치료하시며,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만나 상처 받은 심령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흔히 이 말씀을 가지고 전할 때에 문제 해결을 하는 열쇠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그것을 기도하지 않고는 찾아낼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족입니까? 친구입니까? 돈입니까? 권세입니까? 나의 마음속에 좌정하고 계시는 주님이 가장 가까운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아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킬 때에는 각종 질병으로부터도 치료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지키고 있을까요?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지키는 것이 우리의 대부분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하면 잘못된 생각일까요? 내 편의에 의해서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조차도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입니다. 기도와 순종은 하나님의 응답과 치료를 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물과 음식 등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으로 성도들과의 관계를 만족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로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수준으로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치료해 주시는 의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모든 영적 질병까지도 고치시는 유일하고 완벽한 치료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적은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내 필요에 따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앙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복잡하고 혼란하고 생활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노래하는 삶, 이런 삶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미하는 생활을 하는 성도의 삶은 더욱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권능으로 우리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그 삶의 잘못된 모든 부분들, 살아가면서 받게 되는 크고 작은 고통이나 상처도 치료를 받았고, 또 치료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믿음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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