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식탁 출애굽기 16:13-20
2-3년 전에 Wellbeing이라는 말이 상당히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먹는 음식에 대해서 “Wellbeing food”라고 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행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역시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웰빙 음식이라는 것이 현미, 보리쌀, 콩, 팥, 수수 등과 채소류와 색깔이 진한 과일류들입니다. 이런 음식은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에 주식으로 먹던 것들입니다. 부자는 하얀 쌀밥에 고기와 생선을 먹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보리밥이나 기타 곡류와 채소류 밖에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몸이나 장수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왕들이 50을 넘긴 사람들이 몇 명이 없고 40-50 사이에 죽었다고 합니다. 왕들이 먹던 음식은 최고의 웰빙 음식이었습니다. 잘 선별한 좋은 재료들로 만든 그토록 좋은 음식과 맛있는 음식, 고급 음식을 먹었어도 단명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현대의 웰빙 음식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건강에 좋은 것이 틀림이 없지만, 웰빙 음식을 먹는다고 누구든지 건강해지거나 장수한다고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음식은 무엇일까요? 어떤 음식이며 어떻게 먹는 것이 우리의 건강에 제일 좋을까요?
1. 감사의 식탁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 먹을 것에 부족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부르짖음은 회개하는 것이 아닌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3절을 보면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런 원망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택한 백성으로 삼을 이스라엘이 굶주리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직접 이들에게 음식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양식을 비 같이 내려주셨는데, 그것이 곧 ‘만나’였습니다.
이 만나는 어떤 음식이었을까요? 생긴 모양은 깟씨와 같았다고 하였는데, 깟씨를 미나리과에 속하는 "코리안드룸(Coriandrum)"이라고 벌겟역에는 번역 되었고, 영어성경(KJV: coriander)에는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만나’는 히브리어로 ‘이것이 무엇이냐?’(마 후: מההוא)라는 뜻입니다. 크기는 겨자씨만 하다고 합니다.
맛은 “꿀 섞은 과자”와 같았다고 3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맛있는 과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꿀 섞은 과자가 그다지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빵 이외에 과자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 과자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을 사용하였는데, 팔레스타인에는 야생의 꿀이 많이 있었습니다. 요단강 부근의 바위틈에는 벌집이 많이 있었는데, 그 꿀이 바로 ‘석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석청과 메뚜기를 주식으로 했다는 하였습니다.(마 3:4)
이 벌꿀을 채집하여 질그릇으로 만든 주전자 안에 저장하고, 약이나 향료, 쨈 등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과자나 파이를 만들 때에도 사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과자는 주로 밀가루로 반죽하여 그 위에 꿀을 바르거나 말린 과일을 얹어 구워낸 것이라고 합니다. 아예 반죽할 때에 밀가루에 꿀을 섞어 과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자는 땅 속에 만든 오븐에 굽거나, 화로에 기름 솥을 얹어 감람 열매 기름에 튀기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 과자는 오늘날 과자와 특별히 다르지 않은데, 단맛을 내는 별다른 재료가 없었으므로 꿀 섞은 과자가 그때로서는 제일 좋은 음식이었습니다. 따라서 만나를 꿀 섞은 과자로 표현한 것은 그 맛이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였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최고의 음식인 꿀 섞은 과자와 같은 만나를 주신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만족할 기쁨의 음식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부터 나가서 그것을 주웠습니다. 만나를 거두어 삶아 먹기도 하고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에 한 오멜(1오멜은 1/10 에바, 1에바는 약 23ℓ로 1오멜은 2.3ℓ가 됨)씩 무려 40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음식인 만나를 먹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만나를 처음 먹게 된 이스라엘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민족도 먹어보지 못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맛은 최고의 맛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음식보다 더 훌륭하여 최고의 영양가와 맛을 가지고 있는 음식이 바로 만나였던 것입니다. 이런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먹었기 때문에 그 황량한 사막과 뜨거운 열풍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탐욕의 식탁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욕심으로 뭉쳐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절제를 잘 하는 사람도 많이 있어서 욕심껏 음식을 먹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뷔페식당에 가면 평소에 먹던 양의 2배가량을 먹는다고 합니다. 평소에 먹지 않는 음식들이 뷔페식당에는 많이 있고, 맛도 있고, 영양가도 풍부하기 때문에 자꾸 먹고 싶은 욕심이 저절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부릴 때에 ‘돼지’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사실 돼지는 스스로 최고로 많이 먹는 것이 위장의 80% 밖에는 안 된다고 합니다. 다만 그 먹는 모습이 탐욕스럽게 보일 뿐인 것이죠. 그러나 사람은 무려 120%를 먹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감사함으로 만나를 거두어 먹었습니다. 이 만나만 먹으니까 이제는 고기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또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원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고기를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메추라기를 진 사면에 덮게 하여 백성들이 그것을 잡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런 모습은 탐욕 이외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민수기 11:31-34을 보면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고기가 아직 잇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얼마나 욕심을 내었는지 제일 적게 모은 자가 10호멜을 모았다고 했습니다. 1호멜은 10에바니까 무려 230리터나 됩니다. 10호멜이니까 2,300리터나 되는 것입니다. 석유통으로 무려 115통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을 거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욕심을 부렸어도 고기를 씹어 삼키기도 전에 이들은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탐욕의 결과는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또 민수기 11:5-6을 보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좋은 만나를 먹으면서도 애굽의 음식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장막에서 온 가족이 통곡하며 울었다는 것입니다. 생선, 외, 수박, 부추, 파, 마늘과 같은 것들은 웰빙 음식이지만 정욕을 돋우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의 정욕으로 인한 징계는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3. 순종의 식탁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하루에 한 오멜씩만 거두도록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둘 때에 어떤 사람은 많이 거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적게 거두기도 하였지만 다 한 오멜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먹을 양이 한 오멜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 각자에게 부족하거나 남지 않도록 일용할 양식을 적절하게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를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루하루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내 하루의 삶을 맡길 때에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실 것입니다. 이는 또한 물질관에 있어서 탐욕을 부리지 못하도록 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식량의 부족으로 한 때 고생했던 과거의 경험 때문에 많은 식량을 비추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불신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만나를 남겨 항아리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다른 음식물에서 발생하는 것과 같은 자연적인 현상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리는 징계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으면 불순종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는 부패하고 파멸되는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비 일에는 평소보다 2배를 거두어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비일에 더 많은 만나를 내리시고 그들이 안식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평소에는 다음 날까지 둘 때에 부패하고 벌레와 냄새가 났으나 안식일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안식일까지 그 식탁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일부는 안식일에도 만나를 거두러 나갔으나 얻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은 6일 간의 창조 사역을 마치고 7일 째 휴식하신 것을 기념하늘 날(창 2:1-3)로 이날은 모든 노동을 중단하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6일에 2일분의 만나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쁘게 찬양하는 자들의 필요를 넉넉히 채워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5:15을 보면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목적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백성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은혜를 받는 것에는 동일합니다. 출 20:11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서 안식하셨기 때문에 모든 이스라엘이 안식을 해야 한다는 것과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강조점이 다르지만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하는 것에는 동일하며, 또한 안식의 개념에서 구속의 개념으로 발전이 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준수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염려와 근심을 버리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믿음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먹이고 마시우고 입히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는 불신앙의 사람들이 자신의 먹을거리에 대한 욕심을 채우고자 만나를 거두러 안식일에 나가는 것이며, 오늘날 성도들이라고 하면서도 육신 정욕을 위하여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은 아닐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들에게 적당한 징계를 하실 것이라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에 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비일에는 미리 삶은 것은 삶고, 구울 것은 구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안식일에는 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안식일이 육신을 위한 날이 아니라 영을 위한 날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날이며,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는 믿음의 날이며, 우리를 구속하신 그 은혜를 감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하지 않는 순종하는 식탁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식탁은 은혜의 식탁입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은혜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도무지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며 완전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이 식탁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영혼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굶주린 영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영혼이 건강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식탁은 날마다 주어지는 식탁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번 두 번 주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고 계십니다. 날마다 새롭게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적인 식탁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베풀어주시는 영적 양식에 대하여 우리는 참으로 귀함을 알고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식탁은 그 어느 누구에게는 차별이 없이 공평하게 하루 한 오멜씩 거두게 하시는 식탁입니다. 부자라고, 귀한 직분을 가졌다고 더 많이 주지 않았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에 공평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공평하게 베풀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만일 성도가 당시 메추라기와 애굽의 음식을 생각하면서 탐욕을 부릴 때에 그들이 멸망한 것과 같이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바로하지 않고 악한 육신의 정욕을 따라 불평하고 원망한다면 그는 이미 영적으로 주린 자와 같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생수를 마신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영원토록 목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아모스 8:11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양식을 받아먹어야만 매일 영적인 굶주림이 없이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풍요로움이 있을 때에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가 있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적인 것에 온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를 주셨습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신 분이십니다.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의 삶에는 감사와 찬양의 열매가 가을 열매가 맺히는 것과 같이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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