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더럽게 하는가? 마태복음 15:10-20
사람의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없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자연히 보게 됩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사물들 중에서 어떤 것은 아름답게 느껴져서 자꾸만 보고 싶고, 또 어떤 것들은 추하게 느껴져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리에는 아주 아름다운 것들이나 아주 추한 것들이 동일하게 박혀서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나 추한 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됩니다. 이것을 생득적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그와는 다르게 후천적 학습으로 인하여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후천적 지식은 자연만물이나 혹은 생각이나 관습 등 거의 모든 것에 해당하는데, 이 지식은 스스로 습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부모나 혹은 선생님이나 자주 접촉하는 어른들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꽃을 좋아합니다. 꽃 중에서도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수수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무를 좋아합니다. 큰 관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열매 맺는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도 어떤 사람은 작은 소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식물 보다는 돌을 좋아해서 수석을 채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보다 더 좋아하는 공통적인 것은 아마도 금이나 보석과 같은 것이겠지요.
전에 우리 주위에 있던 사람들 중에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에게 공주라고 하는 단어는 나쁜 것이었습니다. 다른 여자아이들은 다 공주가 좋은 것으로 알고 또 그렇게 대접받고 자라고 싶어 하는데, 이 아이는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바로 그 아버지가 교육을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갈 때에 여러 가지 사물을 접하고 사람을 접하고 환경을 접하게 되는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할 수 있는 그 근거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게 되면 자연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는 것을 체득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순결한 마음이 세상의 여러 가지 환경에 의하여 교육되어지면서 우리의 영적인 눈이 흐려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고, 부인하게 되는 경우로 성장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의 환경에서 자라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천주교에 다니게 되고, 불교 환경에서 자라나면 불교를 믿게 됩니다. 물론 개중에는 다른 종교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기독교적 신앙공동체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사람이라도 다 예수님을 잘 믿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대다수가 좋은 신앙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같은 신앙을 가지고 함께 생활을 할지라도 각 개인의 생각이나 성향에 따라서 어떤 부분은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고 하는 반면에, 또 어떤 부분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서 범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후천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가장 신앙적으로 타락한 무리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입니다. 바리새인들 중에는 율법 학자라고 하는 랍비들과 서기관들이 있고, 사두개인은 주로 제사장 계급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식 교육에는 매우 철저하여 어릴 때부터 율법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이들 모두들 통틀어서 ‘유대인’이라고 하고, 이들이 믿는 종교는 바로 ‘유대교’입니다.
유대교가 이단인 것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무려 일곱 번이나 저주를 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것이 불신앙이고 또 어떤 것이 이단입니까? 지옥에 가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이단이라고 하신 것보다 더 큰 증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14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가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유대교를 전파하여 교인이 생기면 그들을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교는 이단 중에 이단임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23:3)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세례 요한은 ‘독사’라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복음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주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독사’라고 분명한 표현을 하셨습니다. 지옥에 갈 독사와 같은 자들이 이단이 아니면 누가 이단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우리 기독교계에서는 또 사회 일각에서 유대인의 교육을 배우는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의 교육이 잘 되었다면 어떻게 그들이 지옥에 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의 교육은 지옥으로 가는 교육을 하는 것이요, 그들의 자식들은 후천적으로 잘못된 교육을 받아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일부 신학교 교수는 유대인들의 율법 613가지 조항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율법들은 이단을 만들어내고, 만들어진 이단들은 또 잘못된 유대교 교리인 613가지의 율법을 교회에서 가르쳐서 그들이 지옥으로 가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성경을 왜곡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여든 무리들을 향하여 유대교 교리는 잘못되었다고 확실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바리새인도 서기관들도 또 구경을 위해 몰려든 자들도 그동안 율법주의적 교리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율법주의자들로 인하여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비유로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이 11절 말씀입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8절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19,20절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음식물입니다. 음식물을 먹을 때에 손을 씻는 것과 씻지 않는 것은 위생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종교적, 도덕적 의의는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은 배로 들어가 소화 작용을 거쳐 배설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을 통해 밖으로 표출 되는 사람의 사상을 가리키는데, 이런 사상의 부정은 사람의 인격과 그 영혼을 더럽게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멸망하게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정으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교훈을 들은 제자들의 태도가 어떤지 아십니까? 12절을 보면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라고 합니다. 즉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들이 분노한 것을 아십니까? 하는 말입니다. 결국 제자들의 이 질문은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과 잘못된 율법관을 책망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보다는 불쾌히 생각하고 실족하여 진리의 대적자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큰 걸림돌이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사악한 감정을 가졌으며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바리새인들의 격렬한 반감을 느낀 나머지 그 사실을 주님께 알려 앞으로 예수님께서 말과 행하심에 있어 주의하실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판단으로 예수님께서 마치 그들의 충고를 필요로 할 만큼 자제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사람의 유전’으로 율법의 613조항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유전에 따른 그릇된 교리는 종내에 완전히 근절될 것입니다. 물론 그 그릇된 교리를 추종하는 무리의 심판도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또 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14절을 보면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관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질 악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유기”(abandonment)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버림을 받은 자들입니다. 유기의 반대는 “선택”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선택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사도는 우리들에게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소경이 소경은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말은 당시에 유행하던 격언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자와 어리석은 자의 지도를 받는 자는 다 같이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앞의 소경은 진리를 분간치 못하는 영적 소경이면서도 스스로 진리를 가르치는 지도자라고 자처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가리키며, 뒤의 소경은 영적 진리에 무지하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의 유혹에 현혹되어 그들을 자신의 진정한 지도자로 생각했던 어리석은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어떤 의미에서 영적 소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율법을 엄격히 지킨다고 하면서도 율법에 들어있는 근본정신, 곧 하나님의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문자적인 해석에만 치우쳐 외식과 형식주의로 일평생을 살 뿐만 아니라,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아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배척하는 등 영적 안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멸망의 길을 갈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 백성들까지 멸망으로 인도하는 사악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씀하신 바를 깨닫도록 설명을 부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 역시 율법을 배우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 즉 613항의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을 비난하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일반 백성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너희들은 나의 교훈, 나의 생활, 나의 이적과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통찰력이 없느냐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임할 때에 비로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참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생각으로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 증거, 훼방 등입니다. 악학 생각은 나쁜 의견입니다. 인간의 성격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모든 죄를 짓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잠어 기자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적 세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키워 나가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악한 생각은 곧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 증거와 훼방입니다. 살인은 제6계명, 간음과 음란은 제7계명, 도적질은 제8계명, 거짓 증거는 제9계명입니다. 훼방은 곧 신성모독죄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처럼 장로들의 유전에 대해 논쟁하시면서 계명을 언급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은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기 때문에, 죄가 그 믿음에 그대로 들어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외형적인 것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본질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장로들의 유전 곧 유대인들의 율법은 말씀을 왜곡시켜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버림을 당한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보다 세상에서 더 더러운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들 목회자들 더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자고 하면 오히려 ‘율법주의자’라고 공격을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곧 율법주의자입니다. 내 편의대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내 신앙이 외식을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가? 아니면 정말 올바른 길로 나가고 있는가를 테스트 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에 그때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이라고 한다면 비록 나에게 손해가 온다고 해도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불편해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하지 않으려고 정말 애써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경에 그렇게 써 있기는 하지만 다른 성도들도 그러는데, 다른 교회도 그러는데, 혹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 핑계를 대는 것은 겉모습만 성도 일 뿐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더러운 모습이 되고 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편의대로, 세상을 따라가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천국 백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남이 어기는 것을 내가 지킨다고 고리타분하거나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율법주의자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 마귀는 성도의 마음을 유혹하여 세상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말씀으로 바르고 참되고 깨끗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은혜의 십자가를 자랑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참 성도가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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