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이 관영한 세상이라도 창세기 6:9-22
인류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죄악도 역시 온 땅에 창궐하게 되어 인류가 타락하기 시작하였고, 점점 더 타락하여 가인의 후예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경건했던 셋의 후예들까지도 가인의 후예들의 죄악과 연합하여 온 땅은 죄악만이 관영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 일변도로만 흘러가 죄악만 관영한 세상이 된 것을 심판하기 위하여 온 땅에 홍수를 내리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의 심판을 알려주시면서 노아가 홍수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은 첫째 홍수가 내릴 시기 세태, 둘째 방주를 만들 것, 셋째 노아의 가족과 생물들의 보존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1. 홍수가 내릴 시기 세태
3절을 보면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120년 후에 홍수 대심판을 집행하신다는 경고입니다. 홍수가 노아가 600세 때에 있었으므로(7:6), 경고는 노아 나이 480세 때에 있었습니다.(벧후 2:5)
당시의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날이 120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인간들이 회개할 수 있는 기간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에게는 홍수의 대심판이 임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7:11,12). 당시의 악한 생활상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크게 두 가지의 사실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적 문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혼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섬기는 경건한 성도들과 가인의 후손인 불경건한 자들과의 혼인을 말합니다. 성도와 불신자 사이에 완전히 혼인이 금지된 것은 아닙니다. 룻기를 보면 나오미의 아들들과 모압 여인들 사이에 혼인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도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육적인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후대에서는 성도와 불신자 사이에 혼인을 부분적으로 인정을 하셨으면서도, 홍수의 심판을 예고할 당시에는 무엇 때문에 이런 혼인을 문제 삼으셨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놓고 보면 성도와 불신자의 결혼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을 수 있지만, 완전한 금지는 분명히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홍수 예고 당시에 하나님께서 성도와 불신자의 결혼에 대하여 언급하신 것은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불신자의 딸의 아름다움을 보고 반한 것입니다. 어떤 남자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여자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미모, 향락적인 채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쳐다 볼 때에 ‘보암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요일 2:16에 나오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말합니다. 따라서 당시의 세태는 오직 육신적인 쾌락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원인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을 위하여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을 때에 발람의 계교로 이스라엘 남자와 모압과 암몬 여인들의 무질서한 간음 행위가 있었고,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이방 여인과의 간음은 대부분이 처음에는 이방 신전에 있는 여사제와 미동들과의 관계로 시작이 됩니다. 그들은 우상 신전에서 매춘을 하는 자들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유추해 볼 때에 노아 당시에 불신자들의 여인들이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우상숭배와도 관련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건한 셋의 아들들이 그들의 치장에 마음이 흔들리고, 또한 악한 영의 역사로 인하여 급속하게 마음이 쏠렸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행위가 셋의 자손들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악하다고 보시고 심판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동성애가 급속도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이라 하신 것들을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히며, 합법적인 결혼까지 요구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합법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천주교의 사제들이 동성애를 하고, 신도를 성추행하기도 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태를 볼 때에 성도는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네피림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네피림이라는 단어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타락한 천사들 혹은 그 후손으로 보기도 하고, 괴물이나 신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거인으로 신체적으로 장대한 자들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앞의 두 견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견해이며, 세 번째 견해 거인이라고 해석을 한다면, 거인이라고 그들이 멸망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는 하나님의 성품상 또 성경적으로 도무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피림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압제자’, ‘난폭군, ’훼방자‘ 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당시의 도덕적, 성적 타락상과 잘 부합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타락하게 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은 도덕적 해이입니다. 그리고 그와 연관되어 폭력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홍수의 경고가 내려진 세상은 도덕적인 타락이 극도로 심했고, 방종과 전쟁과 압제와 약탈과 같은 일들이 계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피림을 ‘용사, 유명한 사람’으로 표현한 것은 그들이 전쟁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사람이며, 부자가 되고, 귀족 계급이 된 사람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시의 세상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5, 6절을 보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사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극도로 타락하고 악이 횡행하는 세상을 그대로 둘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2. 방주의 건조 명령
하나님께서 이런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노아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의 날이 120년’이라는 것은 120년 후에 홍수가 내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방주는 그 안에 지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방주 한 개 짓는데 1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걸렸다는데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방주를 짓는데 120년은 걸리지 않았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계하는 기간, 재료를 준비하는 기간, 작업하는 기간, 노아의 가족이 1년 동안 먹을 음식과 동물들 사료도 준비하는 시간까지 다 방주를 만드는 기간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시작하는 시점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성경에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부터 준비 작업을 시작하였을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성경에는 노아가 게으름을 피운다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준행하지 않았다거나, 핑계를 대었다는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방주를 완전하게 다 짓고 역청도 다 바르고 식량과 사료를 다 준비한 후에, 동물들이 암수 한 쌍씩 방주로 들어간 직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에 사람들은 노아를 보고 어떻게 했을까요? 제일 많이 비웃었을 것입니다. 마른 하늘에 홍수를 준비하기 위하여 배를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게 보였을까요? 방주를 어디에서 짓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 인류를 멸절시킬 홍수라고 볼 때에 바닷가에서 혹은 강가에서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방주의 재료가 ‘잣나무’이니 아마도 잣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라고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 중턱에서 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
방주는 어떤 모양이었을까요? 먼저 길이는 300규빗(171.5m)입니다. 폭은 50규빗(28.5m), 높이는 30규빗(17.2m)입니다. 축구장 길이가 최대 110m이고, 폭은 90m입니다. 방주는 축구장의 길이에 1.5배가 넘고, 폭은 1/3 가량입니다. 바닥부터 뚜껑까지 3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은 방주는 항해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홍수를 견디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성경에 나온 대로 실제로 방주를 만들어 실험을 했는데, 현대식 상선이나 군함도 견디어 내지 못한 파도를 다 견딜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재로는 잣나무라고 하였는데,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삼나무’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삼나무는 고대 알렉산더 대왕이 무적함대를 만들 때 사용했고,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의 문에도 사용이 되었는데, 이 문들은 무려 천년이 넘어도 썩지 않고 있을 만큼 재질이 뛰어난 것입니다. 게다가 역청으로 방수처리까지 하였습니다. 이 역청은 오늘날 아스팔트의 재료로, 고대부터 접착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도 바벨론 근처에서 역청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즉 방주는 이 세상에서 당시 홍수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안전하게 지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튼튼하고 안전한 방주 속에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환난 때에 들어가 피하여 안전하게 거할 곳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의 보존 약속
하나님께서는 이 방주에 노아의 가족 8명과 모든 동물 암수 한 쌍씩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방주 속에 그 많은 동물, 새, 양서류까지 다 들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현재 육상 동물의 종류가 총 17,600종이라고 합니다. 정한 동물 암수 7곱씩, 부정한 짐승 암수 한 쌍씩 계산하면 모두 45,000마리가 된다고 합니다. 정한 동물은 소, 양, 염소, 사슴과 노루 종류, 조류는 비둘기, 메추라기, 닭이 있고, 곤충으로는 메뚜기, 귀뚜라미, 베짱이, 팟종이 종류입니다. 방주는 125,280마리를 실을 수 있다고 계산이 나오는데, 화차 1량이 240마리의 양을 운반한다고 하는 기준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주에는 이 모든 하나님께서 명하신 동물들이 다 들어가고 식량도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 다 들어가고 또 어느 정도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유 공간도 있는 것입니다.
대홍수는 지구상의 모든 숨 쉬는 생물들을 멸절시킨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시면서도 택한 자가 피신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방주는 오직 한 척 밖에 없습니다. 방주 외에는 그 어떤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방주에 노아의 가족을 들어가게 하셨고, 온 인류는 바로 노아의 자손이 번성하게 생겨난 것입니다.
방주는 밖에서 진행되는 거칠고 흉용한 환난을 피하기 위한 완벽하게 안전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방주를 특별한 은혜로 보호하셨습니다. 이 방주 안에 들어가 있는 모든 사람들과 생물들은 안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공격하고 핍박하고 업신여기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갈수록 성적인 혼탁이 심해지고 있고, 곳곳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기근이 있으며, 지진과 각종 자연 재해가 갈수록 커지고 심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구의 종말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드시 그 끝은 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에 있는 온 인류와 생물들의 멸절을 선포하신 후에도 무려 120년을 기다리셨다가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택한 자들이 돌아와 안전한 방주인 교회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충족한 수가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심판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심판 때가 오기까지는 성도들이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 환난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피할 길을 내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 10:13)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홍수 당시 오직 방주만이 구원의 유일한 곳이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는 것만이 구원을 보장 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는 성도와 하나님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에 나올 때에는 다른 마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세상 적인 번민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 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에는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해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산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제물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서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자세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기 바랍니다. 친히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구원을 확정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주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감사하며 고귀한 것입니까!
우리가 믿음 안에 거하면,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삶을 바른 길로, 옮은 길로, 형통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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