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모세의 실패

chukang 2010. 10.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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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실패  민수기 20:2-13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입양되어 자라났고 애굽의 모든 고등학문을 배웠으며 지도자로서도 자질을 갖춘 바로의 아들과 왕권을 다툴 만큼 훌륭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승승장구(乘勝長驅), 만사형통(萬事亨通), 욱일승천(旭日昇天)이라고 하는 고사성어가 모세를 위하여 있는 것 같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에, 어느 날 밤에 애굽 사람이 히브리사람을 때리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좌우를 살펴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모세는 그 애굽 사람을 죽이고 모래 속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비밀은 없는 것입니다. 그 일 후에 히브리 사람끼리 싸울 때에 중재를 하려고 하였지만 그 중 잘못한 사람은 오히려 모세에게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일 것이냐고 덤벼들었습니다. 낯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였듯이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과, 모세가 히브리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바로까지 알게 되고, 이로 인하여 모세는 결국 왕궁을 도망하고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까지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이가 40세였습니다.

  미디안 광야의 한 우물곁에 허탈하게 앉아 있을 때에 마침 미디안 제사장의 7딸들이 양떼를 몰고 와서 물을 먹이려고 하였으나, 다른 목자들이 나타나서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의협심이 많고 정의로운 성품의 모세는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 목자를 물리치고 양떼에 물을 먹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모세의 도움으로 일찍 양떼에게 물을 먹인 딸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는 딸들이 보통 때보다 더 빨리 돌아오자 반가우면서도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영문을 물었더니 모세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는 딸들로 하여금 모세를 데려오게 하였고, 갈 곳이 없는 모세는 그곳에서 동거하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딸들 밖에 없는 미디안 제사장은 모세를 큰 딸과 혼인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목동으로서 40년 동안이나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80세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중년을 지나 노년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어느 날 양떼를 먹이려고 나갔다가 호렙산 중턱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곳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모세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에게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모세는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계획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인도자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은 살인범이이기 때문입니다.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망을 와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애굽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제 자신은 일개 목동으로 전락한 별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가 살인했을 당시의 바로는 죽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으며, 또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시면서 그가 결단을 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who) I am.)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전부터 스스로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전히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팡이를 취하게 하셔서 뱀이 되는 기적을 통하여 능력을 보여주셨고, 손에 문둥병이 들게 하셨다가 다시 회복되는 역사를 보여주시며, 또 그 형 아론을 동역자로 함께 하도록 하는 은혜를 주심으로써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할 지도자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모세는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애굽의 왕입니다. 그가 모세의 말을 순순히 들을 리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으로 10가지의 재앙을 내린 끝에 모세는 노예생활을 하던 고센 땅에서 출발하여 시내 반도가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백성의 고생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도자 모세는 그들보다 편하게 지내지도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모세가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고생을 해야 합니까?  비록 목동이지만 그래도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의 맏사위입니다. 그 한 몸 편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기에 그 수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일이 자신이 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을 수도 없이 뱉어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므리바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데스 바네아의 반역 사건으로 38년을 더 광야에서 방황한 후 제 40년이 되는 아빕월(정월)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당시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이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고, 20세 미만인 자들과 새로 태어난 자들을 이끌고 이제 다시 가나안의 진입로인 가데스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에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본래 가데스는 오아시스 지역으로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물이 말라 있었습니다. 아마도 계속되는 가뭄 때문에 물이 끊어진 것으로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사막 지대에서는 더욱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 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위협이 가나안 땅 진입을 위한 하나님의 시험인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고 하였습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모세가 왜 실패를 하였나? 그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핍박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칠 때부터 사용하던 그 지팡이로, 바로 앞에서, 홍해를 가를 때에, 도 르비딤에서 반석을 친(출 17:6) 지팡이입니다. 이번에는 르비딤에서와는 달리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에게 마치 자신들이 기적을 베풀어 물을 내는 것처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10절)고 말하여 하나님의 영광 대신 자신들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의 분노를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모면하려고 하는 유혹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능력을 백성들에게 확신시켜 줄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교만한 자세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자신의 전적으로 무능력함을 시인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수많은 목회자 또 성도들이 자신의 받은 은사를 자랑합니다. 내가 의로워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나는 오직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도구는 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세세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나게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반석에게 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감정에 따라 지팡이를 내려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하여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지적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렇게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던 모세였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불신앙적인 면을 없앨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자신을 죽이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서 역사하고 계심을 증거하는 것과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손해보고, 자존심 상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불신앙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어떤 변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이유도 하나님의 명령에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우리의 상황에 따라서, 우리의 감정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일들을 너무나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다른 성도들도 그렇게 하니까 그저 그렇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죄가 없다고 인정하시지 않으시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3.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참으로 잘 참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자의 신분에서 일개 목동으로 전락한 후에도 잘 참고 무려 40년 동안이나 별 탈 없이 잘 살았습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능력에 놀라서 이스라엘을 내보내겠다고 약속을 하고 10번이나 어겼지만 그래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이스라엘이 끝없이 뱉어 내는 그 숱한 원망과 불평 속에서도 광야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참고 또 참고 결국 가나안의 들어가는 길목인 가데스에까지 다시 올 수 있었습니다.

  민수기 12:3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에게 울분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온유함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오래참고 견디었으나 한 순간 울분으로 깨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용서 받지 못할 허물이 된 것입니다.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하였더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 중대한 시기에 그만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훈은 우리가 끝가지 불평하지 말고 최후까지 사명을 충실하며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갈지라도 온유한 성품으로 인내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백성의 원망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였다는 것은 모세와 아론을 대하여 싸우고 대항하는 것을 뜻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그토록 분노하고 인내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백성들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는 급박한 상황도 한 몫 했습니다.

  백성들은 심지어 광야 여정 중에 죽어나간 형제들의 처지를 동경하기까지 했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사람들은 자연사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으로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죽은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오히려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 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우리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적이 없었을까요? 우리가 왜 예수를 믿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면 그것은 곧 불신자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출세하는 것이 부럽습니까? 그들이 잘 사는 것이 부럽습니까? 같은 성도이면서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세상 사람처럼 행하여 잘 되는 것을 보니 부럽습니까? 그 모든 언행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며, 모세를 죄악으로 끌어들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든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한 순간의 잘못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실패를 가져오고야 말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책임인 동시에 백성들의 원인도 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실패했습니다. 다윗도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고 해도 실패를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모세의 실패는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몸은 비록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하였지만, 천국에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에 모세가 내려와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3-4)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실패는 절반의 실패입니다. 그것은 반대로 절반의 성공이기도 합니다. 인생들이 정말 잘 살고 출세하는 것 같으나 완전한 성공은 아무도 가질 수 없습니다. 육은 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땅의 것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땅의 것은 육신적인 모든 욕구와 욕망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욕구와 욕망은 인간은 물론 모든 생물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서 난 것은 땅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육신의 모든 죄와 허물들을 용서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와 같지도 않고 모세의 발꿈치조차도 따라가지 못하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더욱 우리에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비록 우리의 영혼은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한 순간에 구원을 받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육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우리의 육체도 구원을 받게 되고 그 때에는 비로소 영육이 완전한 구원을 받아 완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날 구원하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참고 인내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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