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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12편 강해: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 호소

chukang 2010. 6. 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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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12편 강해: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 호소

 

  본 시는 진실이 없고 거짓이 횡행하는 세상과, 온갖 아첨하는 입술로 이웃을 해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오만 방자한 자들이 판을 치는 사회와 그로 인하여 더욱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자 하는 경건한 자와 성실한 자를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사회 속에서 압제당하고 신음하는 가련한 자와 궁핍한 자의 구원을 호소하는 비탄시적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는 다윗의 지혜시입니다. 거짓이 만연한 세태에 대한 탄식과 함께 여호와의 신실한 말씀 앞에 엎드리며 사는 자만이 그러한 사회 속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지혜시적인 교훈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악한 자들의 득세와 형통을 바라보는 눈길은 과거 이스라엘 때와 현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악한 자들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선한 백성들은 고통과 신음 속에서 하나님께 탄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의인(성도)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도우시며, 이 세상은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표면적인 현상만을 바라보지 말고, 또 단기적인 안목으로 판단하지 말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믿고 소망을 가진 삶을 살라고 하는 교훈을 주는 시입니다.

 

1-4절은 거짓이 만연하고 경건한 자와 충성된 자가 드문 패역한 세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5-7절에서는 악인의 거짓과는 대조적으로 신실하신 여호와의 말씀만이 가련한 자와 궁핍한 자의 구원의 확신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8절에서는 비루함이 만연한 세태에 대해 다시 고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진실과 정의가 있는 사회로의 회복에 대한 다윗의 바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서 없어지도소이다.

  ‘도우소서’(호쉬아:חושיעה)는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이같이 다급한 구원의 호소는 마지막 절에 언급된 것처럼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시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경건한 자’(하시드:חסיד)는 ‘인자와 사랑을 행하는 자’를 가리키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충실한 자’(아만:אמן)는 ‘성실한, 믿음직스런, 양심적인’ 뜻이 명사화 된 것으로 ‘그의 말과 행실이 일치하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사람들이 이 땅에서 없어지고 오직 악인들만 남게 될 것 같은 위기감 속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거짓’(솨웨:שוא)은 ‘악(evil), 무가치(worthlessness), 공허(vanity)'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하는 말을 가리켜 거짓이라고 했습니다. 남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 유혹하는 말과 자기 마음속에 사악한 의도를, 즉 그 자신의 참된 본심을 숨기고 다른 말을 하는 자들이 그 말로 이웃에게 미치는 영향이 악, 무가치함, 공허라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아첨’은 사실이나 진실에 근거하지 않고 남을 칭찬하는 달콤한 말을 뜻합니다(잠 6:24). ‘자랑하는 혀’는 교만하게 자신을 높이며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기를 서슴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입술과 혀를 끊는다.’는 표현은 고대에 거짓말을 한 자에게 시행된 형벌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봅니다. 이는 2절과 연결하여 이웃에게 말로써 해악을 끼치는 자에 대한 저주를 나타냅니다.

 

4: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3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호와께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는 징벌을 행하시는 이유에 대해 보여줍니다. 악인은 그들의 거짓말과 속임수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시 73:8, 9). 악인은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치 아니하고 모든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는 자신들이 완전히 자유로우며, 그 누구로부터도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악인들의 생각을 잘 나타내 줍니다. 결국 이들이 여호와께 입술과 혀를 잘리는 형벌을 받는 것은 그 마음속에 우주와 역사의 주권자이신 여호와께 대한 멸시를 품고 그 같은 거짓을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계약(언약)의 주체이심을 나타낼 때 사용이 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말씀이란 계약의 주체로서 한 번도 변개함이 없으시며 반드시 약속하신 바를 식언치 아니하시고 이행하시는(민 23:19) 여호와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앞에서 ‘아첨하는 입술’ ‘자랑하는 혀’와는 대조적인 것입니다.

  '내가 이제 일어나‘ 하나님께서 마침내 강권적으로 역사하실 것입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고난당하는 것을 연단의 차원에서 잠시 허용하고 계시지만 마침내 구원하실 때가 되면 즉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겠다는 말입니다.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는 말은 의인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과는 달리 의인의 탄식을 들으시고 구원하시겠다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실행되리라는 자신의 확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절에서 경건한 자가 다 끊어진 것 같이 탄식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경건한 자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인은 악인의 말이 거짓된 것과 헛된 것과 대조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절대 진실하다는 사실을 단련한 은의 비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이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말씀이 100% 믿을 수 있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용광로에 넣어 은을 7번 제련했다는 것은 그 안에 든 다른 불순물을 티끌만큼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제하였음을 뜻합니다(삼하 22:31).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은처럼 조금도 거짓이나 속임이 없음을 뜻합니다. 또한 이것은 여호와의 구원 약속은 진실하기 때문에 분명히 이루어질 것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7: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성도를 구원하여 안전지대에 두시겠다는 여호와의 말씀에 의지하여 시인이 다시 한 번 불의한 이 세대 속에서 성도를 지켜 보호해 주실 것을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단순히 시인의 당대만을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게 행하는 죄악과 불법이 성행하는 모든 악한 세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당시보다 더욱 악한 세대이므로 성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8: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악인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거리낌 없이 비열한 짓을 일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악인들이 사회에서 득세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처럼 악인이 득세한 때에 사회 전반에 걸쳐 불의가 횡행하게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마지막 절에서도 시인은 일반적인 다른 시에서와 달리 찬양이나 성취적 신앙에 의한 기쁨을 표현하는 말로 끝맺지 않고, 이렇게 악한 세태를 고발하는 것으로 끝맺는 것은 이때가 여호와의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