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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13편 강해 - 원수로 인한 기도

chukang 2010. 7. 1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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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13편 강해 원수로 인한 기도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늘 원수들로부터 고통을 당하여만 하는 다윗이 쓴 비탄(悲歎)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방아 세워진 신본주의적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왕이며, 그 대대로 왕권을 보장 받은 유일한 확증을 받았지만,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사울 왕으로부터, 등극 후에는 대내외의 정적들로부터, 노년에는 왕위를 노리는 친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끝없는 핍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생의 극심한 핍박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지은 비탄 시에는 3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위기에 직면한 고통으로 인하여 저절로 부르짖는 절규와 호소, 둘째는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절망하지 않고 여호와께 구원을 간구하며, 셋째는 전 우주의 통치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원해 줄 것을 믿고 고통 중에도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신앙은 곧 우리 성도들의 나그네 세상길에서 예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어느 때까지니이까’(How long)라는 질문은 시편에서 자주 보이는 전형적인 탄식의 표현입니다.(6:3;89:46;90:13;94:3, 4). 이런 탄식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시인 자신을 속히 구원해 달라는 단순한 애원이나 절규가 아니며,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로는 잠시로도 지낼 수 없는 존재라는 고백을 배경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갈망하는 표현입니다. 얼마나 원수들의 핍박이 심한지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얼굴’ 하나님의 얼굴은 인간과 달리 육체를 지니지 않은 순수한 영이신 하나님을 인간과 유사한 모습 또는 인간의 품성을 지닌 것처럼 묘사한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입니다. 얼굴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 사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다는 것은 시인을 향하여 아무런 관심과 은총을 베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실제로 시인에게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시인이 마치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 같이 느낄 정도로 곤고한 지경에 처해 있음을 호소하면서 긍휼하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2: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로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라는 말은 너무 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머리 속이 너무나 복잡하고 혼란한 상황이 된 것을 뜻합니다. 그 이유는 원수들이 득세한 가운데 시인을 괴롭히며 핍박하며 비웃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시인은 이제 구체적인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탄식조인 간접적인 기도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간구로 바뀌었습니다.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밝히소서’의 나열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생각하사’는 NIV에서 'Look'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보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처한 이 위험한 상황을 보시라는 절규입니다. 그리고 응답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눈을 ‘밝히소서’라는 말은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해 달라는 뜻이며, 육신적인 의미에서는 지금의 곤고한 처지로 인하여 기력이 쇠하여 있음을 뜻합니다.

  ‘사망의 잠’은 단지 육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 곧 영적인 죽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구원이 없으면 자신이 원수에게 육적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여호와께 신앙을 잃고 원수들에게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넘어지겠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붙들어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원수들이 승리하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반대되는 불의한 승리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불의한 자들이 승리를 노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므로, 다윗은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 속히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을 강하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제일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간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5: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인자하심(헤세드:חסד)’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은총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이 용어는 종종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것, 또는 그 언약에 대해 신실히 이행하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약속 이행은 그 약속에 대한 의무 이행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백성이 먼저 그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할 하등의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약속을 지켜주시는 것이 ‘헤세드’입니다. 시인이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다는 것은 은총으로 끝까지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쁨은 이 같은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진실로 신뢰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후대하다(가말:גמל)’는 ‘갚다, 보상하다’는 뜻입니다. 시인이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간구할 때 여호와께서 자신의 기도대로 응답하시며 말할 수 없는 은총을 주실 것을 화신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이 시인과 같은 처지가 되어서, 자신을 조롱하고 능멸하는 원수들이 날뛰고 있으면,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는 것 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녀라고 하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구원하실 것이며, 원수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평안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