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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11편 강해: 구원의 확신

chukang 2010. 6. 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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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11편 강해: 구원의 확신

 

  다윗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과 후대의 성도들을 위해서 쓴 지혜시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세워진 자로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영원히 실현될 다윗언약(Davidic Covenant; 삼하 7:8-16)을 받은 장본인인 다윗이 정치적 통치자의 차원을 넘어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의 입장에서 백성들을 계도하기 위해 쓴 시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일생을 두고 거듭된 위기 곧 인본주의적 탐욕에서 신본주의적 정통성을 가진 자신의 왕권과 영광을 탈취하려고 하는 자들로 인해 야기된 숱한 위기에 처해서도 자신은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절대 초월자로서 전 우주와 역사를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이신 사실에 근거하여 오직 여호와께 의뢰하며, 그 심령의 평안을 잃지 않고 있음을 간증하여 모든 성도들에게도 오직 여호와만을 의뢰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피하다’(하사:חסה)는 단어는 ‘도피하다’는 의미이지만 ‘신뢰하다’는 뜻도 있습니다(16:1; 36:7). 시인은 위기 중에 오직 여호와만을 의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위기 중에 처해 있는 자신의 처지를 사냥꾼에게 쫓기는 연약한 새에 비유하여 강한 대적에 비하여 무력한 자신의 처지를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네 힘만으로는 중과부적의 대적과 맞서 싸울 수 없으니 그들을 피하여 숨으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나약한 충고를 하지만, 시인은 가장 확실한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자신에게 어떻게 그 같은 나약한 충고를 할 수 있느냐는 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소년 시절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여호와만 믿고 물매와 작은 돌멩이 몇 알만 가지고 나아갔지만 승리하였음을 (삼상 17:45) 기억하며, 그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실 줄을 믿고 있습니다.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활, 살은 악인들의 음모와 공격 행위를 비유한 것입니다. 악인이 활을 당겨 곧바로 과녁을 명중시키기 위하여 겨냥하고 있듯이, 자신이 처한 절대적 위기의 급박한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바른 자는 밝은 곳에 거하지만, 악인은 항상 어두운 그늘에 숨어 있습니다. 의인은 떳떳하기 때문에 거리낄 것이 없이 모든 것을 드러내 놓지만, 악인은 스스로도 자신의 죄악을 알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처럼 은밀하게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몰래 악한 꾀를 써서 의인을 괴롭히는 악인의 모습입니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터’(솨트: שת)는 ‘규율, 기강’이란 뜻으로 국가의 존재 및 번영을 유지해 갈 수 있는 국가의 기초적인 질서와 법률을 뜻합니다. 여기에서는 친구들이 다윗의 피신을 권유하면서 그 이유로 내세운 말입니다. 그들은 기강이 없고 법과 질서가 없는, 악인이 횡행하는 사회 속에서 의인은 다만 피하여 숨어 살 수밖에 없다는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적인 생각으로 다윗에게 피신을 권유한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다윗은 친구들의 잘못된 권유를 단호하게 뿌리치고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를 효하고 있습니다. ‘성전과 하늘의 보좌’는 동일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속하여 있는 인생들과는 구별되는 절대 초월자이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과 구별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인간사의 상황이라도 주의 깊게 집중하여 꿰뚫어 보고 계심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외면적 행동은 물론 그 내면의 속마음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대한 궁극적인 믿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판단이라면 의인이 죄인으로 또는 죄인이 의인으로 그릇 판단되어질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오류가 없습니다. 이는 결국 사악한 자들과 약한 자를 무고히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멸망될 것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믿고 기대하였으니 역경 중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내려친다’(마타르: םתר)는 말은 '비를 내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진노의 그물을 내리실 때 비를 퍼붓듯이 속히 행사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는 하나님의 심판의 격렬함과 준엄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불과 유황의 심판(계 14:10;19:20; 20:10; 21:8)뿐만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상기시켜 줍니다(창 19:23-28).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잔‘은 모든 인간이 다 마실 수밖에 없는 잔, 즉 인간의 운명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악인은 종국에 하나님 앞에서 쌓은 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나,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살기를 힘쓰는 자들은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보상의 잔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악인에게 임할 심판과 대조되는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 즉 불의를 멀리하는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 아래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인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지켜 보호하심을 받게 되며 죽어서도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동거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보응을 믿었기에 위 중에 산으로 피하라고 하는 친구들의 권유를 물리치고 죽든지 살든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본 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이요, 바른 신앙일까요? 눈앞에 당장 날아올 것 같은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사냥꾼의 활과 화살의 위협 앞에 선 연약한 새와 같은 절망적인 순간에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현실에서 도피하고 절망으로 탄식하는 현실도피주의자와 허무주의자들이 있지만, 다윗처럼 적극적으로, 여호와 절대 신앙으로 현실을 직시하며 난관을 헤어나가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흉악한 악인들보다 몇 천배 몇 만배,... 숫자로는 표시할 수 없는 능력의 하나님, 반드시 공의로 악인들을 심판하실 하나님, 그분에 대한 절대 신앙만이 능히 현실의 모든 괴로움과 슬픔과 고통과 위협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