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시편 제7편 강해

chukang 2010. 3. 1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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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제7편 강해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기도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후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사울 왕으로부터, 그리고 왕위에 오른 후에는 정적들로부터 수많은 도전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은 그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깨달은 다윗은 아무리 다급한 지경에 이를지라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을 기다렸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은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다윗과 성도들은 불완전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인정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을 대망하는 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본 시의 전반부 1-5절은 자신의 무고한 고난에 대해 탄원을 하는 내용이며, 후반부 6-17절은 의로우시며, 신실한 재판장이시며, 만민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의인은 구원하시나 악인은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다윗의 확실한 고백과 찬양입니다.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주께 피하오니’이는 ‘주 안에서 내가 구원을 얻고자 하오니’와 같은 뜻입니다. 이는 환난과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간구하는 시인의 ‘오직 여호와’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쫓는 모든 자’는 당시 다윗이 사울 왕의 미움으로 도피 생활을 하고 있던 때임을 볼 때에,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과 그 일당들(삼상 23:1-29; 26:1-5)이라고 하겠습니다.

 

2: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사자는 지구상의 제일가는 맹수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대적들을 사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노리는 그들은 사자만큼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얼마나 다급한 상황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이것’이란 대적들이 다윗을 모함하는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다윗이 당시 이스라엘의 왕 사울을 죽이고 자신이 대신하여 왕이 되려고 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삼상 24:9-11). 다윗은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밝히는 가운데 도우심을 원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핍박하는 대적들의 불의함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화친한 자’는 ‘평화의 약속을 맺은 자’입니다. 여기에서 ‘화친한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다윗의 삶의 여정을 돌이켜 볼 때에 사울 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적들은 다윗이 사울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그의 왕위를 찬탈하려고 한다는 모함을 끊임없이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사람들과 맺은 약속을 파하는 자는 징계를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수 9:20). 그렇지만 다윗은 결단코 그런 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그들의 악행을 고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

원수들의 말대로 자신이 그런 악한 일을 행하였다면, 자신의 생명을 땅에 짓밟히게 하고, 영광이 땅에 떨어져 수치를 당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죄를 범하였다면 죽임을 당하고 수치를 받아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백하고 정직한 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여호와를 향하여 ‘깨소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입니다(시 121:4). 악인들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고난과 핍박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무시고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렇게 간구하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만이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7: 민족들의 집회로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이제 다윗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민족들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르게’하라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위에 좌정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민족을 제외한 세상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다윗의 의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하였음을 말합니다. ‘내게 있는 성실함’은 하나님을 변함없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다우시은 자신들의 대적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죄가 없는 것과, 또 자신의 믿음을 근거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양면성을 볼 수 있습니다. 심판은 악인에게는 영벌이지만, 의인에게는 영원한 복락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본 절에서 “악인의 악”이라고 하는 구절입니다. 악인 자체를 징계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악인이 가지고 있는 악을 제거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미워하지 않고 그 죄를 미워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악인에게서 악을 제거하면 선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것을 다윗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심장을 감찰’ 심장은 사람의 속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내면까지도 감찰하시므로(삼상 16:7), 그 판단은 정확하고 올바르다는 것과, 각 사람의 선하고 악함에 따라 정확하게 상벌을 내리시는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것과 같으며, 죄인은 그 죄로 말미암아 반드시 공의의 보응을 받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나의 방패를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무죄한 자신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보상으로 받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는 외침입니다. 또한 다윗은 자신이 정직하고, 그 정직함을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알고 계심을 믿고 있습니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의 분노는 사람의 분노와 다른 악에 대한 분노입니다. 악인들이 악을 그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분노는 계속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절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악은 반드시 물리치시는 분이십니다.

 

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왜 악인이 징계를 받을까요?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 어떤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징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칼을 간다, 활을 당기었다는 표현은 이미 징계를 내리실 준비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징벌할 만반의 준비가 끝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전’은 불화살로,이 불 화살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악인이 죄악을 도모하며 행하는 것을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여 해산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잔해’는 ‘수고’, ‘노력’을 뜻하는데, 곧 죄악을 꾀하는 악인의 도모를 가리킵니다. ‘궤휼’은 ‘거짓’으로 악인의 거짓된 모함을 가리킵니다.

 

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쉽게 말하면 ‘제 꾀에 제가 빠졌다.’는 말입니다. 악인은 의인을 해하려고 함정을 파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도리어 그곳에 빠지게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의 궤계를 막으시고 의인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다윗을 해하려고 하는 사울의 악한 목적은 달성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16: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5절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악인의 악한 계획과 악행에 대한 응분의 대가가 결국에는 자신들에게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여호와의 의를 따라’ 의인을 악인의 손으로부터 구하시고, 결국에는 악인을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의로우심을 근거한다는 말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가운데 이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다윗의 믿음은 정말로 대단한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그만큼 정직하게 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도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