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성경 말씀

왜 사자굴에 던져졌을까?

chukang 2010. 3. 1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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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자 굴에 던져졌을까? 다니엘 6:16-24

 

메대-바사 제국의 왕 다리오 때의 권력 구조는 물론 왕이 제일 위에 있고, 그 다음에는 총리가 셋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방백이 120명이 있었습니다. 총리 셋 중에 다니엘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다른 총리들과 신하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포로로 잡혀 왔기 때문입니다. 왕의 곁에는 나라를 세울 때부터 함께 하던 개국공신들이 있었고, 그들은 권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라고 하는 가나안 땅의 아주 작은 나라의 포로가 총리대신의 높은 위치에 오른 것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총리대신에 오르는 과정을 보면 남달리 총명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신임을 얻어 세 총리 중에서도 으뜸이 되어 온 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다른 총리들과 신하들은 시기할 수밖에 없었고, 또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다니엘이 눈엣가시와 같이 여겨졌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 성품이 정직하였기 때문에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아서, 책을 잡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른 신하들은 다니엘에게서 흠을 잡고자 세밀하게 관찰을 했고, 드디어 다니엘을 제거할 계책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 계책은 다니엘이 평소에 여호와를 향한 신앙이 매우 두터운 것을 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여호와를 향한 그 마음과 자세가 변치 않을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미리 모의를 하고 왕 앞에 나와서 다리오 왕에게 아첨을 하면서 앞으로 삼십 일 동안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를 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자고 했습니다. 다리오 왕에게 ‘금령’을 세우고 어인을 찍어서 반포하게 하였습니다.

총리대신인 다니엘도 역시 그 자리에 함께 있었지만, 그는 집에 돌아가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또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을 해하려는 무리들은 다니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고, 다니엘이 기도하는 모습은 즉시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쾌재를 부르면서 왕에게 가서 이 사실을 고하였습니다. 왕이 내린 금령을 다니엘이 위반하였으므로 사자 굴에 던져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그제야 비로소 신하들이 다니엘을 해할 목적으로 다른 신이나 왕에게 30일 동안은 아무 것도 구하지 못하게 하는 금령을 반포하게 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하루 종일 이 일을 무마할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신하들은 저녁때까지 기다리다가 다시 왕에게 나아와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을 것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은 금령은 절대로 변개할 수 없음을 내세웠기 때문에, 다리오 왕은 자신의 반지 인장으로 찍은 금령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이 결국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도록 허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 일국의 왕이 왜 다니엘 하나를 구해 내지 못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당시 관습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근동의 법은 일단 공포가 되면 결코 변개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을 신의 대리자 또는 신의 아들인 신들의 화신으로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완전하며, 또 왕의 법령도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조서는 어인으로 인이 쳐지는 순간부터 변개하지 못하는 법률이 되어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메대-바사 제국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왕의 법률이 일단 공포되면 그 법이 공포되기 전에 일어난 어떤 음모나 그릇된 사실들이 발각된다고 하여도 그 법을 변개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왕 자신이라 할지라도 그 법은 취소되거나 변경할 수가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레스왕 때에 이스라엘의 귀환을 허락한 조서가 내려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원수들이 방해가 없을 수가 없었고, 원수들은 참소하여 성전 건축이 중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뒤에 고레스 왕의 조서를 바탕으로 다시 성전 건축은 시작이 되었고 결국 완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스 4:1-6:18)

성경에 보면 단 한차례 조서가 변경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하수에로 왕 때입니다.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는 하만의 궤계로 인하여 유대인을 멸절시키라는 조서를 온 나라 방방곡곡에 반포하였습니다. 이때에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한 후에 왕에게로 나아가게 되었고, 모르드개를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은 함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왕은 에스더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왕비의 모든 소청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하만의 악한 계획을 왕에게 폭로하였지만, 왕은 조설 한 번 반포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먼저 내린 조서를 무효화하는 조서를 다시 내려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결국 아하수에로 왕은 유대인 스스로의 자구책을 허락하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조서를 반포하였고, 그 결과 이전의 조서가 사실상 무효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에 3:6-13; 8:5-17).

당시의 왕의 법령의 절대성을 생각해 볼 때에, 아하수에로와 에스더의 용기와 결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다리오 왕은 신하들이 다니엘을 해할 목적으로 조서를 반포하게 한 것을 깨닫기는 했지만, 또 다니엘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자신의 조서를 무효화 시킬 수 있는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도록 허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에게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말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믿음이 있었을까요? 그들은 다신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신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어떤 신이든지 그 섬기는 자를 도울 것이라고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만일 다리오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었다면, 그 자신의 금령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조서를 변개할 수도 있고, 취소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아끼는 자기의 신하 다니엘을 사자 굴속에 넣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자신이 내린 조서를 번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다리오가 다니엘에게 한 말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구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을 피력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신앙적인 면으로 돌아가서,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훌륭한 신앙을 가진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지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신하들의 마음을 바꾸어서 돌이킬 수 있도록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에, 다니엘을 감시하던 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귀가 들리지 않도록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기 위해 끌고 가던 병사들을 잘못되게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결국 사자 굴속에 던져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도에게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고난이 찾아 올 때가 있습니다. 남달리 좋은 신앙을 가진 성도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그냥저냥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가 이제부터 잘 신앙생활을 잘 해보려고 결단을 하기만 해도 어려움이 시작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왜 잘하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한 것일까?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보면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런 고난을 겪어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히 다니엘이 받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을 것입니다.

 

1. 충성하는 성도는 시기를 받게 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얼마나 충성을 했습니까? 다니엘을 해하려고 하는 무리들도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언제나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자 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적인 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총리대신의 그 큰 중책을 그 누구도 책잡을 수 없도록 완벽하게 처리하는 세상적인 능력도 그 누구보다도 출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다니엘의 모습이 단 하나의 존재에게는 눈엣가시였습니다. 그 존재는 바로 원수 마귀입니다. 마귀는 다니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시기심을 넣어주었습니다. 이 시기심이 결국 다니엘을 사자 굴에 떨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욥이 재산이 많기 때문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참소를 하였습니다. 자녀들이 많기 때문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참소를 하였습니다. 그가 건강하기 때문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참소를 하였습니다. 욥은 사단으로 말미암아 결국 가진 모든 재산이 하루 사이에 모두 없어지고, 자신들도 모두 죽고 마는 비극을 맛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원수 마귀의 방해 공작은 심해지고 교묘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내 마음을 흔들고,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여 시기와 술수로 해치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잘하려고 하는 성도를 보면, 그 성도를 존경하고 본받기 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입니다. 나 보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인간의 악한 심령을 마귀는 이용하는 것입니다.

 

2. 신실한 성도는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다.

다니엘은 정말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도 흠이 없을 정도로 잘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미움을 받고, 시기를 받고, 모함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다니엘의 잘못이나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이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믿는 성도는 세상이 반드시 미워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성도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이유 하나로 가정에서, 혹은 친척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그런 성도에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약 1:12).

다니엘은 왕 이외의 다른 신에게 절하거나 섬기면 사자 밥이 되게 만든다는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상 권세의 힘이 무서워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릴 것인가? 아니면 죽더라도 믿음을 지킬 것인가? 양자택일의 심각한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여러분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에서는 주님을 믿는다는 그것 하나로 미워하고 위협을 가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 하나 때문에 손해를 봐야하고 참아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생과 사를 판가름하는 순간에 다니엘은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을 믿고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신실한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다니엘은 큰 고난을 받았지만 그가 끝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다니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한하신 능력으로 굶주려서 굴에서 먹이가 던져지면 공중으로 뛰어올라 움키는 사자의 입도 다물게 만드셨습니다. 깊은 굴 속으로 떨어지는 다니엘은 사자들로 인하여 몸이 땅에 떨어져 다치지 않는 보호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는 어쩌면 이 다니엘과 같이 사자 굴속에 던져져 있는 것과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총리대신이라서 구해주셨을까요? 그가 지식이 많아서 구해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도우신다고 하면 우리들은 어쩌면 막연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어떤 방법으로 언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일까요?

다니엘 9:23을 보면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고 천사 가브리엘이 와서 다니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10:12을 보면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하는 즉시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간구를 들으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간구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기도에 대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라도 그 가부를 속히 그리고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늦게 온 것은 ‘바사국 군’이 막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 즉 사단의 방해로 인하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오는 길을 막혔고,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가브리엘을 도와주어서 다니엘에게 올 수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다니엘은 이미 구원을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요 14:1)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성도의 믿음이 자라기를 원하십니다.(롬 1:17). 환난 중에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난 중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세상을 의지하던 모든 것들을 다 버려야 할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평화와 기쁨과 소망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이 아닌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지금도 성도들을 유혹하고 시험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고 믿음을 저버리게 하여 자신의 종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 세상의 불신자들을 통하여 미워하고 핍박하고 위협하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날마다 마귀와 그를 따르는 부패한 세상과 추종자들과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에 비로소 성도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번영도 승리 뒤에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주의 군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디로 가야하나 몰라서 고민하고 방황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 뜻을 보여주시려고 하십니다.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도 하나님은 나를 바라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보호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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