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42장 강해 – 곡물을 사러 애굽으로 간 요셉의 형제들

chukang 2018. 9. 28. 20:16

창세기 제42장 강해   곡물을 사러 애굽으로 간 요셉의 형제들

 

  바로의 꿈은 요셉이 해석한 대로 애굽 땅을 비롯한 중동에는 매우 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야곱의 가족도 역시 기근으로 매우 고통을 받는 가운데 속히 곡식을 구하지 않으면 모두 굶어 죽게 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자녀들을 애굽으로 보내어 곡식을 사오도록 했습니다. 형제들은 애굽의 총리이며 온 나라의 곡식을 주관하는 책임자에게 찾아가 곡물을 팔 것을 간청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찾아 온 형들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으나 형제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요셉은 눈물을 흘리고, 곡물 값을 자루에 넣어 다시 돌려주고, 대신 시므온을 볼모로 잡고,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올 것을 명하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모두 극심한 흉년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요? 이는 우리의 영원한 소망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가나안 즉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그 어려움은 땅의 것을 소망하지 말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1: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7년 풍년 뒤에 극심한 흉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흉년이 들지 모르는 야곱의 가족은 흉년을 대비한 저축을 하지 않았기에 곡식이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족장으로서 많은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하므로 곡식이 있는 곳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굽에는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곡식을 구입해야 하는데 야곱의 자식들은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차일피일 서로 미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는 애굽으로 내려갔으며,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고, 블레셋 땅 그랄에서 농사를 지어 100배의 수확을 이루는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애굽이나 블레셋으로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애굽으로 보내어 곡식을 사오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3,4: 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

  야곱은 베냐민을 제외한 10명의 아들 모두를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일행이 많아야 혹시 있을지 모르는 여행 중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곡식을 살 때에 인원수에 따라 만은 양의 곡식을 구입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야곱은 베냐민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베냐민을 매우 사랑했기 때문인데, 라헬의 소생인 요셉은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있고, 막내 베냐민마저 여행 중에 불상사를 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에 받은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구속사와 관련이 되는 이름입니다.(43:6;46:1) 따라서 식량을 사러가는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이제 본격적인 구속사의 여정이 시작됨을 암시한다고 하겠습니다. 당시에 가나안에서는 야곱 아들의 일행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곡물을 사기 위해서 애굽으로 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8: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곡물을 파는 실무 담당자는 하급 관리였겠지만, 이들을 요셉에게 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방인이기 때문에 총리의 허락을 받기 위하여 이들을 요셉에게 인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에게 엎드려 절했습니다. 이는 요셉의 꿈대로 자신의 곡식 단을 향하여 형제들의 곡식 단이 빙 둘러서서 절하였다.’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37:5-11) 요셉은 이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간지 무려 20년이 되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며, 어릴 적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기는 하겠지만 성인이 된 모습은 달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모르는 체 했습니다. 이는 악의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부모와 가나안에 대한 정확한 사정을 알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역을 세워 형들과 대화를 하였으므로 더욱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의 모습은 요셉이 어릴 때에 이미 장성하였으므로 그 모습 그대로였을 것이며, 차림새나 말투 등을 통하여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요셉은 형들을 보자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에게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37:7,9)이 생각났습니다. 이 꿈을 말함으로써 요셉은 고초를 겪고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하는 형들을 보면서 20년 전 꾼 꿈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깨닫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생각을 감추고 형들을 향하여 정탐군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하여 매우 배타적이었다고 합니다.

 

10,11: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로서 독실한 자니 종들은 정탐이 아니니이다.

  이에 형들은 매우 당황하여 자신들은 오직 곡물을 사러왔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요셉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묻지도 않은 가족 관계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지만, 경우에 따라서 인간이나 천사들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인간들 사이에 사용된 경우는 아내가 남편에게(18:12; 19:26; 45:11), 종이 주인에게(24:14,27;44:5), 신하가 왕에게(40:1;삼상 22:12;24:6,8,10;29:8) 사용하였습니다. 형들은 자신들을 비하(卑下)시키고 요셉을 높여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곡물을 사러온 증거로 자신들이 한 형제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독실한 자는 거짓이 없는 사람, 솔직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2,13: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주의 종 우리들은 십이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말째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요셉은 짐짓 그들의 정체를 모르 척하고 계속하여 정탐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이에 형들은 계속하여 자신들의 가족 관계에 대하여 설명함으로써 자신들이 정탐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14,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요셉은 형들에게 정탐이라는 증명으로 그들의 말대로 형제들임을 지적합니다. 왜 하필이면 형제들이라고 변명을 하여 정탐이 아니라고 증명을 하려고 하느냐고 추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친동생인 베냐민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16,17: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이니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요셉은 정탐꾼의 누명을 벗으려면 형제 중 단 한 명만 돌아가서 막내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에서 형제들은 큰 공포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셉의 요구는 형들에게 지난날의 잘못에 대하여 회개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들은 3일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3년을 감옥에 있었습니다.

 

18-20: 삼 일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요셉은 애초부터 형들을 감옥에 가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3일째 그들에게 말하여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이미 요셉의 마음이 형들을 용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한 사람만 돌아가는 것에서 단 한 명만 남는 것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장 아버지와 식솔들이 굶을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모두를 보내야 많은 곡물을 실려 보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 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형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형제들임을 밝히는 가운데, ‘하나는 없어졌고, 말째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말을 함으로써 요셉을 판 것에 대한 시인을 한 것이고, 그로 인하여 그들이 얼마나 잘못한 짓이었는가를 이제 깨닫게 되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미움이 자신을 지배할 때에는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으나 후에는 그 잘못이 돌아와 스스로를 찌르게 되며 고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으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르우벤은 장남으로서 실제로 요셉을 보호해 주기 위하여 애를 썼으나, 르우벤이 없는 틈을 타서 다른 형제들은 요셉은 애굽에 종으로 팔고 말았던 것입니다. 르우벤은 이로 인하여 옷을 찢으며 슬퍼하였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은 바로 그 때의 잘못으로 인하여 결과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피 값요셉을 사지에 몰아넣은 죄의 대가를 말합니다.

 

23-25: 피차간에 통변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그 말을 알아들은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취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인의 돈은 그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과거의 일을 괴로워하며 뉘우치는 형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되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이 생각나고, 또한 부모님과 고향 땅이 얼마나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졌겠습니까? 그래서 요셉은 급히 자리를 떠나 혼자 울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시므온을 결박했습니다. 시므온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르우벤이 장자였지만 자신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둘째인 시므온을 택하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고, 둘째 세겜 족 살해 사건과 마찬가지로 영약하고 차가운 성품의 소유자인 시므온이 요셉 살해 계획도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들고 있습니다. 이 두 견해가 모두 일리가 있으며 요셉은 이 두 가지의 복합적인 이유로 시므온을 볼모로 잡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곡물 값을 다시 그들의 자루에 넣은 것은 나중에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기 때문에 곡물 값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길 양식즉 여행 시 식량으로 사용하는 곡물을 따로 주는 것을 볼 때에, 요셉은 매우 사랑이 많으며, 이미 그들을 용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6-28: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곳을 떠났더니, 한 사람이 객점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구에 있는지라. 그가 그 형제에게 고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 하고

  나귀는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짐을 운반하는 데 널리 이용된 짐승으로 B.C. 20세기경부터 사막 지대에서 대상들이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객점은 장거리 여행객들이 쉬도록 만들어진 여관입니다. 객점에서 한 형제가 나귀에게 먹일 사료를 꺼내려고 자루를 풀어보니 아구에 돈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알게 된 형제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겨우 곡식을 구하여 돌아가는 길입니다. 형제 중 한 명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곡물 값이 자루에 들어 있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다시는 애굽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애굽에 갇혀 있는 시므온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하면서 자신들의 죄와 허물에 대하여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29-34: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그 만난 일을 자세히 고하여 가로되, 그 땅의 주 그 사람이 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나라 정탐자로 여기기로,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독실한 자요 정탐이 아니니이다. 우리는 한 아비의 아들 십 이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말째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그 땅의 주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독실한 자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탐이 아니요 독실한 자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어쨌든 형제들은 야곱이 있는 곳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있었던 모든 일의 자초지종을 아버지에게 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당한 고통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마도 연로한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한 효심으로 보입니다.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옴으로 독실한 자임을 증명한 후에 자유롭게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고 고하고 있습니다.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 즉 각인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 아비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나귀에게 사료를 주려고 자루를 푼 형제는 단 한 명이었으며, 아버지에게 보고를 마친 후에 다른 형제들이 다른 형제의 자루에서 돈이 다시 나온 것을 생각하고, 모두 다 같이 자루를 풀어 보았더니, 모든 사람의 자루에서 돈이 나오매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6: 그 아비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야곱은 아직까지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간 상황과, 시므온도 애굽에 잡혀 있는 정확한 진상을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자식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느끼며 스스로 한탄하고 울부짖는 것입니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이 말은 내가 홀로 지기에 너무 무거운 짐이다.’라는 뜻입니다.

 

37: 르우벤이 아비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나의 두 아들을 죽이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 오리이다.

  요셉을 구하기 위하여 무던히 애를 썼던 르우벤은 이제 시므온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두 아들을 아비 야곱에게 담보로 맡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르우벤이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으며 형제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38: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야곱은 르우벤이 자신의 두 아들을 담보로 맡기면서까지 베냐민을 데리고 가서 시므온을 구하고자 하는 것을 거절합니다. 그 이유는 과거 라헬의 여종으로 야곱의 첩이 된 빌하와의 간통 사건으로 르우벤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죽은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 친동생인 베냐민은 내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베냐민까지 사고를 당하게 된다면 자신의 아들을 애곡하기 위하여 음부까지 내려가게 될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의 가련한 처지에 대하여 야곱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노년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며, 또 죽어서도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음부는 무덤이나 죽음을 뜻하기도 하고(37:35;42:38; 141:7), 악인이 죽어서 형벌을 받는 장소로 쓰이기도 하며,(32:22; 21:13; 9:17; 7:27) 의인과 악인이 죽어서 함께 거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합니다.(16:33; 88:3; 89:48; 13:14) 일반적으로는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생각하던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