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49장 강해 - 야곱의 12지파에 대한 축복 및 죽음

chukang 2012. 3. 2. 17:26

창세기 제49장 강해 야곱의 12지파에 대한 축복 및 죽음

 

  야곱은 죽음이 가까워짐을 알고 12아들 별로 축복을 합니다. 이는 12아들로부터 시작된 12지파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이 예언들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구속사가 우연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12지파 중에서 유다에게는 왕권의 축복을 하였고, 이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왕권을 예언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자신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매장해 줄 것을 유언하였습니다. 몸은 애굽에 있지만 그 영혼은 언제나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의 후손들이 본향인 가나안으로 돌아가 기업으로 삼기를 갈망한 것입니다.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야곱의 축복은 당장 오늘 내일의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 대대에 걸친 예언입니다. 출애굽에서부터 그리스도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전 역사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야곱의 예언은 모계별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으며, 12아들들의 선행과 죄악에 따라 각기 축복과 저주가 내려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하여 장차 전개될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와 주님의 강림 등과 같은 구속사의 큰 전개와 흐름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2: 너희는 모여 들어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들으라는 것은 단지 귀로 듣는 것에 그치지 말고 마음 판에 새기고 삶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두 번씩이나 중복한 것은 메시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메시지는 선민 이스라엘의 미래와 그로 말미암는 전 인류의 미래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대강이 제시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한 아비의 아들들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계승자 이스라엘 민족으로 또한 전 인류를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3,4: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제일 처음 예언은 장자 르우벤에 대한 것입니다.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라는 것은 그의 위치와 그 귀중함(능력)을 일깨워 주고 있는 표현입니다. 아비 야곱을 제외하고는 가장 권세 있는 자요, 유력한 아들입니다. 아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난 가문의 희망과 같은 존재입니다.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는 말은 야곱의 왕성한 기운의 시작, 곧 생산력의 첫출발이라는 뜻으로 르우벤의 장자 됨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위광이 초등하고격조와 품위가 높고라는 뜻입니다. 장자에게 부여되는 가족 내의 제1인자로서의 권위와 하나님 앞에서 그 가족을 대표하는 영적인 영예 및 제사장과 같은 우월성을 갖는 것입니다. ‘권능이 탁월하다는 것은 그 가문을 지도하는 능력과 관계되는 표현입니다. 족장 시대에 가장의 권한은 신적 권위의 표본이라고 할 만큼 절대적이었습니다. 탁월한 권위를 지닌 가장의 승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장자가 자동적으로 물려받았습니다. 또한 장자는 다른 형제들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기업을 얻기까지 하였습니다.(27:29; 21:17)

  그러나 물의 끓음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르우벤의 성격과 행동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는 급하고 거칠며 충동적이었습니다. ‘탁월치 못하리니그의 지나친 성격과 행동은 결국 장자에게 주어지는 갖가지 특권을 잃어버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권리 중에 영적인 부분은 유다에게, 재산적인 면은 요셉에게로 이전되고 만 것입니다.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르우벤은 서모인 빌하와 통간(35:22)하였고 그 결과 아비의 눈 밖에 나 장자의 축복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르우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어떤 징계의 조치가 없었으나, 야곱은 그 일을 잊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 유언에서 예언의 형식으로 장자권을 박탈하고 만 것입니다.

 

5-7: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레아로부터 태어난 친 형제이면서도(29:3;3,34) 세겜 사건(34;35,26)의 공범자라는 측면에서도 형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그들이 누이 디나가 강간을 당했을 때에 세겜 사람들을 속여 할례를 받게 한 후에 제3일 째 가장 힘든 날을 택하여 칼로 잔인하게 복수를 하였던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이는 그들의 기질이 매우 호전적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내 혼아~ 내 영광아여기에서 혼과 영광(혹은 영혼의 뜻)’은 같은 뜻으로 야곱의 예언은 시적인 운율을 띠고 있는 문학적인 표현 양식을 가지고 있는 반복적인 표현입니다. ‘모의에 상관하지 말며~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이 또한 동일한 뜻을 가진 반복적 강조법입니다. 그들이 악을 도모하는 자리에 끼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악한 무리들과 결탁하지 말며(24:1), 선한 양심 및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고전 5:11).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가축의 힘줄은 힘의 근원으로 힘줄이 잘리면 그 가축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삼하 8:4). 이런 묘사는 세겜 살육 사건 이후 그들이 가축에게 행한 일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입니다(34:28,29). 그들은 세겜 성내의 가축을 약탈할 만큼 약탈하고도 모자라 나머지 가축들의 힘줄을 끊어버리는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며,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노염은 불의에 대한 노여움이 아니라 혈기를 말하며, 분기는 분노입니다. 이 분노 역시 혈기에 근거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후손이 반드시 흩어지게 되고 말 것이다.’는 예언입니다. 시므온 지파는 2차 인구 조사에서 유다 지파의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22,000명에 불과했습니다(26:14), 또한 다른 지파처럼 땅을 분배 받지 못하고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몇 개 성읍만을 할당 받았습니다(19:1-9). 레위 지파도 역시 독자적으로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형제 지파들의 도움을 받는 신세로 각 지파 성읍에 흩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26:62; 35:1-8). 그러나 레위 지파는 후에 하나님께 택한바 되어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그 지위를 회복하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8-12: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유다는 형제들로부터 찬송을 받을 자라고 하는 말을 시작으로 예언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만큼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29:35). 이스라엘이 이렇게 축복한 것은 과거 양식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유다가 보여준 의엿한 자세와 탁월한 지도력(43:8-10; 44:16-34; 46:28)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셉을 해치려는 형제들의 악한 모략을 저지한 적도 있었습니다(37:26,27). 이런 지도력과 남자다움과 형제를 생각하는 우애는 민족을 이끌 미래적 권능을 이미 배태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유다가 그의 원수들과 싸워 물리치거나 압제하는 것을 말합니다(18:41).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 유다의 후손인 다윗과 솔로몬의 전성기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삼하 5:1,2).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는 이 예언이 유다의 직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사망과 죄악으로부터의 승리로써 완전히 성취 되었습니다(5:5).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라.’ 형제의 후손들 즉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유다의 후손들에게 복종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유다의 후손이 다윗 왕가를 통해서 그대로 성취되었으며(삼상 17:12; 삼하 5:1,2), 궁극적으로는 유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로써 온전히 성취가 됩니다(2:9-11).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사자는 용맹스럽고 힘센 동물로서 정복자 혹은 통치자를 상징합니다(57:5; 5:29; 19:2-9). 그러므로 유다의 후손이 정복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은 왕권이나 통치권을 상징하는 작은 휴대용 지팡이를 말합니다. 따라서 뒤에 나오는 치리자의 지팡이를 뜻합니다. 왕이 자기 보좌에 앉을 때 자기를 향해 기대게 하면서 그 발 사이에두는 것이 관례라고 합니다. 유다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서 왕권을 계승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실로가 오시기까지에서 실로는 예수 그리스도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평화의 왕국을 뜻합니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나귀는 일반적으로 기둥이나 주변의 흔한 나무 등에 매는데, ‘포도나무에 맨다는 것은 포도나무가 그만큼 흔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므로 가나안 땅에 풍성한 수확 즉 물질적인 부요를 예언한 표현입니다.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포도의 풍성한 수확으로 말미암아 포도주로 옷을 빨만큼 차고 넘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그 눈은 붉겠고, 그 이는 희리로다.’ 붉은 포도주를 많이 마셔 눈이 붉게 될 것이며, 우유를 많이 마셔 이가 하얗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방탕한 생활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풍성한 수확을 누리게 되는 번영을 상징합니다.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

  스불론 지파에 대한 예언으로 그들은 가나안 점령 후 지중해와 갈릴리 바다 사이에 거주하면서 상업 및 무역업에 종사했습니다(19:10-16). 시돈은 두로 북방 48km에 있는 유명한 항구 도시입니다(23:2).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아셀 지파에게 할당된 땅이었으나(19:28), 원주민을 축출하지 못하고 섞여 살면서 (1:31)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이 원주민들의 학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스불론 지파의 후손들은 시돈 항을 이용하여 무역에 종사했습니다.

 

14,15: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건장한 나귀란 힘이 세고 튼튼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나귀는 우직하면서 성실할 뿐 특출한 점이 없는 짐승입니다. 잇사갈 지파를 이런 나귀에 비유한 것은 그들이 나귀처럼 힘이 세고, 우직하며, 성실하지만 다른 면에서 특출한 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지배를 당하며 살 것이라고 예언을 받았습니다.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이 말은 그들의 낙천적이고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기질을 말하는 것이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라는 말은 그들이 수행할 농업 분야의 성실한 사역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잇사갈의 후손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으며, 피지배층으로 육체노동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왕상 9:21).

 

16,17: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단이라는 이름은 심판자, 재판관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단 지파는 이스라엘 국가에 행정적으로 매우 유익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사사시대에 단 지파의 후손인 삼손이 사사가 되어 백성들을 재판하고 통치함으로 성취되었습니다(16:31). 단의 기질에 대하여 뱀과 같이 간교하고, 독사와 같이 기습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해서 곤경에 빠뜨릴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독사는 모래 색깔로 보호색을 하고 있고 뿔이 있는 맹독성의 뱀인데, 이 독사와 같이 삼손은 죽음 직전에 두 눈이 먼 상태에서 두 기둥을 넘어뜨려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였습니다(15,16). 또한 뱀과 독사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사시대에 단 지파가 처음으로 우상숭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합니다(18:1-31).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 지파까지 예언은 한 후에 야곱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들들에 대한 축복과 예언을 하는 가운데 더 중요한 것 바로 주의 구원이라며, 모든 자식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19: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 지파의 호전성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 점령 후 가나안의 내자가 아니라 외지인 요단 동편에 기업을 얻었습니다(13:24). 따라서 다른 지파에 비해서 적들로부터 자주 침범을 당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기업을 지키기 위해서 공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그들은 승리함으로써 이 예언은 적중했습니다(대상 5:11-18;12:8-15).

 

20: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아셀 지파가 분배 받은 땅은 지중해 해변 가로, 갈멜의 낮은 지대로 땅이 기름지고 물이 풍부하여 밀과 기름 등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곳입니다.(19:24-31). 그래서 이곳의 식물은 왕궁의 식량으로 조달되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두로 왕 히람으로부터 원목을 공급 받는 대신 이곳에서 소출되는 식량을 공급하기도 했습니다(왕상 5:7-12).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말하는도다.

  사슴은 어디서든지 적의 공격으로부터 재빠르게 도망쳐서 자신을 보호하는 동물입니다. 그들은 대적의 공격으로부터 날렵하고 신속하게 대처하여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영민한 병사의 기질을 가지게 될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사시대에 가나안 왕 야빈이 침략했을 때 이를 신속히 물리친 적이 있었습니다(4:10,23,24).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 웅변과 노래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뜻입니다.(4:6-9; 5:1)

 

22-26: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열대 지방에서 무성한 가지는 풍요로움에 대한 상징입니다. 더구나 샘 곁에 있는 무성한 가지는 기후 조건과 관계없이 늘 풍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1:3; 80). 따라서 요셉의 가문은 앞으로도 어떤 역경에 지면한다 하더라도 계속적인 번성 속에 풍요로운 삶을 누릴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는다는 것은 남의 집에까지 혜택을 주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의 후손의 번성은 다른 지파에게까지 도움을 주며 살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이 예언은 과거에 요셉이 핍박을 당한 것에 대한 내용이며(37:18-28;39:7-20),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적들을 이겨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야곱의 전능자의 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능력 있는 방어, 자기 사람에 대한 적극적 보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위기 상황에서 구원해 주셨던 것처럼(46:3; 48:15) 요셉에게도 그러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목자가 나도다.’는 말은 여기에서 목자는 요셉을 가리킨다고 볼 때에, 요셉이 오른 지위를 뜻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이스라엘의 반석과 같은 목자의 영예를 얻게 된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칼빈은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라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요셉과 그 후손의 번성에 유일한 원동력이 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위로 하늘의 복하늘에서부터 내리는 비와 알맞은 기온, 햇빛, 공기 등의 자연 혜택을 뜻하며(27:28), ‘아래의 원천의 복은 물의 근원으로, 우기가 짧고 연중 강수량이 매우 적어 물이 귀한 광야 사막지대에서 샘과 시내로부터 얻어지는 풍성한 물은 충만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은 자손의 번성에 대한 축복입니다. 이는 사람에게만 국한 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에도 적용이 됩니다. 모든 결실할 수 있는 생물은 무엇이나 증가되고 풍성해질 것이라는 축복입니다. 유목 사회와 농경 사회에서는 특히 짐승의 재산적 가치 및 생산력과 직결되는 인력 문제와 연관 지어 다산은 큰 복으로 간주되었습니다(127:3-5).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베냐민 후손의 거칠고 호전적인 성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사 에훗과(3:15-22), 기브아 전투(20:19-23), 사울 왕의 전투(삼상 11:6,7)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빼앗은 것, 움킨 것은 베냐민 지파의 끊임없는 투쟁 역사와, 또 반드시 승리하고 마는 그들의 기질을 암시합니다.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이는 야곱이 단순히 자기 12아들을 향해서 축복하고 예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근간으로 구성될 미래의 12지파를 지향하고 행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식들에 대한 축복은 인간의 편협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하여금 무계획적이거나 일방적으로 예언케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식들의 기질과 그들의 살아온 삶의 양태를 기초로 하여 각 사람에 맞게 적절한 사명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들어 쓰실 때 그 사람의 기질과 재능 등을 종합적으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25:14-20; 고전 12:1-11).

 

29-32: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은 47:29,30에서 유언한 바 있는 자기 사후의 문제를 재 언급하고 특히 그들의 가족 묘지가 있는 막벨라 굴에 자신을 장사 지낼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원한 본향은 역시 가나안 임을 강력히 암시하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15:16), 기필코 가나안에 들어갈 것임을 확언한 것입니다.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족장들의 내세관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죽음을 종말로 보지 않고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먼저 간 열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죽음에 대해서 약속하실 때에도 이와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15:15).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침상에 누워서 발을 가지런히 뻗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껏 마지막 힘을 다해 지팡이에 의지하고(47:31; 11:21) 축복했습니다. 이제 축복을 마친 후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다시 침상에 조용히 누워 발을 모은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어떻게 한 평생을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것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46:4) 이처럼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복된 죽음일 것입니다.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자신의 최후의 사명을 다 완수한 후 조용하고 평안하게 자연사한 것입니다. 그는 운명 직전까지 맑은 정신으로 그 자녀들에게 축복하였고,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는 신앙의 모범을 보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 땅에서의 고생과 수고를 다 마치고 주를 모시고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된 것입니다.(14:1-6; 2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