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41장 강해: 바로가 꾼 꿈을 해석하는 요셉

chukang 2017. 2. 19. 19:25

창세기 제41장 강해: 바로가 꾼 꿈을 해석하는 요셉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일이든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 가시는 그 세밀하심은 본 장에서도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섭리가 인간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때에 나타나게 되면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정말 천지창조를 하신 분으로써 그 어떤 일이든지 못하시는 것이 없지만, 평범한 인간의 생활을 통하여서도 기적과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실 때에 비유를 사용하였는데,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소재로 삼기도 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성도는 하나님께서 어떤 눈에 보이는 커다란 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성도의 직분을 잘 감당하고 지낼 때에 그런 기적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한 인간이며 애굽의 절대자인 바로에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을 통하여 요셉이 존귀하게 되고, 이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통하여 번성하게 되는 그런 치밀한 하나님의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야곱과 모든 가족들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가서 생명을 연장하며 번성하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400년 동안 종 살이 이후 출애굽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13: 바로가 너무나도 생생하면서도 두려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풀지 못해 쩔쩔 맬 때에, 과거 보디발의 감옥에서 함께 있다 요셉이 자신의 꿈을 풀어 그대로 된 기억을 되살린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요셉을 천거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첫째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적합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바로의 꿈을 통해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비로 더디어 보이지만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합한 상황 속에서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 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만 이 년 후요셉이 감옥에 있던 기간이라기보다는 술 맡은 관원장이 석방된 지 2년 후로 보는 것이 적절하게 보입니다. 당시 요셉은 약 30세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바로는 애굽 최고 통치자의 호칭으로 마치 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바로가 누구인지에 관해 여러 견해가 있지만 애굽의 제12왕조에 속한 아메넴하 3’(B. C. 1885년경, 풀핏 주적)로 보고 있습니다. ‘꿈을 본즉요셉의 생애에 있어서 세 번째 나타난 꿈 사건입니다(37:5;40:8). 요셉은 매번 꿈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록된 주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백성들의 삶에 깊이 개입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나아갈 바를 지시하십니다(119:105;14:16-26;16:16-10). ‘하숫가여기에서는 나일 강가를 가리킵니다. 이곳은 애굽 전역에 천혜의 자원을 제공하면서, 애굽의 우상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고대 애굽에서 암소는 땅과 농업에 깊이 관련된 가축이자 달()의 신 이시스(Isis)’를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이 암소가 하수에서올라온다는 것은 나일 강이 연례적으로 범람하여 강 유역을 기름지게 하는 자연 현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애굽 농사에 풍년이 들 것을 예고한 것으로, 그런 점에서 아름답고 살진 암소가 묘사된 것입니다. ‘갈밭에서 뜯어먹고나일 강변의 좋은 목초지에서 꼴을 뜯는다는 뜻으로, 이것은 애굽식 표현이라고 합니다.

 

3: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외모가 불상사납고 살이라고는 없는 말라빠진 형상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가축으로서는 효용 가치가 전혀 없는 상태를 가리킨 것으로 27절에 해석된 대로 절대 결핍(대기근)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수에서 올라와애굽 전역은 생명줄인 나일 강의 범람 유무 및 범람 정도에 따라 한 해의 농사가 판가름 났습니다. ‘그 소와 함께꿈이 상징하는 대조적인 자연 현상이 지체 없이 곧바로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4: 그 흉악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소가 소를 그것도 깡마른 것이 살진 것을 삼켰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그러나 꿈은 흔히 이러한 비상식적 영상을 만들어 냅니다.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바로는 동일한 밤에 거듭 꿈을 꾸었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허황된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의밌는 것이며, 시간적인 긴박성을 지닌 것임을 타나냅니다.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매우 알찬 결실을 나타낸 것으로 대풍작을 암시합니다.

 

6: 그 후에 또 세약(細弱)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세약(細弱)하고 동풍에 마른살이 전혀 붙어 있지 않은 깡마른 상태입니다. ‘동풍(카딤: קדים)’이란 일상의 바람이 아니라 특수한 경우에 부는 해로운 바람입니다. 이는 아마 3, 4월 경에 아라비아 사막 등징에서 고열(38가량)과 짙은 먼지를 동반하여 불어오는 남동풍 캄신(Chamsin)’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바람은 각종 농작물을 단 번에 고사시켜 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어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7: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 즉 꿈이라.

바로가 깬 즉 꿈이라.’ 바로의 꿈이 너무도 생생한 나머지 깨고 보니 비로소 꿈인 줄 알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꿈은 앞의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기에 그 꿈이 어떤 형태로 실현될 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하는 바로의 두려움도 담겨 있습니다.

 

8: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 마음이 번민하여그의 혼이 곤혹스럽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로는 꿈이 던져준 파문으로 인하여 상실하고 혼란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바로는 해몽을 위해 측근과 유능하다고 일컬어지는 우상숭배자 혹은 무속(巫俗) 인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술객(하르툼밈: חרטמים)’이란 설명하다’ ‘직시하다는 의미의 후르(חור)’숨기다(: טום)’이 결합한 단어로, 결국 숨겨진 비밀스러운 일을 밝혀내어 설명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주로, 해몽가, 점성가, 주술가 등의 미신 숭배자들로서 미신의 왕국 애굽에서 바로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사(하카밈: חכמים)’분변하다는 뜻의 하캄()에서 유래한 말로 일반인보다 탁월한 학문과 지식(주술적인 면도 포함)의 소유자로 각종 재판과 교육 및 문제 해결자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바로의 꿈을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모든 것을 초월하시며 유일하시기 때문에 그 꿈의 열쇠를 쥐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에 의지하지 않고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고전 2:10,11).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나의 허물을 추억하나이다.

허물(헤트: חטא)’이란 실수의 수준을 넘어 범죄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고백하는 허물은, 요셉과 맺은 약조를 불이행 한 것인지(40:14), 지난날 바로 앞에 범한 잘못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두 가지 모두 합해서 자신의 민망한 과거를 열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10-13: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시위 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징조가 있는 꿈이라. 그곳에 시위 대장의 종된 히브리 소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고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하고 그는 매여 달렸나이다.

사면 복권으로 인해 옛 행복을 되찾은 술 맡은 관원장은 만 2년 동안 잊고 있었던 히브리 소년의 탁월한 꿈 해석을 생각해 내었습니다(40:4-22).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의 허물로 치부할 정도로 때늦었다고 하는 그 시간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가장 적합한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정해 둔 시간을 인내와 기다림으로 기다려야 하는 그 당사자에게는 가장 적당한 은혜의 시간인 것입니다(5:7-11).

 

14-36: 이제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에 의하여 드디어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바로 앞에 나아가 당당하게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바로의 꿈을 들은 요셉은 애굽의 술객들과는 달리 명쾌하게 해몽을 한 뒤에 그 대책까지 정확하게 제시를 하였습니다. 이는 요셉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감과 지혜로 말미암아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본문은 배후에서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자는 세상 군왕이라 할지라도 그 지혜로서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람은 인간 역사에 대하여 받은 바 지혜로서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4: 이에 바로가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오니

하나님께서는 가장 빠르고 완벽한 방법으로 요셉을 애굽의 감옥에서 구출해 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안전이라는 절대적인 필요를 위해 세상 질서와 권력을 친히 운용하시는 것입니다(13:1). ‘수염을 깎고 그 옷을 갈아입고수염을 깎고 머리를 단정히 하는 것은 애굽 인들의 통상적인 몸가짐입니다. 그러므로 예의상 절대 권력자인 바로 앞에 나가기 위해서는 2년여의 투옥 생활 동안 흐트러진 몸가짐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 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바로는 요셉의 해몽이 철저히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서라도 믿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불신자들이 지닌 최고의 결함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 요셉은 그것을 단호히 부인하였습니다.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요셉은 명성 혹은 명예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한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만이 이런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유익을 위한 답벼의 말씀을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의 유일한 열쇠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다는 요셉의 뜨거운 신앙 고백이며 확신에 찬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평안(솰롬: שׁלום)의 유일한 주인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까지는 영원히 그 평안에 이를 수 없습니다.(14:27; 2:17)

 

17-2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하숫가에 서서,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하숫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악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라. 그 파리하고 흉악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먹었으나 먹은 듯하지 아니하여 여전히 흉악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그 세약한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술객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보이는 자가 없느니라.

바로가 자신이 꾸었던 꿈을 상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말라 몰골이 흉측한 암소에 관해 상술함으로서 자신의 불안한 심기를 은연 중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애굽 땅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라.’(19) 애굽 역사상 유래 없는 끔직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앞으로 닥칠 흉년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할 것을 뜻합니다.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여’(21) 풍년에 뒤 따르는 흉년이 너무도 극심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지난 번 풍년에 대한 기억조차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제로 흉년으로 인해 모든 행복을 잃어버릴 것임을 뜻합니다.

 

25: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암소와 이삭으로 비춰진 두 꿈을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이 신적 기원을 지닌 특별한 계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은 그 꿈을 꾸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꿈의 풍년과 흉년을 주장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 하실 일이라는 말로 밝혀둠으로써 하나님의 초원적인 능력과 주권을 강조해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관자로서 모든 자연의 변화를 친히 이끄시는 분이십니다(11:36).

 

26,27: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이라.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애굽 전역에 곧 닥칠 일곱 해 풍년과 일곱 해 흉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요셉이 지체 없이 꿈 해석에 임한 것은 그의 배후에서 그의 머리와 입술을 주장하고 계신 하나님이 그의 편에서 일하고 계셨음을 실증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28: 내가 바로에게 고하기를 하나님이 그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이로써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이며 대언자임을 분명히 말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의 영에 붙잡힌바 된 성도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구체적이고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영적 안목과 용기가 요구됩니다(딤전 4:9-16).

 

29-31: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기근으로 멸망되리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멸망되리니는 완전히 소멸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자연 재해로 인해 애굽 전백성의 양식이 핍절하는 등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정하셨음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확고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흉년에 관한 예언의 확고부동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온전히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23:19). ‘혹히 행하시리니그리고 주저치 않고 서둘러 그것을 실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꿈 즉 예언의 신속성과 엄정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이제 바로께서는요셉의 예언은 바로를 비롯한 좌중의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그는 지체하지 않고 급박하게 임할 재난에 대처할 현명한 방법을 바로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일개 이방인 출신 죄수가 당대의 패권국의 통치자에게 지혜로운 권고를 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세상 역사의 진정한 주역이 관연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요셉을 주장하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이런 말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명철(나본: נבון)’은 사물에 대한 명쾌한 식별력이나 올바른 것을 추구해 나가는 지적 능력 등을 가리킵니다(대하 11:23;6:30). ‘지혜(하캄: חכם)’는 단순히 한 기능만의 현명함을 가리키지 않고 총체적(이론과 실천을 겸비한)인 슬기로움 및 정신적.도덕적인 성숙함을 지닌 총체적인 총명함을 가리킵니다(111:10).

 

34: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國中)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국중(國中)에 여러 관리를 두어여기서 관리란 백성의 생활과 추수한 곡식을 살치는 자라는 뜻으로 일종의 봉사적 기능을 강조한 감독관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나라 안에 살피는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은 더 큰 복지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분의 일을 거두되이는 토지 소산물의 1/5를 징수케 하다는 뜻입니다. 당시 이 징수 량은 평년보다 약 2배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나, 워낙 토지가 기름졌고 풍년으로 인하여 모든 백성들에게도 별무리가 없는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35,36: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 하리이다.

바로의 손에 돌려이는 7년 풍년 기간 동안 백성들에게서 거둬들인 양곡을 왕의 권위와 통제 아래 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는 자연의 재난을 효율적이고도 체계적으로 극복하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기에 직면한 공동체가 마음을 합하고 지혜를 모을 때 그 위기를 쉽게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37-45: 바로에 의해 요셉이 애굽의 총리에 임명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명쾌하게 꿈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그 대비책까지 완벽하게 제시하자 요셉이야말로 명철하고 지혜 있는 인물로서 바로의 꿈에 나타난 7년 풍년과 7년 흉년에 대비한 계획을 실행하고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자로 판단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13년 동안이나 겪은 요셉의 온갖 역경과 고난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풍성한 영예와 복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장차 이스라엘 12공동체를 형성할 야곱 가족을 기근으로부터 구원하여 궁극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요셉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죄악으로부터 백성을 구원하사 하나님 나라에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37: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바로를 위시한 애굽의 모든 관료들로부터 기근에 대처한 요셉의 제안이 흔쾌히 받아들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지혜는 모든 심령을 만족시키고도 남는 것입니다(104:24;11:33).

 

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다신론자인 바로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신이란 유일신이신 여호와의 영인 곧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순히 초자연적인 통찰력과 탁월한 지혜의 영이라는 의미 정도이며 많은 신들의 영감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정도의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바로는 요셉의 지혜가 매우 신성한 것으로서 절대 신뢰할만한 것임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바로는 요셉이 지닌 지혜의 출처가 하나님으로서, 그 분이 요셉에게 모든 현명한 방도를 알려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언급한 이것이 참 신앙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바로가 요셉에 대한 외경심을 가졌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40: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바로의 집, 곧 애굽 전역의 관할권을 부여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일개 종의 신분에서 한 관료의 집사로, 그리고 거기에서 일국의 대총리로 삼으시는 놀라운 역전극을 펼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고난 중에 인내하는 자, 오직 주의 뜻을 좇아 부요나 빈핍에 처할 줄 아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딤후 4:7,8;5:7-11). ‘내 백성이~ 복종하리니이는 너의 입술에 나의 백성이 하나 같이 자신들을 맡겨 처분을 기다릴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요셉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애굽 전 국민이 그의 통치아래 놓일 것을 일컫습니다.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는 너보다 높은 것이 있다면 보좌에 관한 것 뿐이라는 뜻으로 결국 이 말은 요셉을 애굽의 제2인자이자 실제적인 통치자로 삼겠다는 획기적인 선언입니다.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총리하게 하노라이는 요셉에게 애굽 최고의 각료 직위인 총리대신에 임명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임명 절차가 아래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총리 임명에 있어서 첫 번째 절차로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인장 반지를 요셉에게 끼워주었습니다. 이 반지에는 바로의 초상과 그 이름, 칭호 등이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이로써 요셉은 애굽 각지에 임의로 칙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세마포 옷을 입히고세마포 옷은 희색 계통의 고급 면으로 된 것으로 애굽의 존귀한 인물들, 곧 사제들이나 고관들이 착용하던 영광스런 의복입니다. 따라서 요셉이 이 옷을 입은 것은 그 변화된 신분을 확연히 나타내주기 위함이었다고 봅니다. ‘금 사슬을 목에 걸로단순한 고급 장식물로서가 아니라 바로에게서 부여받은 명예와 지존함을 보이기 위해 금 사슬 곧 금목걸이를 착용했다고 합니다.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바로는 자신이 타는 왕의 수레 바로 뒤를 따르는 수레에 요셉을 태움으로써 그의 제2인자로서의 권위를 확실하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애굽의 유물들을 살펴보면 존영과 권위를 상징하는 표로 왕이나 귀인이 수레에 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왕과 총리의 행차에 앞서 전령들이 외치는 엎드려’(아브레크: אברך)라는 말은 애굽 말을 번역한 것으로 무릎을 꿇으라’ ‘엎드리라’ ‘머리 숙여라등의 뜻입니다. 이는 공식적으로 요셉이 애굽의 실권자임을 인정받는 장면입니다.

 

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나는 바로라이는 바로가 변개치 못할 법령이나 전언을 선포할 때 그 권위를 확인시키기 위한 통상적 어구로서 나는 실제적인 왕이다정도의 뜻입니다.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이는 요셉에게 바로의 통치하에 있는 애굽의 모든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부여하는 선언입니다. 이로써 요셉의 권위는 무제한적이요 절대적이며 전국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비천한 죄수의 신분에서 최고의 권력자로 삼으신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4:4).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애굽의 기근을 슬기롭게 대비하여 그 땅의 거민을 보존케 하기 위함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당신의 백성들을 극심한 재난 속에서 보호하시어 마침내 세상을 구제할 제사장 나라로 육성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깊이 깨달을 자는 주어진 위치에서 감사, 겸손, 충성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2:8;4:11,14).

 

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사브넷바네아바로는 애굽의 실권자가 된 요셉을 애굽 시민으로 완전히 귀화시킬 목적으로 그의 이름을 개명시키고 애굽 유력자의 딸과 결혼가지 시켰습니다. ‘사브낫바네아란 이름의 뜻에는 세상의 구원자 생명의 부양자 세상 사람들을 위한 방백 등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이러한 애석들을 종합해보면 장차 요셉이 수임해 갈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해 갈 중차대한 사명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 ‘태양이라는 뜻의 지명으로 현 카이로 시에서 북쪽 약 14km 지점의 헬리오폴리스의 통상적인 명칭입니다. 특히 이곳은 태양신 (Ra)’의 신전인 태양의 집(Pa-Ra)’이 있었으며, 당시 유력한 애굽의 제사장 집단이 거주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보디베라보디발과 동일한 뜻의 명칭으로서 태양에게 부별된’ ‘태양에 봉헌된 자등의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수행한 제사장(코헨: כהן)’ 직분은 태양신 의 사제를 지칭하며 이는 애굽 내에서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직책이었습니다. 그의 딸 아스낫의 이름의 뜻은 애굽여신 나이드(Neith)의 경배자(Jablonsky)입니다. 어쨌든 요셉이 이방 출신의 종이요 죄수의 신분에서 이 같이 애굽 국가 내의 요직에 해당하는 가문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은 표면적으로는 첫째 애굽인들 사이에 꿈 해석자가 지니는 권위, 둘째 비천한 인물을 제2인자로 발탁할 수 있었던 당시의 절대 권력의 정치적 구조 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46-57: 총리에 임명된 요셉이 맡은 바 국사를 지혜롭게 잘 추진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요셉의 꿈 해석대로 7년 연속 대풍년과 후 7년 연속 대흉년이 닥쳤습니다. 요셉은 그에 대한 만반의 대책을 세우고 차질 없이 수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요셉은 7년 대흉작에 대비하여 7년 대풍작 기간 동안 국고성을 건축하고 합당한 세제를 통하여 많은 곡물을 축적하는 등 최선을 다해 국정에 전념했습니다. 요셉은 목동 시절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였으며, 노예 시절 보디발의 집에서나, 죄수 시절 감옥에서 그리고 총리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주어진 상황과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하고 신실한 자였습니다. 권자에 오른 이후에도 결코 하나님을 잊거나 우상 종교에 동화되는 세속적 삶을 살지 아니하고 철저한 여호와 신앙으로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의 히브리식 이름과 그 의미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므낫세로 지나 온 자신의 인생여정을 돌이켜 보면서 과거의 모든 아픔과 고통과 쓰라림을 잊게 해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므낫세(잊어버림)’로 지었고, 둘째 아들의 이름도 이역 땅에서도 자신의 삶을 창대케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하는 마음으로 에브라임(창성함)’이라 지었던 것입니다. 두 아들의 이름은 요셉의 신앙 간증인 동시에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슬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바로 앞에 설 때에바로가 인준한 총리대신의 직임을 감당할 때라는 뜻입니다. ‘삼십 세라요셉은 17세의 나이에 애굽에 끌려온 후(37:2) 보디발의 집에서 약 10년간의 봉사와 약 3년간의 투옥 생활을 거친 끝에 마침내 30세의 나이로 애굽 초리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30세란 율법에 정한 바 레위인들이 공무에 임할 수 있는 나리아른 점에서(4:3, 23) 그 시사하는 바가 크며, 주님께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개시한 나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꾼을 미리 준비시키시되 사용하실 만한 때에 비로소 그를 들어 사용하는 것입니다(3:23).

 

47-49: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년 곡물을 거두어 각성에 저축하되 각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중에 저장하매, 저장한 곡식이 바로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요셉의 꿈 해석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요셉은 성 주변의 모든 소산물의 1/57년 간 거두어 성 안 보관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이는 단지 애굽 전역의 주민을 위한 대책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주변의 백성들 특히 가나안에 거주하던 백성들을 위한 대책으로서 이 같은 방대한 사역을 순조롭게 진행하셨습니다. 그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바다 모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7년간의 대풍작 기간 중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태의 열매를 선사하셨습니다(127:3), 특히 장남의 이름이 나타내는 뜻처럼 요셉은 비천한 존재에 불과하던 자신을 탁월한 신분으로 이끄신 것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분명히 고백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이방 우상의 총집산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애굽 내에서 그리고 주어진 부귀와 영화 가운데서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신앙을 경주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잊어버리게이는 완전한 망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 망각 상태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물해 주신 바 현재 누리는 행복이 과거 고초를 상쇄하기에 충분하는 뜻입니다.

 

52: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은 외로움과 고초와 번민으로 시작했던 애굽 생활을 변화시켜 창성함으로 갚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심정으로 그의 둘째 아들을 에브라임이라 칭했습니다. 이 이름을 통해 애굽은 자신의 영구한 도성이 아니라 단지 수고의 땅에 불과하며 자신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 주어져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영원한 하늘 가나안이 약속된 성도는 이 땅의 풍요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은 단지 수고의 땅에 불과한 것입니다.

 

53-57: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 식물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 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요셉이 예언한 대로 7년 풍년에 뒤따라 견디기 어려운 7년 대흉년이 찾아들었습니다. 이 흉년은 단지 애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주변 국가에까지 널리 미쳤습니다. 당시로서는 세계적인 대흉년이었습니다. 이 난국에 바로는 요셉에게 모든 재량권을 줌으로써 애굽, 더 나아가 애굽 근방의 모든 국가의 운명을 요셉으로 하여금 관할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같은 특별 조치는 결국 천지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인류의 멸망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류의 보존과 구원을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2:47). 또 인류 보존이라는 대과업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의 손에 맡겨서 동역하게 하시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벧전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