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창세기 제48장 강해 - 야곱의 축복

chukang 2012. 2. 25. 22:10

창세기 제48장 강해 요셉의 두 아들을 양자 삼고 축복하는 야곱

 

  야곱은 임종이 다다른 것을 깨닫고 요셉에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설명한 후에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삼고, 그들에게 아들과 같이 기업을 분배를 하였습니다. 이는 장자가 다른 형제의 두 몫을 받는 것과 같은 것으로, 결국 요셉은 야곱으로부터 두 몫의 기업을 분배 받게 되므로 장자권을 가진 것과 동일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양자로 삼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할 때에 손을 어긋나게 머리에 얹으므로 장자인 므낫세보다 차자인 에브라임을 더 높이고 있습니다.

 

1: 이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야곱은 일전에 요셉에게 자신이 죽게 되면 애굽이 아닌 선영에 장사하라고 유언을 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아버지가 병이 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왜 가족이 아닌

혹이즉 어떤 사람이 알려주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요셉은 총리로서 매우 바쁠 것이며, 형제들도 역시 목축으로 인하여 밖에 나가 있기 때문에, 요셉의 지위로 볼 때에 간병인이나 의사를 야곱의 곁에 상주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습니다.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이는 손자로 하여금 할아버지를 병문안시키는 것인데, 이는 선조에 대한 효도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병들어 침상에 누워있는 야곱은 힘을 내어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까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언약의 계승자로서(46:4) 그 언약을 자손에게 계승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 순간은 중병으로 죽음만을 기다리는 한 인간이 아닌 언약의 계승자인 이스라엘이 되어 언약을 전수하며 축복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4: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게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전에야곱이 에서의 칼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주할 때에 루스 곧 벧엘에서 돌을 취하여 베개를 삼고 노숙할 때를 말합니다. 그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은 그 후로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음으로써 그 위기를 헤쳐 나갔습니다. 자신에게 힘을 주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요셉과 그의 후손들에게도 함께 하실 것임을 확실하게 믿도록 하기 위하여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것과 동일한 것으로, 자손이 번성할 것이며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애굽으로 모셔오기 전에 이미 결혼을 하여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온지 17년이 되었으므로, 둘째 아들 에브라임은 최소한 18세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므낫세는 20세 안팎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의도적으로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손자를 내 것이라고 하면서 르우벤과 시므온처럼내 것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손자를 양자로 삼아 아들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을 뜻합니다.

 

6: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

  요셉의 셋째 아들부터가 진짜 요셉의 자식이 될 것이라는 뜻인데, 요셉에게 에브라임과 므낫세 외에도 다른 자식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그 형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는 말은 셋째 아들부터는 형들처럼 독립된 기업을 받아 한 지파를 형성하지 못하고 형들의 지파에 소속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에게는 열 두 아들을 따라 열 두 지파로 형성되어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별도의 지파를 형성하여 13지파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을 12지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향후 레위는 하나님께 뽑힌바 되어 기업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실질적으로 12지파가 맞는 것입니다.

 

7: 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밧단은 밧단아람의 단축된 지명이름입니다. 이때는 야곱이 밧단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간 종살이를 마치고 귀향하던 때를 가리킵니다(31:18). 야곱이 특별히 라헬의 죽음을 언급하는 이유는 요셉이 라헬의 소생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특별히 사랑한 아내가 라헬이고, 또한 라헬이 일찍 죽었으므로 그 사랑하는 아내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을 특별히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 애굽에서 생활이 보장된 것도 요셉으로 인함이므로 그 사랑은 더욱 깊었을 것이며, 두 몫의 지분을 나누어 주는 이유가 라헬을 특별히 사랑했음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무려 17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 동안 효자인 요셉이 아들들을 야곱에게 데려가지 않았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왜 누구냐고 물었을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야곱의 시력이 매우 약해져서 사물을 알아 볼 수 있지 않았다고 추측한다면, 요셉의 경우에는 목소리와 함께 흐릿하지만 비슷한 모양으로 식별할 수 있으나, 손자들은 자주보지 않았기 때문에 목소리는 물론, 흐릿하게 보이는 외모로서는 식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야곱은 이미 요셉이 그 아들들과 함께 올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5절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손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들로 입적시키는 것으로도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신분을 확인하는 것은 자신이 아들로 삼은 손자들임을 확인한 후에 축복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9: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요셉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야곱에게 아들들임을 기쁜 마음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애굽 여인과의 결혼 으로 인해 얻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양자로 삼았기 때문에 아들들의 혈통이 아브라함 가문의 후손임을 인정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손자들의 신분을 확인한 즉시 축복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였습니다.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 맞추고 그들을 안고

  야곱의 눈이 아주 보지 못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형체는 구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안고 입 맞추는 것은 축복의 전형적인 형태로, 이삭도 야곱에게 입 맞추고 그를 안고 축복했습니다(27:26,27). 이는 단순한 인사나 사랑의 표현이 아닌 축복의 전달자와 계승자와의 관계성을 확인하는 절차이며, 그 계승자에게 다함이 없는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성스러운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야곱은 형들이 가져다 준 피 묻은 요셉의 채색 옷을 보고는 필시 짐승에게 해를 당하여 죽은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을 했으므로, 다시는 요셉을 볼 수 없어서 상상만으로 지난날들을 회상하였는데, 이처럼 애굽에 와서 보니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라고 하는 엄청난 지위와 함께 애굽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기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또한 요셉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까지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2,13: 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자식을 부모 앞에서 물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요셉은 부모로서 또 언약의 계승자를 대접하는 최고의 포현으로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눈이 어두운 야곱이 축복할 수 있도록 두 아들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요셉은 야곱으로 하여금 므낫세에게 오른손을 얹고, 에브라임에게는 왼손을 얹고 축복할 수 있도록 데리고 갔습니다. 오른손은 권위와 능력, 복과 은혜와 보호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장남인 므낫세의 머리에 얹히도록 한 것입니다.

 

14: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성경의 기록 상 최초로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按手) 축복하는 행위가 나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눈이 어두워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구별할 수 없는데 어떻게 오른손, 왼손을 바꾸어서 얹을 수 있을까요?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임하였기에 야곱은 자연스럽게 손을 바꾼 것입니다.

 

15,16: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라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이신 동시에, 자신을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으며,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라는 말에서 볼 때에 그 사자는 우리의 일생에 있어서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모든 악으로부터 나를 구속하신이란 뜻입니다. 지나간 인생은 자신의 의도대로 살아온 것 같지만 결국은 목자가 양을 치듯이 실실하게 보살펴 오셨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또한 야곱은 자신이 육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까지도 구속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요셉을 가리키는데, 의미상으로는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까지 포함하므로, 요셉과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까지 함께 내리는 축복입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라는 말은 조상 대대로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이 이들에게도 계속되게 해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번식되게라는 말은 급속도로 팽창하며 증가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어진 복 중의 하나이며, 특히 언약 백성에게 확약이 되었습니다.(1:28;15:5)

 

17,18: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요셉은 이스라엘이 팔을 어긋맞겨 우수로 차남 에브라임을, 좌수로 장남 므낫세를 향하도록 한 것이 아비의 시력이 약한 탓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당연히 장자가 우수로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27:1-4,35-37; 21:17). 그래서 아비인 이스라엘에게 손을 잘못 얹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음 구절에서 입증되듯이 요셉이 이스라엘보다 영적으로 둔감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19: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야곱이 앞에서 손을 어긋맞겨 얹은 것이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야곱은 눈이 어두워서, 혹은 노망으로 인한 실수가 아니며,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안수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분별력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언약의 계승자에게 특별한 분별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야곱이 말하는 는 요셉을 말하지만 요셉의 두 아들까지 포함이 됩니다. ‘너로 축복하기를언약의 계승자로서 축복의 상징이 될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는 말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축복 받은 자의 상징이 될 만큼 큰 복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대조되어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신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원무궁하신 하나님께서 요셉과 그 후손들에게도 함께 하시어 모든 것으로부터 지키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이는 본래 요셉 한 지파가 되어야 하지만, 두 손자를 아들로 삼아 두 지파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중에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때에 두 지파의 몫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믿음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는 말은 과거의 일이 아닌, 미래에 자신의 후손들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질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리 족속은 이스라엘을 대항하는 가나안 부족 전체에 대한 상징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반드시 가나안을 정복할 것이요 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